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 앞에 흐르는 강에 자주 데이트를 갔다. 그곳은 사람이 잘 오지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개발인지 무엇인지 하는 걸로 새까맣게 변해버린 강에 수만의 물고기가 떠오르고 악취가 나기 시작한 후로는 단 한 명도 굳이 찾아서 그 강을 나들이하지는 않았다.

 

현재 강은 복원중에 있다. 과제로 학교 근처를 탐방하던 희가 처음 발견했다. 새까만 색은 녹색으로 보일정도로 색이 빠졌고 물고기는 없지만 물뱀 몇 마리가 들어가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강이 살아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 자연에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죽음이란 그저 순환의 일종이다. 이 강처럼 결국은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그 강을 사랑했고 희도 마찬가지였다. 길도 없는 그곳의 사람키만한 갈대들을 헤쳐가며 물 앞에 당도할 때의 그 기분을 공유할 때의 희는 밝고 아름다웠다. 자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집을 사면 이런 강이 보이는 자연 속에서 살자고. 그렇게 약속했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도 오늘 수업있는 거 알잖아.”

“일단 쉬어. 응? 제발. 우리 이렇게 둘이만 있자.”

“여울아, 그래도-”

“나가면 안된다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희는 입을 다물었다. 굳은 입매는 하나의 신호였다. 나는 네 감정에 휩쓸릴 생각이 없으니 너도 그래야한다는. 하지만 그는 진정할 수 없었다. 지금 나가면 네가 너를 죽일 거라는 말을 그는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무슨 의미냐는 듯 그를 걱정스레 쳐다보기까지 했다. 그는 지나치게 평온해 보였다. 여울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희는 그 날의 기억이 없다. 정확히는 교내를 걸었다는 건 기억하지만 화분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고 했다. 수업 시간은 이미 지난터라 자신이 블랙아웃이라도 겪었나 싶었다고, 참 기이한 경험이라 말하는 그는 그 모든 일에 별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희는 오히려 출석 점수를 걱정했고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여울은 희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서로 기분만 상한 채 거리를 두고 걸어갔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희’는 보이지 않았다. 여울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며 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해하자는 뜻이었다. 처음엔 그의 손짓을 피하던 희도 결국은 그 손을 잡아주었다. 여울은 희에게 억지로 씌운 캡모자를 푹 눌러준 뒤 그에게 바짝 붙어 움직였다. 모자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쓴 희는 무척 수상해보였으나, 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따뜻한 날씨에도 옷을 두겹 입힌 보람이 있었다. 그는 혼자 뿌듯해했다.

 

희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옷 한겹을 벗어버리고 마스크도 풀었다. 나를 질식시켜 죽이고 싶냐는 날카로운 말은 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 질식해 죽는 것에서 너를 지키는 거라는 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선글라스도 벗으려는 그를 말렸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는 미친 인간이 어디있냐는 희의 말에 그는 지고 말았다. 휘어짐이 심한 안경이라도 씌웠어야 했는데. 여울은 후회했다.

 

오랜만에 본 동기들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들은 희를 보자 의문과 공포에 가득찬 얼굴로 나를 보았다. 희는 그 표정을 못 읽는지 반갑게 동기들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 얼굴들을 무시했다. 그런 것까지 설명해줄 여유가 되지 못했고, 하려해도 그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해야 했다. 강의실은 붐볐다. 교수님이 출근하다 차에 치여서 수업이 두시간 늦어졌을 때보다 부산스러워 보였다.

 

 

인파 가장 안쪽에 있던 현재가 뒤돌아보았다. 그는 자신과 희를 보자마자 말했다.

 

“시발, ‘그건’ 또 뭐야.” 그의 혼란은 떨리는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알 수 있었다.

 

인파에 둘러싸인 게 누구인지 볼 수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는 환히 웃고 있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학교에 와있었다. 나는 당장 희의 손을 잡고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동기들의 외침은 무시했다.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났다.

 

그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뛰쳐나와 달렸다.

 

 

현재는 강의실에 들어오며 핸드폰 전원을 껐다. 여울은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침부터는 아예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할 수 있다면 그도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싸그리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울은 희의 ‘연인’이었고 그걸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강의실은 유난히 부산스럽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몰려있었다. 그는 그게 누구의 자리인지 알았다. 동기 한 명이 그를 보곤 사색이 되었다. 강의실에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다. 여울의 옆자리인 희의 자리에는 누군가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그 자리에 지금 희가 앉아있었다. 그건 ‘희’였다. 아무리 닮은 사람이더라도 분위기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는 몇일전 장례식을 몇시간 전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희의 어머니의 비명이 아직도 이명처럼 남아있었다.

 

“..희?”

 

‘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는 반가움보다 빠르게 두려움을 마주했다. 희는 죽었다. 그는 그걸 알고 있다. 그러나 희가 살아있다. 바로 그의 눈앞에. 인지의 부조화는 메스꺼웠고,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공포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쟤 죽은 ‘걔’ 맞지? 너 장례식도 다녀왔다며, 지금 뭐야? 몰래카메라야?” 동기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에 분노가 밀려왔다. 희는 죽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니 이건 희가 아니다. 이토록 간단한 논리인데도 그의 모든 감각은 그게 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성의 편을 들었다. 그래야 했다. 그는 ‘희’의 어깨를 잡고 험상궂게 찡그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뭐야, 뭔데 이딴 장난질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 아님 그 얼굴 다시는 이런 데 못쓰게 만들어줄테니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비웃는 것처럼 입꼬리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는 희에게서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처럼 보였고 희처럼 느껴졌다. ‘희’에게선 이상한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 기분 나쁜 체취에도 ‘희’는 희같았다. 그는 이 ‘미지의 무언가’를 어떻게든 빨리 쫒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늦었다. 이걸 보아서는 안되는 사람이 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를 보자, 어쩌면 이걸 보아선 안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였나 생각했다. 여울은 희와 함께 왔다. 그는 왜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더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는 앉아있는 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표정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뭐야, 뭔데. 왜 그래? 설명 좀 해봐!”

 

희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하얀 손목이 벌겋게 된 걸 보고 주춤 뒤로 물러섰다. 설명은 그가 듣고 싶었다.

 

네 도플갱어같은 게 너를 이미 한 번 죽였고, 분명 또 죽이려 왔다고. 그는 말했다. 말하면서도 터무니없는 헛소리같았다. 그의 표정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미친 사람 보듯 했다. 정작 미친 사람은 그인데도 말이다. 애초에 그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나는 모든 책임을 그에게 넘겼다. 모두 그의 탓이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화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모든 압도적인 감정에 그는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정말 미친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먼저 백기를 든 쪽은 너다. 너는 피곤한 표정으로 나를 이끌어 근처 벤치에 앉혔다.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소리 하나 없이 묵음으로 입모양만 스쳐갔지만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우리의 싸움은 고요했고 무음은 아무런 진전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참다못한 희가 일어나 가버렸다. 그는 그를 잡아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었다. 방금 그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희를 그냥 혼자 보낸 거야? 이러다가 그가 다시-

 

손을 들어 뺨을 내리쳤다. 얼얼한 감각이 정신을 확 깨웠다. 그러나 순간의 신경전달은 그에게 별다른 동기를 주지 못했다. 그는 일어나야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온몸은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는 발가락을 꿈틀거릴 수 있었고 팔을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모든 감각이 깨어있는 채로 잠들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눈만 깜박였다. 가위에 눌리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분명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의 눈 앞으로 ‘희’가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었다. 희가 입은 옷과 같은 차림으로 같은 발걸음 속도로 ‘희’는 희를 뒤따라 갔다. 여울은 피가 식는 기분이란 게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눈은 ‘희’를 간절히 쫓았다. 눈빛만으로는 그를 멈출 수 없었다. ‘희’의 모습조차 사라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못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분명 그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울은 희를 죽게 내버려 둔 것인가? 그는 답할 수 없었다.

 

혼자 멍하니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왔다. 여울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럴 수 있었다. 누군가는 현재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야, 우리 대화 좀 해. 네가 죽어도 비대면은 싫다니까 대면으로.”

 

현재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 화면엔 그가 보낸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어제 확인한 수의 족히 배는 되어보였다. 현재는 좋은 동기였고 소중한 친구였다. 그가 힘들 때 그의 곁에 있어주었고 희와 그의 관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현재가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뒷걸음질쳤다.

 

이럴 상황이 아니었다. 집에 가야 했다. 웃는 희가 향했을 그곳에 분명 희가 있을 것이다.

 

현재는 대학에 들어와 처음 사귄 친구다. 그는 그와 같은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취미도 비슷해 금방 가까워졌다. 희는 현재의 친구였다. 다른 무리에 껴있던 우리 사이에 유일한 연결고리가 현재였다. 희는 조용하고 늘 차분했고 여울은 그의 앞에선 경박한 광대가 되었다. 현재는 그들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 그는 우리가 자기 빼고 어울리는 줄 알고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와의 감정과 이 감정은 엄연히 달랐음으로. 현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나치게 가깝게 몸을 붙였다. 이상한 삼각관계에서 그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어른스럽게 감정을 언어로 푸는 사람이기도 했다. 현재는 우리의 관계를 빠르게 정의했다. 그리고 존중해주었다. 서운함을 표현하는 건 여전했다.

 

현재는 장례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울의 옆을 지켰다. 울지 않는 그를 대신해 울었고, 희의 가족과 부둥켜안았다. 여울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그는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여울이 받지 않았을 뿐이다. 여울은 그를 외면했다. 현재의 말이, 행동이, 표정이 그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여울은 다시 등을 돌려 현재를 떠난다.

 

희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커다랗게 뜬 눈에는 안광이 없었다. 그의 목과 침대 헤드를 잇는 케이블 줄과 목에 그어진 보라색 자국이 선명했다. 차마 그의 몸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그는 옆자리에 몸을 누인다. 몸은 따뜻하고 나무처럼 딱딱했다. 희의 얼굴을 가진 나무토막 옆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다시 눈을 떴다. 희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있었다. 목에는 줄을 감은 흔적조차 없었고 그의 눈동자는 또렷하게 그를 담고 있었다. 여울은 웃으며 그에게 안겼다. 희의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선명했다.

 

희는 살아돌아온다. 여울은 안심했다. 그는 공포를 그의 마음 안쪽의 구석으로 집어넣었다. 얼굴을 구기듯이 웃었다. 희는 살아돌아온다. 언제까지? 여울은 그의 사전에서 물음표를 지우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날 희는 길을 걷다 차에 치어 죽었다.

 

다음날 희는 5층 건물 창문으로 떨어져 죽었다.

 

다음날 희는 세면대에 얼굴을 박고 익사했다.

 

다음날 희는 골목에서 벽돌에 맞아죽었다.

 

다음날 희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었다.

 

다음날 희는 개한테 목이 물려 죽었다.

 

다음날 희는 불에 녹아 죽었다.

 

다음날 희는 냉동실에서 얼어 죽었다.

 

다음날 희는 길을 걷다 어느 순간 죽었다.

 

다음날 희는-

 

다음날 ‘희’는 희를 찔러 죽이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희’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여울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했다. 안타까울 정도로 그는 눈치가 빨랐다. 그는 입을 틀어막으며 골목을 뛰쳐나갔다. ‘희’는 뛰어가는 여울을 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니, 소파에 앉은 희가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그가 마지막이다.

 

다음날부터 여울은 한시도 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따라들어갔다. 희는 처음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상한 사람은 그였고 끝없이 두려워하는 것도 그였다. 희는 그런 그를 걱정했고 억지로 밖에 내보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희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아니었기에, 제가 소리지를 때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왜 너는 이해하지 못하냐고, 왜 그렇게 정상인 척 구냐고. 그는 소리를 질렀고 희는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싸움은 대화를 잃었고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척했다. 상황은 정확히 ‘예전’과 똑같았다. 나는 너를 하루에도 몇 번씩 내몰고 비난했고, 너는 나를 증오하면서도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아니, 너는 그래야 했다.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이곳이 그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불청객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틀렸다. 불청객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다. 그는 그를 초대했다. 고로 이것은 모두 그의 잘못이다.

 

너는 학교 앞 강에 몸을 던져 익사했다. 물에 떠오른 너를 가장 처음 발견한 건 나였다. 당연했다. 너를 찾는 건 나 혼자뿐이었으니.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우리 말고 누가 그 강에 가겠는가. 길도 꽃도 없는 황량한 녹색 물웅덩이에 관심 가질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강을 사랑했다. 우리는 둘다 부모에게도 서로를 소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음으로.

 

너는 그 더러운 물에 빠져 죽었다. 그래. 너는 죽었다.

 

너는 혐오스럽게 사랑스러웠고, 끔찍할정도로 특별했다. 그리고 죽었다.

 

나는 문득 내 옆에 앉아있는 네가 시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피로 펌프질할 뿐인 썩어가는 고깃덩어리였다. 나는 이미 알아버린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내가 알아버린 걸 너도 알아버렸다. ‘희’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수십 명의 희를 죽인 ‘희’가 바로 마지막 희다.

 

“네가 미워.” 나는 말했다. 눈물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나도 사랑해.” 희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다음날.

희는 방안에서 죽어있었다. 목을 매단 채로.

 

희가 죽었다. 나의 연인이 죽었다. 왜. 그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너의 죽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를 떨쳐낼 수 없었다. 너는 떠났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너가 사라지고나서도. 너를 다시 부르고나서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아직 살아있었고 움직일 수 있었다. 나뒹구는 의자를 세우고 올라가 희의 몸을 내린다. 축 늘어져 무겁고 한겨울의 아스팔트마냥 차갑다. 그가 사랑했다고 생각한 그 온기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그걸 썩을 때까지 놓아주지 못한 건 그의 책임이다.

 

부패의 냄새는 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육체가 녹아내려가고 뼈가 풍화될 때까지. 수많은 구더기와 파리, 벌레며 그 파티에 초대되지 않은 경찰들까지 왔다 갈 때까지. 그는 동네에서 한순간에 죽은 동물을 수집하는 미친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가 ‘수집’한 동물은 엄연히 따지자면 하나뿐인데도. 그는 자조하며 희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사색이 된 채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하얀 뼈에서는 너의 향이 나지 않았다. 그 뼈를 곱게 갈아내니 너는 한 웅큼의 고운 가루가 되었다. 나는 그걸 네가 좋아하던 학교 앞 강에 뿌려주었다. 바다에는 뿌리고 싶지 않았다. 바다는 너무 넓어서, 내가 너를 만나고 싶어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는 아주 천천히 보기에는 정상적인 생의 궤도로 돌아왔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나날은 바쁘고 지치며 생각의 틈이 없었다. 그는 좋은 친구를 다수 잃었고, 다른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다. 현재에게서 온 문자에 답장도 했다. 긴 문장은 아니었지만, 그의 끝없는 전화를 막을 정도는 되었다. 그들은 종종 만났다. 현재는 그에게 상담을 권했다. 그는 그 조언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그는 무뚝뚝한 표정의 상담사를 만나 그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나열했다. 그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아무 상관 없는 신문의 기사를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그대로 입으로 내뱉었다. 상담사는 상담기간을 2개월에서 늘릴 것을 권했다. 그는 이유를 물었다. 상담사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찾아가 본다. 건물은 조금 더 낡았고 계절을 입은 나무에서 꽃이 떨어지고 있다. 그는 강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여전히 강 주변은 사람 하나 없었다. 그는 흙바닥에 나뒹구는 폴리스 라인을 찾아낸다. 경찰이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가버린 모양이었다. 노란 선을 넘고 그는 강물에 가까이 다가간다. 짙은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에 그의 얼굴이 비춘다. 창백하고 무표정한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간다. 새까만 눈동자에 그의 눈을 들이밀었다. 균형은 완전히 기울어 그는 그대로 낙하했다.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그를 안아주었다. 그 사이로 그를 잡는 선명한 감촉은 분명 손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흐린 물 속에서 희가 환히 웃고 있었다. 강바닥에는 수많은 ‘희’들이 손을 뻗어대고 있다. 여울은 그 모든 손을 잡고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

 

빛이 들지 않는 새까만 한기 속에서 우리는 입을 맞춘다.

 

 

현재는 자신이 검정색 양복을 사두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할 뻔했다. 그는 양복을 대여해야 했던 동기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양복은 이 절망적인 분위기에 맞지 않는 밝은색이었다. 절하는 방법을 외우는 건 그에게 득일까 아니면 실일까. 감정적으로는 실이 맞았다. 고개를 드니 영정 사진에 네가 환히 웃고 있다. 그는 관 앞에 놓인 영정 사진의 나머지 부분을 알고 있다. 그 사진을 찍어준 게 그였다. 아마 당분간 남의 사진을 못 찍어줄 것같다.

 

 너의 남은 친구는 슬프게도 내가 유일했나 보다. 경찰은 그에게 찾아와 간단한 질문만 짧게 하고 가버렸다. 너는 대체 왜 집안에 죽은 물고기를 잔뜩 풀어놓은 거야? 주민들이 물고기가 부패하는 냄새를 못 참고 신고했잖아. 정작 물고기는 두고 네가 물에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완전히 죽어서 썩은내밖에 나지 않는 그 강에 말이다.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겠지.

 

네 가족의 비명섞인 울음을 배경으로 술을 따라마신다. 맛이 참 끔찍하다.

 


아래는 짧은 후기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260 공백 제외
1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