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헌이와 칭구들


“제헌아?”

“예, 선배님.”

“학교 끝나고 당구 치러 가자. 너 바빠?”


야, 바쁘냐고 먼저 물어봐야지. 그렇게 말하면 쟤가 참도 바쁘다고 하겠다. 너 진짜 꼰대구나? 야, 변여원 원래 꼰대잖아. 여원의 말 몇 마디에 그의 주변에 있던 삼학년들은 건수라도 잡았다는 듯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여원은 그런 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 앞에 뒷짐 지고 선 제헌을 향해 물었다.


“바쁘니?”

“안 바쁩니다.”

“그렇대.”


제헌의 답을 들은 여원이 제 주위의 친구들을 훑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튼 꼰대 새끼. 은성이 혀를 차건 말건 여원은 예의 그 태연한 낯을 잃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따 중앙 현관에서 봐.”

“예, 선배님.”


용건이 다 끝난 걸 확인한 재희가 제 친구들을 데리고 삼학년 교실로 향했다. 제헌은 제 선배들의 등 뒤에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


“아니, 이제헌 개빠져가지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은성이 불만을 토로하기 무섭게 벌써 모인 삼학년들의 뒤편에서 공손한 음성이 들렸다. 


“...들었어?”

“아닙니다.”

“들었네.”

“야, 백퍼 들음. 존나 크게 떠들었잖아, 너.”


분명 제헌은 아니라고 했건만, 그 옆에 서있던 지수와 하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학교 현관이 얼마나 울리는데 그게 안 들릴 리가 있냐고. 


“...아니, 야, 나 방금 투덜대기 시작했는데 타이밍 진짜…”

“그 삼 초 못 기다려서 니는 꼰대 된 거임.”

“제헌아, 우린 안 그랬다. 저 새끼만 투덜댔어.”

“아, 어쩔티비야 개새끼들아. 가자, 이제헌.”

“예, 선배님.”


와, 어쩔티비래. 존나 지가 잼민이야 뭐야. 정신연령은 잼민이지. 우쭈쭈, 우리 은성이~ 삼학년들은 은성의 말 한 마디에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들처럼 달려들었다. 은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헌의 팔을 잡아끌고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놀러가는 마당에 무슨 존댓말이야. 반말해.”

“응.”


은성은 제헌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중앙현관을 나섰다. 그제서야 그때까지도 은성을 놀리기에 바쁘던 삼학년들이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


“보자, 그럼 나랑 제헌이랑 은성이, 세인이랑 고운이까지 한 팀이네.”

“아니, 아, 아!”

“아싸, 오늘 짜장면 값 굳었다.”


학교 근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당구장에 도착한 이들은 곧장 팀부터 나눴다. 그리고 지수가 결정된 팀을 읊던 그 순간, 곧장 두 팀의 희비가 갈렸다. 아직 큐대는 잡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제헌아. 왜 주먹 냈어? 가위 내고 싶지 않았어?”

“이제헌아아아..” 


차례로 다온과 하진이 제헌을 향해 원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제헌은 그런 둘을 보며 낮게 웃더니 턱짓으로 재희를 가리켰다.


“재희 잘하잖아.”

“그렇긴 한데…”


제헌의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문제는,


“야, 나 너 이기는 게 소원이야.”


재희는 일대일로 붙어도, 오늘처럼 팀을 짜서 제헌과 붙어도 단 한 번도 제헌을 이긴 적이 없다는 거였다.


“오늘은 다를 수도 있지.”

“져주게?”

“아니.”


재희도 제헌도 재밌자고 하는 게임에 승부욕을 불태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생각도 없었다. 

아, 진짜 얄밉다. 이 공간에 있는 그 누구보다 태연한 낯을 한 제헌을 밉지 않게 흘긴 하진이 큐대가 꽂혀있는 홀더로 향했다. 


“제헌아, 잘 부탁해.”


고운이 제헌에게 싱긋 웃으며 건넨 말에 제헌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야, 걍 기권해라. 개못하네.”

“...아, 이제헌…”


은성의 깐족거림에도 정민은 아무말도 못하고 제헌의 이름만 불렀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있던 제헌이 천천히 일어나 섰다. 재희를 바라보고 선 제헌은 늘 그랬듯 등 뒤로 손을 맞잡고 바른 자세를 한 채였다.


“제헌아.”

“예, 선배님.”

“이게 무슨 상황이지?”


무슨 상황이긴. 서재희 개발린 상황이지. 소파에 다리 꼬고 앉아서 핸드폰 하는 데에만 열중이던 세인이 제헌 대신 재희의 물음에 답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재희는 잘했다. 다른 팀원들이 문제였지.

한편, 재희는 세인이 저를 약올리든 말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제 앞에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자세로 서있는 후배 이제헌에게만 향했다.


“제헌아. 나 기분이 좀 별로네.”

“엎드립니까?”

“응.”


이제헌 아직도 서있었냐? 어떤 후배가 선배 기분 조져놓고 두 발로 서있냐. 세상 많이 좋아졌네. 나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이제헌이 싸가지가 좀 없지. 재희의 기분이 별로라는 그 한 마디에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가 말하는지도 모를 만큼 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졌다. 제헌은 저를 질타하는 선배들에도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땅에 손을 대고 다리를 뒤로 뻗었다. 


“야, 너네 존나 꼰대같아.”

“제헌이한테 왜 그래. ” 


은성과 고운이 제 친구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타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희는 큐대를 쥔 채로 제헌의 옆으로 향했다. 둘을 둘러싼 삼학년들은 질릴 정도로 익숙한 구도에 고개를 젓거나 혀를 차거나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방금까지도 제헌의 편을 들어주던 은성과 고운도 이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둘이 저러고 있는 건 언제 봐도 재밌는 구경거리니까.


“제헌아.”

“예, 선배님.”

“선배 이겨먹으니까 좋아?”


제헌이 무언가 고민하는 듯 잠시간 답이 없자 재희가 큐대를 들어 제헌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툭툭 쳤다.


“좋아?”

“아닙니다.”


그 위협적인 움직임 덕분인지 이번엔 제헌이 늦지 않게 재희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재희가 생각하며 큐대 끝을 바닥에 짚고선 이를 지지대 삼아 쪼그려 앉았다. 


“잘하자, 제헌아. 응?”

“예, 알겠습니다.”

“일어나.”

“감사합니다.”


제헌이 먼저 몸을 일으킨 재희를 따라 몸을 세웠다. 그 난리를 치고도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한 제헌이 재희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근데 짜장면은 선배님이 사셔야합니다.”

“응, 넌 곱빼기 먹어.”

“예, 감사합니다.”


제헌의 손을 가져가 직접 털어주던 재희가 제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는 제헌을 옆에서 가만히 보던 하진이 제헌을 불렀다. 


“야, 제헌아. 시키고 한 판 더 하자. 당구비 걸고.”

“응.”

“제헌아 나 짜장면.”

“탕수육도.”

“니  돈 많냐?”

“뭐 어때. 쟤네가 내는데.”


삼학년들이 탕수육을 먹네 마네, 곱빼기를 시키네 마네 하는 사이 제헌은 사장님 없는 카운터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와 메뉴를 취합해 적었다. 분명 지금 삼학년들과 제헌은 친구지만, 삼학년들도, 제헌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수행했다. 하여간, 누가 꼰대들 아니랄까봐. 



2. 현우는 똑땅해!


“라온이 이리와.”

“네? 네!”


남고생들 답게 한성외고 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한 켠에 굴러다니는 공을 주워다가 축구 시합을 하곤 했다. 오늘도 학년을 막론하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 공을 차며 친목을 다졌다. 수업시간 50분은 그렇게 안가면서 공만 차면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간다. 라온이 아쉬움을 애써 억누르며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는데 저 멀리서 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원은 시꺼먼 후배들이 조폭마냥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든말든 라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난 안 부르셨는데.”


라온은 여원의 부름에 재빨리 실내화에 발을 꿰는 동시에 이미 신발을 다 갈아신은 현우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어딘가 뾰루퉁해보이는 현우의 말투에도 라온은 개의치 않고 손에 더욱 힘을 주어 현우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실 현우는 이 정도 힘에 안 끌려가려면 충분히 안 끌려갈 수도 있었지만, 끙끙대는 라온이 귀여워서 그냥 끌려가주기로 했다. 


“넌 인사 안하니.”


현우 평소엔 인사 잘하는데… 선배님 화 나셨을까..? 정작 여원의 질책을 들은 현우는 안색의 변화조차 없건만, 외려 안절부절 못하는 건 라온이었다. 


“죄송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별로 안 죄송해보이는데… 현우 삐졌나..? 라온은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둘 사이에서 열심히 눈치 보기에 바빴다. 


“라온이 손.”

“넵.”


여원은 현우가 괜한 객기를 부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새끼가 애새끼짓 하는 걸 혼내서 뭐하나. 지랄 좀 한다고 애새끼가 쑥 크는 것도 아니고. 제 용건에만 집중하기로 한 여원은 라온이 양손을 모아 공손히 내민 걸 보고 픽하고 웃더니 마이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두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어, 어!”

“너 이거 좋아한다며.”

“네, 맞아요!”


여원이 제 손 위에 무언가를 한 움큼 쥐여준 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자 라온이 슬쩍 제 손 위를 살폈다. 어, 이거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인데! 여전히 팔을 내민 상태 그대로 아이처럼 좋아하는 라온에 여원이 작게 웃었다.  


“얼른 주머니에 넣어. 니 옆에 애가 뺏어간다.”

“그게 무슨…”


여태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던 현우가 처음으로 억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라온도 현우가 뺏어가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괜히 현우의 눈치를 한 번 슥 보고선 재빨리 제 체육복 바지 주머니에 초콜릿들을 집어넣었다. 


“나 간다. 졸지 말고 수업 잘 들어.”

“네! 안녕히 가세요!”

“가세요.”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라온과 달리 현우는 퉁명한 말투로 인사하며 고개만 까딱거렸다. 여원은 허리 숙인 라온의 머리만 두어번 쓰다듬어준 뒤 자리를 떴다. 


-


“다녀왔습니다.”

“유치원 잘 갔다왔어?”

“...네?”


오후 수업동안 현우는 안절부절 못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나니, 점심시간에 자기가 한 짓이 얼마나 불손했는지 뒤늦게 자각이 된 탓이었다. 얼마나 초조했는지 원래는 잘 떨지도 않는 다리를 덜덜 떨어대다가 평소에는 세상이 망해도 모를 것처럼 자던 짝꿍에게 자다가 지진난 줄 알았다면서 한 소리 듣기까지 했다. 그래서 부러 공손하게 인사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건만 여원은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그 의중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현우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기숙사 현관에 우뚝 선 채로 양손을 등 뒤로 가져가 잡았다. 


“아까 하는 짓이 잘 쳐줘봐야 다섯 살짜리 같길래.”

“...죄송합니다.”


여원은 현우의 사죄에 답하는 대신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현우의 앞으로 향했다. 여원의 움직임은 늘상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왠지 모르게 위압적이어서 현우는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손.”

“...네.”


순간 반문할 뻔한 걸 애써 참은 현우가 아까 라온이 그랬듯이 두 손을 딱 붙여 여원의 앞에 내밀었다. 


“아, 아! 아, 선배, 님!”


여원은 그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현우의 두 손목을 잡아채고선 그 위에 제 손바닥을 떨어뜨렸다. 매도 아니고 고작 손바닥으로 맞는 건데 예상치 못한 매여서인지, 아니면 정말 여원의 손이 매운 건지 몰라도 참을 수 없이 따끔거리는 게 꽤나 아팠다. 


“애니까 애처럼 혼나야지. 니가 지금 혼날 게 한두 개야?”

“죄송, 흐! 죄송, 해요…”


여원은 말을 이어가면서도 손매를 멈추지 않았다. 아, 진짜 아픈데… 라온이는 손 내밀라고 해놓고 라온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주셨으면서 난 혼내시기만 하고… 진짜… 맞고 있는 손바닥이 안 아픈 건 아니지만 마음 한 켠이 더 쓰렸다. 왜 나한테만… 선배님 진짜 나 미워하시는 거 아니야..? 이럴 거면 그러시질 말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어서.


“...아파, 요. 잘못했어요.” 


한참을 매섭게 혼내던 여원은 현우가 애처롭게 빌자 그제야 손을 내렸다. 분명 손으로 맞았는데 꽤 많이 맞아서 그런지 양손바닥이 벌갰다. 그런 제 손을 잠시 눈에 담던 현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도 팔은 여전히 꼿꼿이 든 채였다. 여원이 내리라고 안했으니까. 


“팔 내리고 쉬어. 나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점심 시간에 그 호기롭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거 좀 혼났다고 풀이 죽은 후배에 여원이 신발을 신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지나쳐 방 밖으로 나가는 여원의 뒷모습에 고개 숙여 인사한 현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자?”

“아니요…”


여원이 밖으로 나간지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현우도 당연히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평소처럼 몸을 일으켜 여원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저 교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엎드려 양팔에 고개를 묻고만 있을 뿐이었다. 딱히 반항하거나 대들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저를 홀대하는 선배가 아주아주아주 쬐끔 미워서 고개를 들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너 울어?”


차오르는 서러움에 눈물이 팡하고 터져버려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여원은 그 모습이 기가 찼다. 혼내면 뭘 얼마나 혼냈다고 저렇게 서러운 티를 팍팍 내는 건지. 현우가 고작 손바닥 몇 대 맞았다고 우는 애가 아니라는 것도, 이렇게 서럽게 우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렇다고 라온이한테 하듯 곧장 안아서 달래주고 싶진 않았다. 우리 애새끼는 이렇게 울어야 귀엽거든. 

여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현우의 울음이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 우냐는 물음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우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 여원이 취할 행동을 알고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감히 여원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게 아니다. 현우는 여원 앞에서 자존심 따위 내다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늘 있었던 일련의 상황들이 안 속상하고 안 서러운 건 아니라서 그 얄미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날 누가 울렸는데. 


“안, 울, 안울, 어요.”


여원은 울음 때문에 숨이 차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당당하게 거짓을 고하는 제 후배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래? 안 우는데 선배 온 걸 알면서도 침대에 누워있어? 내가 그렇게 가르쳤니? 더 혼나야 정신 차릴래?”

“…흐끅,”


예상치 못한 여원의 질책에 놀란 현우가 이제 딸꾹질까지 하며 서럽게도 울었다. 여원은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차며 현우의 고개 밑에 깔린 팔을 잡아 일으켰다. 현우는 반항 한 번 없이 여원이 이끄는 대로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도, 코도, 뺨도 안 붉은 곳이 없었다. 여원이 그 처량한 모습을 죄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손.”

“…”


내 손? 또 왜? 설마 선배님 오셨는데도 엎드려 있었던 거 혼내시려고..? 매로 맞는 것만큼 아픈 건 아니지만 서럽다고! 속상해! 차마 여원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포효하듯 내지른 현우가 천천히 제 두 손을 내밀었다. 아까처럼 가지런히 모아서.


“자.”


또 맞을 줄 알고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오늘 들었던 것 중 가장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실 라온이 부르던 목소리만 못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현우가 감격에 젖어 슬며시 눈을 떴다.


“어, 이거,”

“얼른 받아, 이 못난 새끼야.”


아까 여원이 라온에게 준 초콜릿이다. 심지어 라온이한테 준 것보다 두 개 더 많은 다섯 개. 여원이 푹 내쉰 한숨과 타박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현우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생각을 못했다.


“저 이거 사주시려고 나갔다오신 거예요? 진짜요?”

“아, 그렇다고. 빨리 받아.”


말 한 마디 예쁘게 해주지 않는 선배에도 현우는 좋다고 실실거리며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또 라온이 질투해라. 애새끼마냥.”

“에이, 제가 언제 질투했다고 그러세요.”


언제긴. 매일하지. 365일, 24시간 내내. 이라온이랑 내가 얘기만 하고 있으면 와서 훼방 놓는 게 누군데. 여원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남현우는 질질 짜는 것만큼 실실 웃는 것도 꽤 귀엽거든. 


“그리고 내 침대 그만 올라가. 왜 남의 침대를 적셔놔, 어?”

“그야 선배님 침대에서 선배님 냄새 나니까요. 제 침대에선 선배님 냄새 안나거든요.”


지가 변태야, 뭐야.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여원이 현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주었다. 잔뜩 힘이 실린 손길도 좋다고 가만히 받아내던 현우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왜.”

“그, 저, 있잖아요.”


이라온이랑 놀더니 점점 이라온 닮아가는 건가. 본론을 꺼내는 데도 한세월인 현우를 보며 여원이 라온을 떠올렸다. 물론 이라온이 귀엽긴 하지만 이 새끼도 못지 않게 귀여운데. 여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현우가 마음의 준비를 마쳤는지 천천히 입을 뗐다. 아주 조심스럽게.


“저… 못난 새끼 말고 못난이라고, 해주세요.”

“…”


여전히 붉은 눈을 해서는 한다는 부탁이 이런 거라니. 그 소심한 부탁에 여원이 결국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라온을 얻다 비비냐. 니가 제일 귀엽다, 이 못난이 새끼야. 





트위터에서 말씀드렸던 짤막한 글입니다.

저도 수능과 대입의 중압감을 몸소 겪어봤기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수능은 정말 첫 단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겁니다.

아침에 어떤 글을 봤습니다. 

첫 단추가 부서진다고 옷이 망가지지 않듯, 첫 단추가 부서진다고 해서 꿈도 망가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공감합니다. 

저도 이맘 때 참 많이 울었는데요, 지금은 나름 잘 살고 있습니다. 꿈도 잘 지켜냈습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한 번 고장난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으니까요. 

너무 사족이 길어졌네요.

제게 에스크 남겨주신 수험생 분들, 그리고 제 글을 봐주시는 수험생 분들은 괜찮으시다면 제게 포타 메시지나 트위터 디엠 보내주세요. 

작게나마 응원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맛있는 저녁 꼭 드시고, 또 만나요 :)

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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