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에필로그 이후의 일이므로 '불륜' 관계가 다뤄집니다.

-하나하키 AU물입니다. 해리가 하나하키에 걸립니다.

-사망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소소한 연출이 있습니다. 어두운 모드에서의 열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지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 눈으로 되묻는 그녀를 향해서, 해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말간 눈동자에 느릿하게 물방울이 고여들었다. 놀람과 안도감이 뒤섞여 기묘한 공허감을 자아내는 표정을 보며, 해리는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다 괜찮을 거야."

"정말, 정말이야?"

"응. 미안해, 지니."


낮게 읊조리는 해리의 목소리에 지니의 눈가가 떨렸다. 세상에. 맙소사. 두어 번을 거듭하며 튀어나온 공허한 감탄사의 끝에, 지니가 해리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해리."

"고마워, 지니."


해리의 손이 다정하게 지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어쩐지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헤르미온느. 지니를 조심스레 다독이면서 해리는 헤르미온느 쪽을 흘깃 돌아보았다. 

루나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헤르미온느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우리는 모두 괜찮을 것이다. 론에게도 연락을 해야 할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이 어지러이 떠오르는 와중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제 아이들을 만나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마치 영영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예감하는 듯이.


"오, 헤르미온느. 좋은 아침이야."


마침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해리와 지니는 동시에 그 쪽을 돌아보았다. 헤르미온느가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작게 기침을 토해내던 헤르미온느가 인상을 찡그렸다가,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안녕, 해리. 안녕, 지니, 그리고 루나."


한 명 한 명 다정스럽게 이름을 부른 헤르미온느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덧붙이는 말에 루나가 폭신한 구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소를 지었다. 난 정말 오랜만인걸. 장난기는 없었으나 밝은 대답에 텐트 안쪽의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지니, 미안해."

"아냐, 헤르미온느. 고마워."


따스한 봄볕같은 웃음소리가 지나간 뒤, 헤르미온느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니의 얼굴에는 조금의 유감도 보이지 않았으나, 헤르미온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기에, 해리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뚫어져라 살폈다. 뭔가가 잘못된 건 아닌지 묻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차마 이 자리에서는 물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다 같이 돌아갈까?"

"그래, 론에게는 내가 연락할게."

"고마워, 정말."

"천만에. 돌아가면 같이 식사를 하자."


다시 분위기를 푼 것은 루나였다. 노래하듯 말하는 특유의 분위기에 무겁게 가라앉던 공기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래, 이제 문제는 전부 해결되었다. 그 과정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미 해결되었으니까. 다시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루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뿐한 걸음이 텐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외투를 찾아 왔다. 채비를 마치고 일어난 그들은 사이 좋게, 마치 학창 시절에 외출하던 시절처럼 다정스럽고 즐겁게 숲을 걸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제 자리로 가는 듯 했다. 해리는 다시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도 더이상 해리를 피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론도 집으로 돌아왔으며, 지니는 전보다 더, 루나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으며 자주 웃었다.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얼어있던 땅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세상처럼,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달라져 있었다. 깊은 신뢰가, 커다란 사랑이, 따뜻한 우정과 보드라운 감사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해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커헉! 콜록, 쿨럭! 하.. 으.."


해리는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한순간 그렇게 굳어버린 채로 제 앞에 만들어진 새하얀 꽃무덤을 응시하던 해리는 곧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해리는 빠르게 꽃을 처리해버렸다. 그리고 이 일을 없던 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퇴근하는 걸음은 평소와 같았고, 저녁 식사 시간도 다정했다. 침대에 누운 해리는 지니를 꼭 끌어안았다.


"지니."

"응?"

"....아냐. 잘 자."


해리의 말에 지니가 고개를 들고 해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듯 하던 눈빛은 금세 걷혔다. 지니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해리의 뺨을 살짝 쓸었다.


"응. 잘 자, 해리."


지니의 입술이 가볍게 해리의 뺨에 닿았다. 해리는 그대로 지니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서 잠을 청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해리는 최근 그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가 아무리 해리 포터라고 할지라도,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가고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해리는 그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 어느때보다 더, 지금 그 사실이 기꺼웠다.

지나며 마주치는 직원들은 종종 그에게 말을 붙였다. 한동안 안 쓰시는 것 같더니, 전에 그 향수 다시 쓰시나봐요? 지나가듯 하는 말에 해리는 애써 자연스럽게 웃어보였다. 그런 때를 제외하면, 아무도 달라진 점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기묘한 것은, 해리에게 이상이 생긴 뒤로 헤르미온느와 그가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쓰러졌다거나, 길게, 멀리 출장을 갔다거나 하면 그가 모를 리 없었으므로,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제 앞에 놓인 서류들에 눈길을 주던 해리는 한숨을 쉬고 소매를 걷었다. 당장 내일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오늘 이 서류는 마무리해주고 가야 했다.


- 똑똑


"들어오세요."


문 쪽을 보지도 않고 대답한 해리는 소리도 없이 열린 문 너머에 있을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헤르미온느였다.

그녀는 기이할 정도로 말쑥한 차림을 하고, 어디 한 군데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신기할 만큼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해리는 곧장 이 문제에 대해 헤르미온느는 이미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 때 사용한 마법이 뭔가를 알려준 것이리라. 해리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하면서 살짝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고 있어? 들어와."

"미안해, 해리."

"...문은 닫고 얘기하자."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해리를 향해 있던 헤르미온느의 시선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헤르미온느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실패에 잡아먹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자신다움을 잊을 정도로 괴로운 실패의 한중간이었다.

탁해진 눈빛이 바닥을 헤매는 사이, 해리가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한쪽에 마련된 티테이블로 가 커피를 준비하면서, 해리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애써 정리했다. 이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고, 헤르미온느와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답을 알기 어려운 문제들만이 가득했다.

작은 커피잔 안에 따뜻하지만 쓰기만 한 커피가 채워졌다. 잔은 지니가 산 것이었다. 해리는 제 몫의 커피가 담긴 작은 잔을 손에 쥐고, 사용감이 느껴지는 손잡이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헤르미온느는 느릿느릿 걸어서 티테이블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양 손에 얼굴을 묻는 동작이 그녀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해리는 차오르는 시린 고통을 무시하려 애썼다.


"눈을 떴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 이상하긴 했는데, 부작용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라고 적혀 있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설명해 줘, 헤르미온느. 알잖아, 난 너만큼 똑똑하지 않아."


부러 장난스럽게 건네는 말에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깊게 들이쉰 숨을 길게 내뱉은 헤르미온느가 따뜻한 커피잔에 손을 댔다. 온기는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헤르미온느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며 해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괜찮아?"

"안 괜찮을 게 없지."

"거짓말 하지 말고. 너도 느껴지지 않아?"

"뭐가?"


헤르미온느의 얼굴과 해리의 얼굴이 순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어리둥절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두 얼굴은 긴 세월 가까운 곳에서 지낸 사람들 답게 어딘지 모를 부분이 닮아 있었다. 그 묘한 표정에서 진심을 다한 '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메세지만을 발견한 둘은 결국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 거야?"

"그 전에, 해리. 네 안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거나... 목소리가 들리거나 하지 않아?"

"전혀."

"...그럼 다른 문제가 있어?"


해리는 입을 꾹 다물고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제가 다시 꽃을 토했다는 걸 아는 기색은 없었다. 결국 해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동안 마주치질 않았던 게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그랬어."

"다른 문제는 없는 거지?"

"그래."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결국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지금이라면 지니가 말했던 약을 사용해본다거나, 아무튼 무언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헤르미온느는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아. 통제가 안 되고 있거든. 이대로 두면 괜찮아진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냥 두면 반작용으로 원래보다 심각한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헤르미온느의 이야기는 길었다. 그녀가 발견했던 자료들에서 아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만을 추려서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너무 긴 이야기였다. 해리는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나 많은 것을 확인하고, 알아보고, 그리고 시도했는데.

그럴 너를 믿고서 따라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하얀 꽃무덤이라면.

그러면 나는 그냥 그 결과를 받아들일래.


"해리?"

"어?"

"제대로 들은 거 맞지? 다른 마법을 겹쳐서 덧씌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주말에는 시간을 비워 두라고 했어. 저번처럼 곤란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미간을 좁히며 해리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본 눈동자 안에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불안이나 걱정도 없었고, 심지어는 원망이나 실망도 없었다. 그 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혹은 애정에 가까운 무언가만이 가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된 그 감정이, 이제는 사라졌어야 하는 그것이, 다시 그의 안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러나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흔들어 그 불안을 털어냈다. 잘못 본 것이리라.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신뢰이고, 우정이리라. 그녀가 그를 향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같은.

헤르미온느는 들어올 때와 달리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해리는 정말 괜찮아 보였다. 어딘가가 아픈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이상 징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징후들도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하고, 별 것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맞은편에서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있는 해리의 모습을 조금 더 살피던 헤르미온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주말에 봐."

"그래. 우리 집으로 올 거지? 밥도 먹고 갈래?"

"고맙지만, 론이 뭔가 만들 생각인 것 같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바로 돌아갈게."

"그래. 알겠어."


헤르미온느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문을 닫았다. 아주 잠깐, 뾰족한 무언가가 심장을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헤르미온느는 그 자리에 서서 문 안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안쪽에서는 커피 잔을 정리하는 달그락 소리만이 들렸고,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심장을 향해 있는 바늘을 무시하고 말았다.




헤르미온느. 사랑해.

'나도, 사랑해.'


분수대가 있는 정원의 한 구석에서, 두 사람이 타도록 만들어진 그네에 앉은 한 쌍의 마법사들이 사랑을 속살거렸다. 그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저 초록색의 나뭇잎과 흰 색의 꽃들만이 가득했다. 종종 지나가는 참새들은 활달한 목소리로 웃었다. 해리는 행복했다. 헤르미온느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실은 이곳의 모든 것들이 진실이고, 저곳의 모든 것들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흐릿한 사람의 형상이 정원 끝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속삭였다. 나무 그늘 아래의 그는 얼굴이 희미했다. 그는 그네에 앉아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는 남녀를 한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다. 둘 중 누구도 그의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았으나, 그는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계절이 바뀌었다. 정원의 나무들은 파란 잎사귀를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흰 꽃은 여전히 만개해 있었다. 그네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분수대 쪽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행복했다.


다음 계절에는 장미가 피었다. 흰 꽃들 사이사이로 새빨간 장미들이 고개를 내밀자, 정원은 어느 동화 속의 배경같은 느낌을 주었다. 군데군데, 장미도 아니고 흰 국화도 아닌, 그 둘을 절반씩 섞은 듯한 기묘한 꽃들이 피어났다. 분수대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정원의 울타리 근처를 거닐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행복했다.


다음 계절이 왔다. 세상이 온통 파란 색으로 물들었다. 모든 것이 물속에 잠긴 듯 보였다. 장미는 모두 졌고, 흰 꽃들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마치 그쪽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방향이라는 듯이 당연해 보였다. 남자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나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쩌면 이곳이 진실일지도 모르지. 속삭임이 여자에게 닿았다.



 

기묘한 꿈을 꾼 다음 날, 하늘은 바다가 된 것 마냥 새파란 색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마당을 가로지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꿈에서 보았던 마지막 계절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해리의 모습이 보였다.


"좋은 아침."

"어서 와."

"안녕, 헤르미온느."


열린 문 너머에 지니와 루나의 얼굴이 보였다. 헤르미온느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기묘한 꿈은 이미 의식의 저편으로 멀어진 뒤였다.

안부 인사가 오간 뒤, 루나는 약을 꺼냈다. 지니는 혹시 몰라서 가져다 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번거로웠을 텐데 고맙다고 하며 약을 받아들었다. 헤르미온느는 조금 굳어진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해리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저번보다도 오히려 더 긴장한 모습의 헤르미온느가 창문에 비쳐 보였다. 해리는 눈길로 그 얼굴의 눈과 코를, 입술의 모양을 덧그려보았다. 완벽한 사람이었다. 사랑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어쩌면 그 드레이코 말포이도 헤르미온느를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문득 떠오른 우스운 생각 덕분에 해리는 자연스럽게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산책부터 좀 하고 시작할까?"

"오, 그럴래?"


그 제안이 반가웠는지, 헤르미온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요란한 동작에 방 안의 네 사람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고, 해리와 헤르미온느만이 마당으로 나갔다.

해리와 지니의 집에 딸린 마당은 넓은 편이었다. 곳곳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나 화분이 놓여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느린 걸음 걸음마다 불안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마당 안을 두 바퀴 돌고 나서, 헤르미온느가 먼저 걸음을 멈췄다.


"이제 괜찮은 것 같아."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헤르미온느는 가슴께에 잠들어 있던 바늘이 무언가를 터뜨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황급이 가슴께를 눌렀다. 그러나 실바람같은 무언가가 이미 해리를 향해 덮쳐들고 있었고, 해리는 그 흐릿한 연기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해리에게 다가갈수록, 그것은 선명한 형상이 되었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무언가가 해리의 앞에 서 있었다. 잠깐 동안은 해리를 마주 보고 있던 그것은 곧 해리의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헤르미온느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해리가 입술을 달싹였고, 헤르미온느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끅끅대는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희뿌연 바람은 해리의 몸을 천천히 시들게 만드는 듯 하다가, 가슴께에서부터 하얀 꽃잎으로 바뀌며 흩날리게 했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해리의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온기가 사라졌다. 두 번째 달싹임이 한 가지 말을 더 전했고, 헤르미온느는 망연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새파란 하늘을 향해서, 새하얀 꽃잎들이 휘날리며 올라갔다. 마치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향이라는 것처럼.




잡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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