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

벌써 몇 번째일지 새는 것조차 포기한 한숨을 내쉬고, 이미 내용물이 죄다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라 투명한 각얼음만 남겨진 유리잔 속에 덩그러니 담긴 빨대를 신경질적으로 빨았다. 당연히 약간의 물기와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시원한 느낌이 머릿속으로 번져나가는 것 같았으니까. 오늘따라 유독 카페에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으로 천만다행이었다.

‘아직인가...’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숫자는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십 분 정도 남은 시각. 생각해 보면 벌써 이십 분은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쯤 일찍 온 셈이었으니 빨라도 너무 빨랐던 걸까. 그래도 뭐,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며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할 뿐이었다.

‘의외로 너무 쉽게 오케이를 받았어.’

어플을 켜고, 벌써 백 번은 넘게 보고 또 봤던 사진을 다시금 눈동자에 되새기는 나. 그 자그마한 화면 안에는 웃통을 시원하게 깐 근육질의 회색 늑대가 한쪽 팔을 들고 구부려 알통을 과시하는 자세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찍은 셀카가 있었다. 수인 특유의 축복받은 유전자에만 기대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한 증표로서 아로새겨진, 단순히 타고난 것만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팬 식스팩과 불룩한 가슴팍이 시선을 강탈하는 사진. 광량이 좀 부족한 모양이었는지 화질이 다소 자글자글한 편이었다는 점이 유일하게 애석할 정도로 완벽한 몸과 얼굴이었다.

‘항상 체형이 맘에 안 든다, 자기는 이왕이면 수인이랑 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거절만 당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도 참 남사스럽지만, 예의 그 어플이란 건 당연히 그렇고 그런 어플이었다. 원나잇 상대를 찾아서 하룻밤 즐기고 헤어지는, 좀 더 점잖게 말하자면 ‘데이팅 어플’ 말이다. 다만 보통의 데이팅 어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남자와 남자끼리 주선해 주는 게이 데이팅 어플이었고...

‘이런 근육남이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거랑.’

인간과 수인이 모두 가입할 수 있는 참 보기 드문 어플이라는 점이었다. 나 같은 ‘수인충’ 인간이나, 나와는 정반대의 성벽을 가졌을 소위 ‘인간충’ 수인에게는 퍽 이상적인 어플이겠지. 뭐 그런 주제에 정작 프로필에 수인끼리만, 심지어는 아예 같은 종족끼리만 한다고 적어놓는 식으로 미리 철벽을 치거나, 채팅하는 동안엔 가만히 있다가 서로 사진을 교환하면 갑자기 그런 궁색한 변명을 하는 양반들 천지이기는 했지만.

‘아니, 아니지. 애초에 그런 취향일 수도 있잖아? 나처럼 좀 슬림한 인간을 좋아한다거나... 내 취향이랑은 정반대네, 하하.’

덕분에 매달 구독료만 뜯기고 정작 만남은 단 한 번도 성사되지 못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씨팔, 사진만 봐도 존나 꼴려.’

오늘 이렇게 대박을 건진 것이었다. 내가 인간인 것을 알고도 단칼에 쳐내지 않고 오히려 먼저 주도해서 약속을 잡은 근육질의 늑대. 심지어 나이도 올해 스물넷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생일은 내가 몇 달 더 빨랐지만.

‘체대생... 이랬지. 미친, 진짜 완벽하잖아. 태클 걸 부분이 하나도 없어!’

정말이지 모든 면에서 내 스트라이크 존에 완벽하게 들어오는 상대였다. 일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늑대인 것부터 시작해서 키도 크고 근육질인데, 무려 체대생이니까 침대에서 힘도 잘 쓸 테고... 게다가 침 넘어갈 정도로 두꺼운 눈썹까지. 그리고 아침에 잠깐 전화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도 딱 상상했던 그대로의 이상적인 저음이었다. 이런 야한 몸인 주제에 모기 소리처럼 앵앵거리는 목소리였으면 좀 깼을 텐데 말이지.

‘마, 만나면 먼저 뭐부터 해야 하지? 인사는 어떻게 하고? 젠장, 이런 거 처음인데...’

하지만 그런 한가한 상념도 잠시뿐이었고, 약속 시간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와 초읽기에 들어서자 나는 다시 허둥대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상대에게 난 별로 인기 있는 타입이 아니었고, 덕분에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나마 한 가지 기대볼 만한 건, 저쪽이 생긴 그대로 아다폭격기라서 노련한 경험으로 날 리드해주는 시나리오였지만...

‘처음이라서... 다 서툴 텐데. 그래도 괜찮으려나.’

만약 처음인 녀석이 취향이 아니라면 어쩐담, 같은 걱정에 사로잡힌 나는 어느새 이마에 또르르 흐르던 식은땀을 티슈로 쓱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고 가볍게 심호흡을 하려던 찰나,

“... 저기.”

카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성큼성큼, 내가 앉아 있는 구석 자리 쪽으로 걸어왔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커 보이는 키, 거의 핫팬츠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빨간색 추리닝 반바지, 그리고 옷이라기보단 차라리 속옷에 가까워 보이는, 민망할 정도로 딱 달라붙은 검은색 머슬핏 런닝...

“핸드폰 뒷자리 6974, 맞으시죠?”

사진으로 봤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실물이 더 나아 보이는 회색늑대가 허리를 엉거주춤 굽혀 나와 눈높이를 간신히 맞추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 둘 다 대놓고 밖에서 부르기엔 좀 창피한 닉네임을 쓰고 있었던지라 정했던 일종의 암구호였다.

“그, 그쪽은... 좋아하는 영화가 ‘개미맨’, 이고요?”

내가 이렇게 호응하자 그는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찍 오셨네요.”

내 맞은편 의자를 바깥으로 당겨 빼내고는 그대로 털퍼덕 걸터앉았다.



“아, 네...”

어딘지 번들거리는 빛을 내는 누런 흰자위 안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나를 마치 스캔하듯 몇 번 훑어보더니,

“오늘이 처음이죠?”

대뜸 이렇게 내 아픈 부분을 찔러왔다.

“... 어, 어떻게 아셨...”

“푸훗, 어깨가 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베테랑일 리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어플로 주문했는지 이미 카운터에 준비되어 있던 커피를 받으러 잠깐 일어섰다가 다시 돌아온 그는,

“그건 그렇고... 우리 동갑인데 말 놓을까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다소 억지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뭐, 나로서도 바라던 바였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마는.

“그래, 그럼 편하게 말한다.”

그러자 그는 씩 웃어 보이고는 전화로 들었던 것보다 살짝 높고 나긋나긋하던 목소리에서 좀 더 묵직한 원래의 목소리로 냉큼 갈아탔다. 아마 말투뿐만 아니라 목소리 톤도 영업용 톤과 평상시 톤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이랬지... 그럼 그냥 나한테 다 맡길래?”

다시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게 속삭이듯 한 마디 덧붙이는 그를,

“...”

나는 침만 꼴깍 삼키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말을 꺼내기엔 이미 내 머리는 뻗기 직전의 과부하 상태였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많이 해봤거든, 나.”

사실 뭐라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최고의 시나리오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경험 많은 이 늑대가 초짜인 날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해주겠다고, 이렇게 선수 쳐서 선언해 주다니.

“기분 좋을 거야. 엄청, 무지.”

볼륨이 한층 더 줄어서 이제는 속삭이는 수준도 아니고, 아예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고,

“나한테 맡겨줘.”

그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 끝이 내 얼굴에 거의 닿기 직전인 거리까지 몸을 숙이며 다가왔다. 거칠고 따스한 숨결이 얼굴 전체를 가볍게 만지며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널....”

그리고 그 순간,

“통째로 다.”

“...”

내 아랫도리는 참으로 정직하게도, 아주 불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응.”

결국 나는, 퍽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맡길게.”

함락당하고야 말았다.

“오케이. 그럼...”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한다? 약속할 거지?”

한 번 더 다짐을 받아내려 들었다. 초짜가 자기 말을 안 들어서 흥을 깼던 적이 있기라도 했던 걸까.

“어... 응. 약속할게.”

아마 저 바지 안에 감춰진 대물 자지에 엉덩이를 꿰뚫린 초짜가 난리 부르스를 떨었던 모양이겠지. 하기야, 아침에 사진으로 봤던 바로는 정말 무지막지한 괴물이었단 말이지. 그럴 만도 해. 나도 어찌어찌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뭐가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힌다니까.

“약속한 거다.”

하지만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내가 쭈뼛대면서도 끝내는 그러겠노라 약속하자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원래부터 보기 좋게 위로 쭉 뻗어 있었던 두 귀도 아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짝 치솟아서 기분 좋게 움찔거리기까지. 이윽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아직 반 넘게 남아 있던 커피잔을 탁자 한편으로 치워놓고는 오른손을 슬그머니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빼더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갑자기 그 오른손으로 내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스킨십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 좋았다. 엄청.

“내 말 들어야 해.”

제대로 다듬지 않은 손톱이 손바닥을 긁고 지나갔는지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든 건 좀 에러였지만 말이다. 그 덕에 눈을 살짝 찌푸리던 나를,

“일단 첫 번째 명령.”

아까보다도 더 번들거리는, 이제 가느다란 핏발까지 선 늑대의 눈이 노려보다시피 바라보았다.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그의 ‘명령’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어... 어어?”

나는 엄청난 어지럼증과 함께,

“으아아악!”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마.”

그의 조소 섞인 한 마디가 기묘한 울림으로 귓가에 메아리치면서.

furry m/m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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