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은 새우님의 커미션입니다.



"마셔라."


그를 처음 만나던 날, 키요는 잔을 받았다. 억겹의 세월을 떠돌던 몸뚱아리엔 그나마 남은 원한마저 희미했고, 눈앞을 적시는 검은 피는 더이상 인간의 것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기이하게 흘렀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한 망집마저 닳고 달아 키요의 역안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후회도, 미련도 더는 담을 곳이 없는 작은 몸.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세계에 태어나 무수한 상처만을 남긴 채 잊혀지는 것일까. 입술을 짓이기는 송곳니에 스스로의 독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키요는 그런 생각을 했다.


추적이는 비, 흐려지는 시야 앞에 나타난 것은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반들대는 보랏빛 비단자락이었다. 키요는 그 순간 왜 시선을 들어올렸는지 이 순간까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키요의 눈가에 뒤집힌 뱀비늘 사이로 마주친 역안은 제 것과 달리 깊었고, 선명했으며, 독했다. 죽어가는 순간임에도 남아있는 직감이 머릿속에서 방울을 흔들었따. 그것이 경고인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그가 먼저 키요에게 닿았다. 길고 흰 손가락이 엉망진창이 된 턱을 들어올려 진흙이 튀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은 작은 뱀을 바라보는 그는, 작게 혀를 차며 카요의 입가에 잔을 대어주었다. 


보랏빛 액체가 끈덕지게 잇몸에 들러붙었다. 끔찍한 질감이었다. 맛은 더더욱 역했다. 그리 오랜 시간을 살아온 키요조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불쾌한 감각이었다. 역류하는 타액에 쿨럭대자 그는 키요의 입을 다물게 했다. 액체를 전부 목 안으로 넘기기까지 몇 번의 헛구역질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말 기이하게도 키요의 몸 속 깊은 핵이 느리게 돌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게워냈던 혈관에 무언가 흐르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던 의식이 올가미에 걸려 돌아왔고, 바스라지던 비늘은 허물을 벗듯 씻겨 나갔다. 키요는 잠시 멎었던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키요는 알 수 있었다. 


"Mr.퀴다."


엎어진 잔은 그의 손에 세워졌다. 빈 속은 새로운 술로 채워졌다. 뱀독이 스미는 자개빛의 잔은 이제 단 하나의 존재밖에는 머금을 수 없다.


"Mr.퀴. 모시겠습니다."


키요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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