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의 집은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았어요. 물론 그렇게 가깝지도 않았고요. 항상 빅터의 집으로 향할 때마다 적당히 지칠 때쯤 빅터의 집에 도착했거든요.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빅터와 걸어가다 약간의 피곤함이 제 어깨를 누르려할 때 빅터의 집에 도착했으니까요. 뭐라고 해야 될까, 빅터의 집은 제가 느끼기에 항상 적당한 거리에 있었어요.

빅터의 집도 큰누나가 살고 있는 곳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았어요. 하지만 빅터가 사는 곳은 큰 누나가 사는 곳처럼 사람들끼리 그저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는 건 빅터와 함께 그 집에 발을 들어 놓았을 때부터 눈치챌 수 있었어요. 빅터와 제가 집에 들어서자 중년의 여성과 몇몇의 아이들이 빅터를 웃으면서 맞았고 저를 반겨줬어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말이죠. 저는 그때 존슨 부인이 떠올라 약간 울컥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를 반겨주는 이들 앞에서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웃었고, 빅터는 그들에게 사온 빵과 과자를 나눠줬어요. 그리고 곧 저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면서 “오늘은 아무도 방해하지 마세요.”라고 사람들에게 작게 말했어요. 빅터는 자기 목소리가 저한테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빅터의 말에 그냥 ‘평소에 정말 격 없이 지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뿐이었어요. 그리고 곧 빅터가 부러워졌어요. 그게, 그런 큰 도시에서 가족이 아니라도 저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보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빅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도, 이렇게 살고 있는 빅터가 부러운 것도요.


빅터의 안내에 따라 빅터의 방에 들어간 저는 빅터의 말에 따라 의자에 앉았고, 빅터는 “물을 끓여 올 테니 잠시 기다려요.”라고 제게 말하곤 방 밖으로 나갔어요. 저는 빅터가 이야기 말하는 동안 계속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리고 빅터가 주전가에 물을 끓여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꽤 한 참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창 밖에는 햇빛이 들어왔지만, 빅터의 방은 뭔가 싸늘했어요. 추워서, 바람이 창문 틈새로 들어와서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어요. 뭔가 쓸쓸한 느낌이 빅터의 방 곳곳에 퍼져 있다고 생각돼서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저는 창문에서 눈을 돌려 빅터의 방을 훑었어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빅터가 너무 안 오기에 심심했거든요. 의자에서 일어나서 창 가까이 가거나,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거나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요. 아 물론, 중요해 보이거나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물건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괜히 문제를 만들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빅터의 방을 이리저리 살피다 저는 빅터의 침대에 주저앉았어요. 엉덩이에서부터 느껴지는 푹신한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졌죠. 저는 자연스럽게 빅터의 침대에 몸을 뉘었어요. 그리곤 곧 눈을 감았어요.


빅터를 닮은 향이 코를 스치더니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빅터가 제 단추를 풀고 있는 장면이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을 통째로 옮겨온 느낌이었어요.

빅터의 손이 셔츠 하나를 두고 제 몸을 어루만지는 것도, 풀어진 셔츠 사이의 제 맨살을 슬쩍 바라보는 빅터의 시선도요. 저는 그런 빅터의 행동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고요. 빅터가 제 셔츠의 단추를 다 풀어헤치고, 밑에서부터 다시 잠그려고 하는 순간에 저는 빅터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빅터에게 입을 맞췄어요. 그리고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고요.

저는 곧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어요.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몸이 그런 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고 저는 급히 다른 생각을 했어요. 그런 모습을 빅터에게 보일 순 없었으니까요.


조금 후에 빅터는 김이 나는 주전자와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깔끔한 찻잔을 들고 왔어요. 의자에 앉아 있던 저는 빅터에게 반겼지만, 당장은 빅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가방에서 챙겨 온 찻잎이 든 병을 꺼냈고 빅터에게 차를 만들어 줬어요. 빅터는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 배웠어요?” 저는 그런 빅터의 말을 듣고 “뭐가요?”라고 답했어요. 빅터는 제가 차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따라주는 행동에 조심성과 예의가 많이 베여있다고 했어요. 길거리나 흉내 내는 것과는 한참 다르다고 말이죠. 또 이런 낡은 주전자, 찻잔인데도 엄청 소중히 다룬다고 덧붙였어요. 저는 “전에 일하던 곳에서 배웠어요.”라고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어요. 레이크 저택에서 일한 걸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테스 도련님이 떠오르니까요.

빅터는 아직 의문스럽다는 듯 저를 바라봤지만 더 질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다른 걸 물었어요. “왜 갑자기 제 시선을 피해요?”라고 빅터가 말했어요. 저는 그 말과 동시에 빅터를 바라보고 말문이 턱 막혔어요.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변명을 만들기에는 거짓말을 하는 게 바로 탄로 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어요. “어쩌다가 보니...”라고요. 빅터는 제 대답을 듣고는 말했어요. “얼굴은 왜 갑자기 빨개졌어요?” 저는 그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빅터의 시선을 피하는 게 다였어요. 빅터는 대답을 하지 않는 제 속이 궁금했겠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제게 대답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가 대답하기를 기다렸어요. 저는 빅터가 그렇게 제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고요.


빅터와 제가 말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창 밖으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꽤 익숙한 목소리였어요. 저는 궁금하기도 했고, 빅터의 시선을 돌리고도 싶어서 의자에서 일어나 창 가까이로 갔어요. 아까 일층 거실에서 봤던 아이들이었어요. 어느새 제 뒤로 온 빅터가 말했어요. “아줌마, 아저씨가 일하러 가면 저렇게 자기들끼리 있어요. 좀 위험해 보이네요.” 저는 가까이서 들리는 빅터의 음성에 뒤를 돌았어요. 빅터는 제게 옅은 미소를 보여주고는 창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소리쳤어요.




“위험하니까 멀리는 가지 마!”




크게 외침에도 불구하고 빅터의 목소리는 듣기 싫지 않았어요. 아니 오히려 듣기 좋은 목소리였어요. 목소리가 편안함을 업고 제게 오는 것 같았으니까요. 편안함에 긴장이 풀린 저는 빅터에게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일 구해야 하긴 하는데... 걱정이네요.” 빅터가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했어요. “왜요?” 저도 빅터를 따라 의자에 앉으며 말했죠. “여기서는 일자리를 어떻게 구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빅터는 “다른 곳이랑 비슷할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호텔에서 직원을 한 명 구한다던데 한번 말해볼까요?” 빅터의 말을 저는 거절하고 싶었어요. 전에 사람들 사이에 깔릴 뻔했던 게 기억나서 좀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에 제가 뭐를 가리고 할 형편은 아니었었고, 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어요. 빅터는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짓고는 제게 말했어요. “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은 제가 가르쳐 드리면 되고...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빅터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고 멋쩍게 웃으면서 저를 바라봤어요. 저는 그런 빅터의 행동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빅터와 마찬가지로 딱히 그 말을 비집고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웃음으로 대신했죠. 묘한 느낌을 빅터와 제 사이를 감돌았어요. 그 날 따라 서로 숨기는 게 있었으니까요. 그 묘한 느낌은 곧 어색함을 불러냈고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자연스레 피하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 둘 다 그것을 알았죠. 그런 어색함을 깬 건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빅터의 방문을 두드렸거든요. 빅터가 문을 열어주자 아이들은 빅터에게 놀아달라며 떼를 썼고 저는 그런 당황스러워하며 저를 슬쩍 바라보다 웃는 빅터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그런 저를 발견하고 빅터에 이어 제게까지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만한 아이들을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어요.



빅터와 저는 꽤 한참 동안 아이들과 놀아줬어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공을 함께 차며 놀기도 했고, 어딘가로 숨어버린 아이들을 찾으며 놀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빅터와 저는 지쳐갔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좀 차분해 지기를 바랐어요. 둘이서 있을 때 느껴졌던 어색함도 잊고 저는 빅터와 함께 어떻게 하면 애들을 좀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저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어요.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죠. 하지만 빅터가 “이미 이 집에 있는 책은 아이들에게 수도 없이 읽어줬어요.”라고 했고 저는 그런 빅터의 말에 “제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줘도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했어요. 빅터는 그렇게 하자고 제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빅터와 저는 아이들을 빅터의 방에 모아 침대에 앉혔어요. 그리고 따뜻한 차와 과자를 아이들의 손에 쥐어줬어요. 막상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니 아직 말똥말똥한 아이들의 눈이 제 자신감을 떨어뜨렸어요. ‘안 자면 어쩌지...’하고 생각하면서 빅터를 바라봤을 때 빅터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를 말똥말똥하게 보고 있었어요. 저는 그런 빅터의 모습에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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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추워지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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