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현x김원필






남자의 뒤를 따라 5분 남짓 걸었을까. 남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옆에 서 있던 센티넬에게 눈짓한다. 그러자 센티넬이 원필과 영현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악수라도 하자는건가? 원필이 멀뚱멀뚱 제게 건내진 손만 바라보고 있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직은 그쪽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우리도 나름의 보험을 들어야지."




재촉하는듯 한 남자의 눈빛에 마지못해 건내진 손을 붙잡았다. 손이 맞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둘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썩 유쾌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때문인지 놀란 원필이 다급하게 영현에게로 손을 뻗는다. 영현의 온기가 전해지자 그제야 좀 안심이 된다. 시야가 차단된 채 이끄는대로 조심스럽게 걸어나갔다. 원필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길을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는 아까 전에 지나친 길 같은데. 눈이 보이지 않아도 원필의 예민한 신경은 주위 공기를 읽기라도 하듯 한 번 지나쳤던 길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시야를 가리고서도 뱅뱅 돌아가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을 숨겨놓기라도 한 것일까. 한편으로는 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들의 마음도 이해는 가는지라 원필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모른척 따라가기로 했다. 한참을 뱅뱅 돌더니 처음 들어서는 길목에 다다랐다. 멀지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많은 수였다. 긴장감에 다리가 굳었다. 




"뭐해?"




남자가 물었다. 원필은 주저하듯 입술을 달싹이다 붙들고있던 센티넬의 손을 뿌리쳤다. 가려진 시야는 여전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에요? 시야 가려놓고 뱅뱅 돌아서 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걸 어떻게 믿고 따라가죠?"

"그럼. 이 벽 너머에서,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우리를 믿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는데?"




원필이 고집스럽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자 남자가 한숨을 내쉰다. 한순간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빛에 눈이 부셔 눈을 찡그렸다. 남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얼마 안남았어."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거죠?"

"가보면 알아."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뒤 돌아 걸어가버리는 탓에 잠자코 따라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자 꼴은 엉망이지만 나름 갖출대로 갖춘, 집이라고 부를만 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큰 건물들은 아니었으나 가깝게 모여있는 것이네꼭 한 동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가장 커다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안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꽂혔다. 다들 숨죽이고 원필과 영현을 바라봤다. 




"리더는?"

"...2층에."




남자는 원필과 영현을 구석진 테이블에 데려다 앉힌 후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내부는 심플했다. 벽을 모두 뚫어 널찍한 공간을 만든 후 테이블을 가득 채워둔 형태였다. 슬슬 제게 쏟아지는 경계어린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 시작 할 때 쯤 2층에서 누군가 걸어내려왔다. 크고 선한 눈을 한 남자였다. 그는 원필과 눈이 마주치자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걸음을 재촉해 다가왔다. 나란히 자리한 둘의 앞자리에 앉은 남자가 근처에 있던 무리에게 시선을 보내자 이내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건물을 빠져나갔다. 원필과 영현, 그리고 리더라 불리는 남자 셋만이 남았다. 






*






남자는 한동안 원필과 영현의 얼굴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원필 또한 영현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손가락만 꼼질거렸다. 침묵을 견디다 못한 영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안다."

"..."

"사정은 대충 들었고, 그냥 대화 쫌 하고싶어가."

"저는 강영현이고 가이드입니다. 여기는 센티넬 김원필이고요."




원필이 선뜻 입을 열기를 꺼려하는 눈치라 영현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텄다. 




"능력은?"

"...사이코메트리."

"뭐 그 능력이면 빨리 찾아왔겠네."

"네?"

"능력 써가 읽으면서 오면 금방 왔겠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에 고개를 푹 숙였다. 




"뭐, 그럴 수 있지. 센터에서도 논랭크들이 여기저기서 능력 남발하는게 달갑지는 않으니까 억제하는 방향으로 훈련시켰겠지."

"훈련 받은 후로는 안쓰는 버릇을 해서..."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했네. 박성진이고.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는 쫌 그런데, 여기를 센터 훈련담당이 알려줬다캤지?"

"...네."

"사실은 내도 여기 오기 전에는 센터 소속 센티넬이었거든.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해서."




원필은 선뜻 제형의 이름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제형의 이름을 알려줘도 괜찮은걸까. 




"그럼, 그쪽 능력이 뭔지 먼저 알려주세요."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는 원필을 보며 성진이 호탕하게 웃는다. 그래그래. 신중한건 마음에 드네. 




"알려달라면 알려줄 수는 있는데 내 능력이 쫌 설명하기가 애매한데."

"무슨 능력인데요?"

"음...진실을 꿰뚫는 눈이라고..."

"설마 진리의 눈?!"




성진의 말에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영현이 놀란 눈을 하고 끼어든다. 진리의 눈? 성진은 민망한 표정을 한 채 볼을 긁는다. 




"센터에서 내를 그렇게 부르긴 했지. 니는 그걸 우예 아노?"

"저희 부모님이 센터 소속이셔셔...얼핏 들었어요. '진리의 눈을 잃었다' 고."

"오호, 부모님이 센터 소속이가? 보아하니 니는 미등록 가이드인것 같은데. 부모님이 어지간히도 아끼셨나보네."

"진리의 눈이라는건 뭐에요?"

"진리의 눈이라는 호칭은 좀 거창하고. 그냥, 딱 보면 알지.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여기는 어쩌다 오게 된 거에요?"

"말하자면 긴데. 간단하게 말하면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어서? 우연히 논랭크 가이드가 폭주하는걸 봤거든. 그런데 센터에서는 손을 안쓰더라고? 그 후에도 계속 내한테 거짓말만 하고.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




논랭크 센티넬의 폭주, 그리고 그를 묵인하는 센터. 성진이 그것을 목격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성진은 센터의 가장 깊숙한 곳 중 하나인 정보처리부에서 일했다. 전장에서 몸으로 뛰는 다른 센티넬들에 비해 몸 편히 일하는데다 성진만 전담하는 가이드가 따로 있어 그는 자신의 위치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1인 사무실 줘, 전담 가이드 붙여줘, 밥 때 되면 알아서 밥도 대령해줘. 이보다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성진이 하는 일은 빼돌려온 정보나 붙잡아온 포로가 털어놓는 발언 등의 진위여부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성진에게는 숨 쉬는 것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그 날은 유독 일거리가 많았다. 한참이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도 뻐근하고 허리도 쑤셨다. 근처 카우치에 몸을 파묻고 꾸벅거리고 있는 제 가이드를 슬쩍 살피다가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빠져나왔다. 본래의 성진은 정보처리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는 법이 없었다. 일 하는 내내 사무실에 있다가 그 날의 업무가 끝나면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성진의 일과는 숙소 사무실 숙소 사무실의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성진이 이렇게 센터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적한 복도를 지나 중앙 로비에 다다른 성진은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내부 안내도를 살핀다. 제 사무실 이외에는 같은 층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오호, 이런 부서도 있었네. 팔짱을 끼고 안내도를 살피던 성진이 안내도 구석진 곳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창고...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창고라고 쓰여있지만 성진의 눈은 거짓이라 말하고 있었다. 왜 창고도 아닌 곳을 창고라고 표기해 놨을까. 오랜만에 성진의 호기심이 동하는 순간이었다. 




와. 센터 건물이 이래 넓었나. 안내도에 창고라고 쓰여있던 공간을 찾기 위해 한참을 걸어왔다. 성진의 사무실과는 정 반대에 위치한 곳이었다. 역시나. 창고라고 하기에는 한눈에 봐도 너무 넓은 공간이다. 문 근처에는 이 공간이 무엇에 쓰이는 곳인지 설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음, 내 직감이 이 곳이 굉장히 수상하다고 말하고 있군. 성진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게 뭐고. 분명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또 문이 있었다. 상자 속의 상자 뭐 이런건가. 방 안의 방? 안쪽에 위치한 문 옆에는 꽤나 커다란 모니터가 붙어있었다. 모니터 화면은 여러 개로 분할되어 각기 다른 장소의 CCTV화면을 송출하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센티넬이었고 하나같이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온 몸을 비틀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때 단단히 중무장을 한 이들이 그 방에 들어왔다. 성진은 그들이 의료 센티넬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곧 치료를 받고 상황이 마무리 되겠구나. 하지만 그들은 그저 멀찍이 서서 고통스러워하는 센티넬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센티넬의 상태는 더욱 안좋아지고 있었다. 그 영향에서였는지 그 방의 화면만 노이즈가 심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작은 화면을 뚫고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성진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뜨자 노이즈가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온 화면이 보였다. 성진은 화면을 바라보기가 두려웠지만 두 눈은 홀린 듯 시선을 고정했다. 센티넬의 폭주를 지켜보던 이들은 본래의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끔찍한 꼴을 한 시신을, 마치 짐짝이라도 옮기는 것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들것에 싣고 사라졌다. 방의 상황은 가장 끔찍한 방향으로 마무리 되었다. 




성진은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와 제 사무실로 돌아왔다. 화면 너머로 봤던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서 도통 일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기본 할당량조차 채우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부터 일하는 중간중간 자신이 발견한 장소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자료를 뒤적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애초에 쉽게 찾지는 못하리라 예상했지만 이정도로 꽁꽁 감춰두었을줄이야. 성진은 조사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기록물에서 찾지 못한다면 사람한테서 정보를 얻어야지. 




시간이 지나면서 성진이 알게 된 것은 센터 내에 성진을 속이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것 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거지? 곧이어 깨달았다. 이렇게 중요한 직책을 맡아 센터의 내부 정보를 다루는 자신이 왜 지금까지 고위 간부들과의 대면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는지. 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진리의 눈'이 자신들을 꿰뚫어 보는 것이. 






*



내글구려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입니다...ㅜㅜ오늘도 함께 필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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