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볼펜으로 탁자를 치는 일정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흐음- 턱을 괴고 눈을 감아 길게 숨을 내쉬며 회상에 잠겼다. 팀원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한 나는 제일 먼저 이동혁한테 물어봤었다.





'동혁아. 혹시 나한테 할 말 없어?'


'있어.'





있다는 이동혁의 대답에 채아진 말이 진짜였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이동혁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쳐다봤다. 하지만 뒤에 들려오는 말은...







'너 그저께 황인준하고 둘이 3구역 갔다 왔다며!'


'......응?'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얘기도 안 하고!'


'아니, 아니. 그거 같이 간거 아니고 거기서 마주친 거야.'


'뭐야. 그랬어? 걔가 말을 이상하게 했네.'


'....하, 그거 말고 다른 할 말 없냐고.'


'응? 없는데?'





이동혁은 아직 모르는 건가 싶어서 팀장님에게 가서 물어봤었는데.







'일찍 일어났네요 여주씨. 애들 아직 자고 있는데 우리 둘만 가서 밥 먹고 올까요?'


'팀장님.'


'네?'


'그때 제가 말한 사항에 대해서 할 말이....'


'어, 여주씨. 일단 그거는 여주씨가 먼저 저희 팀에 적응을 하고 나서 나중에 천천히 얘기할까요?.'


'......'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니, 그게 지금 아닌가? 의료동으로 출근한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의문이 들었다.





채아진이 팀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면 채아진은 실습이 끝난 다음 팀 가이드로 들어온다고 했다. 그럼 내가 채아진과 같이 의료동에서 가이딩 실습을 하고 있는 걸 알 텐데... 근데 오늘 아침 의료동으로 출근하려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이동혁이 지금 나가? 강의실까지 데려다줄까? 하며 내게 걸어왔고







'동혁아. 그럴 시간 없어. 나재민이 너 한 번 더 늦으면 죽는다고 했잖아.'


'아아... 진짜 싫다 나재민...'


'재민이도 너 싫어할거야...'







'여주씨 오늘도 강의 열심히 듣고 이따 오후에 봐요!'





팀원들은 내가 의료동에서 실습 중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았단 말이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





왜 굳이 이런 거짓말을? 채아진에게 가서 물어볼 수는 있었지만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혹시 채아진이 다른 팀이랑 헷갈린 건 아닐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머리가 아파졌다. 더 생각하지 말자.











"하암...."






점심을 먹어 배는 부르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절로 하품이 나왔고 스윽-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책상에 놓여진 종이를 내려다봤다. 할 일이 없어 구석에 낙서를 끄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여주씨! 저 또 왔어요!"


"어, 오늘도 오셨네요?"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남자. 이 남자는 이틀 전에 내게 가이딩을 받은 센티넬이었다. 그날도 할 일이 없어서 의자에 거의 반쯤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몸을 바로 하고 쳐다보자





'어... 안녕하세요...?'


'......'





딱 봐도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다. 내 인사에 대꾸 없이 안으로 들어와 비어있는 의자에 털썩 앉더니





'가이딩 지금 바로 해줄 수 있죠?'


'아, 네. 근데 저 등급 낮은데 괜찮으세요?'





내 말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길래 순서 리스트 칸이 적힌 종이와 펜을 남자에게 주며 인적 사항부터 적어달라 얘기했다. 펜과 종이를 받은 남자가 빠르게 칸에 자기 인적 사항을 적어냈다. 아, 오늘 저녁에 엄청 피곤하겠는걸.





'가이딩 바로 시작할게요. 손 주세요.'





내밀어진 내 손위로 남자가 무심하게 손을 올렸고 나는 평소대로 팀원들에게 하는 것처럼 가이딩을 내보냈다. 그러고 나서 남자의 두 눈이 커다래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 반응에 놀란 내가 내보내던 가이딩을 멈추고 왜 그러냐 묻자,





'ㅇ,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으신 거죠?'


'네. 얼른 계속 해주세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서 다시 가이딩을 하기 시작했다. 억, 우와... 와... 가이딩을 하는 중간중간마다 남자가 감탄사를 중얼거렸다. 뭐야. 왜 이래.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표정관리를 하며 시간이 끝나 가이딩을 멈추고 끝났다고 얘기하자





'.....1분만 더 안될까요?'


'......'





이 사람 진짜 힘든가 보네. 어차피 이 사람 말고 뒤에 더 받으러 올 사람도 없을 테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딱 1분만 더 해주겠다 대답했다. 약속한 1분이 지나 손을 놓자 아쉽다는 듯 손을 쥐었다 편 남자가 들뜬 얼굴로 나를 보더니





'저 내일도 받으러 올게요. 그래도 되죠?'


'네. 그럼요.'





지금까지 실습하는 동안 가이딩을 안 해도 별로 신경은 안 쓰였다. 나라도 센티넬이라면 높은 등급한테 받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니까. 근데 이게 하루 이틀 지나니까 실습 일지에 쓸 내용도 없고 같이 실습하는 다른 가이드들은 다들 가이딩 해주기 바쁜데 나만 놀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차에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어제도 온 남자는 오늘도 왔고, 그 뒤로 모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남자는 웃으면서 오늘은 저 친구도 가이딩 받으러 온 거예요! 하며 말해왔다. 아, 그래요? 하며 몸을 옆으로 살짝 내밀며 뒤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인적 사항은 제가 적을게요. 저희 팀원이거든요."


"네. 그래요. 여기 앉으시면 돼요."


"제가 여주씨 가이딩 진짜 최고라고 자랑하고 데려왔어요."


"와, 자랑할 정도는 아닌데."


"하하, 아니에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 여주씨한테 처음으로 가이딩 받은 날 놀랐다고요. 센티넬로 발현하고 그렇게 순수하고 맑은 가이딩은 처음이었고 저 그날 완전 꿀잠 잤다니까요. 계속해서 내 칭찬을 해주길래 괜히 민망해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날부터 얼마나 저희한테 자랑을 하던지. 계속 한 번만 가이딩 받아봐라 졸라서 온 거예요."


"오... 저 조금 많이 부담되는데요...?"


"걱정 마요 여주씨. 저한테 해주시는 것처럼 하면 돼요."











오전에는 그 두 명을 가이딩을 하고 오후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겠지- 생각하며 쉬고 있는데 급한 목소리와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났나? 생각하는 순간 문 너머로 '비상사태'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가자 의료동 안이 엄청 정신이 없고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냐며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묻자





"윈드 센티넬 폭주래요!"


"폭주요?"


"의료동으로 왔을 때 1차 폭주라고 했는데 2차로 넘어가나 봐요!"





빨리 나와요! 신입 가이드들은 대피하래요! 그 말에 그 사람을 따라 나와 나가려는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과 그 센티넬의 폭주로 인해 큰 바람이 불어와서 발이 꼬여버려 넘어져 버렸다. 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대피하는 사람들 발에 차여서 팔을 올려 머리랑 얼굴부터 보호했다. 간신히 일어나서 다시 나가려는데 의료동에서 나가는 사람들 너머로 사람들을 대피 시키고 있는 이제노가 보였다.





"이동혁. 가능하겠어?"


"어. 걱정하지 마."


"준비해. 바로 시작할 거니까."





저벅저벅. 거침없이 폭주를 일으키고 있는 센티넬에게 걸어가는 팀장님. 그와 눈을 똑바로 맞추더니 폭주로 인해 몸을 주체 못 하던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지만 휘몰아치는 이능은 그대로여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 이동혁이 모습을 나타났고 그 타이밍에 황인준 손에 있던 주사기가 공중으로 붕 뜨더니 빠르게 날아가 그 이동혁 손에 쥐어졌다. 주사기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폭주한 센티넬에게 꽂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의료동 안에 불던 바람이 점점 약해졌다. 곧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약하게 불던 바람도 아예 사라져 고요해졌고 곧이어 사람들의 감탄사가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아진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네? 네에... 저는 괜찮아요."


"다행이다. 많이 놀랐지?"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주변에서 오두방정을 떠네. 그러거나 말거나 상황이 더 크게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져서 엉망이 된 옷을 툭툭 털고 있는데.





"뭐야? 여주야. 너 꼴이 왜 이래?"





사람들을 비집고 나한테 온 세아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자 팀원들이 바로 고개를 돌리고 내 쪽을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동혁은 눈을 크게 뜨며 바로 내 쪽으로 달려오더니







"김여주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어? 어... 나 괜찮ㅇ, 아야!"





괜찮다고 대답하려는데 이동혁이 한쪽 팔을 잡고 내 몸을 이리저리 돌려봤고 순간 느껴지는 찌릿함에 앓는 소리를 내자 이동혁의 표정이 굳었다. 앓는 소리를 낸 부위는 왼쪽 팔이었고 내 소매를 걷어올려 확인해 보더니







"....하, 씹...."







"왜. 어디가 다쳤어. 크게 다친 거야?"


"아, 아니, 팔꿈치만 좀 까졌어요."





의료동 문 밖에 있던 이제노도 어느새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묻길래 팔꿈치만 좀 까졌다 대답하고 그들 어깨 너머를 쳐다보는데 표정이 싸해진 팀장님이 바로 보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낮게 가라앉는 눈빛으로 채아진과 그 주변 센티넬들을 노려 보고서는







"......다들 눈이 삐었나 보네. 다친 사람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거 보면."





대피하라는 말 들리자마자 쟤가 제일 먼저 나갔잖아. 맞아. 쟤가 다칠 일이 뭐가 있어. 주변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동혁도 그 말을 들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더니 화가 가득 찬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길래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손목을 잡았다.







"......저 새끼들 다 불태워 죽일까?"





아니. 이제노는 또 왜 이래. 난감함을 느끼며 이제노랑 이동혁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는데 황인준이 팀장님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정을 시키고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너희도 그만해. 의료동이 엉망이라 조 쌤한테 가는 게 낫겠다."


"......"


"상황 마무리는 나랑 재민이가 할 테니까 얼른 여주씨부터 데리고 가."


"......"


"얼른 가. 여주씨. 애들 데리고 가요."





황인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눈을 한번 깜빡이고서는 이동혁과 이제노를 끌고 나왔다. 나오면서 세아와 언니들을 지나쳤는데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나중에 얘기하자고 입모양으로 말하고 의료동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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