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군.”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아나킨의 간결하고 정확한 감상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코러산트의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파다완은 뽀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쯧, 혀를 찼다. 하필이면 로브를 잃어버린 날 비가 올 줄이야. 오랜만에 겪은 전투다운 전투-아나킨은 사원에서 다른 파다완들과 대련하는 건 지나치게 쉽고 지루하기에 전투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를 겪고 아드레날린에 취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전장에서 구른 경험이 자신보다 곱절은 많을 타겟‘들’을 무력화시킨 후 흥분과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의기양양하게 임무 현장을 빠져나오느라, 아나킨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 멋들어지게 벗어던진 로브를 수거하는 걸 완전히 까먹어버리고 말았다. 로브도 없이 흠뻑 젖어서 혼자 길거리에 서 있자니 ‘항상 침착해야 한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라는, 제 마스터 콰이곤 진이 거의 매일 말해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게요 마스터. 이래서 다들 자기 마스터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는 거군요. 

뒤늦게 후회를 해 봤자 사라진 로브가 제 발로 돌아와 ‘주인님! 여기 계셨군요! 한참이나 찾았답니다! 제가 없으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하고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고-아나킨은 잠시 어머니와 새아버지 집에 있는 쓰리피오가 몹시 그리워졌다-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사원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임무가 끝나고 마스터 콰이곤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며 파다완을 코러산트에 내려다 준 후 곧장 얼데란으로 날아가 버렸고, 아나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유롭게 도망쳐버린 마스터 대신 카운슬에다 이번 임무에 대한 보고를 올려야 했다. 비에 젖은 파다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원이 있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착륙한 지점에서 사원까지 제법 멀긴 했으나 걸어가기에 무리인 거리는 아니었다. 전투가 종결된 후 비행정에서 쉬지도 못한 채 보고서를 정리하느라 조금 피곤했고,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춥고 허름해지긴 했지만 못 걸을 정도로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배고프다.”


-한창 성장기인 탓에 배가 너무 고프다는 것이었다. 비까지 맞았더니 위장이 구겨진 종이처럼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속이 헛헛하다 못해 쓰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나킨은 흘끗 옆 건물에 걸린 전광판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부터 뛰어간다면 어찌어찌 사원 점심시간이 마감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스터들은 아무 때나 밥 먹어도 되면서 왜 파다완이랑 영링은 정해진 시간에만 밥을 주는 건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파다완은 사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사원 식사는 맛없는데. 마스터들만 맛있는 거 먹고 우린 또 단백질 큐브랑 수프 정도만 줄 거 아니야. 식사에서 절제와 검소함을 배우라니, 참나. 짜증나게 먹는 데서까지 각박하게 굴어야 해? 내가 그 맛없는 밥 한 끼 먹겠다고 이렇게 고생해서 귀환해야 한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마스터한테 얼데란에 같이 가자고 졸라볼걸. 저번에 얼데란 갔을 때 먹은 스테이크 정말 맛있었는데….

예전에 마스터 콰이곤과 베일 오르가나를 방문했을 때 왕궁에서 대접해줬던 훌륭한 스테이크와 채소 가니쉬를 회상하던 아나킨은 걸음을 멈췄다. 지금이라도 마스터를 쫓아서 얼데란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거나, 굶주림 때문에 도저히 걷지 못할 상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가까이에서,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어디지? 아나킨은 며칠을 굶은 사람마냥 파란 눈을 크게 뜨고는 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코끝을 스치는 버터와 빵, 치즈와 고기 냄새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진한 블랙 커피의 향까지도. 워낙 감각과 기척에 예민한 덕에 냄새의 근원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흔한 다이너였다. 코러산트뿐 아니라 아무 행성의 아무 거리에서나 찾을 수 있을 듯한. 그러나 아나킨이 지금까지 스쳐 지나간 그 어느 가게에서보다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온다는 게 특별했다. 포스에 맹세코 아나킨은 자신이 가본 이너 림과 아우터 림을 통틀어 식당에서 이렇게까지 맛있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자신이 지금 쫄딱 젖었고 쫄쫄 굶어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뻔한 다이너의 음식 냄새가 얼데란 왕궁의 스테이크 냄새만큼 황홀하게 느껴질 순 없는 거였다. 한창 청소년기인 파다완은 꿀꺽 침을 삼키며 가게 문 앞에 세워진 메뉴판을 빠르게 훑었다. 수프, 샌드위치, 샐러드와 파스타, 토스트, 버거와 프라이, 커피…. 사람을 미치게 만들 것 같은 냄새에 비해 음식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망했군.”


유틸리티 벨트의 포켓 하나를 열어본 아나킨은 신경질적으로-싸움 중에 라이트 세이버로 몇 번 잘라 먹어서 또래보다 짧은-파다완 브레이드를 한 번 잡아당겼다. 제기랄. 돈이 없었다. 한 푼도.

제다이 사원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원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월급을 지급했지만, 파다완과 영링들은 제외였다. 그들에게도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이 배급되기는 한다만 생활에 필수적인 것 이외에 ‘소유할 수 있는 물질적 재화’는 그 어떤 것도 지급되지 않았다. 철저하게. 그래도 영링이라면 모를까 파다완 정도가 되면 이래저래 필요한 물건이나 외부 임무에서의 식대가 필요하기 마련이라, 마스터들이 각자의 파다완에게 얼마간의 용돈을 주는 것이 오래된 의례였다. 그 점에서는 콰이곤 진도 다른 제다이 마스터들과 다르지 않았고 아나킨은 매월 얼마간의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기계 부품을 사는 것에 죄다 써버렸다. 죄다. 크레딧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전부.

맛있는 냄새 때문에 들떴던 기분이 푸스스 꺼지는 걸 느끼며 아나킨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체로 제다이 코드를 무시하는 편이었지만-이것에는 회색의 제다이처럼 구는 스승의 영향도 컸다-그래도 그 염병할 개소리 중에서도 몇 개는 맞는 말인 듯 싶었다. 제다이란 자고로 침착해야 하고, 참을성을 가져야 하고, 절제해야 한다. 그래. 그걸 지켰다면 지금 로브 없이 비 맞은 웜프 쥐 꼴이 되지도 않았을 테고, 새로 만드는 드로이드에 쓸 부품비를 아껴서 토스트 하나는 먹었을 텐데 말이야. 입맛이 썼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가게 앞에서 불쌍하게 서성거리며 시간을 버린 바람에 이제는 아무리 빨리 돌아간다고 한들 사원의 맛없는 식사조차 배급받지 못할 시각이었다. 최고네. 비 맞고 쫄쫄 굶어선 성격 나쁜 마스터 윈두 앞에서 보고나 올려야 하다니. 이게 사는 거냐. 파다완의 인생이란 게 본래 이렇게 고달픈 거냐. 쓸쓸하게 생각하며 아나킨이 미련이 묻은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였다.


“…저기.”


부드럽고 단정한 목소리- 라고 생각했다. 아나킨은 처음에 저를 부르는 지 몰라 그대로 발걸음을 떼었다가, ‘저기요. 저- 제다이 기사님.’하고 덧붙이는 것에야 고개를 돌렸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브레이드가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느리게 호선을 그리며 찰랑거렸다.


“네?”


아나킨을 부른 사람은 고작해야 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싶은 말간 얼굴의 남자였다. 밀빛을 한 조금 어두운 금발이 지금의-젖은 새끼 웜프 쥐 같은-아나킨과 달리 뽀송뽀송했다. 아나킨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잠시간 눈을 크게 뜰 뿐 말이 없다가,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었다.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 때문이었을까.


“들어오지 않을래요?”


들어오라는 말을 왜 저렇게 서글프게 하는 걸까? 생각하며 아나킨은 영문 모를 초대에 몸을 굳히고 파란 눈만 연신 깜빡거렸다. 들어오라고? 왜? 나 돈 없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딱 봐도 지금 돈 없어 보이지 않나. 처음 보는 사람이긴 하지만… 돈 없는 사람 속여서 사기 칠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 

어린 애를 놀리거나 푼돈 뜯는 사기를 칠 것 같다기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리빙 포스가 너무나 선하고 온화했다. 아나킨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이윽고 금발의 남자는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와 아나킨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이대로 있다간 아나킨이 떠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는 건지 조금은 조급해 보이기까지 한 태도였다. 우산도 없이 자신이 있는 풍경 속으로 뛰어든 남자에 놀라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가까이에서 보는 남자의 눈은 맑고 또렷한 청회색이었다. 남자의 밀색 속눈썹에 빗방울이 맺혀서 마치 눈물처럼 또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거기서 혼자 비 맞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요.”


밀빛과 청회색의 남자는 어린 파다완의 손목을 살그머니 붙잡아 아나킨을 가게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 비를 맞아서 식어있던 살갗에 닿아오는 타인의 온기는 화끈거릴 정도로 온도가 높았다. 아나킨은 자신이 왜 마인드 트릭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순히 따라가고 있는 건가 의아해 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난데없이 손목이 붙들린 상황인데도 기분이 나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남자에게 붙잡혀 열이 오른 손목에서 맥박이 빠르게 통통 튀는 걸 느끼며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생각했다. 사람이 배가 너무 고파지면, 심장이 두근거릴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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