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연결은 되지 않지만 이전에 쓴 해리포터 AU 글들과 조금씩 이어집니다.




머리 위에 새가 있다. 아무리 치워도 굳이 정수리 꼭대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겠다는 고집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아오 진짜, 위험하다고!! 속으로만 지르는 비명을 차마 밖으로 뱉기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 짜증스럽다. 짜증스럽다기 보다는 민감하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딕이 그의 곁에 있을 때 괜히 더 민감했던 것 ― 이라고 딕이 우기는 것에 ‘화를 내게 만드는 상황이 더 많을 뿐’이라고 정정 해주는 것 ― 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그가 특히나 작은 울새의 모습으로 변해있을 땐 더욱이 그랬다. 왜 이런 학습능력은 개나 주듯 아무렇지 않게 겁도 없이 이러는지, 제이슨은 이럴 때 마다 그의 기준에 한하여 한없이 철없어 보이는 용기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입에 올리기에는 늘 혀끝에 쓴 맛만 맴돌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결국 정말로 고집에 못 이겨 머리 위에 작은 울새를 얹혀두고 밖으로 나선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문 밖을 나서자마자 둘을 강타했다. 자칫 숨을 들이키기에도 벅찬 강한 바람에 머리 위가 흔들거렸다. 정말로 날아갈 뻔 했는지, 제이슨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꽉 쥐는 새의 발짓이 느껴졌다. 한층 더해 필사적인 날개 짓 소리까지. 아, 진짜, 쇼를 한다 쇼를 해. 제이슨은 신경질 적인 손짓으로 제 머리 위를 더듬었다. 그다지 피할 곳도 없는 정수리 위에서 요리조리 쫑쫑 뛰며 제이슨의 손길을 피하는 딕이었다. 결국 제이슨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본다면 우두커니 서서 홀로 소리지르는 제정신 아닌 자의 모습으로 보일 법 했지만 그런 사실을 잊은 듯 했다.


“야! 내려오라고!”


우습다는 듯 제이슨의 한 손가락에 가는 발 하나를 착 올리고는 부리로 한번 툭 치는 꼴에, 그냥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곧 관뒀다. 말 한마디를 맷돌 사이에 잘근잘근 갈듯 이를 빠득 거리며, 제이슨은 거의 억지로 조용히 조근조근 억양을 눌러가며 말했다.


“비키라는 게 아니라, 내 손에, 내려, 오라고.”


바람에 날아가는 우스운 꼴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에 든다는 듯 울새의 작은 머리가 제이슨의 손등에 머리를 비볐다. 아, 얼른. 재촉하는 목소리에 딕은 아직까지도 제 머리 근처에 펼친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그의 너른 손바닥 위로 가볍게 뛰었다. 가벼운 몸짓엔 무게조차 느껴지지도 않는다. 제이슨은 익숙하게 작은 새를 감싸고는 잠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단추처럼 작게 콕 박힌 눈동자가 천진하게 껌뻑껌뻑 거리는 걸 보고 이 ㅅ……. 하며 욕을 하려다가 제 앞주머니에 우악스럽게 넣었다.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힌 딕이 항의라도 하듯 몇 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지만, 언제나 그랬듯 제이슨은 가볍게 무시했다. 딕은 제이슨의 앞주머니에서 다시 튀어나와 걸어가는 그의 주변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니며 떠들었다. 뺙뺙뺙뺙뺙뺙뺙―


“좋은 말 할 때 들어가지?”


뾱뾱뾱뾱뺙뺙뺙뺙뺙.


“야!”


마주보며 정지비행을 하다가 콧등을 찍고 달아나는 작은 몸을 솜씨 좋게 낚아챈 제이슨이 딱 딕이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로의 공간만 남기고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노려보았다. 바둥거리며 연신 고갯짓과 더불어 부리로 쪼아본들 단단한 성인 남자의 손을 벗어날 길은 없다. 딕은 곧 포기 한 듯 제이슨의 두 손 안에 철푸덕 주저앉으며 작은 머리를 들었다. 겉은 작은 짐승의 모습이었지만 알맹이는 영락없는 다 큰 성인 마법사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라는 동물 중에선 찾기 힘들 새파란 눈동자가 순진한 척 깜빡깜빡거리며 쳐다보는 꼴이 너무 얄미워서―


“뺣!!!!!!”

“으어에 야여이 이으 에어아아.”


그러게 얌전히 있음 됐잖아. 그대로 입에 쳐 넣고 우물우물 거리자 작은 몸뚱이가 발버둥을 치며 입안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슨은 씹지 않을 정도로만 우물거리며 새로 변한 딕의 작은 머리를 온통 침 범벅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사람이었으면 분명 엄청난 호들갑과 비명이었을 새의 울음소리가 입안으로 먹혀들었다. 한참을 그랬을까, 도로 입 밖으로 꺼낸 작은 새는 온통 머리통이 침 범벅이 된 채로 꺼내져 겨울바람에 바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시 반항이라도 하듯 제이슨의 엄지손가락을 한번 쪼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울새는,


“추워!”


언제 변했는지도 모를 사람의 모습으로 축축하게 젖은 앞머리를 매만지는 것이다. 딕은 어깨를 바르르 떨며 제이슨을 흘겨보았다.


“그렇다고 입에 넣을 건 없잖아, 제이.”

“그러게 누가 까불래?”


애초에 밖에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한 게 누군데 사람을 골려. 퉁명스레 중얼거리는 제이슨의 말은 삐죽삐죽 가시가 솟아있었으나, 지팡이를 뻗어 가볍게 휘두르는 것으로 푹 젖은 머리칼을 보송보송 말려주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딕은 앞머리를 매만지던 손을 제이슨의 뺨으로 가져갔다.


“제이슨, 아침에 버터맥주 마셨어?”

“……왜.”


네 입안에서 알피 버터맥주 냄새가 나. 딕은 마치 딴청을 피우듯 제이슨의 뺨에 코를 부비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딕의 살결에서도 달콤한 버터맥주의 향내가 뭉근하게 올라온다. 제이슨은 귀찮은 듯 몇 번 딕의 손길을 피하다 못 이긴 척 그의 차가워진 뺨이며 머리칼을 매만져주었다. 거친 듯 툭툭 건드리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이 좋았는지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제이슨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딕이, 별안간 새가 쪼아대듯 재빨리 제이슨의 뺨에 키스를 날리고 물러섰다. 허. 장난기 가득한 행동에 잠시 황망하게 바라보던 제이슨이 멈추어 서자 딕이 웃었다.


“형이랑 뽀뽀하고 싶었으면 그냥 하자고 하지 입에 넣어버리면 쓰나, 제이.”


얼씨구. 상상도 자유라지만 너 정도면 집요정이 파이어위스키 병나발 하고 뛰어다닐 수준이다. 입술을 비틀어 피식 웃어 보인 제이슨이었다. 남들이 본다면 비웃음 같아 보였고, 제이슨의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딕이 잘 알고 있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는 잠깐의 웃음 뒤로 곧 예의 그 성질 나빠 보이는 무표정에 심드렁함까지 더한 채로, 마치 멱살잡이라도 할 것 같이 딕이 둘러맨 도톰한 목도리를 확 잡아챘다. 억, 제이! 휘청거린 몸뚱이는 엄살을 지르며 외친 단말마의 비명과는 다르게 금방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다.

버터맥주 냄새가 나는 울새라. 심지어 따끈하고 부드럽기까지 한.

제 생각이 우스우면서도 상관은 없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고, 나오기 전 서둘러 넘긴 버터맥주가 조금 부족했는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제이슨은 그대로, 내음이 감도는 매끄러운 입술 사이에 혀를 집어넣었다. 웁? 놀란 듯 먹힌 숨소리와 함께 잠깐 움찔거린 것도 잠시, 딕은 주도권을 빼앗긴 입새 사이로 웃음을 삼키며 가볍게 제이슨의 목뒤로 팔을 둘렀다. 치열을 훑는 혀와 혀 사이로 옅은 신음이 오갔다. 장난을 치듯, 얽혀 오는 부드러운 혀를 친히 맞이하기라도 하듯 톡톡 두들기며 장난을 치던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도망이라도 칠세라 물리는 고개를 도로 붙잡고 쫓아오는 입술이 숨을 가쁘게 했다. 제이슨의 목덜미를 꽉 둘러맸던 딕이 어깨를 툭툭 치며 버둥거렸다. 입안에서 아등바등 꿈지럭 거리던 감촉이 떠올라 괜히 심술을 더해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겨우 고개를 뗀 딕이 발개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피가 몰려 붉게 부은 입술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제이슨의 어깨에 딕이 고개를 기댔다. 정확히는 목덜미 사이에 이마를 비벼댔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손가락 사이에 고개를 문지르던 작은 울새처럼.


“제이. 정말로 추운데 이제 들어가면 안 될까?”


외출은 다음에 하자. 속삭이는 목소리에 제이슨이 웃었다.

잡식성 독거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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