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베루스의 말에 따르면 호그와트 내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느 두 기숙사 학생들이 교수나 관리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망아지처럼 싸워대서 그렇다고 한다. 근본적인 원인이야 뭐, 창립 이래 오래된 앙숙관계였으니까, 라고 설명되겠지만 다툼의 빈도가 높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며칠 전, 다이애건 앨리에서 머글 태생 마법사가 괴한에게 공격을 받은 일 때문이겠지. 용의자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평소 머글 태생 마법사들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마법사였다. '공교롭게도' 그 마법사가 슬리데린 출신이었다는 말에 해리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 상황이 우습게 보이나."


 세베루스가 해리를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럴수록 해리는 우스울 뿐이었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싸워대서 골치아픈건지. 


 "아니…."


 아니면 슬리데린 학생들과 그리핀도르 학생들의 싸움에 본인의 모습이 겹쳐져서 화가 나는 건지. 해리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청회색 눈은 깊이를 모르고 가라 앉고 있었다. 오늘 분위기 대체 왜 이래. 헛생각을 끊어줄겸 발을 슬쩍 움직여 잘빠진 구두를 즈려밟았다. 


 "고생이 많네."


 해리는 옆얼굴에 꽂히는 시선을 무시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세베루스를 바라보았다. 세베루스는 그런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동정은 접어두고 네 일이나 똑바로 하지."

 "그래. 고생했어, 세브."

 "포터."

 "덤블도어 교수님도 너의 노고를 잘 아실거야."


 세베루스가 해리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해리는 화사한 미소로 답하며 다음 안건을 물었다. 세베루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칠판을 불러와 죽음을 먹는 자들의 동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종적을 알 수 없는 몇명의 이름을 읊을 때, 가만히 듣고 있던 레귤러스가 의견을 내놓았다. 세베루스는 인상을 찌푸린 채, 레귤러스의 의견을 곱씹어보더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고 판단했는지 양피지를 불러와서 무언가를 휘갈겨썼다. 


 해리는 주로 듣고 있다가 질문을 하는 편이었지만 , 그래도 한 시간도 넘게 회의를 하다보니 목이 말랐다. 손님 대접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호그와트 교수 대신 찻잔을 소환하려는데 품에 손을 넣기가 무섭게 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진정들 해."

 

 안 그래도 차가운 인상들인데, 둘 다 검은 옷을 입어가지고. 해리는 무해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인 뒤,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고 천천히 지팡이를 꺼내서 방 한쪽에 있던 찻잔과 찻주전자를 소환했다. 한 컵씩 쪼르르 물을 따르고 수국을 넣은 뒤 찻잔을 눈 앞에 띄워줬다. 


 "제 안방처럼 편안해 보이는군."

 "누구 덕분이지."


 세베루스가 기가막히다는 듯 해리를 쳐다봤다. 해리는 가만히 향기 없는 차를 마셨다. 세베루스의 취향 따위는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세베루스는 해리가 오면 꽃향기가 나는 차만 내놓았기에, 해리는 그의 취향을 알 기회도 없었다. 자업자득이지. 


 해리는 세베루스가 그동안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블랙'이라고 적혀있는건 뭐야? 벨라트릭스…는 아래에 있고, 레귤러스…는 내 옆에 있고."

 "……."


 해리가 힐끔 쳐다보자 차를 한모금 마시던 레귤러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모르는 다른 블랙이 있었나?"


 해리가 세베루스에게 묻자, 그가 비죽 웃으며 대답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사이에는 내기가 한창이야."

 "무슨 내기?"

 "어둠의 마왕이 죽어버린 풋내기 블랙 대신 '진짜'블랙을 언제 쯤 영입할지."

 "……."


 해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볼드모트가 시리우스에게 관심이 있다고? 그런 일이 저쪽에도 일어났었나? 그가 제임스와 릴리를 살해하는 꿈은 꿨지만, 시리우스를 공격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시리우스와 결투한 사람은 벨라트릭스였는데. 


 수색꾼 출신치고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생각해보면 톰 리들은 고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영혼을 쪼개는 사악한 마법을 하는 주제에 행운을 뜻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를 맞춰 쪼개는 것처럼. 그러니까, 말포이와 블랙을 본인의 휘하에 두고 싶었다는거지. 


 "이거 너도 알고 있던 이야기야?"


 해리가 레귤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설마 그가 거기 있을 때부터 나오던 이야기는 아니겠지 싶어서. 본인 집안에서도 대체품 취급 받았는데, 죽음을 먹는자들 사이에서도 '시리우스 블랙' 대신 들어온 블랙 취급을 받은거면….


 "아냐, 됐어. 대답하지 마." 

 "……."



 "시리우스의 의견은?"


 해리는 황급히 지팡이를 움직여 레귤러스의 손에 찻잔을 다시 들려주곤, 세베루스에게 약간 따지듯이 물었다. 


 "블랙의 성격은 분열을 일으키는데 제격이지."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해리가 꺼낼 말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세베루스가 바로 대답했다. 마치 시리우스가 잘못되는게 눈에 훤하다는 듯 이죽거리는게 해리의 눈에는 몹시 아니꼽게 보였다. 정보를 주는 건 주는 거고, 한마디 한마디를 얄밉게 하네. 품에 넣은 지팡이를 다시 뽑아 저 기름진 머리위로 차가운 물과 분홍색 거품을 끼얹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른스럽게 감정을 갈무리한 해리가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비밀의 방은 찾아 봤어?"


 세베루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 방이 몇백년동안 발견 되지 않은 이유가…"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대답했다. 물론 해리는 그의 변명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누가 너보고 거기 들어가랬어? 찾아보기만 하랬지. 도서관 책이든, 호그와트 집요정이든, 네가 잘 하는 정보 빼내기든 뭐든 노력을 해보라고."

 "그렇게 쉽게 나오는게-"

 "알겠어. 아직 안 나왔다는거지."


 두 번이나 말이 끊기자 세베루스의 미간이 패였다. 해리는 유유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웃고 있는 걸 들키면 앞에 앉은 남자가 정말로 화를 낼지도 모르니 잔을 최대한 기울여 입가를 가렸다. 그러게 왜 말을 안 예쁘게 해서 남의 성질을 건드리는지. 


 "…도대체 왜 그 방을 찾는거지?"


 세베루스가 해리를 쏘아보며 물었다. 시덥잖은 대답을 내놓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해리에게는 웃기지도 않는 위협이었다. 


 "정말로 알고 싶어?"

 "……."

 "그거 알려면 나랑 같이 죽을 각오 해야 되는데."


 해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를 유심히 보던 세베루스는 마주쳐오는 초록색 눈동자가 평소처럼 장난기로 반짝거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비밀의 방'이라는 곳이 실제한다고 확신하고 있고, 그곳이 대단히 위험한 곳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세베루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하려는거지."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세베루스는 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무리 오클러먼시를 단련한다고해도 그는 아직 볼드모트의 영향권에 있으니, 더 이상 수상쩍은 비밀을 품는건 그의 목숨을 길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게 뻔했다. 


 "같이 가자고는 안 할게."


 애초에 비밀의 방을 찾는 일도 안하는게 좋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베루스가 그 일을 맡지 않으면 해리와 덤블도어는 다른 호그와트 교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호크룩스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래도…."


 스테인글라스가 있는 창문으로 길게 주홍색 빛이 테이블을 가로질렀다. 테이블을 두고 한쪽엔 세베루스가 한쪽엔 레귤러스와 해리가 앉아있었다. 서로의 상황을 경고하듯 가로지르는 주홍색 선에 시선을 두다가 고개를 든 해리가 말을 이었다. 


 "빨리 알아봐 주긴 해야 돼. 부탁할게. "


 앞으로도 이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는게 좋겠지. 서로를 위해서라도.


 

***


 시리우스는 앞에 둔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들고 있는 신문에서는 금발머리 기자가 오늘도 음흉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지만, 딱히 그의 흥미를 돋구진 못했다. 미스터리 부서의 미스터리한 근무 시간 때문에 점심약속은 불발되었어도 저녁은 같이 먹고자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했건만, 해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자 문을 걸어 잠군 호그스미드 상점들 사진이 보였다. 기자가 상점 문을 두드렸다. 한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기자가 왜 가게를 닫았는지 묻자 노인은 "눈이 있다면 누구라도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겠지!" 하고 소리쳤다. "한 번도…, 가게를 하면서 이런 상황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 상황에 왜 장사를 안하냐고? 장난하는거요?"


신문을 한 장 더 넘기자 며칠 전부터 부인이 실종했다고 주장하는 남자 마법사가 나왔다. 남자는 한번도 현장에 나오지 않는 오러를 비난했지만, 사실 오러는 현장에 다녀갔었다. 그의 부인은 머글 태생이었다. 마법부는 남자의 가정을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가정으로 분류했고, 그 사실을 남자의 가정에 알렸다. 결계 마법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도 이루어졌다. 프랭크가 그 집에 다녀온 걸 시리우스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저무는 해에 의자 밑으로 고인 그림자는 점점 길고 짙어졌다. 지우고 지워도 계속 따라오는 그림자 같았다.  


 시리우스는 신문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랐다. 닫혀있는 방문을 지나고, 서재를 지나고, 해리의 방 앞에 섰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잠시 서있다가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안은 적막했다. 제임스의 말대로 빛이 잘들게 큰 창을 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침대 옆에 등을 하나 두라고 했던가. 


 침대에 털썩 앉아 방안을 찬찬히 살폈다. 침대 옆 탁상, 옷장, 그 옆에 트렁크 가방 하나. 지팡이를 꺼내 움직이자 옷장문이 휙 젖혀졌다. 바람이 불고 그자 그 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해리의 옷이 갈대처럼 사르르 움직였다. 세탁 된 옷이라 좋은 향기가 나긴 했지만, 지금 필요한 향기는 아니었다. 


 "……."


 가만히 앉아있는데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소리가 났다. 시리우스는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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