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왈 드림글

*알미나스의 정령 만찬회 스크립트 언급 보고 쓴 날조 있음

*아직 미완성인 조각글.. 살라이가 많이 예쁨받는 글







“살라이! 닉스! 그리고…….”


월류가 말끝을 흐린다.


“루이 님은 오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루이가 이 자리에 올 이유는 많았지만, 동시에 이 자리에 오지 않을 이유도 많았다. 물론 루이가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월류가 만찬회만의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초대한 살라이 바바론카가 동행으로 자매인 닉스나 루이를 데려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다만 요즘 같은 때 한가로이 벤젤 근교로 나오기에 루이는 대단히 바쁜 사람이었다. 혹시나 그녀의 바쁜 임무가 이 만찬회와 연관되어 있거나, 정말 혹시나 꼭 짚어 바바론카 가문에 소속된 정령 월류를 봐야할 일이 있다면, 절대로 좋은 소식은 아닐 게 분명하다.


“그래서 불만인가요, 월류?”


루이가 팔짱을 끼고 월류를 흘겨보았다. 나선정점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저명한 법사이자 그 카리스마로 바바론카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바쁜 그녀로 말하자면, 월류가 바바론카가 주최하는 음악회-심지어 월류가 주역 가수였다-를 워낙 자주 땡땡이치는 바람에 당장이라도 그가 실추시킨 가문의 명예를 시간으로 환산한 만큼 대공저 지하감옥에 가둬버리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살라이가 한번이라도 숨을 돌리자고 부탁한 데다 어린 닉스까지 언니들을 졸라댄 탓에, 이 한량 같은 정령이 노래하는 걸 들으러 한여름에 정령들이 주최하는 만찬회까지 왔단 말씀이다.

루이의 눈빛 속에 꾹꾹 눌러 담아진 살의를 감 좋은 정령 월류가 못 알아챌 리 없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다크 스트릿 결투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승부사 월류도 이 눈빛 앞에서는 기가 죽었다. 현란하게 주먹을 주고받으며 야만적인 결투를 즐기는 것과 단 한순간에 일방적으로 상대를 태워버리는 헬파이어를 맞는 것은 격이 다르다. 이미 루이가 화구술로 태워버린 정신 나간 반역도와 무례한 구혼자만 몇이던가. 아무리 정령이라도 인간처럼 뼈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기에 월류는 그 숯검댕이 시체 중 하나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요!”


제법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월류가 슬쩍 살라이 뒤로 자리를 비켰다. 그렇다고 정령의 거구가 완전히 가려질 리 없었지만, 루이의 시선이 살라이에게 옮겨진 걸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여태껏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둘 사이 신경전을 관전하던 살라이는 이제야 이 불쌍한 정령 친구를 도와줄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루이, 닉스, 호숫가에 꽃이 많이 피었는데 잠깐 돌아보러 갈까?”

“전 당연히 좋아요! 싱싱한 꽃으로 화환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루이 언니도 갈 거죠?”

“……너랑 언니가 좋다면. 하지만 겨우 화환 때문에 꽃을 따는 수고로운 짓은 안 할 거야.”

“에이, 루이 건 내가 만들어 줄게.”

“됐어! 언니랑 닉스나 많이 해.”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월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단번에 자매들에게 승낙을 얻어낸 살라이가 월류에게 속삭였다.


“나한테 빚진 거야.”


월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친구 살라이, 그렇잖아도 그는 여태껏 살라이의 부탁을 함부로 넘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닉스, 그 화환은 누구 주려고? 바베라 아가씨?”

“앗, 바베라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요. 이건 괜찮다면 마그다에게 주고 싶은데…….”


다소 엉성하게 엮은 화환을 손에 든 닉스를 필두로 바바론카 세 자매가 만찬회 자리에 걸어 들어왔다. 닉스와 살라이 머리 위에도 마찬가지로 엉성한 화환이 올라가 있었다. 두 사람과 다르게 루이의 머리에는 그 고고한 품격에 걸맞은 깔끔한 화환이 자리했다. 세 자매의 등장에 저절로 시선을 줄 수밖에 없던 만찬회 참석객들은 자매가 쓴 화환이 각각 누구 솜씨인지 금세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

준비가 모두 끝난 만찬회장에서는 사람들이 낡은 폐허를 둘러싸고 원을 이루는 중이었다. 회장 중심에 겨우 세 평 남짓인, 지은 지 오래 되어 다 낡아가는 호숫가 정자의 돌기둥과 둥근 지붕을 타고 하얀 장미가 만발했다. 파란 수레국화와 붉은 양귀비, 키 큰 해바라기 같은 여름 꽃들이 유난히 커다란 꽃망울을 터뜨려 신선함을 뽐내고 있었다.

그 무리 사이에 별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척 봐도 보통이 아닌 마력을 뿜는 머리 하나와 법사 하나가 있었다. 살라이는 나선정점이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봐도 참 이질적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허공에 둥둥 뜬 머리도 세 자매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이런, 바바론카의 딸래미들이 이쪽으로 줄줄이 오잖아? 손에 든 그 못생긴 꽃무ㄷ…@:;!,!(:~%.”

“오셨군요. 이제 막 시작할 것 같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터져 나오려는 블랙 쉐도우의 헛소리를 미리 차단하며 사비에르가 자매들에게 말갛게 웃어주었다. 닉스는 몰라도 루이는 그와 별로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서, 대법사와 가장 절친한 살라이가 자매들보다 앞서 대법사 옆에 다가가 섰다.


“오, 좀 전까지는 꽃이 이렇게까지 만발하진 않았는데. 대법사께서도 힘을 보태셨나요?”

“저는 약소하게 마법 재료를 조달하는 정도였어요. 아시다시피 저보다는 백별 님께서 이 일에 훨씬 조예가 깊으시죠.”


아무렴. 정령들의 한여름 만찬회인 만큼 정령인 백별처럼 유능한 법사는 없을 것이다.


“오늘 여름의 여왕은 누가 될까요?”


사비에르가 물었다. 살라이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냔 눈치였다.


“당연히 애런스탄의 숙녀분 아니겠나요. 사비에르도 그렇게 예상했겠죠.”

“…아, 그건 그렇다 해도 혹시 모르니까요.”


그 말씀은? 살라이가 눈짓하자 사비에르가 대답했다. 당신이라면 루이 님이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당신이 여름의 여왕이 될 수도 있죠. 뻔한 답과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오호라, 우선 감사드려요. 살라이가 예의 화사한 미소로 보답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생명력 넘치는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밤이란 장막을 두르고도 찬란히 빛나는 햇살이겠죠. 그 빛만큼 생명이란 기쁨에 걸맞은 것도 없으니까요.”

“…생명을 빛에 비한다면, 비단 햇살만이 아니라 달빛이나 별빛, 보석의 광채, 타오르는 화염 역시 빛이지 않나요?”


멍청한 사비에르! 그 모든 것은 태양 앞에 숨이 죽는단 말이다! 어느새 대법사의 주박을 풀고 블랙 쉐도우가 나불거렸다. 사비에르는 한숨을 쉬고 다시 중얼중얼 주문을 읊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대법사를 보며 살라이가 키득거렸고, 옆에서 웬일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루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언니는 그런 걸로 기죽지 않아요. 나도 마찬가지죠. 애초에 우린 노래를 들으러 온 거지, 그 이상의 시간낭비는 사양이에요.”

“후후, 우리 루이가 그렇다고 하네요! 그래도 나랑 닉스랑 춤 춰줄 거지, 루이? 여긴 평소의 무도회도 아니니까.”


살라이가 루이의 손을 꼭 잡았다. 루이는 잡힌 손과 살라이, 말 수습에 실패했던 게 언제냐는 듯 흥미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비에르를 번갈아 보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말해도… 닉스는 두 사람이 떠드는 동안 그 서민에게 달려갔어. 춤은 나중에 생각해볼게.”


루이는 살라이가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자신이 닉스를 지켜보고 있겠다며 자리를 떴다. 살라이는 엄격하고 고지식한 동생이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명목으로 그랬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블랙 쉐도우의 헛소리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나봐, 살라이가 생각했다.


“…아, 그러고 보니 여름의 여왕이 파트너를 한 사람 선택하는 의례가 있다고 들었답니다.”


살라이가 대법사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그와 마그다가 가질 수 있을만한 접점을 아주 흥미로워하는 치들 중 하나였다. 심지어 이 대법사는 쌓아온 세월과 학식에 비해 워낙 쑥맥에 둔하기까지 했다. 살라이는 아까의 말을 되갚을 겸 말했다.


“대법사께서 그 아가씨에게 선택받으실 수 있길 빌어요.”


그러자 사비에르가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꼭 춤을 추러 온 건 아닙니다.”

“어라, 여기 모인 사내들은 이런 명예로운 부상을 바라지 않나요?”

“신랄하시군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당신이 틀렸어요. 살라이 님도 좀 더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보셔야겠네요.”

“농담이 지나쳤네요. 사과드릴게요. 대법사께 이런 얘길 듣는 날이 오다니 저도 아직 인생을 덜 살았군요.”

“당연한 거 아니냐? 아직 시퍼렇게 어린 것이 남들 뒤치다꺼리 좀 한다고 인생 다 살았게? 하지만 이 녀석도 그 빨래판과 춤추는 걸 약간 기대는-'/!!(!.;@”

“……블랙 쉐도우. 좀 조용히 해!”


오늘따라 이 친구가 끈덕지네! 끙끙대는 사비에르를 보고 살라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원체 입이 험하고 쓸데없는 음담패설을 고양이가 쥐 잡듯 해대곤 해도 블랙 쉐도우는 대체로 맞는 말을 하는 편이다. 그 직설이 사비에르나 사비에르의 주변인을 겨냥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아무거나 적나라하게 까발려대는 인물-사람은 아니지만-과 평생 함께 할 운명인 사비에르가 얼마나 피곤한 인생을 사는지 짐작되지 않는가.


“하아, 어쨌거나 명예롭다는 건 동의합니다. 저는 보통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까막눈이지만… 인간 대 인간이라면 그 호의를 명예로이 여기겠죠.”

“……과연 말씀대로에요.”

“제 생각으로는, 애런스탄 아가씨가 여왕이 된다면 파트너로 알미나스 님을 택하실 거예요. 이 자리에 어울리는 파트너라면 만찬회를 다시 열자고 제안하신 그 분이겠죠.”


합당한 추측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날개전쟁으로 열리지 못한 만찬회를 이제나마 다시 이어가자고 처음 목소리를 내고 주도한 이가 바로 원로원 소속 궁사이자 벤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사는 정령, 알미나스다.


“마침 그 분께서 저기 나오셨네요.”


살라이의 말대로 긴 금발 정령 궁사가 원 한가운데 섰다. 그의 나긋한 목소리로 한여름 만찬회가 시작되었다. 알미나스의 입술사이로 나온 정령의 언어로 자아지는 운율, 그리고 정령 법사 백별이 그 운율에 얹는 허밍에 그들을 둘러싼 초목이 기지개를 켜듯 크게 울렁였다.

이 놀라운 마법에 이어, 운가의 팔현금 연주에 맞추어 월류가 부드러이 노래했다. 과연 정령들의 합주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그들이 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단번에 이해된다. 오래 묵은 저택의 위험한 유령들을 잠재우고, 새들 중 가장 뛰어난 목청을 가진 나이팅게일에게 이긴 솜씨이지 않던가. 살라이는 그들에게 시선이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노래에 귀 기울였다. 아름다운 선율 안을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다.


“살라이 님, 무도회가 시작됐어요.”


사비에르가 말했다. 그가 평소대로 살라이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가시겠어요?”

“나랑요? 이 기념할만한 무도회의 첫 춤인데요!”


살라이는 한쪽 입매를 끌어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간파하지 못할 사비에르가 아니었다.


“그게 왜죠?”

“당신이 그 아가씨에게 과감하게 나가실 필요가 있단 거예요.”

“그거 아세요? 제가 그 아가씨를 연모한다는 말은 단 한번도 한 적 없어요.”

“오, 제발. 이 말만 올해 들어 아흔아홉 번째 하고 계시죠.”

“으음, 이걸 다 세셨다니. 그쯤 하면 믿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차라리 루이가 결혼을 하겠다며 신랑감을 데리고 절 찾아온다면 믿겠어요.”

“그건… 확실히 강력한 수네요.”


못말리는 아가씨다. 사비에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본인 스스로 이것이 평소의 무도회가 아니라고 했던 게 바로 조금 전 아니었던가? 자기 좋을대로 형식에 얽매이는군, 하고 블랙쉐도우가 사비에르의 머리에 대고 말했다. 사비에르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러면서도 그녀 역시 참견이란 걸 알면서 하는 말이려니 싶다. 단순히 재밌어서인지, 진정 그를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 허나 살라이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사비에르에겐 그런 순서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사비에르는 살라이가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길 바라지 않았다. 벤젤 사교계 무도회에서 춤은 로맨틱하지만 허례허식에 가까웠고, 억세게 숙녀를 옥죄는 코르셋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자리는 정령의 만찬회- 벤젤 사교계와 전혀 상관없는 공간. 살라이만한 자유로운 춤꾼이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기도 아깝다. 루이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첫 춤을 자매와 나누었을 게 분명하나….

아, 과연. 순서가 중요한 건 혹시 당신이었나요. 사비에르가 쓰게 웃었다.


“만일 당신 생각이 맞더라도, 편한 친구와 먼저 스텝을 맞추고픈 제 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나의 오랜 친구 살라이. 루이 님이 돌아오기 전까지 절 도와주시겠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대법사께서 지도가 필요하신가봐요.”


사비에르도 꽤 완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살라이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물러서는 것도 좋지 않았다.

살라이와 사비에르는 가볍게 자리를 돌았다. 망토와 성의가 둥근 궤적을 따라 팔락였다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춤은 벤젤 무도회 예법에 충실하다가도, 정령의 선율을 따르는 이상 갈수록 예법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예상한대로 대법사는 즉흥적인 변칙 춤사위에 익숙지 않았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도대체 춤이 늘질 않으시네요! 두 곡쯤 지나자 살라이가 짐짓 혼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사비에르를 세게 붙들었다. 사비에르가 난처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한 거잖아요…….


“진지하게 충고하건데, 대법사께서 춤출 때 시선 분산이 필요하겠어요.”

“……예를 들면?”


살라이가 둘째 손가락으로 공중에 곡선을 그렸다. 그러자 손톱에 정교하게 붙어있던 보석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리더니, 반짝이는 옥색 반딧불이 되었다.


“애런스탄 아가씨와 추실 때가 오면 저 살라이가 특별히 지원하겠어요.”

“이거 섭섭하네요. 복장 부마의 응용이라면 저도 할 줄 아는데요.”


사비에르도 손가락을 퉁겼다. 그는 살라이가 만들어낸 반딧불 효과를 이용해, 이 작은 입자들이 별자리 같은 궤적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지금 재료가 없어서 제걸로 이러시는 거 맞죠? 살라이가 묻자 사비에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살라이가 자리에서 한바퀴 도는 걸 도왔다. 흠, 이 부마가 내뿜은 조명에서 이 각도로 돌면 얼굴에 드리우는 실루엣이 괜찮네요. 어깨 장식에 부마해도 좋겠어요. 그가 딴소리를 했지만, 살라이는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 그러면 이런 턴을 할 때는 어떤가요? …자, 잠시만요, 살라이 님! 갑자기 그렇게 돌면…….

자칫하면 부마 방식 토론장이 될 뻔했던 그들의 마법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노래를 끝마친 월류가 그들 앞에 나타나 “날 섭섭하게 하지 마, 살라이!” 라며 살라이에게 춤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유감이네, 언니는 이만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그리고 그런 정령을 방해한 건 누구나 예상했다시피 바바론카 자매들이었다. 역시 루이와 닉스가 제 자매와의 시간을 그냥 보낼 리 없었다. 인간 중에서도 꽤 길쭉한 편인 살라이와 사비에르의 시야를 제 큰 키-와 덧붙여 긴 실크 모자까지-로 압도하던 월류는 루이가 오자 뒤로 슬슬 물러났다. 월류에겐 조금 안 된 일이었지만, 그가 물러난 자리에 속속 도착한 자매들을 보며 살라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닉스! 화환은 무사히 전해줬니?”

“물론이에요. 그리고 바베라랑 춤추고, 마그다와도 기회가 있었어요! 루이 언니가 날 기다려줬죠. 이제 언니들이랑 같이 추면 완벽해요!”

“언니가 사비에르와 토론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월류는 언니를 위해 한 곡 더 부르는 게 어때요?”

“…분부대로 하죠.”


루이는 월류를 고갯짓 한번에 보내버리고, 여전히 살라이의 손을 잡고 있는 사비에르 쪽에도 살짝 눈짓했다. 사실 그간 언니의 춤 파트너를 하던 사비에르의 꼴은 살라이에게 반강제로 붙들린 채 그녀를 어찌어찌 지탱하는 것에 가까워 루이도 약간 애잔하게 여길 정도였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사비에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매를 휘었다. 그가 살라이의 손을 루이의 손 위로 데려다 주었다.


“……휴, 이만 보내드려야겠네요.”


살라이는 아주 재미있다는 웃음을 띄우며 자매들 사이로 걸어가 남은 손으로 닉스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는 사비에르를 돌아보고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후후후, 도와드리기로 했는데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즐거운 춤이었어요, 사비에르.”

“…당신과 어울리려면 좀 더 연습을 해야겠지만요. 루이 님, 닉스 님도 좋은 시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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