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바닷바람.

높게 몰아치는 파도.

무언가 잡을 먹을 듯한 날씨.

이런 날씨에 파도 위를 지나는 배 한 척.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기어이 어둠과도 같은 깊은 파도가 배를 집어삼켰다.

 

***

 

“아...”

그런 배를 바라보던 한 붉은 인어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난파된 배에서 떨어진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금발이였고 매우 미남이였다. 마치 찬란한 태양이 자신의 빛을 내뿜듯 아름다운 외모였다.

“와... 이쁘네.”

그런 외모를 본 붉은 비늘의 인어는 감탄을 하다가 서둘러서 그 인간 남자를 육지로 데리고 갔다.

솨아아.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에 그를 눕히고는 얼굴을 구경하는 인어. 한참을 구경했을까.

“으음...”

미남이 일어났고 인어는 다급하게 도망갔다.

“붉은... 색?”

그리고 그 미남은 일어나면서 붉은 실루엣을 봤다.

“폐하!”

저 멀리서 미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알베르 전하!”

미남의 이름은 알베르. 로운 왕국의 왕이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네. 이만 돌아가지.”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알베르는 이내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궁으로 돌아갔다.

 

“아...”

그렇게 돌아가는 알베르를 인어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다리...’

인어의 생각이 인간의 다리까지 미치자 곧바로 헤엄치며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마녀라면...”

바다의 폭군으로 불리는 마녀를 향해서.

 

***

 

“프레도.”

“오... 귀하디 귀한 인어의 왕자께서 여기는 어인 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약이 있나?”

“아아, 우리 케일 왕자님이 원하시는데 만들어야지. 그런데 이유가 뭐지?”

“내가... 좋아하는 인간이 생겼어.”

“호오? 그럼 만들어 드려야지.”

케일의 말에 프레도는 흥미롭게 케일을 쳐다보았다.

“대가는?”

“흠... 왕자의 목소리를 대가로 하고 싶은데.”

“내 목소리?”

“그대의 목소리는 듣기 참 감미로워. 내 목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아.”

“금방 약을 만들어주지.”

둘의 계약이 체결되고 얼마 가지 않아 마녀 프레도는 케일에게 약을 건네주며 말했다.

“약을 먹으면 너는 그때부터 인어가 아닌 인간이다. 아가미가 없어서 더는 바다에서 호흡하지 못해.”

“그리고.”

“너의 목소리도 나에게로 넘어올 거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말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니까 명심하는 게 좋아.”

“...”

“대답.”

“어.”

“이 약을 먹고 넌 2주 이내로 네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키스를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대신 키스를 받으면 너의 목소리는 돌아와.”

“...응.”

경고를 듣고 곧바로 육지를 향해 올라가는 케일. 어느덧 육지에 다다랐다.

“어?”

육지로 올라간 케일이 본 것은 알베르가 붉은 머리의 여성과 같이 있는 모습이였다. 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연인.

그런 모습에 케일을 약을 먹을 것을 망설였지만 그의 옆에 인간으로서 있고 싶었기에 약을 먹었다.

약을 먹고 목소리를 잃은 대신 다리를 가진 케일이 알베르를 경호하던 왕실 경비대에게 구조되었다.

 

***

 

“그러니까... 이 자가 자신이 나를 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영애는 어떻게 된 것이지?”

“그게...”

“아니네. 나중에 보면 알겠지.”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말을 하지 못하는 케일을 바라보던 알베르가 말했다.

“거짓말이라면 도망가는 게 좋을 거야.”

무척이나 차가운 말에 케일이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모두 모였나.”

“네. 전하 모든 가신들과 공녀 그리고 신원미상의 남성까지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들 알겠지만, 나를 구한 사람은 나의 왕비가 된다. 성별에 상관없이 말이지.”

알베르의 말에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지금부터 나는 누가 진짜인지 가려낼 것이다. 내게 거짓을 고한 자는 각오를 하도록.”

“네.”

알베르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대답했다.

이 상황이 일어나기까지 3일이 걸렸다. 즉, 이제 케일에게 남은 시간은 11일 촉박했다. 하지만 케일은 느긋했다.

“내가 질문할 것은 단 하나다. 그에 대한 답을 주면 돼.”

알베르의 말에 모두가 알겠다 대답했다.

“나를 구해준 이가 과연 어디로 빠져나갔을까. 이게 나의 질문이다.”

알베르의 질문에 여자의 눈을 떨렸고 케일은 서슴없이 종이에 적었다. 그런 케일을 바라보던 시종과 여자가 눈으로 이야기했고 여자마저 종이에 적고 낼 때 시종이 둘의 종이를 바꾸어 알베르에게 올렸다.

“흠... 공녀가 나의 은인이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알베르가 아니였지만 결과가 그리 가르쳤기에 이리 공표할 수밖에 없었다.

“저 케일이라는 자는 일주일간 감옥에 가두어라. 또한! 나의 왕비가 될 자는 공녀다.”

알베르의 말에 케일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왜...?’

경비들에게 끌려가는 케일의 눈이 여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알베르에게 갔다.

그렇게 감옥에 갇히게 된 케일은 7일 동안 천천히 생각했다. 솔직히 생각이랄 것도 없었다. 이곳을 나갈 방법도 없었으며 알베르가 만나러 오지도 않았기에 케일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

 

‘나에게 남은 시간은 앞으로 4일...’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케일은 감옥에서 나왔다. 또한, 둘의 결혼식까지 앞으로 8일. 이유는 모르겠지만 왕과 공녀의 결혼식이 이상하리만큼 빨랐다.

케일은 우선 둘이 사이를 지켜보았다.

감옥을 나온 당일날에는 나라의 상황을 지켜보았고 다음 날에는 공녀를 지켜보았다.

“멍청한 왕세자야! 깔깔 자신의 바로 앞에서 종이를 바꿔버린 것도 모르고, 자신을 구한 은인이 내가 아닌 것도 모르고! 참으로 멍청하지 않으냐.”

알베르를 비웃는 마녀에 이제서야 모든 상황 파악이 끝난 케일은 그렇게 하루 동안 공녀를 지켜보았고 다음 날은 알베르에게 찾아갔다.

‘뭔가... 이상한데?’

알베르를 관찰하던 케일의 눈에 이상한 점이 걸렸다. 공녀가 자신의 부인이 될 거라 선포했지만, 그는 지금 무언가 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꺼려하는 거지?’

점점 케일의 의문점이 커져만 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뭔가 이상한데...”

돌아가려던 케일의 다리를 붙잡은 알베르의 말. 그리고 그런 기회를 놓칠 케일이 아니였다.

타닥.

“누구냐!”

‘접니다.’

라고 적힌 종이를 건네 케일.

“...케일 자네군.”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제게 다시한번 그날의 질문을 하여보아 주시겠습니까?’

“...그 은인은 어디로 빠져나갔더냐.”

‘바다입니다.’

“...어찌 알았느냐?”

‘그 은인이 저니까요. 공녀님께 그 질문을 똑같이 해주시길 바라요.’

“...그리 하지.”

비록 종이로 이루어진 대화였지만 빠르게 끝났다.

그렇게 말을 마친 케일은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물러난 케일에게 남은 시간은 하루.

어느새 시간이 또 지나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결혼식의 아침이 밝아왔다.

케일은 알베르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오거라.”

쿠웅.

육중한 문이 닫히고.

‘여쭈어보셨습니까.’

다시 한번 전해지는 종이.

“...그래.”

‘뭐라던가요.’

“그날 답하지 않았더냐 말하더군.”

‘...그렇군요.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탁.

방을 나가려던 케일을 알베르가 붙잡았다.

“그녀는 뭔가 이상해. 뭔가.. 뭔가가 불길해.”

‘...아시는군요. 저도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왕세자 저하를 사랑해 온 여인은 아닙니다.’

“...그렇군. 참고하지.”

알베르의 말에 케일은 끄덕이며 마저 방을 나갔다.

 

***

 

“케일!”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케일을 누군가 불렀다.

‘프레도?’

자신을 부른 이를 확인한 케일은 놀랐다.

“지금 왕자의 상대는 하얀 별이라는 마녀야. 나도 못 이겨.”

급하게 와서는 더 다급하게 말하는 프레도의 말에 케일이 종이로 물었다.

‘그럼 어떡해.’

“결정해 목소리 돌려받고 다시 인어가 될래 아니면...”

‘아니면?’

“마녀를 물리칠 때 쓰는 거울이 있어 그거를 해볼래? 시간이 늦으면 너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거울...’

“하아... 그럴 줄 알았다. 자, 어서 가.”

프레도는 케일의 답을 이미 예상했는지 금세 거울을 꺼내 전해주었다. 

새하얀 거울. 신성스러운 느낌이 났다. 홀린 듯 거울을 구경하던 케일이 서둘러서 시작으로 향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그 거울을 하얀별에게 비춰야해!”

달려가는 케일의 뒤로 프레도가 사용 방법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케일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 나갔다.

 

***

 

허억, 허억.

어느새 배 위에서 진행되는 식장에 도착한 케일이 숨을 가쁘게 쉬었다.

숨을 빠르게 고른 케일이 두리번거리며 알베르와 마녀를 찾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어느덧 1시간.

식은 이미 진행되었고 주례를 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케일은 그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알베르와 하얀 별을 향해 뛰어갔다. 거울을 들고서.

“무슨!”

“까악!”

하얀 별의 베일을 잡아당겨 벗긴 케일이 서둘러서 거울을 비추었다.

“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거울에 비추어진 하얀 별의 모습이 점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울로 인하여 마법이 풀린 것이다.

붉은 머리에 문어 다리 그리고 흉측한 얼굴.

“이게... 무슨...”

그런 자신의 배우자의 모습을 본 알베르가 경악을 하며 뒷걸음질을 했다.

“젠장! 이 망할 인어가!”

쾅!

결국 하얀 별의 화를 돋군 케일이 하얀별 의 공격을 받았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덕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케일.

 

그리고 하안 별은 거울에 걸린 강력한 마법 덕에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소설 속 악당의 결말 같지 않은가. 그래, 그 허무한 결말.

“망할! 거의 다 왔는ㄷ...!”

그렇게 하얀 별은 자신의 결말을 맞이했다.

 

파삭.

하얀 별이 허무하게 죽고 케일이 날아간 갑판이 조금씩 들썩이더니 케일이 나왔다.

그런 케일이 비척비척 일어나 알베르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케일...?”

위태로운 케일의 모습을 본 알베르가 케일을 불렀다.

‘미안해요.’

입 모양으로 이리 말한 케일.

“뭐가 미안ㅎ,”

그 사과에 무엇이 미안한지 물으려 벌어졌던 알베르의 입을 케일의 입술이 덮었다.

“읍?”

그에 당황한 알베르가 석상마냥 굳어버렸지만, 케일은 개의치 않고 키스를 했다.

“푸하..!”

케일이 입을 떼자 그제야 멈췄던 숨을 쉬는 알베르.

“이게 무슨 짓인가!”

“아아. 오, 이제야 목소리가 나오네요.”

“아...?”

자신의 물음에 대답이 아닌 케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알베르가 얼이 빠진 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정확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일단 목소리를 되돌려 놓으려고 했다고 알아주세요.”

잔잔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러나 부드러운 케일의 목소리에 알베르가 다시 한번 석고상처럼 굳었다.

“목소리... 때문에?”

“네.”

“....”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알베르가 케일에게 다시 한번 키스의 이유를 물었고 똑같은 답이 들려왔다.

“그러면... 그대가 날 구한 건가?”

“그렇습니다.”

“...미안하네.”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사과였다.

 

못 알아봐서,

함부로 대하여서,

그대를 믿지 않았음에.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사과였다.

“한 나라의 왕세자, 아니 이제는 지엄하신 왕께서 이리도 쉽게 사과를 입에 담으시다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놀리는가 싶다가도 괜찮다 대답을 해주는 케일에 알베르가 고개를 떨궜다.

“그대의 행동과 모습에 관심이 갔고, 이제는 그대의 목소리에 그대의 모든 것에 반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대가 나를 구한, 내가 찾아 헤매던 그 자라니. 내게 너무나 기꺼운 일이야.”

“...듣고있으니 계속 말씀하세요.”

점점 진중해지며 말하는 알베르의 모습에 케일이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케일에 알베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입에 맴돌던 말을 하였다.

“그대를 선택하고 싶었으나 내 말로 하여금 그대를 붙잡지 못했어.”

회의 중 자신이 한 말로 인하여 수상함을 알고도 마녀를 선택한 것에 대한 변명.

“그것에 대해 그대에게 사죄하는 바이네. 그리고 내가...”

사과 후에 들릴 말이 눈에 훤하지만, 케일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알베르의 입에서 나올 말은 정해져 있기에.

“그대를 사모해, 내가. 내게 기회가 있다면.. 아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케일..”

이제는 자신의 손을 붙잡아 올리고 얼굴을 부빗거리는 알베르에 케일이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저 이유 없이 전하의 곁에 서 있는 것 같나요?

자신이 지금 당신의 앞에 서 있는 이유가 없는 것 같냐 묻는 케일의 말에 알베르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 들어찼다.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왔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해. 그대로 사랑해, 케일.”

“저도 전하를 사랑해요.”

 

 

갑작스러우면서도 갑작스럽지 않게 연결된 연인들이 서로의 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그들의 날에 밤을 내렸고 앞으로의 날에 빛을 걸쳐두었다. 








지새는 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