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항구를 떠났다. 기다란 자취마저 뒷걸음질하듯 너울너울 소리 없이 떠나갔다. 뒷짐을 지고 선 영수의 머리털이 방향 없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점퍼의 어깨선이 축 내려와 있어 좁은 어깨가 더욱 가냘파 보였다. 다시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까지 영수는 오갈 데 없는 사람처럼 한참을 그 앞에서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만 보았다.

  입맛도 나지 않는데 시장기가 채신머리 없이 찾아와대서 아무 생각이든 잊게 했다. 종일 쫄쫄 굶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주머니를 뒤적이지 않아도 수중에 몇 푼 남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 얼씬도 못할 사정밖에 안 되었다. 어쩔 도리도 없으면서 영수는 태연히 항구 근처에 있는 낡은 술국집으로 들어갔다. 가게에는 간판은커녕 미닫이문 바깥에 술국, 백반 따위의 글자 스티커가 붙어있던 자국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주인 여자는 구석에 앉아서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심드렁하게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했다. 영수는 아무렇게나 헤쳐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휘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태연스럽게 고르기나 해본 체하며 주인 여자에게 주문했다. "백반 하나 주세요." "예." 음식 냄새라곤 조금도 풍기지 않는 주방 안으로 주인 여자가 사라졌다. 그제야 영수도 조금 마음을 놓고 주변을 좀 더 살펴보았다. 주인 여자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담배꽁초가 파리시체처럼 눌어붙은 재떨이와 파리채가 썩 어울리는 한 그림으로 놓여있었다. 그 밑에는 반쯤 찢긴 달력 한 장이 있고 그 위에 마른오징어 다리 두어 개와 고장 난 펜촉을 시험용으로 마구 그어보다가 내려둔 것으로 보이는 검정 모나미펜이 있었다. 영수는 다리를 떨고 있단 사실을 알아채고 자세를 고쳐 앉아 시선을 딴 데로 옮겼다. 주방에서 무언가 끓이고 칼로 썰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는 입맛이 없더니 얼마 만에 맡아보는 구수한 찌개 냄새에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입맛이란 상대적인 것인지 몇 날 며칠 주전부리로나 취급할, 음식이랄 수도 없는 불량식품만으로 곯은 배를 채웠더니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비위가 상할 지경이었는데 과연 냄비에 국자 부딪히는 소리는 남다른 생명력까지 느끼게 했다. 영수의 눈앞에 이미 고슬고슬 김이 나는 흰 쌀밥이 어른거려와 배는 벌써 화딱지가 잔뜩 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식당에 앉아있는 자기 모습에 위화감이 들기도 하고 환멸이 나기도 해서 언제든지 뛰쳐나갈 태세도 갖추고 있었다. 주인 여자가 무어라도 신호탄을 쏠 만한 언행을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피스러운 짓에서 멀리 벗어날 참이었다. 그러하나 그러기엔 이미 자신도 손쓸 재간이 없을 정도로 그윽한 밥 내음에 정신은 아득해지고 마음은 무장해제가 되어 오로지 먹을 수만 있다면, 먹기만 한다면, 온통 먹을 생각에만 빠져 혼미한 상태였다. 영수의 다리가 다시금 달달 떨려왔다. 이번에는 손도 미세하게 박자를 탔다. 밥을 먹은 지가 얼마나 오래인지 생각나지도 않았다.

  오로지 밥을 먹고 싶어서 매일 항구에 찾아갔다. 어려서부터 구면인 선장에게 일을 시켜주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니 그저 밥만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한 것이 몇 주가 되었다. 선장은 때로 동정심에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고 돌려보냈다. "뱃일 말고 다른 일 알아봐라." 체격 좋은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앙상한 몸으로 덤비는 꼴이 우습거나 딱할 때도 있었지만 마구잡이로 들러붙는 하루살이 같이 여겨져서 귀찮은 듯이 손으로 휘휘 걷어버리곤 했다. 맥 없이 떨어져 나가서는 오매불망 님 바라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영수의 꼬락서니가 선장의 눈에는 아주 밉상이었다. 선장은 영수가 그저 몇 푼 뜯어갈 명분으로 찾아오는 거라 여겼다. 벌써 봐온 게 십수 년이니 알기로는 나이도 이제 거의 마흔을 바라볼 즈음이었다. 나이가 찰 동안 이렇다 할 제 몫을 해봤다는 소식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자기라고 여유가 있어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를 얼마든지 거둬줄 형편에는 전혀 못 미쳤다. 여기저기서 장려금 끌어오고 빚만 당겨쓴 게 한두 푼이 아니었다. 그럴싸하게 배라도 한 척 있어 보이니까 만만하게 보고 자기를 자꾸만 찾아오는 영수에게 아주 모질게도 못 굴고 가끔 천 원 한 장 내주는 것은 뱃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못내 찝찝하기 때문일 뿐이었다. 미신까지는 아니지만 육지에서 각박하게 굴수록 물에서 얻을 수확이 줄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는 했다. 영수도 적당히 내치면 알아서 떨어져 주었고 어떨 때는 홧김에 애 하나 더 데리고 가볼까 하는 의견이 일말의 들면서도 완전히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애초부터 저지르지 않는 게 낫다는 주의가 생겨서 이런 갈등은 두 사람의 통상적인 실랑이로 굳어진 지 오래였다.

  그날도 혈색이 푸르뎅뎅한 영수를 항상 떼어놓고 오는 그 자리에 두고 앞바다로 출항했다. 평소보다 오랫동안 자리에 붙박인 채로 떠나가는 배를 쳐다보는 영수에게 그만 싫증이 났다. 한편 여느 날보다 눈빛이 탁한 게 마음에 걸렸다. 어망 만드는 일을 도와 식구들 입에 풀칠이나 조금 했던 영수 아비와 점점 닮아갔다. 집안에 왜소증이라 했나, 유전병이 있어 사는 세월 동안에 풍파가 몰아치는 데다가 명도 짧다고 했다. 영수 아비는 별안간에 애를 하나 데리고 왔다. 징그럽고 남사스러워서 장가는 고사하고 여자하고 말도 못 섞고 살다 갈 줄 알았던 이였기에 애를 데리고 왔을 적에는 일대가 시끄러웠다. 그래봤자 한여름 밤의 꿈인 듯 영수 아비에게 애를 낳아준 여자는 그림자 한 귀퉁이도 모습을 보인 일이 없고 오히려 그 애가 영수 아비의 친자식이라는 증거는 없다며 다들 그럼 그렇지, 하고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결국은 영수가 점차 성장하면서 친자식이 아니라면 아닐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차차로 갖춰지자, 처음에는 안짱다리로 아장아장 걷더니 그대로 뼈가 굳고 얼굴 골격도 꼭 제 아비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아가며 영수가 다른 사람의 자식일 리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수는 동네 모든 아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일찌감치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고 영수 아비는 영수가 어떻게 자라든, 어디서 어떤 아이들에게 무어라 놀림감이 되든 속수무책인 냥 방치했다. 영수 아비가 뛰쳐 나와서 못된 아이들 혼쭐을 내주겠다고 달려들어 봐야 영수와 쌍으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 영수 아비도 영수와 똑같은 모양으로 자랐다. 자기 같은 사람들의 운명이 그러하다고 영수 아비는 진작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자기들이 당하는 일이 차별이고 부당한 대우라고 항변하자니 사람들 하는 말이 아주 틀리지도 않고 일리가 있었다. 태어나기를 선천적인 신체 불구로 나서 남들 하는 몫에 절반도 못 해내었다. 영수 아비는 남다르게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남다른 비관을 속으로 읊었다. 남들도 다 나 같은 병에 걸려 태어났어야 되는데….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멀쩡히 태어났다면, 하고 하루는 슬픔을 통째로 꾸역꾸역 씹어먹는 날이었다. 그런데 만약 자기가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면 영락없이 조롱하는 아이들 틈에 껴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면 어느 누가 자기의 구차스럽고도 비참한 처지를 알아줄까? 아무도 없다. 불행이 존재하되 모두에게 존재한다면 우리가 서로서로 쓰린 데를 개처럼 핥아주고도 남는다. 모두가 행복한 그런 세상은 없다. 남이 가진 걸 다 빼앗거나 남보다 우위에 서야만 행복해하는 종족들이 끝끝내 살아남겠지. 그럼 모두 자기처럼 흉측하고 무능력하고 빈털터리가 되면 우위에 설 것도, 빼앗을 것도 없게 된다. 영수 아비는 망상의 끝에 히죽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재미난 구상이 떠올랐고 영수 아비는 내내 속에서 행복한 망상을 굴렸다. 그러자니 그런 날이 언젠가 올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더욱 더 그 생각에 골몰했고, 영수가 밖에서 이유도 없이 흠씬 얻어맞고 돌아온 날에도 마음이 평온했다. '영수야,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아버지의 맹목적인 신념은 영수를 날로 야위게 했다. 조롱하던 아이들은 날로 살찌고 급격히 자라 이제는 영수의 불행이 제법 적나라하게 저들 눈에도 비쳤다. 계절마다, 바뀌는 해마다 옷도 다른 것으로 입고 무엇이든 할 줄 아는 게 늘어가는 저희와 다르게 영수는 맨 그 꼬락서니였다. 옆집 사는 또래 애가 어렸을 적 입다가 헤져서 버린 옷을 주워서 몇 년째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기워주는 사람도 없으니 구멍 난 데는 임시방편으로 묶어만 두었다. 영수의 처지는 그렇지만 어쩌다 눈에 띌 때에나 인사치레하듯 지나가는 말로 가엾고 딱하다, 어쩔꼬 하는 탄식을 자아낼 뿐이었다. 웬만하면 그들 부자가 눈에 띄어 자기들 마음을 성가시게 안 해주었으면 했다. 자기들도 주어진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힘들었고,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그런 법이었다. 영수네만 특히 더 힘든 건 아니었다. 세상살이가 다 똑같았다. 누구나 다 똑같이 구걸이나 하며 살 수는 없었다. 영수네의 처지를 알기에 구걸한다고 비난만 하지는 않더라도 또 그저 빌붙을 생각만 게을리해서는 답답한 사정을 스스로 못 내려놓는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람들의 일리 있는 통념이 짙어질수록 아버지는 모두가 똑같이 왜소증을 갖고 태어나는 세상이 곧 임박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어왔다. 세상이 모두 병들면 망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온전해지고 안온해질 거라 의심 없이 믿었다. 영수 아비는 곧 합병증에 걸렸다. 약 한 첩도 못 지어먹고 방에서 켈룩켈룩 심한 기침 소리가 밤낮없이 들려왔다. 그러다 기침 소리가 잠잠해지고 영수는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을 알았다.

  영수도 자기 아버지처럼 마을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돕기도 하고 일을 배우러 근방에 있는 큰 동네로 올라가서 한동안 안 돌아오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영수마저 어미 없는 애를 하나 데려올까 걱정이었다. 이제 그 집 대는 그만 물려도 좋을 텐데, 어쩌자고 자꾸 일을 벌이는 거냐고 불만을 품는 부류도 있었다. 영수에게 동전 한 닢 쥐여준 적은 없었어도 어쩐지 자기들 주장이 공익인 것 같았고, 공익이라면 할 말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당한 의견 표출이라는 소리를 했다. 누군가는 영수네가 달리 누구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는데 말이 너무 심하다며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된다고 호통을 쳤다. 정작 영수는 달린 목숨에 끼니 걱정뿐이었다. 여자 생각도 배가 고파서 할 수조차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어쩌다 영수를 위한답시고 사람들끼리 분분한 의견을 전해주는 이가 있으면 영수는 멋쩍기만 했다. "형님은 자식이 보고 싶은가요? 나는 어느 때고 양식이 보고 잡소." 그런 어리숙한 소리만 해대니 주변에서도 그다지 상종하지를 않아서 왕래하는 이가 드물었다. 그런데도 영수는 늘 배가 고파서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뭔지를 몰랐다. 무얼 느낄 새가 없이 찾아오는 공복감이 두려웠다.

  술국집 주인 여자는 영수가 항구 쪽에서 걸어온 걸 보았다. 선장한테 몇 푼 얻은 것으로 밥 한 끼 때울 셈이군, 하고 짐작했다. 돈이 적으면 부려먹을 일거리도 벌써 생각해둔 게 있었다. 팔리지 않아서 시들시들한 재료에다가 고추장만 풀어도 영수한테는 먹음직하게 보일 터였다. 쉬어 꼬부라진 파김치에 언제 담았는지 허연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난 마늘장아찌 몇 점을 골라서 그릇에 내었다. 밥은 어제 지은 것을 가열한 솥에다 넣어두었더니 따끈하게 데워져서 먹을 만해졌다. 소반에 올리니 그런대로 백반 한 상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괜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양념을 너무 낭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설거지나 청소 시키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찼다. 돈도 못 받을 텐데 정성을 이렇게나 들였다니, 고기라도 잡아 와라 시켜야지 안 되겠어. 주인 여자는 소반을 들고나왔다. 식당 안은 휑뎅그렁했다. "아니, 이게 밥은 시켜놓고 어디로 내뺀 거야?" 황망하게 큰소리를 쳐보아도 밥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영수는 극에 달한 배고픔을 어디 멀리 떼어놓고 싶은 사람처럼 가게를 뛰쳐나가 항구 건너편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내달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도라니, 무전취식은 범죄인데 내가 간이 부었구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입속으로 들어온 눈물 맛이 씁쓸했다. 으흐흑, 하고 우는 소리가 절망적이었다. 짧은 다리로 한참을 달려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 도달했다. 깜깜한 도로의 정적이 영수의 울음소리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기아 상태로 뜀박질을 한 탓에 급격히 기력이 쇠해지는 걸 느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는데 이질적인 발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고라니 한 마리가 눈을 노랗게 밝히며 영수를 주시했다. 마침 짐 싣는 트럭이 전조등을 켜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영수를 주시하느라 한눈을 팔던 고라니가 놀라서 마구잡이로 트럭을 향해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트럭은 급하게 방향을 바꿨다. 요란한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고, 기어코 커다란 물체가 트럭에 치이고 밟혀 피를 흘렸다. 트럭 운전사도 안에서 머리를 세게 부딪혀 정신을 못 차렸다. 짐승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차에 파리처럼 납작하게 깔린 채로 신음을 내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영수는 와중에도 한 가지 생각만이 흐릿하게 들었다. 이제는 어쩌면 영영 배곯는 신세는 면했다. 하마터면 아사할 뻔했는데….

  영수가 죽고 술국집 주인 여자는 애먼 밥을 버리기가 아까워 먹었던 것을 후회했다. 생전 자기 가게에 발 들인 적이 없다가 하필이면 처음 출입한 날에 횡재를 만났다는 소식이 영 껄끄럽고 재수가 없게 느껴졌다. 비슷한 생각을 선장도 했다. 몇 주 전부터 자기를 그리도 괴롭히더니 혹여나 한 번 데려가 볼까 싶었던 날에 비명횡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쩐지 그날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 그토록 텅 빈 눈은 첨 보았다고 떠오르는 찰나 선장은 머리를 저으며 잔상을 떨쳐내려 애썼다. 사실 그 눈은 영양이 소실되어 실제로 푸석해진 것일 뿐 특별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 못 먹고 수척해져서 영양실조가 극에 달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던 대로 영수를 끝으로 왜소증에 걸린 그 집안의 대가 끊겼다. 영수 아비가 바라던 대로 모든 사람들이 왜소증을 갖고 태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궁상 맞고 비참한 처지와 인생사는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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