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지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적 배경, 언어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항심

1.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2. 맞서려는 마음



















김승우의 집에 승용차 2대가 섰다. 자신의 수하가 연 차 문에서 나온 토마는 한 번 웃음을 짓고 대문이 열릴 때 까지 기다렸다. 어린 하녀가 문을 열어주니 토마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며 수하들에게 기다리라 일은 뒤 혼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 유우키. 조센징 중에서 제일 아름답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선의 모습을 보며 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용선은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침부터 준비한 옷과 화장은 승우가 일본 고관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을 때 이후로 매우 오랜만에 차려입은 것이었다.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용선 또한 자신도 이 모습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마는 용선의 손을 잡고 대문 밖을 나왔고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승우는 마음이 찡한 것을 애써 숨겨두었다. 우리 예쁜 딸이 저리 곱게 차려입고 정혼자와 같이 나가다니. 아버지로서의 기쁨 반, 일본 고관의 장인어른이 된 기쁨 반이었다.




"일어 공부는 많이 했겠지요."


"... はい 。"

(... 네.)


"今日は私だけでなく、上のお客様もお越しになる席ですので、注意した方がいいですよ 。"

(오늘 나 뿐만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도 오시는 자리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겁니다.)


"'承知いたしました 。"

(알겠습니다.)


"흐음."




생각보다 많이 는 일어 실력에 토마는 눈썹을 천천히 올렸다 내렸다. わかりました 도 아니고 承知いたしました라니. 일어를 가르쳐준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한 토마였다. 그 와중 용선은 흔들리는 차 때문에 분산되는 집중력과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으로 휩싸여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잘 했겠지. 내일 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은 용선이었다.


차가 승우의 집을 빠져나가자 뒤에서 지켜보던 별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의 속도 때문에 따라잡긴 불가능해 지름길로 먼저 도착해있을 심산이었다. 용선은 잘 하고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젠 용선의 몫,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으니 잘 해냈으리라 생각할 수 밖에.


자리를 옮기며 아까 지켜본 용선의 모습은 저번 시장을 구경했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이렇게 더 차릴 수 있다는 건가. 하긴 나 만나는데 굳이 차려입을 필요가 뭐가 있겠어. 지름길로 도착한 연회장은 아직 그들이 도착하지 않았는지 다른 일본 고관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만 보였다. 별이도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 지나가자 속으로 천천히 이름을 읊으며 용선과 카츠마토 토마가 오길 기다렸다. 그나저나 휘인이는 잘 있으려나. 오전에 옷을 구해준 이후로 보질 못했으니, 잘 하리라 믿고 있기만 해야 했다.


토마가 탄 차가 드디어 연회장에 도착했다. 수하가 연 차 문에서 먼저 나온 토마는 용선이 나오기 쉽게 손을 잡아주었다. 아까부터 거슬리는 싸구려 목걸이가 계속해서 눈에 거슬렸다.




"この安物の装身具は何ですか 。"

(이 싸구려 장신구는 뭐죠?)


"아... 贈り物 をもらったのです。"

(선물받은 것입니다.)


"もっといいものをあげるから、これは捨てたほうがいいですよ。"

(더 좋은 것을 줄테니 이건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토마는 말을 내뱉곤 용선의 목걸이를 툭, 끊어 자기 수하에게 건넨 뒤 버리라 일렀다. 이거 별이가 준건데. 한 순간에 목걸이를 빼앗긴 용선은 땅바닥에 버리는 토마의 수하를 뒤로한 채 토마의 이끌림에 따라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순간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자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 모르겠어 복잡해졌다.


용선이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별이는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행인마냥 연회장 앞을 걸었다. 아까 용선이 당황스러워 하던데 왜 그러지. 거리가 좀 있게 떨어져 있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용선의 표정만은 볼 수 있었다. 아까 무언가 던졌던데 뭐였을까. 땅바닥을 슬쩍 훑어보자 바닥에 목걸이 하나가 보였다. 몸을 숙여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이건...




"내가 선물해준 목걸이랑 똑같은 건데."




별이는 목걸이를 빤히 쳐다보다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잘린 끈을 보아하니 잡아 당겨 끊어진 것이었다. 목에 상처 안 났을까. 괜히 자신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린 별이는 연회장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카츠마토 토마는 생각보다 상당히 무례한 자였다.












별이가 구해준 옷으로 갈아입은 휘인은 다른 직원들과 같이 움직였다. 주점에서 일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따르고 주는 음식은 다르지만 하는 행위는 같았다. 그저 비위를 맞추며 물이던 술이던 음식이던 가져다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게 대장의 큰 그림인가. 이런 일을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 휘인은 별이의 선견지명에 속으로 감탄을 했다. 맞던 아니던 어쨌든 맞는 거다. 그게 대장이니까.




"そこ, お酒を持ってきて。"

(거기, 술 가져와.)




커다란 연회장에선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복을 빼입고 온갖 멋을 내는 자들은 모두 일본 고관들, 혹은 친일파들. 지금이라도 속에 감추고 있는 칼을 빼내어 다 죽이고 싶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대장을 위해 참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은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는 거니깐. 술을 가져다주며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 채 지껄이는 말을 들었다. 정말 바보 같긴, 이 중에 독립투사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싶을 정도로 꽤 많은 양들을 쏟아 내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끌리자 휘인도 슬쩍 쳐다보았다. 이 연회의 주인공, 카츠마토 토마와 용선이 같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왔구나. 대장은 잘 왔으려나.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며 은근슬쩍 동선을 토마와 용선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토마는 용선을 소개해주며 다른 일본 고관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용선은 어색하게 웃으며 간단한 일어로 조금씩 말을 했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래도 대화는 나눌 수 있어 별이가 잘 가르치고 있는 게 맞구나 싶었다. 하긴 김용선이 멍청한 게 아닌 이상 우리 대장의 가르침은 정말 최고지.


용선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에 어색하게 웃으며 별이에게 배운 일본어를 천천히 생각하며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를 때는 토마를 쳐다보면 알아서 대답을 해주었기에 난감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들은 넘어갈 수 있었다. 혹여나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들었기에 대충 넘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회가 한 층 무르익을 무렵 토마가 용선을 보며 말했다.




"今日とても重大な発表があるでしょう。"

(오늘 아주 중대한 발표가 있을겁니다.)


"네...? 아니, はい?"




토마의 손짓에 연회의 사회자 중 한 명이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의 소리에 모두가 조용히 하며 단상 위 사회자를 바라봤다.




"こんにちは、大日本帝国国民の皆さん。公演を見る前に京城監獄副所長である葛松トーマ様の小さな言葉があります。"

(안녕하십니까, 대일본제국 국민 여러분. 공연을 보기에 앞서 경성감옥 부소장이신 카츠마토 토마님의 작은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단상 위로 올라가는 토마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용선은 어리둥절하며 자리에 앉아 토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봤다. 용선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었던 휘인도 눈과 귀를 토마에게 집중시켰다. 형식적인 연회 축하 인사를 한 토마는 용선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私が今日ここに皆さんを招待した理由は、こちらキム·スンウの娘のユウキさんと結婚することを発表するためです。"

(제가 오늘 여기에 여러분을 초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 김승우의 딸 유우키씨와 결혼하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섭니다.)




그 말에 모두가 토마와 용선을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토마의 빠른 말과 울리는 마이크 소리에 제대로 듣지 못한 용선은 그저 남들처럼 박수를 치며 토마를 바라봤다. 왜 나를 보며 박수를 치는 거지. 마무리 발표를 하고 단상 아래로 내려온 토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私と結婚をするのがそんなにいいことですか。"

(나와 결혼을 하는 게 그렇게 좋은 일입니까?)


"네? 그게 무슨..."


"조센징 말로 하자면 유우키상은 나와 이제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네?"


"결혼."




난데없는 결혼 이야기에 용선이 놀라 입을 열자 토마는 그대로 용선의 입을 머금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용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토마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환호를 했다. 어휴, 남사시러워라. 휘인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용선이 고개를 뒤로 빼고 입을 손으로 막자 토마는 웃으며 말했다.




"결혼하면 더한 것도 하게 될 텐데 왜 그러는지?"


"하, 하지만..."


"쉿, 나머지 이야기는 공연이 끝난 뒤에 하기로 합시다."




토마의 말에 연회장의 불이 꺼지고 하나의 불만이 단상 위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진이 곱게 차린 옷을 입고 나오자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혜진이 앞을 보며 입을 열고 노래를 하려는 찰나 잠시 천장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언니, 어디로 갔다 했더니 천장에 있던 거였어?











"개자식."




이가 갈리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용선과 토마가 들어간 후 전에 봐뒀던 곳으로 몰래 들어가 천장 위로 올라간 별이는 천장으로 가려져 있는 나무판자 하나를 조심스레 떼어내곤 줄 곳 상황을 관찰하던 중이었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별이의 눈이 잠시 감겼다 떴다. 그 눈에는 살기가 눈보라 치듯 휘날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카츠마토 토마를 허리춤에 넣어뒀던 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다. 저런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불이 꺼지자 한 번 더 그 마음이 잠시 피어올랐다. 이 정도로 안 보이면 죽여도 모르지 않을까.


잠시 뒤 혜진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아한 목소리가 별이의 분노를 천천히 사그라뜨렸다. 아니야. 지금 하면 안 돼. 아직 모아야 할 정보가 아직 남아있다고. 섣불리 움직였다간 혜진이와 휘인이도 위험해진다. 순간의 생각에 잠시 무너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하아..."




주머니를 뒤적여 아까 주운 목걸이를 꺼냈다. 이거 다시 줘도 될까. 처음 선물했을 때 받고 기뻐하던 용선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 아까 왜 화난 거지. 분노에 휩싸여 잠시 앞길을 막을 뻔했던 이 감정이 매우 낯설기만 했다. 그래, 같은 여자로서 저런 행동을 하면 화나지. 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고 용선을 바라봤다. 아까의 여파 때문인지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용선을 보며 다시 한번 분노가 피어올랐지만 겨우 진정시켰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이리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제가 보고싶은 장면이 빨리 나오지 못해 아쉽군요.

아마 다음화에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뭇

마마무 팬픽러 이지입니다.

이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