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주의✖️

✖️HL[HeteroLove]✖️







전화로 약혼식은 무리없이 진행될 거라 당부하시던 어머니께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비에 젖은 생쥐 꼴로 교무실에 가서 조퇴증을 받고 집으로 왔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어머니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멍한 상태였다.


" 귀찮아 "


씻는 것도 귀찮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아니, 무기력해졌다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냥 침대에 눕고 싶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고 얼굴 주변은 열이 오르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초점도 흐릿하고 시야가 핑 돌면서 그대로 블랙아웃(Blackout) 됐다.


" 고은아! "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 결혼은 나랑 하자! "


드넓은 바다,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서 너는 그렇게 말했다. 둘이서 두꺼비집을 만들며 나눴던 대화는 유치원생이라 할 수 있었던 대화였다. 당시에 나는 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생각해볼게 "

" 약속이야! "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져야 하는데 너는 잊혀질 때마다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 결혼은 나랑 하자 "

" 생각해봄 "


어쩌면 정혁이의 말버릇과도 같았던 저 말을 너무 신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저지른 무모한 행동들을 너는 용서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 것 같다. 이런 내가 너무 싫고 염치없는 것도 잘 알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눈을 떴을 때 익숙한 등판이 보였다. 나한테 단 한 번도 등을 보인 적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무서웠다. 이대로 떠날까봐, 솔직히 떠나도 할 말 없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본능적으로 너의 손을 붙잡았다. 너는 놀란 듯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 은아야 "

" ...미안해 "


분명 조퇴한 나를 찾으러 온 거겠지... 선생님께 온갖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나왔을 거다. 나에게로 오는 모습이 조금 전에 봤던 우민이가 달리는 모습과 오버랩 된다. 그래서 눈물이 나온다. 이렇게나 너를 잘 알고 있는 내가 당연하다는 듯 상처를 줘서, 실망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도 울고 있는 나를 너무나도 다정하게 안아줘서 더 가슴이 저려온다.

🌈 [업로드]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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