# 사과와 치즈 타르트


 “오늘은 좀 어때?”


 나는 그렇게 묻고서 캣니스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아직도 열이 심했다. 캣니스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 좋다는 뜻이다.



 추워지면서 12번 구역에는 늘 그렇듯 독감이 돌았다. 그리고 피어니는 늘 그렇듯 독감 환자들을 성심껏 치료했다. 물론 코와 입을 단단히 가린 채로. 그러나 독감은 애버딘 가족에게 찾아오고 말았다. 나는 버드나무 껍질을 잔뜩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밖으로 나서며 하늘을 쳐다본다. 회색 구름이 꾸물꾸물 대며 하늘에 자리잡고 있다. 눈이 곧 내릴 것이다. 그래도 1시간 안에 집에 가면 안전할 것이다.



 나는 늘 지나던 개구멍을 통해 초원으로 나선다. 추운 겨울바람에 코가 시리다. 나는 스카프 비슷한 것을 가져올걸. 하지만 지금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다. 나는 이따금 코를 만져보며 숲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버드나무를 발견한다. 껍질을 떼간 사람들이 있는지 버드나무의 몸통은 부분부분이 하얗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해야 하니 등에 진 사냥감 자루를 땅에 내려놓는다. 칼로 버드나무 껍질을 잘라 자루에 담는다. 그러다가 버드나무 가지 끝에 높이 걸린 드림캐쳐를 보게 된다. 누가 저걸 걸었을까? 옛날 미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다니, 작은 기적이다.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애버딘 가족이 독감에서 회복되는 작은 기적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이번에는 생일 축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서운해하면 안 된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니까.



 하얗고 작은 가루들이 바람에 날려 오기 시작한다. 눈이 내리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울타리로 향하지만, 멀리서부터 들리는 웅-하는 소리에 멈춰 서고 만다. 울타리에 드물게 전기가 들어올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어떡해야 할까. 나는 근처를 서성거리며 고민한다. 다행히 크레이는 훗날의 후임인 스레드보다는 휠씬 게으르다. 그냥 전기 울타리 가동 횟수가 모자라서 급하게 채우기 위해 울타리를 켠 거겠지. 평화유지군들도 순찰 당번 외에는 자기 숙소에 그냥 있을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오늘이 휴일이니까... 게일도 아프지 않다면 숲에 들어와 있을 테다. 이렇게 숲에 발이 묶이면 헤이즐이 많이 걱정할 텐데. 나 대신 애버딘 가족을 살펴줄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게일은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울타리에 전기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큰 나무를 찾아 거기 밑에서 눈을 간신히 피하고 있겠지. 추위를 견디면서. 나와 캣니스는 아직 호숫가의 오두막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내 발걸음은 우리 셋이서 작은 소풍을 즐기던 바위로 향한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블랙베리 곁에서 게일을 발견한다. 그는 장갑 낀 손을 펴고는 거기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노려보고 있다.


 “게일!”


 내가 그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흔들자, 언제 찌푸렸냐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은 게일이 나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든다.


 “오늘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게일이 말한다.


 “피어니 아주머니도 그렇고, 캣니스랑 프림 모두 아프다면서.”


 “그래서 버드나무 껍질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어. 수면제 시럽을 먹이고 왔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내 말에 게일은 전기를 켠 크레이를 저주한다.


 “그래도 오래 가진 않을 거야. 크레이가 특별 전기 공급을 요청한 게 아니라면 두세 시간밖에 흐르지 않을 테니까.”


 내가 말한다.


 “뭐, 크레이가 연말 기념으로 요청했을지도 모르지. 크레이나 마구 욕하자. 이제 우린 눈 밑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르니까.”


 게일이 침울하게 말한다.


 “아니, 너는 전기가 끊기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 가족에게 내 소식을 전해 줘.”


 그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나에게 둘러주려고 한다. 나는 그를 만류하며 말한다.


 “음... 내가 눈을 피하기에 좋은 장소를 알고 있어. 캣니스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너한테도 알려줄게.”


 “그거 좋은데. 캣니스라면 이해할 거야.”


 게일은 내가 앞장서게 한다.




 호숫가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즈음, 눈송이가 두터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오두막의 문을 거칠게 연다. 온 지가 좀 되어서 바닥에 먼지가 쌓여 있다. 게일이 오두막으로 오는 동안 주운 나뭇가지를 벽난로에 넣고 불을 피울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바닥에 쌓인 먼지를 꼬마 빗자루로 쓸어 버린다.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너랑 캣니스 말이야.”


 “우리가 찾은 게 아니야. 애버딘 씨가 알려주신 거지. 우리는 여기서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어.”


 게일이 소꿉놀이를 하는 두 꼬마를 생각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애버딘 씨는 네 생일도 챙기셨을 것 같아. 참 좋으신 분이셨으니까.”


 “그랬어. 너무 감사했지.”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려고 일부러 이리저리 움직이며 빗자루로 구석을 쓴다. 그러다가 게일의 말에 빗자루를 떨어뜨린다.


 “애버딘 씨가 여기서 네 생일을 챙겨주셨는진 모르겠지만...”


 게일이 품속에서 사과와 치즈로 만든 타르트를 꺼낸다.


 “난 여기서 네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나뭇가지가 탁탁 타들어 가는 소리가 오두막 안을 울린다. 그에 따라 오두막 안은 더욱 따뜻해진다. 눈이 잔뜩 내려서, 오두막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마침 어두워질 때도 되었으니까.



 타르트는 날씨가 추워서 이미 차갑게 식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치즈의 짠맛과 사과의 단맛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게일은 내가 타르트 하나를 다 먹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게일과 타르트를 반 나눠서 먹는다. 타르트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나서야,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게 다 독감 때문이다.


 “고마워.”


 난 이미 한 감사 인사를 게일에게 또 하고 만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나 대신 사슴을 잡아. 사슴 목에 칼을 날려 버리는 거야.”


 “사슴은 날아오는 칼 따위는 피하고도 남을걸. 우리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 치겠다.”


 내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뭔가 우울한 기분인데 작은 유머에도 웃게 된다. 뭐지?



 세찬 돌풍이 오두막을 흔든다. 깨진 창문과 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자, 게일이 자기 재킷을 나에게 두른다.


 “너는 안 추워?”


 “견딜 만해.”


 나는 게일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끌어당겨 불가에 더 가깝게 앉게 한다. 그러고서는 그에게 기대며 게일의 재킷을 우리 둘 위에 덮는다. 그에게서는 나무 태우는 연기 냄새가 난다. 이곳에서 불을 피우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늘씬한 근육이 잡힌 게일의 팔이 나를 그의 품속으로 더욱 끌어당긴다.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기척이 등으로 느껴진다. 그새 까맣게 타들어간 나뭇가지 하나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불 속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해? 우리는 12번 구역을 떠났고, 가족들도 없는 거야.”


 게일이 말한다.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숲에서 채집과 사냥을 하면서? 난 좋아.”


 내가 말한다.


 “나도. 내가 먹여 살릴 가족이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몰라.”


 잠시 말이 없던 게일이 다시 입을 연다.


 “내가 너한테 떠나라고 하면 너는 12번 구역을...”


 “안 떠나.”


 나는 게일의 말을 단호하게 가로챈다. 여기를 떠나는 건 말도 안 된다. 야생에서 살기는 힘들고, 캐피톨이 그걸 가만두고 보지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12번 구역을 떠나서는 안 된다.


 “왜?”


 게일이 딱딱하게 묻는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여기 있잖아.”


 내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12번 구역을 떠나 원작 사건이, 모든 소란이 사라지고 다시 돌아온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그들이 캐피톨에게 이용되고, 반군과 캐피톨의 아귀다툼에 희생되는 걸 아니까. 내가 그걸 막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죽기가 무서운 것도 이래서다. 가까운 미래에 프림을 대신해 자원할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캣니스와 프림은? 피타는? 그리고.. 게일은?



 게일을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다. 게일이 자기도 모르게 나를 꽉 끌어안는 게 느껴진다. 그가 창문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나도 덩달아 시선을 창문으로 옮긴다. 깨진 창문 밖으로 눈발이 그치는 것이 보인다.


 “이제 가자. 전기가 끊겼을지도 몰라.”


 게일이 무뚝뚝하게 현실을 일깨운다. 나는 그에게 재킷을 건네고, 불을 끄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너는 그 사슬을 끊어야 해. 언젠가는.”


 “뭐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일은 불을 대신 끄고 밖으로 나선다. 그의 입가가 슬픈 호선을 그리고 있다.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다. 내 사슬은 헐거운 반면, 게일의 사슬은 굳건하고 그를 꽉 죄고 있다. 그래서 게일은 내가 사슬을 끊고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의 안녕이 내 사슬이야. 내가 지금까지 이 희망이 박탈된 세상에서 살아온 게 그걸 위해서야.



 병적이고, 집착에 가까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이루기 전에 조공인으로 뽑혀 경기장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나는 캣니스가 밝힐 불씨가 잘 퍼지도록 기름 한 방울이라도 뿌리고 죽을 것이다. 그게 내 죽음을 의미할지라도.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지금 눈이 엄청 내리고 있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계신가요? 기념으로 짧은 외전을 올립니다.


1부에서 피타에게 말했던 작은 추억들 중 하나입니다. 둘이 헝거 게임에서 사과와 치즈 타르트를 급조해서 먹을 때, 다프네가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죠. 그것과 함께 서투르지만 1부 이전의 다프네 감정선을 묘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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