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라는 이름으로 야수를 사냥하기 시작한 지 고작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피와 야수의 냄새만큼은 바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질리게 맡았다. 반나절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다 떨어지지 않은 해를 보고 생각하는 것일뿐, 실제 내 감각은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마치 꿈을 꿀 때는 현실과는 다른 시간감각이 적용되는 것처럼 묘하게 뒤틀려버린 시간 감각. 피 냄새를 맡는 것은 마치 오래 숙성된 독주의 향을 맡는 것과 비슷하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향에 어지러움이 느껴지지만 금방 그 어지러움마저 달콤한 유혹이 되어 거부하기 힘들어진다. 반면 야수는 냄새가 축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진하고 퀴퀴하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습한, 밀폐된 방에 갇힌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사냥꾼의 체취도 피나 야수의 냄새만큼 강렬한 모양이다. 야남 시민들은 냄새만으로도 내가 사냥꾼인 것을 알아차린다, 어린 소녀마저도. 사냥꾼의 체취는 야수의 냄새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표현하기 힘든 피비린내가 감도는 죽음에 가까운 냄새도 썩 유쾌하지는 않을 터다.

지금 나를 향해 무섭게 도끼를 휘두르는 이 남자, 개스코인의 체취는 사냥꾼과 야수의 냄새가 뒤섞여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재빠른 몸놀림. 다른 사냥꾼의 전투를 본 적은 없지만, 개스코인은 사냥꾼이라기보다 오히려 야수에 가까워 보였다. 두 눈을 붕대로 가린 것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기에 그의 공격은 너무 날카롭고 매서웠다. 개스코인은 큰 덩치만큼 강한 힘으로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나를 위협했다. 그러나 공격 동작이 크면 반격의 틈이 반드시 있는 법. 개스코인이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며 도끼를 내리치는 순간 그의 도끼를 노려 총을 쏘았다. 털썩. 총탄에 맞은 도끼가 옆으로 튕겨 나가며 그가 중심을 잃고 힘없이 바닥에 풀썩 두 무릎을 꿇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개스코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톱날이 개스코인의 살갗 아래의 혈관을 긁어내며 그의 오른팔과 배의 살갗을 갈랐지만, 치명상을 입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냄새는 뭐지?"

개스코인은 나를 밀쳐내고 일어서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아... 하아... 달콤한 피가, 노래를 하는구나.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던 개스코인은 한손도끼를 길게 변형하여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 거리가 길어진 만큼 그와의 간격을 잡는 것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오른팔과 배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희열에 찬 웃음섞인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휘두르는 그는, 말 그대로 피의 광기에 사로잡힌 듯했다. 기다란 도끼를 휘두르는 공격이나, 찌르기 공격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면 어김없이 그의 산탄총이 뒤따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스코인의 파트너 헨릭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과 묘지에 어지럽게 늘어선 비석들이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는 점이었다. 물론, 개스코인을 향한 내 공격도 예외는 아니었다. 힘에서도 체격에서도 열세인 나로서는 정면에서 공격하기보다 패링을 노려 빈틈을 만들어 공격을 가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몇 번의 공격을 성공해 개스코인의 옷이 반 이상 피로 물들어갈 때쯤, 그가 괴로운 듯 몸을 웅크리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나고 밝은 빛이 번쩍하더니, 개스코인이 서 있던 자리에 신부복을 입은 야수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야수가 된 개스코인은 더욱 상대하기 힘들어졌다. 양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돌진하는 그의 공격은 내리막길에서 제어를 잃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짐마차를 정면에서 보는 것 같았다. 거리를 벌리더라도 강인한 다리로 뛰어올라 바로 내 앞에 와서 거침없이 팔을 휘둘렀다. 이대로 개스코인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 그와의 전투를 포기하고 성당 구역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철문을 밀어보았지만, 문은 자물쇠로 잠겨 열 수가 없었다. 바로 옆은 막다른 길이고, 개스코인은 그르릉하는 괴성을 내지르며 계단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가로등 아래 난간의 일부가 부서져 뛰어내릴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가로등 아래는 나와 개스코인이 아닌 누군가의 피로 얼룩져있었고, 난간에서 뛰어내린 묘지기의 집 지붕에는 여자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금발의 머리칼과 하얀 피부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가슴께에는 크고 붉은 브로치가 장식되어 있었다. 붉은 브로치, 소녀의 엄마이자 개스코인의 부인 비올라가 분명하다.

난간 위를 올려다보니 개스코인은 어느새 난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뛰어내리려는 찰나 다급하게 던진 화염병이 그의 얼굴에서 폭발했다. 불똥이 나에게도 조금 튀었지만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개스코인은 화염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면서 맥없이 내가 서 있는 지붕 위로 떨어졌다. 상처 부위가 눈과 얼굴이었기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허우적대는 개스코인을 상대하기는 훨씬 쉬웠다. 남아있는 수은탄을 거의 다 퍼부어야 하긴 했지만, 마침내 지붕 위에는 부부가 싸늘한 주검으로 나란히 눕게 되었다. 비올라의 브로치를 떼내면서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았더니, 그녀는 일격에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다행히 도끼로 인한 상처는 아닌 듯 보였다. 소녀에게 부모의 죽음을 알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지만, 유품이라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불에 조금 그슬린 치유 교단 문양이 수 놓인 개스코인의 목도리도 함께 가져 가기로 했다. 목도리를 벗겨내자 개스코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듯한 열쇠가 보였다. 브로치와 열쇠, 목도리까지 모두 가지고 지붕에서 뛰어내리자 개스코인이 도끼질을 해대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져 있는 시체가 보였다.

정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아마 비올라는 이 묘지에서 개스코인을 찾아 헤매다 야수화가 진행된 사람들과 마주쳤을 것이다. 도주로는 아마도 내가 야수화한 개스코인으로부터 도망치던 길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빨리 달리지 못해 난간 사이로 뛰어내리기 전에 공격을 받고 지붕 위로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닐까. 그 모습을 본 개스코인은 분노에 휩싸여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그 자신도 이 묘지에 진동하는 피 냄새에 취해 점차 이성을 잃은 것인지 모른다. 피에 취해가는 것은 개스코인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개스코인을 죽인 이후에 몸 안에서 퍼져나가는 이 피의 떨림을 거부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피는 내게 더 많은 피를, 더 많은 사냥감을 구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역장에서 만났던 까마귀를 떠올리며 그러한 피의 외침을 가까스로 거부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사냥꾼이라면 사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까마귀의 제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로지 야수만을 사냥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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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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