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우리는,

4월 April_신이 되기로 한 사나이

*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2 아레나)
* 이 글은 벤 포스터/팀 민친 페어 기반 2차 창작으로 특정 종교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역이고_뭐고_간에_그들은_사랑을_했다
#Special thanks to 뀨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코앞에 나타났을 때, 유다 이스가리옷은 덜컥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그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눈꼬리가 가볍게 휘어졌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인자한 갈색 눈동자는 일말의 오차도 없이 제자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거뭇거뭇 자란 수염이 입술의 호선을 얼핏 감추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지?"

  제 앞에 턱을 괴고 앉은 스승으로부터 발작처럼 화다닥 떨어지며 유다는 헛기침을 했다. 감히 설교 도중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도 대답하지 않고 딴 생각에 잠겨있었으니 된통 꾸지람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예수는 외려 웃는 얼굴로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그 표정에 대고서는 도저히 진실을 고할 수 없는 노릇이라, 유다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노트를 괜히 펄럭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라 있을 것은 안 봐도 불 보듯 뻔했다.

  "시몬이 잃어버린 영수증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유다는 개의치 않았다. 졸지에 친우를 팔아넘긴 꼴이 되었으나 시몬이 영수증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었고, 또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예수는 그의 대답을 숙고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로구나, 유다는."

  입술을 꾹 깨문 것은 그조차도 힐난 조가 아닌 탓이었다.


*


  요즘들어 유다 이스가리옷은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봄 날씨는 따뜻하면서도 건조하여 그야말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역을 하기에는 최적의 기후였지만, 그는 그 어떤 가난한 이들이나 소외된 이들에게도 도통 마음을 쓸 수가 없었다. 봄바람이 들어 그런가 하고 보면 그렇다고 딱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은 아니어서, 계절 때문이라 치부하기도 애매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뿐인 탓이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인 탓이었다. 정리하지 못한 지출과 송금 내역이 가득한 장부가 그의 텐트 한 구석에 쌓여만 갔다.

  그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시몬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도들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고 지내는 유다가 가장 막역하게 대하는 이가 시몬인 이유도 있었으나, 변화를 눈치 채고서 당사자에게 그것을 언급할 만큼 가장 참을성이 없는 이가 시몬인 탓도 있었다. 이 열성단원은 그날 밤 잠들지 못하고 계단에 앉아 맥주캔을 홀짝이는 유다를 찾아와 그의 왼팔을 툭 건드렸다. 유다는 이마를 구겼고, 시몬은 그와 난간 사이의 좁은 틈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서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데에 성공했다. 술기운에 따뜻하게 오른 체온이 밤기운에 살짝 녹아있었다. 시몬이 물었다. 

  "어떤 여자야?"

  유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네가 지금 생각하는 사람."
  "무슨 말이야."
  "뻔하잖아, 밤에 잠 못 들고 한숨 쉬는 게. 누군데, 지난 번 마을에서 만난 그 여자?"

  유다는 맥주캔을 든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검은 머리가 예쁘던데, 하는 시몬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으나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차라리 그를 잠 못 들게 하는 대상이 그들 무리에게 호의적인 어느 보통의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천성이 타고나기를 잘못 타고난 탓인지, 그는 안정적이고 평범한 상대에게는 좀처럼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금껏 벼랑 끝에 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서른을 갓 넘긴 유다 이스가리옷은 동정은 아니었지만 결코 그 방향에서의 경험이 풍부하다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만에 하나 '그'가 여느 평범한 여성과 다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내가 무슨 한숨을 쉬었다고 그래."

  억지로 숨을 고른 목소리는 기괴했다. 시몬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만들어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숨길 필요 없잖아,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쌓여가는 한숨을 참아내는 것은 그때 즈음에는 불가능해졌다. 유다는 길고 묵직한 숨을 내뱉었다. 

  신과 인간의 기로의 선 것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했다. 유다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설령 알았다 한들 그가 자신의 넘실대는 감정 속으로 익사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이 총애하는 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신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여정은 많은 순간 역경을 포함했다. 유다는 매 순간, 그의 스승이 섬기는 신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에게 신은 그저 존재하는 자였고 방관자일 뿐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보는 세계를 함께 보고자 애를 썼다. 그리하면 상대방 역시 자신이 보는 것을, 자신이 보는 방법대로 함께 바라봐줄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그렇게 유다는 스스로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사랑은 때로 이토록 어리석다.

  "남자답게 고백해버려."

  시몬 질럿이 부추겼다. 유다는 결심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예수는 텐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저녁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 금세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어보인 것으로 보아, 그저 생각에 잠겨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고 유다는 생각했다. 이미 기척을 들켜버린 데에야 더 이상 발소리를 죽일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는 성큼성큼 스승에게로 다가갔다. 겉옷을 벗어둔 그의 스승은 달빛 아래 조금 더 영롱해보였는데, 그 자비로운 얼굴이 너무도 성스러웠으므로 유다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자니?"

  바로 옆에까지 다가온 자신의 오른팔을 향해 예수가 물었다. 유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요."
  "내일 갈 길이 멀단다."
  "압니다. 괜찮아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고 나니 대화거리는 빠르게 떨어졌다. 유다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발끝을 뒤챘다. 바닥으로부터 자갈이 튀어오르자, 예수의 시선이 물끄러미 따라왔다. 제자는 단번에 발동작을 멈추고 현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당차게 그의 텐트 앞까지 온 것은 좋았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입술을 한 번 떼는 것부터가 잔혹한 고문이 따로 없었다. 한참이나 머리를 굴려대던 유다가 마침내 입을 열기 위해 몸을 돌렸으나, 그의 스승이 한 발 빨랐다.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지?"
  "아무 생각도…. 그냥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수세에 몰린 유다가 할 수 있는 답은 정해져있었다. 예수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거짓말."
  "아닌데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단다."

  그러자 유다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퉁명스러운 표정과 당황한 표정 사이의 무언가를 가장하며 배꼽 아래의 간지러운 기분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차라리 귓가가 뜨거워지기를 바랐건만 자꾸만 달아오르는 것은 눈시울이었다. 그는 주먹을 꾹 쥔 채로 몇 번이나 마른 침을 삼켰다. 랍비는 기다렸다. 그것이 자신의 제자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미욱한 인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유다가 물었다.

  "정말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안다마다."
  "그런데 대답이 그게 다예요?"

  그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눈을 감아도 떠도 보이는 것은 한 가지 얼굴뿐이었기 때문에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예수는 팔짱을 끼고 선 채로 자신에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모래 섞인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흐트러트려 놓는 것을 유다는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이 아래를 향했다. 셔츠자락이 늘어진 목걸이 위로 펄럭였다. 그리고,

  "유다."
  "네."

  예수의 입술이 한 번, 딱 한 번, 소리도 없이 달싹였다.

  아.

  유다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의 사랑하는 스승은 결국 신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잔인한 숙명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와 스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도, 이제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모두 불가능했다. 허탈한 웃음이 후두를 비집었지만 유다는 입을 다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팔짱을 낀 스승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소맷깃을 끌어당겨 드러난 남자의 손등에 정중하게 입을 맞추었다. 까칠한 그 입술이 떨어졌을 때, 예수가 나직이 말했다.

  "나 또한 너희를 사랑한단다."
  "알아요. 일단은 그걸로 됐습니다."

  유다가 대답했다. 그의 마지막 거짓말이었다.



▶ 5월_키스, 키스,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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