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 <딸에 대하여>, 영화 <분장>


 연초에 책을 한 권 빌렸다.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놓고 무려 한 달이 넘게 기다린 책.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였다. 출퇴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리고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었다. 중간중간 영화도 봐야 했고 피곤한 날엔 책을 펼쳐보지도 못 하고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잤으니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에 대략 일주일 정도 걸렸다. 다 읽고 난 뒤에 엄청난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서 그 주의 주말엔 밥 한 끼 못 먹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그만큼 감정소모가 심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봤던 남연우 감독의 <분장>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두 작품이 관통하는 큰 주제는 같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착각하고 있는가.' 모든 걸 다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착각, 모든 걸 다 이해하는 나는 엄청나게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는 착각, 그런 것들.


 바야흐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아니다, 이해한다는 말의 무게를 깨닫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딸에 대하여>와 <분장>은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를 보여준다. <딸에 대하여>의 '엄마'와 <분장>의 '송준'은 모두 동성애자의 가족이다. '엄마'의 딸 '그린'은 레즈비언이고 '송준'의 동생 '송혁'은 게이다. 엄마와 송준은 가족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 존재다. 하지만 막상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는 외면하고, 기피한다.

 <분장>의 송준은 무명배우다. 그는 유명한 게이 연극의 주연을 맡고 싶어 한다. (역할은 극중에서는 게이라고만 나오지만, 트랜스젠더나 드랙퀸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는 연극의 주연을 맡기 위해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다큐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껴 직접 이태원에 가보기도 한다. 거기서 트랜스젠더 '이나'를 만난다. 그뒤로 성소수자 모임에도 참여하고, 직접 발언하기도 하며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동생 송혁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송준의 착각에는 균열이 생긴다.

 <딸에 대하여>의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며 '젠'이라는 여자를 돌본다. 엄마가 돌보는 젠은 젋은 시절에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혹은 탐험?)도 많이 해 본, 소위 말하는 많이 경험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다. 엄마는 젠을 돌보며 병원의 부당한 대우들에 진심으로 분노한다. 그 분노가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표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분명 분노한다. 약자를 대하는 폭력적인 태도에 분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레즈비언인 자기의 딸이 받는 부당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히려 본인이 딸을 '저렇게' 만든 것이라며 자책한다. 많이 배운 여자인 딸의 말로를 많이 배운 여자인 젠을 보며 상상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딸과 함께 사는 '그 애'를 미워한다. 본인 스스로를 갉아먹을 정도로 미워한다.


 송준과 엄마는 작품 내에서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래서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선적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해서 좋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걸 다 이해한 "좋은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하는 "나쁜 사람"만이 나오는 작품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모두 포비아다. 그 정도나 카테고리(…)의 차이일 뿐이다. 약간 혐오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게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걸 포용한다고 말하는 건 '포용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사실 <굿바이 싱글>의 주민호 캐릭터를 싫어했다. 나는 모든 걸 이해하는 현자이며 성자라고 말하는 듯한… 사실 그런 사람은 없는데. 예수조차도 혐오하지 않는가.


 글이 진도가 영 나가질 않아서 임시저장을 해두고 한 달 만에 급하게 마무리한다. 영양가 없는 글을 써냈지만… 두 작품 다 굉장히 좋은 작품이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김혜진 작가의 책은 워낙 많이 팔렸지만 남연우 감독의 영화는 독립영화 특성상 상영관도 별로 많지 않았고 상영기간도 짧아서 관객수가 적었던 게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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