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부름에 달려온 반죠의 힘을 빌려서 센토를 침실ㅡ침대가 존재하는 차분한 느낌의 방ㅡ으로 옮겼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무리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그녀는 말을 마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불규칙적인 숨을 내쉬는 센토의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렸다.


“변한 거 하나도 없네.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미소라는 중얼거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 물, 다시 떠와야 할 것 같은데.”


눈치를 보던 반죠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일어나려는 미소라를 다시 앉히고 본인이 대신 물이 3분의 1쯤 담겨있는 대야를 들었다. 찰랑. 안에 들어있던 미지근해진 물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다.


“그, 그럼 내가 가져올게.”


말을 마치고 그는 이 상황에서 도망치듯이 방을 빠져나왔다.



*



센토는 꼬박 2일을 더 침대에서 누워서 잠을 자고 난 뒤에 눈을 떴다.


“여긴..”


천국? 살짝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몽롱한 표정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미소라가 말해줬어. 무리 하다가 쓰러졌다면서.”


반죠는 센토의 옆에 앉아서 바나나를 까먹고 있었다.


“반죠가 있는 것을 보니 천국은 아니네.”

“뭐야, 그건!”

“시끄럽게 굴지 말아줄래? 머리 울리니까 말이야.”


센토는 손으로 이마를 누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힘이 없었다.


“아, 미안.”

“반죠. 반죠 류우가.”

“응?”

“얼마나 지났어?”

“얼마나, 라니...”


반죠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면서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서른 두 시간? 어라, 얼마였더라.”

“에휴. 저 바보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센토는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에 올려있던 물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욱. 센토가 다시 그것을 집자 미지근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을 그는 그대로 물이 남아있는 대야에다 넣었다.


“어딜 가려는데?”

“내가 그냥 나가는데 굳이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거야? 거참 귀찮네.”


툴툴대며 머리를 정돈하던 센토가 문 앞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그녀, 미소라였다.


“어, 깨어났네.”

“어. 미소라.”

“몸은 좀 어때?”


음.. 괜찮아. 보다시피 말이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방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손에 잡혀버렸다. 센토는 살짝 긴장을 하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뒤를 돌아보았다.


“미, 소라?”

“센토, 그럼 우리 둘이서 이야기 좀 해볼까?”


환한 미소까지 짓는 그녀의 모습에 센토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뭔가, 이거 최악인데.


그의 예감은 안타깝게도 무척이나 적중하였다.


“센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좀 과도하게 하지 말라고!”

“응... 아니, 네..”

“주위에 나나 반죠도 있잖아. 왜 일이 많아도 주변에게 부탁하지 않는 건데? 우리가 믿음이 안 가서 그런 거야?”

“아니, 요...”


잔소리는 약 10여분 동안 이어졌고, ‘이제부터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센토는 풀려날 수가 있었다.



*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센토의 건강은 며칠의 강제성을 내포한 추가적인 휴식 덕분에 향상되었다. 물론 겉으로만 나은 상처일 수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이번의 그의 목표는 방 하나를 나시타에서의 지하실과 같은 느낌으로 꾸미는 것. 얼마나 지났을까, 금방 완성되었다.


“짜잔~. 물론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어때 바보.”

“바보라고 부르지 말라고, 센토. 그보다 대단하네. 완전 똑같아.”

“완전 똑같다니. 그런 심한 말을. 좀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까지 했거든?”


이것 봐봐! 최고지? 놀랍지? 천재적이지? 그는 컴퓨터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뒤쪽 머리카락 더듬이가 올라온 것은 덤이었다.


“의미, 전혀 모르겠네.”


반죠는 그 특유의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근육 바보는 모르지~.”

“그래.”


응? 센토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저 바보가 본인의 무식함을 인정했다고?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죠는 싱긋 웃기까지 했다.


“미소라!!! 반죠가 이상해졌어!!!”

“이럴 땐 그냥 넘어가라고!”

“둘 다 시끄러워!!”



*



반죠는 갈증을 느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가 가까이에 없어 정확히 몇 시 인지 모르겠지만, 한밤중 정도로 추정됐다. 바닥에 두 발을 내딛자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미소라를 배려해서 반죠는 어두운 공간을 향해 살금살금 걸었다.

냉장고에서는 희미한 흰색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고 반죠는 빠르게 내부를 훑었다. 역시나 우유는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지금은 뭔가 원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니까 말이지. 반죠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물을 꺼내 마셨다. 시원한 한 모금에 몸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잠이 확 달아나버린 건 덤이었다. 그는 물병을 냉장고 안에 넣고 아까 전처럼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살짝 오른쪽을 본 순간,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와앗?! 깜, 깜짝아!!”


센토는 식탁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반죠의 큰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센토는 살며시 두 눈을 떴다.


“뭐, 뭐야. 센토. 왜 침대에서 안자고 여기 있는 건데. 깜짝 놀랐잖아.”


크게 들숨 날숨을 내쉬며 진정하는 반죠였다.


“......”

“......”

“센토...?”

“......”

“자려면 침대에서 자지? 바닥 차갑잖아. 잠자리 불편하면 바꿔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반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자는 건가?


“죽었나?”

“살아있거든.”


아. 반죠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마음속의 말을 꺼내버렸다. 그는 서둘러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의 사과에 센토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우물쭈물해하는 반죠에게 센토가 먼저 말을 걸었다.


“반죠, 물 좀 꺼내줄 수 있을까.”


착 내려앉은 목소리였다. 반죠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순순히 냉장고 쪽으로 가서 뜯지 않은 생수병을 센토에게 가져다주었다.


“미안.”


센토는 병을 힘없이 받아들었다. 뚜껑을 열려고 계속 돌리기를 시도하던 그가 답답하기라도 했는지 반죠는 그에게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이리 줘봐.”


센토에게서 빼앗듯이 물병을 가져가서 뚜껑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물병을 다시 그에게 건네주었다.


“어, 땡큐.”

“센토. 다리 아프면 내가 데려다줄까?”

“내가 걸어서 갈 수 있거든, 바보.”


투덜대던 센토는 앉은 자리에서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굳이 도와주고 싶다면 말이야, 끝까지 살아서 미소라를 지켜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냥 해보는 말. 근육 바보라서 항상 걱정이 되서 말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까지 하냐. 나에게는 제6감이 있다고?”

본인의 가슴을 자랑스럽게 두드리며 한 자씩 끊어서 말하는 반죠를 바라보는 대신, 센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축해준다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센토는 위태롭게 어둠 속으로 걸어가 버렸다.


“쟤 왜 저러냐..”


작게 중얼거리던 반죠는 센토의 자리에 남은 물병을 집었다. 축축함이 느껴져 반죠는 바지에다 손을 문질러 닦았다.


“센토, 다한증 있었나.”


들어본 적 없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냉장고에 병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대, 정확히 말하자면 잠자리, 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갔다.


그의 옆자리에서 미소라는 미동도 없이 잘 자고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는 조용히 이부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시원한 물을 마신 덕분인지 아까 전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잠은 그에게로 와주지 않았다. 몇 번을 뒤척이던 반죠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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