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Sea 上

토니 스타크 X 피터 파커







 바다였다. 마음은 전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의 매끈한 구두코는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날씨는 사나웠다. 어두운 빛의 파도가 높게 솟았다가, 해변을 내려치기를 반복하는 그런 날씨였다. 파도가 얼마나 거친지 섬을 모조리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이 조그만 섬은 언제든 삼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도착했습니다.”
“차는?”
“배가 뜨면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너무하네.”


차까지 뺏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조용한 바닷가를 울렸다. 여기서 걸어 다니라 이거지. 그는 작은 섬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벌이었다. 신문의 경제면과 연예면에 특종을 터트린 죄에 대한 벌. 그것도 동시에. 딱히 저항을 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늘 그를 비호해주던 어머니마저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이 구닥다리 섬에 갇히는 것 밖에는.


커다란 짐 가방을 든 비서가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섬은 뉴욕보다 따뜻한 곳이었다. 가끔씩 태풍이 온다는 것을 빼면 항상 그렇다고 했다. 그저 수영이나 하면 적당할 곳이었다. 문제는 수영을 하지 못했다. 물론 크루즈를 타고 나가도 좋을 것 같았지만, 차도 가져가는데 크루즈를 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회장님이 집은 지어주셨잖아요.”
“그게 지어준 거야? 남는 거 던진 거겠지.”


그는 바닷가 앞에 자리한 저택을 보며 말했다. 그저 아버지의 수많은 별장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필 고립되어 있는 곳이라서 선택된 거고. 그가 머물게 될 집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지루하고 따분한 곳에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었다. 섬은 관광지도 아니었다. 사람이 잘 드나들지도 않는 곳. 섬으로 오는 배는 하루에 딱 한 대였고, 자신은 그걸 탈 수도 없었다.  


토니 스타크. 그는 저택으로 들어서며 뉴스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그 이름을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토니는 굉장히 억울했다. 중간에 끼어서 그렇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유명 가수인 A와 토니는 친구 사이였다. 한 때 토니의 원나잇 상대였던 배우 B는 A와 연애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토니의 애인—일주일 전까지 애인 이었다— C와 바람을 피기 시작한 이후로 사건이 시작된 거였다.


이 이해하기도 힘든 스캔들은 꽤나 파장이 컸다. 두 명은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두 명은 재벌이었다. 토니는 C에게 뒤통수를 맞은 걸로 모자라서, 헤어지고 나서도 이 섬에 쫓겨 왔다. 언론에서는 넷이 난교를 했거나, 아니라면 마약 파티를 했다는 둥 아무렇게나 떠들어 댔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토니는 나름대로 저만의 원칙이 있어서, 옛날에 잤던 사람과는 다시 섹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원칙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벌써 할 게 없네.”
“섬 바다가 맑기로 유명하대요. 태풍 끝나면요.”
“크루즈 준대?”
“수영하시면 되죠.”
“빠져 죽으라고?”


맨 몸으로 수영하기, 멋있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유일한 상속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겠어. 토니가 있는 힘껏 그를 비꼬았다. 속으로는 분명 욕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존경하는 회장님 보좌하다 그 아들 따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짜증날까 싶었다. 그래서 토니도 이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앞으로 반년은 있어야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더 오래.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비서는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고, 이제는 정말 토니 혼자였다. 한숨을 크게 내뱉은 토니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벽 크기의 TV가 깜빡거리며 켜졌다.


하지만 TV는 곧 꺼졌다. 토니가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리모컨을 던져버린 탓이었다. 아직도 나와. 토니는 그동안의 제 사생활 사진을 전부 모아 방영하고 있는 모 쇼프로그램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몸이 축 처졌다. 놀 것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외로워서였다. 단순히 섹스할 상대가 없는 그런 외로움이 아니었다. 이건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토니의 고질병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사실 자신의 문제점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아니, 있어도 못하는 것이었다.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지금의 삶도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 굳이 자신을 더 옥죄면서 살기는 싫었다. 그저 할 일만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회사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그저 제게 주어진 의무대로만 하면 됐다. 그러면 적어도 가족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토니는 그 사실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았다.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에게는 어떤 애정이든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집은 텅 비었다. 꼭 아버지 같았다. 그래서 숨이 막혔다. 어떻게 이곳에서도 똑같이 아버지가 존재하는지! 그는 인상을 쓰며 거칠게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호흡이 가빠졌다. 토니는 항상 제가 바다 아래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딱 이런 느낌의 바다였다. 아버지처럼 그리고 이 집처럼, 거대하고 넓으나 속은 비어 있는 그런 바다. 맑고 투명한 바다가 아닌 어둡고 깊은 바다였다. 그는 자신이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늘 숨이 막혔고, 늘 답답했으니까. 아버지는 그를 가두고 있는 새카만 바다였다. 그래서 이 집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가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가 크루즈만 고집하는 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허세가 아니었다. 토니는 늘 바다 아래 있었다. 잠을 잘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살아남기 위해 버둥댔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래도 토니는 늘 잠겨있었다. 텅 빈 바다 속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텅 비어버린 집은 토니의 목을 조르고만 있었다. 슈트를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현관에서 오늘 처음 신은 구두의 뒤축을 꾹 눌러 신었다. 한정판인지 뭔지 알게 뭐람. 또 사면 그만이었다. 대문을 밀고 나가니 또 바다였다. 지긋지긋한 바다. 그는 다시 숨이 막혀오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봤자 토니가 갈 만한 곳도 바다였을 뿐이었다.


비는 그쳤고, 바다는 언제 높게 솟았냐는 듯 멀쩡해보였다. 물론 보통 때의 바다보다는 거칠 것이었지만, 그래봤자 토니의 눈에는 다 똑같이 보였다. 얼마나 위험하든, 저를 가둔 새카만 바다보다는 나아보였다. 그래서 그 쪽으로 걸어갔다. 뒤축을 눌러 신은 구두가 삐걱거렸다. 그는 구두를 그냥 집어 던졌다. 던지면서 올려다 본 하늘은 정말 맑았다. 새하얀 구름이 예쁘게도 떠 있었다. 아까는 어둡기만 하더니, 지금 와서 또 맑은 척을 했다.


파도가 치는 바다로 걸어갈 때마다, 발바닥에 모래알이 들어찼다. 비에 젖어 발이 금세 축축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질겁했을 텐데 구두를 집어 던지고 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어라 말 할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었다. 입고 있는 슈트를 전부 벗어버려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지금 바다 들어가면 죽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혼자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토니의 고개가 그쪽을 향했다. 샛노란 것이 멀뚱하니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란 우비를 쓰고 노란 장화를 신은 애였다. 토니의 또래였다. 소년은 토니와 눈이 마주치자, 토니를 훑어봤다. 너 신발 없어? 안타깝게 물어오는 목소리가 웃겼다. 아니. 별 것도 아닌데 자존심이 상해 대답을 해버렸다. 젖은 모래로 범벅이 된 발을 소년이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비를 써도 비를 맞긴 했는지 머리카락이 곱게 말려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바다 안 들어가.”
“그런데 왜 그리로 가?”
“그냥, 답답해서.”
“그러다 죽은 사람들 많아.”


신발 내꺼 가져다줄까? 소년의 눈에는 토니가 반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병아리는 아니라서. 토니가 말을 툭 던졌다. 소년은 잠시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이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거 우리 숙모가 사다준 거야. 그 불편해 보이는 옷보다 훨씬 좋아. 비도 안 맞고. 안 그래도 높은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여기에 학교가 있었나? 토니는 그 생각을 했다. 없었다.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학교가 있으면 여자애도, 남자애도 있을 텐데 치밀한 아버지가 토니를 그런 곳에 둘 리 없었다. 그럼 방학이었다. 고등학교의 방학. 토니는 그제야 달력을 생각했다. 그것보다 더 어려보이긴 했지만 어찌됐건 토니 또래였다.


“너 숙모가 7살 인줄 아는 거 아니야?”
“……조금.”
“가서 너 7살 아니라고 해. 아무튼, 볼 일 봐.”
“너 뉴욕에서 온 거지?”
“…어떻게 알아?”
“당연히 TV에서 봤지.”


여기 인터넷도 되는데. 소년이 다시 토니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토니는 어깨를 까딱했을 뿐이었다. 섬에 너 말고 없어? 우리 또래 말이야. 토니가 퍼뜩 물었다. 소년은 아주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의 입에서 한숨이 토해졌다. 그러자 노란 우비가 성큼 성큼 다가왔다. 왜? 토니가 제법 결연한 표정을 한 소년을 보며 말했다. 발. 조금 풀죽은 목소리였다. 아니, 걱정스러운 목소리. 나는 병아리 장화 싫다니까. 토니가 말을 하며 제 발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빨리 와. 맨발로 돌아다니니까 그렇지.”


내가 부축해줄게. 소년이 손을 건넸다. 한 쪽 발이 뭐에 찔렸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래가 푹신해 그것도 모른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갑자기 나타난 소년 때문일지도. 토니는 일단 그에게 몸을 기댔다. 상처를 인지하니 발이 쓰렸다. 발꿈치만 딛고 간신히 다시 저택 앞으로 왔다. 소년은 익숙하게 제 가방에서 소독약 따위의 것들을 꺼냈다—다행히 가방은 노란색이 아니었다.—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지혈하고 소독했다. 쓰라림이 느껴지자, 토니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니야. 조금만 참아.”
“참고 있어.”
“……피터야.”
“뭐?”
“피터, 파커야. 내 이름.”


피터는 대뜸 제 이름을 말했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파커. 피터. 그 이름을 입안에서 찬찬히 굴렸다. 그리고 7살 아니야. 그 말에 토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알아. 토니가 웃으며 우비의 모자를 벗겼다.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그대로 드러났다. 조금 가려져 있던 말간 얼굴도. 나랑 비슷해 보이네. 토니가 말하자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붕대로 상처를 둘둘 감자 치료가 끝났다.  


“고마워, 피터.”


토니는 은혜를 잘 갚는 성격이었다. 인사도 당연했다. 토니가 말을 건네자, 피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토니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휘어졌다. 그러더니, 활짝 웃는 얼굴이 토니를 마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새카맣게 내려앉은 바닷물 사이로 빛이 들었다. 토니가 가라앉아 있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를 무언가에 맞은 듯 멍했다.


고맙긴. 피터가 한 글자, 한 글자 말할 때마다 바다 속에 빛이 들어찼다. 한 줄기씩 파고들어 얽혀갔다. 새카맣기만 했던 바다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토니의 바다에는 단 한 번도 빛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토니는 어쩐지 눈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시큰하기도 했다. 왜? 의문이었다. 남이 웃어주는 것은 질리고도 남을 만큼 봤다. 그런데 왜? 마음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나는 저쪽에 살아. 저기 흰색 지붕, 보여?”
“……”
“왜 아무 말이 없어?”
“그냥.”


피터는 눈을 두어 번 느리게 깜빡였다. 그의 표정을 이해하는 것은 꽤나 힘이 들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재벌이라던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게다가 피터의 학교는 섬 밖 도시에 있었으므로,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모르지는 않았다. 사실 모르는 것이 불가능한 회사였다. 게다가 온 뉴스가 떠들썩했다. 통제가 불가능한 문제아. 하지만 피터의 눈에, 제 눈앞의 소년은 그렇게까지 무도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웠다.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토니가 아니라, 토니를 가둔 ‘그 곳’ 이야기였다. 이가 맞부딪칠 만큼 추웠다. 바다 들어가고 싶으면 같이 들어가자. 토니를 바라보던 피터가 말을 건넸다. 바다. 토니는 그가 말하는 바다가 자신의 바다인지, 아니라면 그 누군가의 바다인지를 몰랐다. 같이. 토니가 읊조렸다.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에 대한 감정은 늘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토니는 지금 와서 그 물음에 똑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 수영 진짜 잘해.”
“내가 수영 못할 것 같아?”
“응.”
“……잘 아네.”


그러니까, 내가 너 구해줄 수 있다는 소리야. 피터는 꽤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피가 비치는 토니의 붕대 위로 입김을 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데? 토니가 묻자, 피터는 제 눈을 들어 다시 그를 바라봤다. 둘은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네가 생각하는 의미. 피터는 갈색 눈동자에 갇힌 어두운 바다를 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 토니는 그 대답을 그대로 중얼거렸다.


너는 바다가 안 무서워? 토니가 다시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피터는 대답하지 않고 그 앞에 앉아 다시 발을 살폈다. 무서워. 조용한 목소리였다. 떨리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바다가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피터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소년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것을 깨달았다.


“무서운데 어떻게 나와?”
“나올 필요는 없어.”
“뭐?”
“바다를 바꾸면 돼.”


토니는 이제 무릎에 팔꿈치를 대어 턱을 괴었다. 그리고 피터를 아주 빤히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토니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말을 했다. 바다는 항상 무섭지만, 바다를 네 것으로 만들면 되잖아. 수영도 해보고, 서핑도 하면서. 피터는 웃으며 말했다. 난 그렇게 했어. 물론 앞으로도 방심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수영하면 되지. 지금은 답답하지 않거든. 소년은 아주 당당해보였다.


“네가 있던 바다는 어떤 바다인데?”
“……”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건 삼촌의 바다였어.”


돌아가신 이후로 말이야. 피터가 말을 덧붙이자, 토니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았다. 그래봤자 어두웠던 것은 똑같겠지만. 미안해. 토니는 사과했다. 피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로 괜찮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말대로 바다를 바꿨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내가 너 도와줄 수 있어. 피터가 가방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우비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토니의 귓가가 간지러웠다. 피터는 이제 확신하고 있었다.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니 더 자세하게 보였다. 그것은 토니의 머리카락 색 만큼 어두운 바다였다.


“왜?”
“나도 노력했고, 숙모가 많이 도와주셨거든. 서로 돕긴 했지만…”
“그러면 뭐가 달라져?”
“누구든 한 명쯤은 네 편이 있어야 하잖아.”


그렇지? 피터는 이제 앉은 토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토니는 그만 웃고 말았다. 첫 날이었다. 이 지루한 섬에 머물게 된 첫 날. 그런데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겪어온 그 어느 일보다도 이 대화가 재미있었다. 우리 오늘 처음 만난 건 알지? 토니가 노란색의 우비를 응시하며 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터도 그것이 재미있었는지 웃었다. 소년이 웃을 때마다, 토니의 바다에는 빛줄기가 들어찼다.


토니는 이제 용기를 내야만 했다. 먼저 용기를 낸 것은 피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붕대가 감긴 발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동그란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토니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엇이든지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토니는 무엇이든 혼자 했다. 그게 편했다. 자신은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였고, 무엇이든지 잘 했으니까. 그러니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다. 피터는 계단의 아래 칸에 서서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발… 다 나으면.”
“응.”
“수영 가르쳐줘.”


그래. 피터가 아주 또렷하게 대답했다. 토니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은 아까부터 좋았지만,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아래 해저에서 튜브를 탄 것 같은 느낌. 흰색 지붕에 살아? 토니가 손가락으로 피터의 집 방향을 가리켰다.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발 나을 때까지는 여기로 놀러와. 토니가 이번에는 피터의 뺨을 바라보며 말했다. 피터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 하는 일 다 하면. 조건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토니의 기분이 더 좋아졌다. 분명히 섬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땅을 파고 있었는데. 토니가 손을 들어 피터의 뺨을 콕 찔렀다. 다물어진 입이 벌어졌다. 눈썹을 찌푸리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피터가 토니를 흘겨봤다. 엄청 눌러보고 싶게 생겼다. 토니가 놀리듯 말을 했다. 피터는 손바닥으로 제 양 뺨을 감쌌다. 우리 숙모도 이렇게는 안 하거든. 덧붙이는 말이 더 귀여웠다.


“내일부터 놀러와.”


토니는 다시 약속을 확인 받았다.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거나, 심심해서는 아니었다. 토니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 제 또래의 소년이 저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뒤흔든다는 것도 알았다. 피터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팔을 뻗어 토니에게 손을 흔들고 제 집으로 향할 때까지도 그랬다. 안녕, 내일 봐. 피터가 다시 한 번 말하자, 토니의 바다에 또 한 번 빛줄기가 생겼다.





* * *





 악몽이었다. 어쩌면 현실이기도 했다. 숨을 쉴 수 없어 깨어난 방은 여전히 고요하고 텅 비어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자주 꾸던 꿈이었다. 현실에서도 자주 겪던 일. 사랑을 바라는 아이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어른의 싸움이었다. 토니는 늘 그런 관계에서 허우적댔다. 어렸을 때는 눈물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말다툼으로 나타났다. 토니는 제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전부 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피곤한 표정을 지었고, 어머니는 지쳐갔다. 그리고 토니는 메말라갔다.


그는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깜빡였다. 새벽쯤 되었을까. 여전히 식은땀이 흘렀다. 아버지와 격렬하게 다투는 꿈은 언제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숨은 여전히 답답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섰다.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이제 다 저를 짓누르는 바다 때문이었다. 그 어둡고 깊은 곳. 토니는 제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의 바다에 있을 것 같았다.


물에 젖은 것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여 신발을 꿰어 신었다. 어제인가, 피터가 여긴 그 흔한 슬리퍼도 없냐며 주고 간 신발이었다. 토니는 그 슬리퍼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문을 빠져나왔다. 발에 났던 작은 상처는 거의 다 나아가고 있었다. 푸른빛을 띤 하늘이 맑았다. 모든 것이 토니와는 정반대였다. 이 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터덜터덜 해변으로 갔다. 차가운 물이라도 닿으면 꿈을 잊을 수 있을까 해서. 그렇게 걷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종아리까지 차가운 바닷물이 차올랐다. 그래도 꿈은, 현실은 잊히지 않았다.


피터. 토니는 그 소년이 있었으면 했다. 알게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피터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무리 간단한 대화라도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뉴욕에서 만난 그 어떤 친구도 이렇게 단시간에 친해진 적은 없었다. 물론 놀 사람이 단 둘 뿐이니 그런 것 일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한 일이라곤 토니의 집에서 TV나 영화를 본 것이 전부였다. 가끔은 책을 읽기도 하고, 학술적인 이야기를 했다. 피터는 과학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이야기가 꽤나 잘 통했다.


피터에게 정확한 사정은 물어보지 않았으나, 아마 삼촌의 일로 섬에 오게 된 것 같았다. 지금은 방학이었고,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 산다고 했다. 토니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MIT의 학부 과정을 끝냈으니 이제 대학원에 들어가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더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매번 배운 것을 다시 배웠다.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했다. 그게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있었으므로.


한숨을 뱉은 토니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손가락을 아래로 꾹 누르면 모래가 눌려 폭신하게 손가락을 감싸왔다. 말 그대로 맑고 투명한 바다였다. 토니는 이 바다가 부러웠다. 그래서 한참이나 손을 넣고 파도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혹시나 제가 있는 바다도 그리될까 싶어서.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일찍 일어났네.”


익숙한 목소리였다. 놀란 토니의 눈동자가 소년을 향했다. 피터였다. 피터는 익숙하게 토니의 옆에 앉았다. 물이 조금 더 들어왔는지 반바지 끝이 젖었다. 어떻게 알았어. 토니가 물었다. 이렇게 극도로 우울한 모습은 별로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절로 가라앉았다. 집에 갔는데, 없더라. 피터는 그의 손을 집어 삼키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바다는 토니의 손만을 삼킨 것이 아니었다. 피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에는 왜? 이렇게 일찍.”
“무서운 꿈을 꿨거든.”
“……”
“너도 그렇지?”


피터가 말을 하며 토니의 손위로 제 손을 겹쳤다. 피터의 손도 젖어 들어갔다. 손이 닿자, 토니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켜냈다. 닿은 손이 심장이라도 된 듯, 힘차게 뛰었다. 잘 아네. 그가 대답하자, 피터가 웃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그의 바다는 밝아졌다. 처음 만난 날에도, 그랬잖아. 피터는 말하며 겹친 손을 더 붙여왔다. 토니는 그가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을 알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식의 위로는 보자마자 내쳤을 텐데, 지금만큼은 달랐다.


맞닿은 손 때문일까, 아니라면 웃는 얼굴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피터여서 그럴 지도 몰랐다. 섬에 온 이후로 토니의 마음은 자신조차 잘 모르는 수수께끼였다. 피터도 그럴까. 토니는 그 생각을 하며 피터를 바라봤다. 먼 바다를 바라보던 고개가 토니를 향했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피터는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토니의 눈은, 비록 깊은 바다에 있을지라도 아름다웠다. 제 손바닥 아래가 화끈거렸다. 따지고 보면 손을 잡은 셈이었다. 그걸 왜 지금 알았지? 피터가 마주 닿은 손을 느끼며 생각했다.


피터는 재빨리 고개를 위로 들었다. 커다랗고 새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날이 온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피터의 마음이 그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너 얼굴 빨개졌어. 토니가 말했다. 피터는 들었던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과 눈썹, 그리고 토니의 뺨. 너도 빨개졌어. 피터가 말하자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심장박동처럼 쿵쾅거렸다.


“여기보다 더 예쁜 곳 알아.”
“어디?”
“저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물이 더 맑아. 투명해.”


피터가 그곳으로 가자는 듯 토니에게 눈짓했다. 처음 섬에 왔을 때, 생각하러 자주 갔어.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바다가 너무 맑아서 부러웠거든. 피터는 토니가 왜 파도를 쓰다듬고 있었는지 아는 것 같았다. 토니는 그래서 몸을 일으켰다. 그곳으로 가면, 제 바다도 깨끗해질까 싶어서. 몇 발자국 걷는데도 잡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럴수록 손에 열이 올랐다.


도착한 곳은 좀 더 수면이 높았다. 소년들은 바위에 앉아 맞잡은 손을 다시 바다에 담았다. 정말 훨씬 물이 맑았다. 투명할 정도였다. 그 속이 훤히 보였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자신들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빨리 수영 배우고 싶어.”
“넌 금방 배울 거야.”      
“너도 그랬어?”
“응. 아직 완벽하진 않더라도, 잘 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


피터는 그의 모습에서 제 예전을 투영했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그도 우울에 빠졌다. 다만 이제는 그 바다가 무섭지 않았다. 물론이지. 피터가 대답했다. 사실 토니도 그것을 알았다. 피터 때문이었다. 소년이 저에게 닿을 때면, 어둡기만 한 바다가 밝아지고 있었다. 섬에 오기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피터, 나 부탁하나 해도 돼?”
“응.”
“오늘은 나랑 계속 같이 있어줘.”
“……그래.”


피터가 대답하자 토니의 얼굴이 밝아졌다. 토니가 웃는 것은 꽤나 보기 힘들었지만, 한 번 보고나면 피터의 마음에 파도가 쳤다. 숙모가 일찍 들어오라고 하시긴 했지만 하루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전화를 하면 될 테니. 오늘은 반드시 토니의 옆에 있어야했다. 그게 피터의 욕심이었다. 토니는 조용히 피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리고 손을 고쳐 잡았다. 피터의 작은 손이 토니의 손에 사로잡혔다. 피터는 조용히 그의 머리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어깨가 젖어 들어가는 것은 모른 척 하기로 했다.  





* * *




 발가락 사이사이로 모래가 차올랐다. 이제 태풍은 완전히 그쳤고, 바다는 잔잔했다. 다시 맑고 투명한 물이 발목까지 들어왔다. 토니는 제 옆에 앉은 피터를 바라봤다. 손에는 튜브가 들려있었다. 발 봐봐. 피터가 손을 뻗었다. 의사 다 됐네. 토니가 투덜거리면서도 제 다리를 뻗었다. 다 나았네. 피터는 토니보다도 그것을 기뻐했다.


“연습은 했어?”
“응. 마당 수영장에서.”
“그럼 오늘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피터가 손을 뻗어 토니에게 물을 뿌렸다. 토니도 지지 않았다. 토니가 손을 뻗어 피터의 손목을 잡았다. 남은 손으로는 얼굴에 물을 뿌렸다. 가느다란 손목이 그대로 들어왔다. 조금 세게 잡았나. 토니는 얼굴이 발개져 심호흡을 하는 피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손에 힘을 풀자, 피터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뒤통수가 흔들리는 물에 닿았다. 머리칼이 흐물흐물 풀어지고 있었다. 등이 온통 젖었으나 피터는 개의치 않았다. 다리는 바다 쪽을 향해 잠겨있었다.


토니는 그런 피터를 따라 누웠다. 이제 바다에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피터가 있었으므로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누워도 좋다. 토니가 새하얀 구름을 보며 말했다. 피터는 고개만을 끄덕였다.


“오늘도 손잡고 알려줄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한 사람 같잖아.”
“좋은 뜻으로 물은 건데.”
“……”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에 피터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피터 쪽으로 몸을 돌린 것은 토니였다. 조금 더 몸이 붙었다. 둘 다 수영복만을 입고 있으니 물에 젖은 맨살이 닿았다. 그는 피터에게 노골적으로 굴지는 않았다. 뉴욕에서의 그 같았으면, 당장에 콘돔을 뜯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토니에게 피터는 조금 더 심오한 존재였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가진 상대가 아니었다.


사실 토니가 만나온 다른 사람들도 다 저만의 바다는 있었다. 그 바다가 어떤 상태이든. 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보여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숨기려고 자신을 학대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피터는 단 하루 만에 그런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예전’ 바다까지 보여줬다. 토니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피터가 자신에게 아주 넓은 공간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더 요구하는 것은 욕심일지 몰랐다.


피터의 얼굴은 여전히 발개져 있었다. 토니의 입장에서는 많이 자제하는 것이었는데도, 피터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토니는 그게 더 좋았다. 얼굴이 발개질 때면, 피터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정확한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피터도 딱히 싫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피터. 토니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응. 피터는 대답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다 아래로 울리는 것만 같았다.


“또 얼굴 누르…”
“이미 찔러버렸네?”
“진짜 이럴 거야?”


피터가 눈을 흘겼다. 토니는 그런 피터를 놀리기라도 하듯 볼록 나온 뺨을 몇 번이나 자극했다. 몸을 벌떡 일으킨 피터가 물을 손에 담아 휙 뿌렸다. 2차전이었다. 토니의 눈꺼풀이 감겼다 뜨이기를 반복했다.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워낙 사람이 없기도 했고, 낮에는 보통 과수원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바다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한참을 놀다가, 다시 수영을 시작하는 것이 둘의 오후 일과였다. 팔을 뻗고, 내젓고, 다리를 움직여 발차기를 하고. 수영이란 것은 이론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물에 뜨는 것도 힘들었다. 자꾸만 긴장해서 힘이 들어갔다. 토니에게 물이란 그런 존재였다. 언제나 두려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의미가 달라졌다. 물에 뜨기 시작했고, 그건 곧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과정이 수영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제법 자신감도 붙었다. 토니가 손을 뻗어 좀 더 깊은 물로 나아갔다.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은 배울수록 더 하고 싶어졌다. 그게 수영인지, 다른 것인지는 토니도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 점점 잘하고 싶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다리를 조심스레 잡아주던 손이 떼어졌다. 토니는 그것도 모르고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갔다. 바다에 떠있는 것은 쾌감이 컸다. 토니가 있는 그 바다는 아닐지라도, 물리적 바다는 극복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가라앉는 것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바다에 떠 있을 때면, 가끔씩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섬으로 오기 하루 전에 들은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 날의 대화는 토니를 완전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혀 버렸다. 사랑받으려 애썼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지금도 그랬다. 바쁜데 꼭 신경 쓰게 해야 하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아찔하더라도, 자신에게는 피터가 있지 않은가. 토니는 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자마자 피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피터는 어디에 있지? 순간적인 충격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다리가 물 아래로 향했다. 지금만큼은 물리적 바다가 아닌 것 같았다. 섬이 아니었다. 물에 가라앉는 그 순간에 바뀌었다. 바로 토니의 바다였다. 어둡고, 텅 비어버린 아버지의 바다. 토니는 발버둥 쳤다. 물이 온 숨을 다 막아버릴 듯 몰아쳤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계속 울렸다. 얼마나 더 귀찮게 할 거야. 싸늘한 목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귀가 차라리 사라졌으면 했다. 아니, 자기 자신이 사라졌으면. 토니는 절망했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저만이 가라앉은 바다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터는 보이지 않았다.


토니.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토니, 토니. 귓가에 자신의 이름이 울리고 있었다. 아니. 토니가 중얼거렸다. 이름을 부르는 이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토니를 부르지 않았다. 이런 애타는 목소리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토니의 멀어져 가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는 단 하나였다. 피터. 토니는 아까 저를 놓았던 그 이름을 다시 생각했다.


“토니!”


아니었다. 피터는 자신을 놓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눈이 뜨였다. 보이는 것은 피터의 얼굴이었다. 간절한 얼굴, 눈물이 가득한 얼굴. 토니는 기침을 하며 약간의 물을 뱉어냈다. 괜찮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자신을 금방 구해낸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깊지도 않았을 테니. 토니가 빠진 바다는 섬의 바다가 아니었다. 늘 잠겨있던 그 곳이었다. 하지만 나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저 바다를 변화시키면 된다고. 사람이라면 마음의 바다를 떠나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토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머리는 아찔했으나 하나만은 확실했다. 피터의 얼굴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동그란 눈이. 피터는 단순히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다 그 자체였다. 그러니 나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었다. 자신이 바로 바다였으므로. 토니는 그것을 깨닫고 피터를 끌어안았다.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린 몸이 뜨거웠다.


피터를 더 세게 끌어안자, 파도가 쳤다. 피터의 파도였다. 그 바다가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좋아해. 그가 피터의 귓가에 속삭였다. 놀란 듯 피터의 숨이 거칠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피터가 토니에게 조금 더 안겨들었다. 자신에게 온전히 빠져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토니가 조금 급하게 몸을 뒤로 물리고 피터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맞닿은 입술에서도 파도가 쳤다. 토니는 피터의 입술을 집어 삼킬 듯 헤엄쳤다. 피터도 마찬가지였다.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원래 파도는 끊임없이 치는 존재였다. 입술이 맞붙을 때마다 모든 것이 환해졌다. 이제 토니의 바다는 어둡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이번 젊토니피터는.. 슈(@welsue_)님과의 연성교환으로 쓴 글입니다..! 상/중/하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앞으로 천천히 이어나갈 계획이예요. 뭔가.. 많은 것을 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언더더씨에서 sea는 피터라고 생각하며 썼답니다..! 차마 풀지 못했던.. 토니의 고뇌를 여기서 해결해주고 싶었어서.. 쓰면서도 생각을 참 많이 한 글이었답니다! 각설하고,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 < ♥♥♥♥♥  





@yulmu_0601

율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