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트 눌러주신 분들 감삼다 (제 뽀뽀를 받으세여) 

*오늘도 과몰입 갖으아







눈이 멎고 입춘이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언니는 무사히 과학 인재들이 가는 명문 특수대학에 합격했다. 그래서 현재 부모님과 함께 여진의 졸업식에서 나는 꽃다발을 들고 수석으로 졸업하는 여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이 항상 많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날부터 쭉.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뒤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역할이었다. 어느새 졸업식 수순이 끝나고 언니가 곁으로 왔다. 그리고 내게 들린 꽃다발을 안아 들고 자연스레 다가온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웃으며 언니와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주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언니가 먹고 싶은 거 골라야지, 언니 졸업식이잖아."

"그래두, 그럼 예전에 갔던 그 중국집 갈까?"



차에 타 점심에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데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정재현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 연락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먼저 연락을 해왔다. 왜 이렇게 정재현 꼬봉처럼 구냐는 동혁의 말이 떠올라 멈칫 했지만 결국 재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여주야 나 지금 졸업식 끝나서 너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다니는 네오고등학교에서는 3학년의 졸업식마다 각 학년의 반장들이 와서 졸업식을 준비한다. 재현도 예외 없이 졸업식을 준비하러 학교에 갔었나보다. 그래놓고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기다린다니. 내가 재현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듯한 메시지였다. 결국 나는 차에서 내려 학교로 달렸다. 그저 알겠다고만 대답한 내게 관심 없는 부모와 왜냐며 의문을 표한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보다 재현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과고에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멀지 않아 기다릴 재현을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다.






"왔어?"

" 하아, 많이 기다렸어?"




뛰어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벤치에 앉은 재현에게로 다가갔다. 우리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그 벤치였다. 재현은 내 손을 잡아끌며 자신의 옆에 앉혔다. 나는 그저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숨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재현은 그런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 않는 분위기가 익숙했지만 재현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궁금해진 나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어쩐일이야...? 준희도 안보이고."

"아. 준희?...맞다."

"...응?"


나 이준희랑 헤어졌어. 잔잔하게 말하는 저 입술에 시선을 빼앗겨 재현이 방금 한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나를 보며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저 사람은 반장 정재현이 맞는데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그가 내게만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습이라서. 나는 그만 바보처럼 헷갈려버렸다.




"...언제?"

"너 오기 전에."

"아, ...둘이 사이 좋은 거 아니었어?"


모순적인 정재현은 내 물음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희망 같은 대답에 궁금증이 폭발하는 듯했다. 그런 나를 눈치챈 재현이 다시 다정한 미소를 장착하며 말했다.




"매달리기에 귀찮아서 헤어졌어."

"어?"

"나는 너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이 좋아, 번거롭게 사랑을 바라지도 않고. 그렇지?"

"......"

"너는 변하지 않을 거잖아."




나를 꿰뚫어 본 재현은 언어로 나를 구속하는 감옥같았다. 거절이 두려워 애초에 바라지도 않는 나와 왜인지는 모르지만 매달리는 것을 싫어해 가만히 있는 내가 좋다는 정재현. 우리는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했다. 


재현의 말에 순간 당황한 나는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시답잖은 말들을 늘어놨다. 오늘은 언니의 졸업식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다, 멀리서 언니를 지켜보며 서 있는 내게 부모님은 말 한마디도 걸지 않으셨다 등등 궁금해 하지도 않을 정보들을 발설하자 그 모습을 보던 재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구나, 혼자 심심하지 않았어?"

"으응 그냥 그게 익숙하니까.."

"심심하면 전화해도 괜찮아."




그 말에 말없이 재현을 올려다보자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재현의 앞머리를 흩트려 놓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그는 그 날 날 위로해주었던 재현이 맞았다. 아무리 재현이 나에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나를 위로해주었던 재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게 거짓일지라도. 



대답이 없는 나 대신 재현은 내 이야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왜 조금만 잘해줘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더 큰 사랑을 바랄까. 사색적인 어조로 말하는 재현의 모습은 풍경에 어우러져 조화로운 모습을 자아냈다. 나는 정재현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 것 같았다. 재현이 다정을 연기하는 이유는 그저 뒷말이 나오는 것이 지겨워서 방지하는 것이라는 점과 재현은 누구보다 사랑을 받으며 컸지만 누구보다 사랑에 회의적이라는 것.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으며 큰 재현의 사랑을 당연하게 바란다는 점.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 좋아."

"...나도."

"마치 너 같아, 여주야."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반에 들어섰다. 지난 날 희망고문에 못 이겨 잠 못 이루어가며 생각한 재현은 새로운 반에 없었다. 같은 이과임에도 운 나쁘게 반이 갈린 것이었다. 새 반에 들어온 날 반기는 건 여전히 해맑은 이동혁 뿐이었다. 낯 가리는 나와 달리 동혁은 또 금세 친구들을 사귀었고 나는 그에 맞추어 무던하게 지냈다. 반이 갈린 만큼 더 이상 재현과 대화하는 날은 없어졌고 늘 그랬듯 인기 많은 재현에겐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러나 가끔 재현의 반을 지나가거나 복도에서 마주치는 날이면 재현은 무표정으로 나를 끝까지 보곤 했는데 나는 다시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리기 싫어 그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재현도 매달리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좀 더 재현에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을 바라지 않는 특별한 사람.





수험생이 되어서는 동혁과도 반이 갈려 아예 혼자가 되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혼자인 거 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나는 순전히 노력파였다. 재능이 차고 넘쳐 조금만 해도 뛰어난 언니와 달리 나는 조금이라도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선 죽어라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미래의 수능성적이라는 3월 모고에서 여태까지 했던 것 중에서의 최고 성적을 받자 부모님은 처음으로 내 머릴 쓰다듬어주셨다. 그에 홀려 나는 학년 내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일취월장한 내 생활기록부는 면접관들이 좋아할 만한 인재로 보이게끔 만들어졌다. 




"여주야!"

"아 왔어?"

"진짜 오랜만이다. 아, 나 일단 아아 한 잔 줘."



수능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유일하게 친하다 할 수 있는 동혁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고 동혁은 왜 이제서야 알려주냐며 징징거렸다. 찾아온다고 으름장을 놓은 동혁은 정말로 찾아와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죽치고 앉아있었다. 




"많이 기다렸어?"

"응 존나 기다렸어."

"미안미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가까운 파스타 집에 들러 주문을 하고 동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혁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 일을 이어 할 것이라고 했다. 보기와는 달리 양식집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에 요리를 잘하는 동혁은 이미 양식요리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찾아 나아가는 동혁이 부러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카르보나라를 먹었다.




"아 맞아 그거 들었어?"

"뭐?"

"정재현 유학 안가고 한국대 간대."




그 말에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한국대라면 내가 지원한 학교였다. 예비가 아슬아슬하게 떠서 마음을 졸이고 있던 터라 재현의 소식은 반갑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참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죽어라 노력해도 나는 쉬이 닿지 않는 구나. 하는 생각에 입맛이 사라졌다.




"너도 한국대 붙으면 좋을 텐데-"

"... 그럼 좋겠다."

"내 친구가 한국대라니 우와아앙"




동혁은 재현의 소식에 내색않는 나를 힐끔 쳐다보곤 다시 파스타를 먹었다. 1학년 이후로 대화하지 않는 우리를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동혁은 그저 그렇구나 하고 관심을 껐다. 필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인지 동혁은 재현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고 그게 나 때문이라는 소문도 잠깐 돌았었다. 예로보나 지금이나 동혁은 나에게 참 좋은 친구였다. 재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다가와 준 친구.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니 책꽂이에 꽂힌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1학년 때 배운 역사 요점정리 노트였는데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던 이유는 하나였다. 2년 전, 그러니까 언니의 졸업식 날 만난 재현의 모습이 잊히질 않아서 서툰 손짓으로 그 모습을 그렸었다. 보여주기는 그런 그림이었지만 그 날의 감정이 생각나는 것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미련하게도. 그 후론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랜만에 재현의 소식을 들어서인지 재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필 내일이면 충원 합격자 발표라 떨려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몸을 무시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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