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 뛰지마, 다쳐!”

“힝, 그래두.”

“다친다니깐!”

“나둬, 얘가 이런데서 뛰지 어디서 뛰겠어.”

“알겠어요, 백현아 그래도 조심해!”

“네!!”


아버지가 편을 들어주시니 슬슬 눈치 보던 백현이 신이나 뽀르르 뛰어간다. 으이구, 그래도 대답은 야무지게 잘하네. 백현의 엄마가 다정한 눈길로 어린 백현을 바라본다. 백현은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 아빠는 물론 친형처럼 따르는 준면까지 함께 여행을 온 것이다. 어느새 준면이 있는 곳으로 건너온 백현이 제가 벌릴 수 있는 만큼 가장 크게 팔을 벌려 보인다.


“형아! 여기 지인짜 크다! 이이-렇게 커!”

“그러게.”

“저기 가보자, 형아! 응?”

“좀 이따가.”

“치이...”


백현이 입술을 삐죽 내민다. 준면이 손을 뻗어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백현의 기분이 금새 풀려 다른 쪽으로 팔랑팔랑 뛰어간다.


“우와, 멍멍이다. 멍멍이!”


별장의 관리인이 키우는 듯한 강아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백현의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백현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별장에 여행을 왔지만, 준면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준면은 어른들과 한참 어린 동생을 데리고 오는 여행보다는 친구들과 편하게 가는 여행이 더 재밌을 나이였다. 그리고 여행을 오기 전에 이 문제로 여친과 다퉜던 터라 다운 됐던 텐션은 올라갈 줄을 몰랐다. 게다가 백현의 별장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저희 집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조금 씁쓸했다. 유복한 환경과 온화한 부모님을 가진 백현이 부러웠다. 백현의 졸업여행을 우겨 부득불 따라오는 저의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신나서 강아지와 노는 어린 사촌 동생을 웃음이 나왔다. 저를 보는 준면의 시선을 느꼈는지 백현이 금방 달려왔다.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백현은.


“형아, 형아! 저기 멍멍이가 너무 귀여워! 꼬리를 이렇게 흔든다?”


신나서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쫑알거리는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그렇게 신나?”

“응! 엄마랑 아빠도 있고! 형아도 있고! 다들 있잖아!”


신나긴 정말 신났는지 또 방방 거리며 뛴다. 밤에 엄청 푹 자겠네. 백현이 또래보다 너무 조숙해서 걱정했었더니, 애는 애인가보다. 고집을 부려서 가족여행에 부득불 껴놓고는 뭐가 성에 안차는 지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제 아버지를 힐끗 본 준면이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안보는 게 속이라도 편하지.


“저기 가보면 안돼에?”

“그래 어디?”


준면이 피식 웃으며 백현의 뒤를 쫓았다. 집안 소유의 별장이기는 해도, 이번에 완공해 처음 와는 곳이니 혼자가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백현이 신나서 준면의 손을 끌었다. 작고 따듯한 손을 준면의 손이 감싼다.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깔끔한 건물 뒤편으로 가보니 꽤나 시설이 잘되어있었다. 지금은 물이 차있지 않지만 꽤 넓은 수영장에다가 목재로 꾸며져 있는 쉼터와 작은 정원까지.


“에이, 수영장에 물 없어...”

“있어도 어차피 겨울이라 수영 못해. 백현이 감기 걸려.”

“그래도오... 다음에 여름에 또 오자!”


수영도 잘 못하면서. 그래도 준면은 어린 동생이 귀여워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그러자.”

“으으, 형아 나 추워.”

“계속 뛰어서 땀나니까 그래, 슬슬 들어가자.”


아직 날씨가 좀 춥기는 해서 어린 백현은 금세 몸을 떨었다. 하얀 코가 빨개져있었다. 아, 전화. 도착하면 전화해달라는 여친의 말이 생각나서 백현을 먼저 건물 안으로 들여다 보내고, 준면은 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싸운 직후에 여행에 오느라 풀지도 못하고, 원래 매주 주말에 하던 데이트도 못해 전화를 받은 여자친구의 목소리를 뾰로퉁했다.


-여보세요.

“주희야.”

-...왜


목소리를 들으니 이거는 일주일은 갈 것 같았다. 백현의 부모님의 도움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준면은 함께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은 절대 아니었으나, 준면은 그 분들의 제안을 거절할만한 성품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 아비 혼자 백현의 가족여행에 끼게 둘 수는 없었다. 자기를 버리고 여행을 가니 재밌냐며 주희는 퉁명스럽게 묻는다. 여행 가는 것을 한참 전에 미리 말해줬는데도 왜 이해를 못해주는 건지. 답답함에 한숨을 쉬니 준면의 한숨소리가 기폭제가 되었는지 삐져있던 여친이 섭섭함을 토로했다.


“휴, 오빠가 미리 말했었잖아. 주희야.”

-내가 보자고 할 때는 시간 안 된다고 계속 그러다가 겨우 여유 있어져서 얼굴 좀 보나 싶었는데 바로 여행 가는 게 말이 돼?

“오빠 시험 기간이었잖아. 그리고 동생 졸업기념 여행이라 빠지기 좀 그렇다고 했잖아.”


준면이 머리를 연신 쓸어 올렸다. 답답함을 풀지 못해 하는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전화도 한통 안한 거 알아?

“도착해서 전화 달랬잖아.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화건 거야, 주희야.”

-...오빤 그게 문제야.

“...또 왜.”

-또? 또라고 했어?


기분을 풀어주고자 걸은 전화였는데 결국 싸우고 말았다. 답답하네. 속이 답답하니, 담배가 생각난다. 많이 피우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유달리 싸움이 잦아진 터라 담배가 늘었다. 한 갑이면 일주일 조금 넘게 피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한 갑을 사면 삼일을 못가서 동이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준면이 품안에서 담배를 꺼내 익숙하게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면서 한 모금 빨아들이니 조금 살 거 같다.


“준면아, 어디 있니?”


뭐 할 일이 생긴 건지 멀리서 그의 고모가 그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성인이니 담배를 피워도 상관없기는 하지만 아직도 소녀 같은 제 고모가 보면 괜히 속상해할 거 같아서 준면은 얼른 바닥에 담배를 대충 비벼껐다. 대충 담배 연기를 손으로 날리고 옷을 두 어번 털었다. 다시 한 번 그의 고모가 그를 불렀다.


“준면아?”

“고모, 저 여기 있어요!”

“여기 와서 일 좀 거들어줄래?”

“네, 갈게요!”


막상 가보니 제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밖에서 구워 먹는 고기 맛은 최고였다. 사업 때문에 옆에 잘 있어주지 못하는 부모님까지 계시고, 제가 잘 따르는 준면까지 있으니 백현도 평소보다 더 밥을 잘 먹었다. 양 볼이 불룩한 게 꼭 도토리먹는 다람쥐 같다. 백현을 보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열심히 먹던 백현이 갑자기 웃는 사람들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갸우뚱한다.


“왜 구러세여?”

“아니야, 우리 백현이 맛있어?”

“응! 엄마 나 고기 더 죠!”

“잘 먹으니 보기 좋네. 그래도 천천히 먹어. 체해.”

“네!”

“우리 준면이도 더 먹어.”


백현을 보고 다정스레 웃어주던 백현의 어머니가 준면 앞 그릇에도 고기를 잔뜩 올려놨다. 고모가 제 엄마이길 바랐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핏덩이 준면을 버리고 떠난 제 친엄마 보다는. 준면은 눈물이 날 거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고기를 제 입에 우겨넣었다.


“어휴, 준면이도 잘 먹네. 맛있어? 그래도 천천히 먹어.”

“네, 고모.”

“니 오빠 더 먹으란 소리는 안하냐? 난 주둥이야, 어?”


준면의 아버지가 볼멘소리를 했다. 준면이 부끄러움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 아버지는 여행 경비를 한 푼도 대지 않았다. 내려고 했어도, 고모 내외가 말리긴 했겠지만 당연히 넉넉한 제 고모가 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태도가 준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빠라는 이유로 항상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고모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억지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와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준면은 제가 부러 더 나서서 일을 했다. 뭐라고 한다고 해서 들을 위인이 아니었다. 감히 아버지에게 일을 시킨다며 역정을 내면 역정을 냈겠지.


“어머, 내 정신 좀 봐. 애들 챙기느라. 오빠 섭섭했어? 오빠도 더 먹어요.”

“옆구리 찔러서 절 받기는 됐다.”


백현의 엄마가 자신의 오빠 앞에 고기 그릇을 가져다 놓으니 준면의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밀어버렸다. 고모가 민망하게 웃는 것을 보고 준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고모. 제 고모가 아니었다면 사람답게 살 수도 없었을 제 아버지인데. 준면 옆에 앉아있던 고모부가 준면의 속을 안다는 듯이 준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더 먹어, 준면아.”

“네, 감사해요. 고모부.”


목이 막힌다. 담배가 절실하다.


“저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여자친구?”

“하하, 네.”

“어머, 정말? 준면이가 여자친구가 있어? 다음에 집에 데리고 와! 고모가 맛있는 거 해줄게! 우리 준면이가 벌써 커서 연애도 하고 그러네. 용돈도 올려줘야겠어!”


신나서 얘기하는 고모를 보니 더 다음이 무겁다. 너무 좋으신 분이라 마음이 더 무겁다. 어색하게 웃고 일어섰다. 핸드폰을 들고 아까 담배를 폈던 곳으로 왔다.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들고 오기는 했는데 전화, 할까. 하지만 전화를 하면 스트레스만 더 쌓일 것이 뻔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준면은 그냥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씨발.”












줄담배를 피워대다가 모두들 저를 찾을 거 같아서 대충 털고 일어섰다. 바비큐하던 곳으로 가보니 벌써 정리가 끝나있었다.


“어? 정리 벌써 하셨어요?”

“웬일로 오빠가 도와주지 뭐니? 숯불도 자기가 치운다고 가져가더라~”


고모가 소곤소곤 말하며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의아하긴 했지만 좋아하는 고모를 보니 이유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어른들끼리 한잔 더 한다는 말에 준면은 백현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형아랑, 엄마아빠랑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아빠는?”


피식 웃으며 물어보니 백현이 우물쭈물거리며 준면의 눈치를 본다. 백현이 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자식인 저도 정이 떨어지는데 어린 백현의 눈에는 오죽할까.


“삼촌두우...”


마지못해 대답을 내놓는다. 착한 아이는 삼촌도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 준면이 백현의 머리를 잔뜩 헝클여 놓는다.


“우리 아빠는 몰래 떼어놓고 다음에 또 오자. 고모랑, 고모부랑, 백현이랑 형만.”

“응, 헤헤.”


그제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TV는 아직 연결이 안 되어 있는 터라 제 핸드폰을 쥐어줬더니 열심히 핸드폰 게임을 하던 백현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또래 보다 작은 백현을 안아들어 침대에 눕히고 토닥토닥 거리니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직도 애기네, 애기. 이래서 중학교 가서 잘 생활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백현을 내려다보던 준면이 깊게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방을 빠져나와 맞은편에 있는 제 방으로 향했다.


“아, 피곤하다.”


씻고 나오니 몸이 더 노곤했다. 미안하지만, 여자친구는 내일 풀어주면 되겠지. 침대에 누운 준면도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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