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싫다고요. 아 어이없어.

영인: 내가 재밌게 말아 줄게.

희수: 뭐를 말아? 국수라도 마는 것처럼 얘기하네.

영인: 얘 호그와트 인생?

상아: (몹시 짜증)




"…정말? 이게 사랑의 묘약이라고?"

"그래.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초록색 로브를 뒤집어쓴 이는 호그스미드의 허니듀크스 사장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번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달리 기억한다더니, 폴리주스가 100병은 있는 건가. 그보다 초상권 침해 아닌가. 상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5갈레온을 꺼내 값을 치렀다. 


"확실한 거지?"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약을 물리려는 상대에 상아는 억지로 금화를 주어주곤 약을 빼앗아 왔다. 약장수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잘 쓰라는 말을 건네고는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수상쩍은 핑크색 액체가 든 병을 든 상아만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고학년 마법의 약 수업 시간에 배운다는, 강력하고 강력한 사랑의 묘약. 아모텐시아. 상아는 뚜껑을 열고 킁 하고 냄새를 맡았다. 

'별 냄새 안 나는데….'

그래도 약장수의 약은 효과가 발군이라고 했다. 마음에 두던 이를 아모텐시아로 꼬드겨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실 범죄가 아닐까도 싶었지만…. 계기만 있으면, 얼마든 자신에게 빠지게 할 자신이 상아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사실 뭐 깊게 빠지진 않아도 별 상관은 없었고.


"또 무슨 헛짓거리 하고 돌아다니고 오는 거야. 부모님 걱정하시게?"

"헛짓거리라니."

"틀려?"

"흥. 너는 또 어디 가는 건데."

"? 보면 몰라? 반장의 책무를 다 하러 가는 거지."


기숙사로 돌아오니 자신을 맞이해 준 기름하기 짝이 없는 인영. 자주 입는 푸른 빛이 감도는 셔츠의 첫 번째 단추가 풀려 있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는 기다란 하얀 손가락. 갈색 머리를 쓸어올리니 드러난 황금색 눈동자. 말을 개싸가지 없게 해도 상쇄가 될 만큼 훌륭한 비주얼, 그리고 난공불락이라는 메리트까지. 자신의 룸메이트. 레번클로의 반장, 공영인은 누구나 한 번쯤 눈독을 들여 봄직한 인물이었다.

'물론 개싸가지긴 하지만 말이야.'

인사도 없이 휭하니 사라진 뒷모습에 상아는 엿을 날렸다. 아주 그냥 나한테 푹 빠져서는 노예처럼 살게 만들어 줄 테다. 


레번클로의 얼음공주, 공영인에게 먹일 사랑의 묘약을 사게 된 까닭은 자그마치 넉 달 하고도 보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각해 보면 그 날 그 대화를 한 것부터 문제였다. 


"공영인 좀 괜찮지 않아?"

"무슨. 왕 싸가지인데."

"흥."


상아와 영인의 집안은 모두 대대손손 레번클로 출신이어서 그런지 서로 꽤 막역한 사이였다. 정확히는 부모님 세대가 그렇다는 뜻이었다. 어릴 때부터 한 살 위인 영인은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면이 있었기에. 

어쨌건 그래도 기름한 키를 비롯한 훌륭한 외모, (상아가 생각하기엔 순 잔머리지만) 명석한 두뇌 덕에 공영인은 5학년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게 계기라도 된 걸까. 4학년인 제 친구들도 하나둘씩 영인에게 가지고 있던 관심을 숨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찜꽁했거든. 침뱉었으니까 관둬."

"채지수 말 진짜 싸가지 있게 하네."

"내가 침 묻혔어. 말 안했나?"

"혼자 스토킹 하는 걸 침뱉는다고 누가 그래?"

"시끄러워. 권상아. 네가 안 도와 주니까 그렇지."


자칭 슬리데린의 새로운 간판 미녀. 채지수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며 쏘아붙였다. 반장이 되고 나서 호들갑을 떨며 너네 반장 제법 괜찮게 생겼다고 호구조사를 해 가더니, 어장 속 물고기로 호시탐탐 노리는 게 분명했다. 

영인과 상아가 어쨌거나 안면이 없지 않은 사이라는 걸 잘 아는지라 늘 들들 볶아대며 다리를 놔 주라고 하는 지수였다. 오늘도 또 상아를 들들볶기 시작하자 먼저 영인의 이야기를 꺼낸 원흉인 친구는 슬그머니 도망갔다. 

소개시켜 주면 끝이겠지만 영인이 누군가를 소개시켜 준다고 받을 위인이 못 됐다. 그리고 아무리 공영인이 싸가지 없다 한들 저 망나니 채지수에게 엄마 친구 딸을 소개시켜 주는 건 좀 캥키는 일이었다. 


"안 된다니까. 그리고 공영인 연애에 관심 없어."

"무슨? 세상에 연애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어."

"네가 걔 타입도 아닐걸. 그 뭐야 너네 미친 선배 걔한테도 학을 떼던데."

"카타리나랑 내가 같아? 걔보다 내가 더 예쁘거든?"

"지적인 사람이 타입 아니냐는 거지."

"…권상아. 너 이제 보니까 공영인 좋아하는 거 아냐?"

"뭐? 무슨 미친 소리야?"

"맞네! 발끈하는 거 보니까. 왜. 소꿉친구 뺏기니까 눈물나? 막 마음이 저리니?"

"어이없어. 내가 걔 좋아했으면 이미 나랑 사귀고 있었어."

"웃기고 있네. 너 아까 걔 연애에 관심 없댔거든?"


그렇게 벌여진 자존심 배틀. 평소에도 친하긴 했어도 서로 견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기에 한번 불이 붙으니 겉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영인이 너랑 사귀면 내 손에 장을 지지지."

"지랄. 내기할래? 누가 먼저 꼬시는지?"

"뭐?"

"20갈레온. 어때? '지적인' 권상아?"

"하…."

"아차차! 소꿉친구면서 여태껏 꼬시지도 못한 '패배자' 권상아?"


상아는 이를 빠드득 갈고선 톡톡히 후회하게 해 주겠다며 지수에게 저금통에 당장이라도 저금 시작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영인을 꼬실 생각은 딱히 없었다. 얼굴은 몹시 훌륭했지만 엄친딸 잘못 꼬셨다가 무슨 사달이 날까 싶기도 했고, 상아가 보기엔 영인은 뭔가에 골몰해 연애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웬 난방이며 인테리어 용품들을 호그스미드 갈 때마다 사는지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크리스마스 휴가를 다녀온 상아는 들려오는 소문에 기함하며 영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영인! 너 채지수랑 키스했어?!"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네 선배고 반장인데. 말이 너무 짧은 거 아니야? 하여간 너나 채지수나."

"시끄럽고 진짜야?"

"겨우살이 구경하고 있다가 봉변당했지. 뭐."

"그걸 왜 구경해?!"

"아지트에 갖다…. 아니. 네가 알 바 아니잖아."


제 말을 무시하고서는 휘익 망토를 휘두르며 나가는 영인을 본 상아는 손톱을 깨물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채지수 육탄공격에 홀딱 넘어가는 거 아니야? 상아는 초조해졌다. 그뒤로도 지수는 치근덕거리며 영인에게 붙어다녔고, 영인은 뭔 생각인지 그걸 쳐내지 않고 때로는 먼저 지수 근처에 가기도 했다. 결국 질 수는 없던 상아는 신중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안 되면 그냥 증거만 만들고 헤어지면 되니까….'

사귀어도 나쁠 건 없고. 뭐 얼굴은 예쁘니까. 공영인. 키도 크고. 사랑의 묘약이 들어 있는 약병을 손안에서 굴리며 상아는 생각했다. 

공영인은 요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는 했다. 경계심 강한 영인이 졸음에 취해 허술할 이때를 노려야 했다. 올빼미인 상아는 일찍 일어나 피곤해 하품을 하며 영인을 찾았다. 


"상아야!"

"희수야."

"히. 아침 먹으러 왔구나. 웬일이야?"

"어? 어. 그냥…. 맛있으려나 싶어서."

"나 친구들이랑 먹을 건데. 같이 먹을래?"

"어, 어?"


조희수. 그리핀도르에 있는 순하고 착한 친구의 제안에 상아는 눈을 떼굴떼굴 굴렸다. 레번클로의 영악한 친구들과 채지수 같은 애들에 시달리다가 꽃이 날리는 미소를 지으며 환히 웃는 희수를 만나니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니 친구 채지수가 괴롭힌다며 하소연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한 상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수의 손을 잡았다.




희수가 데리고 간 테이블에는 희수의 꼬마 동생 민서와 모르는 애가 하나 앉아 있었다. 화려한 머리색의 애는 예쁘장한 얼굴이어서 보자마자 시선이 갔다.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예쁜 애들끼리 모여 있네. 상아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오. 상아 언니 안녕!"

"안녕. 민서야."

"여기는 우리 기숙사 후배 하얀이야. 나이는 나보다 하나 아래야. 여기는 레번클로에 나랑 동갑인 상아!"

"오~ 앙뇽! 상아!"

"보자마자? 말을 놓는다고? 내가 언니야."

"에이 뭐 칭구 칭구면 칭구지!!"

"아, 그래."


지나치게 밝은데. 상아는 인상을 살짝 쓰고 하얀의 점수를 마음속에서 깎았다. 어쨌거나 희수랑 생일이 몇 달 차이 안 난다 해도 자신보다 어리긴 한 거 아닌가. 그래도 워낙 밝고 방방 뛰는 애가 민서까지 둘이나 있으니 아침부터 시끌벅쩍했다. 


"에에엑?! 말도 안 돼! 진짜아?!"

"응. 상아 엄청 똑똑해! 교수님들이 되게 예뻐하잖아."

"별로 그렇지도 않아. 과장이야."

"나는 저번에 수업 때 실수해서 우리 점수 깎였는디…."

"아하학. 나도 들었어. 하얀 언니 마법약 시간에 뭐 잘못 건드려서 코 폭발할 뻔했다며?"

"그래도 하얀이 덕분에 우리 엄청 웃었어."

"재앙이네. 폭발했어?"

"아니! 내 예쁜 코 잘 붙어 있잖아."


훅 하고 코를 들이대는 하얀에 상아는 놀라서 뒤로 살짝 몸을 물렸다. 뭐야. 왜 들이대. 눈 엄청 크네.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희수에게 말했다.


"나 커피 좀 가져올게. 희수도 마실래?"

"응? 아, 나는 밀크커피. 같이 갈까?"

"아냐. 뭐. 혼자 다녀올게. 너네는?"

"나는 괜찮앙! 언니가 아까 당근주스 줘써! 그리고 나는 숙제하러 가야돼!"

"민서 먹고 말해! 귀여웡. 나는…!! 커피에 오렌지주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커피에 뭐?"

"에이. 맛을 모르시네."

"혀가 미쳐버린 거야. 뭐야. 무튼 알았어. 비율은 모르겠으니까. 니가 알아서 타."


상아는 인상을 쓰고서는 고개를 젓고 커피가 준비되어 있는 코너로 갔다. 마법으로 따끈따끈 식지 않게 딱 좋은 온도로 보관되어 있는 커피를 잔에 쪼르륵 따르고는 자신과 희수의 커피에 넣을 크림을 찾았다. 그러나 뜻밖의 인물이 말을 걸어왔다.


"잠만보가 웬일로 아침밥을 다 먹나."

"꺄악! 깜짝아."

"놀라기는. 이거 찾는 거지."

"아, 어."


영인이 건넨 크림을 받은 상아는 자신이 크림을 찾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상아의 얼굴에 서린 의문을 눈치챘는지 영인은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맨날 밀크커피 마시니까…."

"뭐?"


내가 늘 밀크커피 마시는 걸 알기라도 한 거야? 상아는 어쨌거나 싫거나 좋거나 의식해 온 영인이 저를 신경쓴 건가 싶어 약간 으쓱해졌다. 


"웬 오렌지주스?"

"아, 어. 이걸 커피에 탄데."

"그래? 신기한 조합이네."

"맛없을 것 같지 않아?"

"…뭐 의외라고 안 어울리는 건 아닐지 모르지."


의뭉스러운 답을 한 영인에 상아는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동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병 생각이 확 치밀었다.


"많기도 하네. 손이 4개는 되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밀크커피가 든 컵 두 잔을 들어 주는 게 아닌가. 이미 이 정도면 나한테 반한 거 아닌가? 세상 뚱한 얼굴로 스윗한 행동을 하는 영인에 상아는 설레기보단 놀랐다. 왜 이러지. 진짜 나 좋아하나? 어쨌거나 들어 준다는데 마다 할 이유도 없어서 상아는 영인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자리로 돌아가니 하얀은 의자에 앉으며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옆의 영인 때문에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영인을 보자마자 희수는 살짝 긴장한 듯했지만 순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영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건너고는 상아의 옆 자리에 앉았다. 

민서가 앉았던 희수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음에도 굳이 제 옆자리에 앉는 저의는? 상아는 아무래도 시그널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지만 도무지 이 화상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었다. 


"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레번클로 반장 언니죠! 하이!"

"내가 너보다 몇 살은 위 아니야?"

"에이. 좋은 게 좋은 거죠. 상아 언니랑 친해요?"

"뭐 나름대로."

"헤에."


넉살도 좋다. 언제 봤다고 언니람. 삐약거리며 영인에게 말을 걸어대는 하얀이 상아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영인은 하얀의 질문공세에 질린다는 듯 미간을 구기고는 손에 든 밀크커피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밀크커피. 누구 거야?"

"아. 내, 내거야."

"그래. 하나는…."


영인은 희수에게 커피를 건네고는 상아를 돌아보았다. 예쁘기는 해. 싸가지는 없어도. 물론 내 취향은 조금 더 귀엽고 밝은…. 상아는 살짝 하얀 쪽을 돌아보았다가 아냐 쟤는 좀 띨빡한 것 같다며 저를 말렸다. 애초에 초면에 무슨. 그 사이 영인은 상아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커피를 건넸다. 확신한 것 같았다. 아. 공영인 생각보다 배려가 있고 눈치가 빠르네. 


"그, 지수가…!"

"응?"

"지수가…. 영인이 네 얘기 많이 하던데."

"아, 채지수."

"오. 채지, 지수 언니가요?"

"응?!"


갑자기 날아든 라이벌(?)의 이름에 상아는 휙 고개를 돌려 희수를 바라보았다. 희수는 무슨 생각인지 뚱해 보이는 영인이 어색한지 살짝 머뭇거리면서도 지수의 얘기를 꾸준히 꺼냈다. 채지수 이 치밀한 것. 희수한테도 자기랑 엮어 달라고 엄포를 놓았구만. 아무래도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공, 공영인! 너 오렌지 커피 궁금하다며."

"아. 응."

"오? 맛잘알?! 예에~"


영문을 모른 채 하이파이브를 한 영인은 그래서 뭐라는 표정으로 상아를 바라보았다. 상아는 로브 소매 아래로 약병을 손에 꼭 쥐고 오렌지주스와 커피 그리고 빈 잔을 가지고 왔다.


"내가 말아 줄게."

"엑. 아까는 이상한 조합이라면서?!"

"이제 보니 괜찮을 것 같아."

"사람이 표지부동하네!"

"표리겠지."


정정해 주는 영인에게 하얀은 조크라며 말을 얼버무리고 있었고, 그 사이 상아는 잽싸게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섞고 제 소매속 사랑의 묘약도 섞어 넣었다. 보기에 끔찍해 보이는 색깔의 음료는 생각보다 상큼한 향을 풍겼다. 


"자. 마셔."

"색이 영…."


그래도 궁금증이 앞선 건지 영인은 손을 뻗었다. 됐다. 상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채지수가 열뻗쳐 하는 모습이 환했다. 약간의 죄책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차피 영인 역시 제 커피 취향을 외우고 있고 제 옆자리에 앉을 정도로 저를 좋아하는 거라면. 그냥 등을 밀어 주는 정도의 효과 아니겠는가. 그러나 상아가 비열한 미소를 짓고 보는 동안 상황은 아주 엉망진창으로 급변해 버렸다.


"으아! 안 돼! 그렇게 섞으면!!"

"뭐?"

"언니. 이거 먹어요. 이거. 아니 이게 모야!! 흙탕물이잖아."

"뭐, 무슨."

"이건 예쁘네. 층도 예쁘게 나뉘고."

"그죠? 비율도 딱."

"아니. 내가 말아 줬잖아!"

"나는 맛있는 게 좋아. 음. 괜찮네. 이거."


상아는 제가 타 준 게 아닌, 하얀이 내밀 오렌지 커피를 마시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영인에 망연자실했다. 역시 호감은 개뿔. 싸가지야. 

그리고 일어난 다음 사건에 기함했다.


"우웩. 이건 시고 떫고 써!!"

"야!!! 그걸 네가 왜 마셔?!"

"아깝잖아. 으에."


맛없다면서도 꿀떡꿀떡, 사랑의 묘약이 들어 있는 음료를 마셔가는 하얀에 상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망했어. 망했어! 망했어!!!"

상아는 침대를 팡팡 때리며 절규했다. 어떡하자고 다른 애한테 그거를 먹여 가지고! 이제 지수와의 내기는 뒷전이고 사랑의 묘약의 오용만이 상아의 뇌속에 가득했다. 

'차라리 가짜기라도 했으면…!'

빌어먹게도 5갈레온짜리 사랑의 묘약의 효과는 엄청 났다. 상아는 부쩍 자신과 자주 마주치는 하얀에 사달이 났구나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모해? 공부해? 또?"


"도서관 가? 같이 갈랭!"


"희수가, 희수 언니가 언니 쪼꼬 개구리 좋아한다길래 샀는데. 먹을…. 으아! 다 녹았어. 어떠케."


징징 우는 하얀의 손을 물 묻은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상아는 생각했다. 큰일이 났다고. 그리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상아가 닦아 준)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하얀에 눈을 꾹 감았다. 진짜 어떡해. 순진한 어린 애를!


"저. 서하얀… 후배님?"

"웅."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히이 웃으며 저를 내려다보는 기름한 후배에 상아는 차마 너 지금 약에 취했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웃어 주었다.


"희수야…."

"응? 상아야. 오랜만이야! 피곤해 보여."

"응…. 으흑."

"왜? 무슨 일 있어? 괜찮아?"

"괜찮아……."

"기분 전환할 겸 놀러 갈래?"

"놀러?"

"응. 이번 주말에. 봄이라 허니듀크스에 신메뉴 들어왔대."

"그럴까?"

"응.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20갈레온을 뜯길 예정이라 무일푼에 가까운 상아는 기운없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고 희수는 그런 상아가 안쓰럽다는 듯이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며 꼭 안아 주었다. 착한 우리 희수. 넌 꼭 좋은 사람 만나야 해. 

그러나 호그스미드로 가려고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간 뒤에 상아는 축복을 취소했다. 공영인 같은 거…. 아니 그건 너무 싸가지지. 아무튼 희수야. 이러면 어떡해. 니 후배는 지금…. 


"와. 왔다아!!"

"상아야. 그, 하얀이도 같이 가고 싶대서!"

"그래…."


넌 진짜 도와 달라면 다 도와 주는구나. 마담 뚜니…? 큐피트니…? 상아는 고민의 근원을 눈앞에 들이댄 희수를 조금 원망하면서 외출길을 나섰다. 

희수는 마담 뚜가 맞았던 건지 어느새 슬쩍 빠져 나갔다. 결국 두 사람만의 데이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되어 버린 외출이었다. 그러나 상아의 걱정(?)과 달리 하얀은 들이대던 것과는 다르게 꽤나 거리를 두고 힐끔거리며 옆을 서성일 뿐이었다. 


"이거 먹어볼래? 온갖맛이 나는 젤리!"

"아니. 나 그거 진흙맛 먹고 토할 뻔하고 안 먹어."

"아 진짜? 그래도 맛있는 맛은 되게 맛있는데."

"그게 말이야 방구야. 맛있는 건 맛있지."

"아이. 그뜻이 아니잖아…!"


너무 매몰차게 거절했나. 꼬물거리면서 따라오던 하얀을 걸음이 느려지자 상아는 살짝 걱정이 돼서 돌아보았다. 하긴 약을 탄 내 잘못이지 약 먹은 얘 잘못도 아닌데, 대뜸 짜증을 낸 자신이 너무했다. 그러나 하얀은 무언가를 주먹에 가득 쥐고서는 쫄래쫄래 쫓아왔다. 얼굴에는 환한 웃음만 가득했다. 그 웃음에 무언가 심장이 뜨끔했지만 아마도 양심이 찔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왜?"

"내가 맛있는 맛만 다 골라 놨어. 냄새도 맡아 봤구. 이건 망고맛이고, 이거는… 딸기? 딸기인 것 같구. 요건 오렌지! 그리고 이거는 치즈케이크고."

"뭐? 그거 고르고 있던 거야?"

"웅. 나 이거 디게 좋아하는데. 레몬맛이 쩨일 맛있어서 너, 언니 먹여 주고 싶었는데 아쉽당."

"그럼 너는 뭐 먹으려고."

"나는 나머지 맛 먹음 돼! 귀지맛도 자꾸 먹음 먹을 만해."


히히 웃으면서 "아! 찾았다!" 하며 레몬맛으로 추정되는 레몬색 젤리를 상아의 입에 쏙 넣어 줬다. 젤리는 레몬맛이 아니라 옥수수 맛이었던 건지 입안에는 요상한 구수한 맛이 퍼졌지만 뭔가 묘하게 어울렸다. 히히 웃으면서 맛있냐고 웃는 천진난만한 미소에 상아는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데이트인 듯 데이트 아닌 데이트는 이어졌다. 서하얀은 은근 허당인데다가 무식해서 용감한 그리핀도르 아니랄까 봐 무식하기도 했지만, 순둥이 친구 아닐랄까봐 귀엽고 순진했다. 언니라는 말이 어말어미라도 된 듯 언니 언니 하면 쫓아다니는 하얀이 좋은 애여서 상아는 마음이 한층 더 싱숭생숭해졌다. 


"히히. 재밌었당. 그지?"

"응. 뭐."

"…재미없었엉?? 희수가, 아니, 희수언니가 너 우울해한대서 걱정 많이 했어…. 기분전환하면 좋을 거 같아서. 아니 나도 걱정 많이, 많이는 아니고."


토마토처럼 빨개져서는 정수리를 보이고 있는 하얀이 상아는 안쓰러웠다. 어쩌면 좋지. 얘를.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별일 아니야."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진짜 무지 별일이야!"

"응?"

"좋아하는 애가 죽상인데. 무지 별일이라구……."

"뭐?"

"으아!!! 아무것도 아니야. 잘, 잘자! 오늘 재밌었어!!!"


잘 익은 토마토가 마그마처럼 끓는 라구 파스타 소스처럼 벌게져서는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애매한 고백만 남기고. 또 다른 토마토만이 오도카니 레번클로 기숙사로 올라가는 석상 앞에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으 죽겠네'

하얀에 대한 죄책감과 싱숭생숭함, 그리고 도대체 저가 하얀에게 품은 감정이 뭘까 고민하는 통에 며칠간 영 잠을 못 잔 상아는 결국 환절기에 된통 감기에 걸려 버렸다. 수업에서 만난 희수는 자신에게 옮은 거 아니냐며 울상을 지어 보였지만 상아는 그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몸은 힘들기 짝이 없어서 결국 오후 수업은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뻗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주말이었다. 다들 놀러 나간 토요일 오후, 열병을 앓으며 끙끙거리고 있다 보니 서럽기도 했다. 

마음을 착하게 썼어야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깟 자존심 싸움에 남의 마음을 약으로 움직이려고 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 결과 순진하고 착해 빠진 후배 하나를…. 하얀만 생각하면 뒤숭숭해지고 마음 한 구석이 달았다. 


"힝. 슬푸당…."


제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왔나. 상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볐다. 그리고 실눈 사이로 보인 얼굴에 그만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하얀이 어디서 들고 왔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음 주머니를 제 이마 위에 올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가, 아니. 콜록. 여기 어떻, 콜록!"

"으아아. 말하지 마. 목 아파. 반장 언니가 들여 보내 줬어."

"공, 영인……!!"

"혼자 아프면 외롭잖아…. 히잉. 많이 아파?"

"……."


울멍한 눈으로 저를 걱정하며 손을 꼬옥 잡아 주는 하얀에 상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얘가 신경쓰이는 건 맞다고. 약도 안 먹었는데 자신은 서하얀이 마음에 들었고 이 하찮고 귀엽고 기름하고, 또 얼굴은 화려한 후배가 좀 좋은 것 같았다. 

'그럼 진짜 망한 건데….'

영인과는 사실 사귈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약에 대해서도 그렇게 믿음을 갖지 않았다. 그렇지만 얘는, 하얀은 달랐다. 오히려 좋아지니 더 후회가 됐다. 그러지 말걸. 


"걱정돼…. 아푸지 마. 나도 맘 아포."


이렇게 날 좋아하는 게 모두 사랑의 묘약 때문이라니. 상아는 아픈 탓에 감정이 왈칵 쏟아져 눈물이 났다. 당황한 하얀이 왜 우냐며 재밌는 얘기 해 줄까?! 하며 말을 하길래 상아는 닥치고 손이나 잡으라며 하얀의 손을 꼬옥 잡았다. 망했다. 그렇지만 약으로 인해 착각한 마음을. 


"나 때문에 아파하지 마."

"…아푼 것도 안 돼?"

"응. 미안해…. 그러지 마."

"………."

"나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돼."

"………진짜 안 돼? 나는……?"


상아는 나도 너 좋아 하는 말이 튀어나가려는 걸 꾹 참았다. 바보야. 그니까 그때 그걸 왜 마셨어. 너 진짜 먹보에 바보야. 그러나 하얀을 위해서 하얀 거짓말을, 하지는 않고 움직였다. 이마에 쪽 뽀뽀를 해 주고서는 물이 줄줄 흐르는 얼음봉다리를 하얀의 손에 건네 주었다. 마치 마음을 돌려 주는 듯. 그리고는 울상이 된 하얀의 이마에 다시 다정하게, 입을 맞추어 주고 가라며 어깨를 밀었다. 하얀은 고갤 숙이고는 눈물을 떨구고 그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도 상아는 한참을 하얀이 떠난 자리를 보고 제 이마에 촉촉함과 함께 남은 냉기를 만지다가, 엉엉 울었다. 




이대로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은 괜찮았는데. 눈시울이 뻘개져서는 저를 보면 멀리서 호다닥 도망가는 하얀을 볼 때마다 상아는 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털어놓고 비난이라도 받아야 제 성에 찰 것만 같았다.

'이걸 도대체 누구에게 말해야 하지'

도도한 성격 탓에 가까운 사람이 많지 않은 상아였다. 게다가 이런, 이렇게 무언가 비윤리적(?)이고 교칙에 어긋난 문제를 상의할 사람은 채지수였는데. 애초에 지수와 한 내기 때문에 사랑의 묘약을 애꿎은 남한테 먹인 건데,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수는 눈치도 빨랐으니. 


"왜. 나 순찰 가야 해."

"갔다 와서 얘기 좀 할 수 있어?"

"무슨 얘긴데."

"그냥 좀……. 있어."


얘는 눈치가 빠르지도 않고 (아마도) 자신에게 호의적일 테니까 조금은 이해해 주지 않을까. 상아는 둘 다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상담 상대를 정해 버리고야 말았다.


"너 나 좋아해? 미안한데. 나는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넌 내 취향도 아니고."

"…뭐?! 야! 너도 내 취향 아니…. 아니? 좋아하는 사람?!"

"오밤중에 소리지르기는. 그 묘약, 나 먹이려고 한 거 아니야? 그때."

"아, 아, 아니거든. 무, 무슨 소리를."

"너 베리타세룸이라도 마셨어? 거짓말 되게 못하네. 어쩐지 그 커피 색이 이상하더라."

"에이씨……. 너야말로. 아니 좋아하는 사람? 나 아니라?"

"아까부터 굉장히 근자감이 넘치시는데."


영인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로브를 벗어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어깨 위의 깃털을 휘휘 털며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니거든."

"그럼 누군데? 채지수?"

"너 나 좋아하는 거 맞네."

"아니라고. 나 하얀."

"아. 걔. 사고뭉치같이 생겼던데."

"누가 사고뭉치라는 거야?! 아니거든? 얼마나 착한데. 걔 자기 때문에 잃은 점수만큼 예술과목이랑 퀴디치로 공헌했거든?"

"아. 네. 다음 사랑에 빠지신 분? 난 잔다."

"알았어. 네 얘기 안 물어 볼 테니까…. 나 어떡해?"


영인은 덮으려던 이불을 내려놓고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끼고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상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다시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


"아줌마 아저씨 너 헛똑똑이로 키우셨네."

"부모님 들먹이는 건 너무하잖아. 물론 내가 잘못한 거긴 하지만…."

"잘못은 뭐. 5갈레온? 장난해?"

"왜."

"사랑의 묘약에 들어가는 재료가 얼마나 비싸고, 그리고 그 약이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데. 우리 학년에서도 나만 겨우 성공했어."

"자랑을 꼭 끼워넣네…."

"그걸 5갈레온? 그게 진짜 물약이면 당장 내가 사서 장사한다."


영인의 말에 상아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되물었다.


"그니까 네 말은…. 그 약이 가짜라는 거야?"

"당연하지. 너 사기당한 거야."

"……진짜?!"

"헛똑똑이.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진짜 그게 가짜약이라고? 진짜일 가능성이 0.1%도 없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뭐 0.00001% 정도는 진짜려나."

"그럼…. 그럼 하얀이는 왜 나를?"

"그건 아무리 똑똑한 나라도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하는 모양새가 퍽 얄미웠지만 상아의 눈엔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머릿속에는 "진짜??" "왜???" 하는 물음만 가득했다. 영인은 대화하다 말고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 상아에 다시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진짜 모르겠다. 암튼 나는 잔다."

"야. 자, 잠깐만! 자지 말고!"

"또 왜."

"고백 아닌 고백은 이전에 받았는데…. 이제 와서 좋다고 해도… 되는 거야? 나 걔 찼는데."

"잔다. 쓸데없는 소리로 사람 자는 거 방해하고 앉았어."


정없이 바로 이불을 덮어 버리는 자신의 룸메이트에 상아는 인상을 쓰고서는 또 혼란했다가 황홀했다가 그리고 더더욱 미안했다가 온갖 감정이 뒤섞인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결국 비실비실 권상아는 며칠을 끙끙 앓은 탓에 다시 비틀거리며 희수와 함께 듣는 수업에 나타났고, 희수는 본인 역시 카타리나의 괴롭힘에 정신이 없었음에도 한껏 미간을 좁히며 걱정을 해 주었다.

자신이 하얀을 찼다는 것을 알 텐데도 여전히 친절한 희수에 상아는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진짜로 울었다. 


"괜찮아? 어떡해. 상아야."

"진짜 내 미안해서 걔 얼굴 어떻게 봐…."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서로 다르면 어쩔 수 없지…. 상아 네가 늘 좋다고 한 타입이 하얀이랑 너무 찰떡이었어서. 미안. 나도 모르고 너네 둘 이어 주려고 했어서."

"으으응. 네 말 맞아. 걔 진짜 귀엽고 착해…. 예쁘고…. 내가 나빴지."

"으응?"

"으앙. 희수야아."

"뭔지 모르겠지만. 응. 응."


등을 토닥거려 주며 희수는 차분하게 상아를 위로했다. 자신 역시 독수리와의 약속과 카타리나, 그리고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누군가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상아의 마음이 더 소중했으니까. 희수는 조용히 상아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다정한 위로를 건네 주었다. 


"너도 그러면 하얀이가 좋은 거야?"

"…응. 내가 너무 늦었겠지? 걔 많이 울었지."

"응. 아마."

"…어떡하지."

"네가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제 와서 좋다고 해도….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아니야. 하얀이가 너를 얼마나 오…. 아니. 아무튼. 아니야."

"오래??"

"상아야. 아무튼 솔직하게 얘기하고, 꼭 용기를 내!!"

"희수야. 조희수! 너 말실수하면 도망치는 거, 그거!"

"아, 하얀이 나한테는 언니라고 죽어도 안 하는데 누구 앞에서만 하더라!"

"뭐?"


말실수 하고 도망가는 게 그리핀도르 특인가. 후다닥 도망가는 희수의 뒷모습을 보고, 얼결에 고백을 하고서 도망가던 조그마한 뒤통수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한 살 넘게 언니인데. 그리고 걔가 먼저 몇 번을 용기를 내 줬는데. 

아무리 걔는 용기고 나는 지혜라지만. 세상에는 연구와 궁리만으로는 안 되는 어떤 일들이 있는 법이었다. 




"훌쩍…. 왜애. 나 방에서 운다니까아!!"

"방에서 울면 또 혼자 외롭다고 더 울 거면서?"

"맞아. 하얀아. 맛있는 거 먹고 기분 풀어. 응?"

"히잉……."


희수와 유민은 그런 하얀이 안쓰러운지 등을 쓸어 주었다. 그리고 희수는 찡긋 하고 유민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한번 떠 보자는 거였다.


"아니. 뭐 네가 아깝지. 권상아. 공부만 잘하지. 애가 뭐, 도도하기만 하고. 레번클로들은 왜 그런가 몰라아?"

"맞아. 상아가 내 친구지만, 하얀이 네가 진심을 보였는데…. 그런 건 너무해."

"우씨. 아니야아! 내가 반해 가지고…. 들이대고…. 언니는 싫었을 텐데. 사람 좋아 갖고 그런 거야아…. 정 많다구. 은근 허당이구. 되게 귀여운데."

"그렇구나. 왜 반했댔지?"

"이쒸. 말했자나…!!! 나 1학년 때 마법약 교수님한테 개털려 가지고 울고 있었는데…. 처음이라 길 잃어버려 갖구. 또 우는데 언니가…. 훌쩍."

"아 기숙사 데려다 줬댔나?"

"아니. 길 잘 모르고 귀찮다고 레번클로 기숙사에서 재웠대."

"왜 좋아하는 거야?"

"그래도 혼날 각오하고 데려간 거라 반장 언니한테 무지 깨졌다던데."

"근데 기억 못한다고?"

"훌쩍. 언니가, 자기는…. 키 큰 사람 좋대서…."

"어쩐지 우유 무지 마시더라. 그땐 작았지."

"내가 상아랑 친구인 거 작년말에 알고 엄청 졸랐어."

"희수가… 상아 의견을 모르니 좀 보겠다고…. 씨이. 채지수는 바로, 소개시켜 줘 놓고…!! 다들 공영인이 뭐가 좋다구!!!"


울면서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원망을 쏟아내는 하얀에 희수는 자신은 사실 소개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말만 옮긴 거긴 했고,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는 행동이었지만 할 말은 없어서 미안하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참 둘 다 잘 운다. 우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버터맥주를 술 마시듯 퍼부은 하얀은 혈당스파이크 때문인지 아니면 술기운에 취한 건지 입술을 쮸쀼쮸쀼 내밀며 울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먹일 간식거리를 사온다며 떠난 친구들이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10분이나 지났는데. 하필 인적도 드문 곳에 저를 놓고 간지라 하얀은 외롭고 쓸쓸하고 좀 무서웠다. 


"힝…."

"왜 힝이야. 또."

"힝?!"

"말소리가 힝으로 바뀐 거야?"


언제 온 건지 제 옆에 앉아 있는 상아에 하얀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상아는 투명망토 빌리느라 이번 달 용돈 다 썼다며 투덜거리고는 도망가지 못하게 하얀의 손을 꼬옥 잡았다. 사실 오늘 호그스미드 외출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에 중간에 하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번이고 울었던 상아였다. 

당연히 눈은 벌겠지만, 눈이 퉁퉁 부은 하얀에겐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기도 도망가기 싫기도 한 마음으로 잔뜩 토라진 얼굴을 한 채 그저 잡혀 있었다. 


"…힝."

"진짠가 봐."

"…."

"힝이라도 하는 게 낫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느냐는 듯 애처로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하얀이 귀엽고 안쓰러워서 상아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그 길 잃은 꼬마 신입생이, 저를 위해 열심히 우유까지 마셔서는 나타났다는데. 누가 감동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보니 제가 타 준 커피를 영인이 마시는 게 싫어서 뺏어 마신 모양이었다. 자신이 공영인을 좋아하는 줄 알았나 보다. 좋아하던 건 아니나 아주 틀린 수작은 아니었기에 그 말을 들으면서도 상아는 미안함에 코를 훌쩍였다. 

그러니 말해야했다. 이번에는 먼저. 


"나는 네가."

"…힝."

"사랑의 묘약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뭐라고요?"

"힝 말고도 할 줄 아네."

"무슨 소리야? 그게?"

"말하자면 긴데…. 네가 마신 그 맛없고 시고 떫고 쓰기만 한 오렌지 커피가."

"…그릏게 맛없지는 않아써. 언니가 타준 거잖아…."


아유 귀여워. 상아는 울컥 차오르는 애정을 애써 억누르며 울먹이는 하얀의 볼을 살살 쓸어 주며 달랬다. 하얀은 다정하게 굴면 어쩌냐고 화를 내면서도 그 손길에 얼굴을 부비부비 비볐다. 


"커피만 있진 않았단 거야."

"공영인, 이씨, 뭐가 좋다구. 순 의뭉스럽고 희수 스토킹만 하는데에!!"

"좋아한 거 아니…. 뭐? 스토킹?!"

"어. 희수는 잘 모르는데. 맨날 아침에 졸린눈 하고 와 가지고. 희수 잘 보이는데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곁눈질하고, 막 혼자 웃고…. 요새 막 카타리나가 희수 따라다니니까 불러 가지고 조지고. 그러면서 막 만나면 모르는 척………. 아주 음흉하다고!!"

"뭐야?!"


이제 보니. 밀크커피 이야기도 걔 때문이었어? 쑥스러워서 옆에 안 앉고 내 옆에 앉은 거야? 아침도…? 아니. 공영인 뭐 이런…. 미친 거 아니야?

상아는 분개했다. 영인이 사실 잘못한 건 없지만 지수와 자신이 모두 그 손아귀에서 놀아난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왜?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 좋아하니까…. 언니도 슬퍼? 조금은?"

"아니. 그게 아니라…."

"슬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미안. 내가 미안해. 괜한 소리 해써…."

"아니야. 나 걔 좋아한 적 없어. 완전 재수팅이야. 그… 약도 가짜였고. 바보 같은 내기 때문에 그런 거고… 아 몰라. 진짜 미안해. 내가 바보 같았어."

"훌쩍. 언니가 바보면 나는 왕바보 똥멍청이야."

"성적 얘기 아니잖아…."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울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하얀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상아는 하얀을 꼬옥 안아주었다. 하얀은 더 서럽게 울었다. 희망고문이라며 책임지라며 엉엉 곡소리를 내는 게 눈치가 빠른 듯 더럽게 없었다. 상아는 결국 참다 참다 폭발했다. 



"흐에에…엥. 에?!"

"한번 더 해 줘?"

"웅! 아, 아니. 아니! 쪽. 꺄아악!!"

"왜? 다른 데도 해 줘?"

"아니이! 그게 아니라아!!"

"나도 너 좋아해. 네가 묘약 때문에 반한 걸까 봐 말을 못했어. 미안해서. 좋아하는 것도 미안해서."

"흐엥? 아, 어, 어딜 마, 만지는 거야…!!"


목을 쓰다듬으며 귀를 살짝 깨무는 상아에 하얀은 폭발할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돌아온 고백에 대한 긍정적인 답도 설레고 두근거렸지만 훅 치고 들어온 스킨십은 심장을 터지게 만들었다. 사귄다고 땅땅땅 못도 안 박았는데 상아는 지금 여기저기 키스하고 난리가 났다. 


"변태야!!"

"고백 물릴 거야?"

"이씨. 그러기만 해요……!!"

"주어는 너였는데…. 아무튼. 이리 와. 한 번만 더 안아 보자."

"변, 변태야."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듯 얌전히 안겨 오는 고양이 같지만 강아지 같은 애인에 상아는 환히 웃으며 꽈아악 끌어안았다. 




상아: 스토커라니. 진짜 공영인 씨랑 잘 어울린다.

영인: 내가 좀 희수를 광적으로 좋아하지.

희수: 범죄 수준까지는 안 갔으면 좋겠지만…. 상아 여자친구분 되게 귀엽다. 

상아: 그렇죠? 근데 제법 잘 마시네요. 많이 말아봤나 봐요. 뭐 인생? 같은 거.

영인: 자기 소개하나. 대학원생이.

희수: 둘이 자꾸 내 앞에서 티격태격 할래?

영인: 오. 조희수 질투한다.

상아: ? 유치원 선생님이 혼내는 그런 바이븐데요.

희수: 둘 다야. 사이 좋게 지내.

영인: 난 너랑만 사이 좋을 건데.

상아: 집에 보내 줘요. 희수 언니 웃지 말고! 나 집에 보내 달라고. 엄마. 하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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