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무언가가 허벅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잘못 느낀 감각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툭툭. 


사람은 아닌 기척이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말이라도 걸 텐데…. 자신을 두드리는 감촉에 영윤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응?”


조금 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개가 어느새 자신과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도심이 아니라면 늑대라도 착각해도 좋을 법한 크기의 큰 개였다. 


영윤의 눈에 눈물이 덕분에 멈췄다. 개가 영윤과 눈을 마주쳤다. 입술이 쭉 벌어지며 혀가 비죽 나와 웃는 얼굴로 헥헥 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영윤은 이 존재의 정체를 알아보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째서 이 ’개‘가 여기 있는 거지?’


듬성듬성 가로등만 켜졌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다시 영윤의 시선이 존재에게 머물렀다. 


“너는 송견(送犬)이 아니냐.”

<응, 맞아.>

“어째서 여기에… 여긴 산도 아닌데.”


영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배가 고파서 인근의 인왕산에서 내려온 건가?’


“송견, 잠깐 기다려.”


재빨리 영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편의점에 진열된 애견 식품을 훑었다. 캔에 든 습식 사료를 하나 사서 돌아왔다. 기다리라는 말에 벤치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송견이 보였다. 


송견 앞에 사 온 사료 캔 뚜껑을 열어 놓아주었다. 영윤이니까, 송견은 의심 없이 영윤이 내민 사료를 먹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캔을 하나 더 사와야 하나 고민하다 질문을 던졌다. 


“배고파서 내려온 건가?”

<처음에는.>


알뜰살뜰 사료를 먹는 송견은 뚜껑까지 핥았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네가 울고 있어서, 왜 울고 있나 궁금해서.>

“그랬군, 고마워.”


역시 사람보다 존재가 훨씬 다정하고, 상냥했다.


‘울고 있는 이유라….’


영윤은 슬프고 외로운 웃음을 지으며 사료를 핥아 먹는 송견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아…, 그냥…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 그런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이지?”


사료의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핥아먹은 송견은 아직 부족한 듯 혀로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만 가야겠어. 눈물이 그쳤다면 다행이야,>


그러더니 홱 벤치 의자에서 뛰어 내려간 송견은 길을 따라 안 쪽으로 가버린다. 영윤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뭐가 왔다 간 것처럼 휘리릭 지나가 버렸지만, 영윤은 적분에 위로받은 듯했다. 


송견에게 먹을 것을 사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편의점에 들러 사료를 사고 나오는 그 순간, 명치끝을 조이며 아프게 하던 백호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이제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어째서 송견이 산에 있지 않고 도심에, 그것도 공원으로 내려왔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묘한 이끌림으로 마음에 남았다. 


지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의미이겠지. 즉, 말을 바꿔 말한다면 이전에는 배고파서 내려왔고, 지금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로 추측할 수 있었다. 


별것 아닌데 묘하게 송견이 신경 쓰였다. 송견은 나쁜 존재는 아니지만. ‘존재’라는 건 언제나 좋거나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좋고, 도움이 되지만 어떨 때는 위해가 되니까. 


‘대체 무슨 이유로?’


***


하얀 브이넥 얇은 티셔츠에 베이지색의 긴 카디건을 걸치고 연한 청바지를 입은 영윤은 하루 종일 송견이 신경 쓰였다. 


“어디 가십니까?”

“응,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프리스.”

“도련님, 제 이름은 프리스가 아니라 명오입니다. ……. 괜찮으십니까? 같이 갈까요?”


명오는 충직한 가신이었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영윤은 히죽히죽 웃었다. 


“세바스찬보다 별로야?”

“예.”

“난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걸 생각해야겠군.”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윤은 턱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런 익살스러운 모습도 언제나 명오에게만 보여주었다. 


영윤은 어제 송견과 만났던 그 공원으로 향했다. 일부러 시간도 어제와 비슷한 시간이 맞추고 공원을 뱅글뱅글 돌았다. 


“분명히 이 근처일 텐데….”


영윤은 가볍게 뒷짐을 지고 손에는 고급 캔 사료를 들고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폈다. 차가운 감성의 가로등은 듬성듬성 진주가 박힌 것처럼 밝게 빛났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흘러내리는 카디건을 끌어올리고 어제 송견을 만났던 벤치 근처를 어슬렁어슬렁거렸다. 이 벤치의 가로등만 노란 불빛이었다. 


시간은 이제 밤 10시에 다다랐다. 공원은 여전히 인적조차 없었다. 


“오늘은 안 나타나려는 건가?”


영윤은 어제 송견이 향하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어… 저기 있다.”


창백한 가로등 아래 우직하게 앉아 있는 송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반가운 마음에 영윤이 다가갔다. 


“여기 있었네, 공원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몰라, 찾으려고. 어제 만난 거기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거든.”


송견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안 울고 있네, 영윤.>

“내 이름 알긴 아는 구나. 우연이 아니었네.”

<응, 당연하지, 사방신 백호 산서랑의 반려잖아.>

“…응, 맞아. 내가 산서랑 님의 반려야.”


영윤은 참 예쁘게 웃었다. 백호의, 산서랑의 반려가 나였다. 


“넌 왜 여기 있어? 오늘도 배고파?”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흐음—, 네가 사람을? 혹시 먹잇감이야?”

<푸핫, 그런 거 아니야.>


송견이란 존재는 산속에 숨어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습격하기도 하니까. 


영윤은 송견을 주기 위해 들고 온 캔 뚜껑을 열어 오늘도 앞에 놓아주었다. 


“어제는 고마워서.”

<나는 한 게 없는데.>

“그냥, 위로 받았거든.”


송견의 왜 울고 있냐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뱉은 말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이런 사료는 아깝지 않았다. 


<고마워, 마침 배고팠는데, 오늘도 고마워.>

“별말씀을요.”


무거웠던 어제의 목소리와 다르게 가뿐해진 목소리로 예쁘게 웃어 주었다. 오른쪽 입가의 매력적인 점이 웃는 입꼬리를 따라 올라갔다. 


영윤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송견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저 길 끝에서 하얀 캔버스 운동화가 뛰어오다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멈추어 섰다. 


“…어?”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의아하게 울렸다. 영윤의 시건이 하얀 캔버스 운동화에 머물다가 서서히 올라갔다. 


진한 남색의 바지는 교복 바지였고, 하얀 셔츠도 교복이었다. 느슨하게 푼 넥타이와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덥수룩한 머리카락 속으로 깨끗한 눈동자를 한 앳된 소년이 머뭇거리며 자신과 송견을 번갈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손에 든 싸구려 개 사료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지금 송견이 먹고 있는 개 사료와 자신이 들고 있는 사료를 비교했다. 


자신도 저 사료를 사주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 손도 댈 수 없었던…. 창피해서 얼른 손에 든 사료를 등 뒤로 감췄다. 


영윤은 눈을 가늘게 떠 소년을 보았다. 


‘송견이 기다리고 있던 건 저 소년이었구나.’


주춤거리며 소년이 등을 돌려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저기.”


영윤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냥 이렇게 만난 인연으로 무슨 일인지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왜 이런 마음이 든 건지는 모른다. 인간이라면 딱 질색인데. 


“아… 저….”


소년이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영윤은 머리카락에 가려진 소년의 눈빛을 보았다. 저 눈빛을 알고 있었다. 상처가 많은 눈빛, 모든 걸 달관한 눈빛은… 어릴 적 영윤과 닮았다. 인간이었던 해준과 같았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왜 인간에게 말을 걸었을까.’


영윤은 일단 불렀으니 책임을 져야 했다.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영윤은 소년에게 이온 음료 캔을 건넸고, 자신의 손에는 맥주가 한 캔 들려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던지.”


뭔가 쌀쌀맞게 대꾸가 나왔다. 인간이라면 좋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년은 불쾌한 내색 없이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두 손으로 캔을 받았다. 영윤도 조금 마음의 문이 소년에게 열렸다. 


벤치에 영윤이 앉고 소년이 앉고 송견이 앉았다. 맥주 캔을 따 벌컥벌컥 마시던 영윤이 곁눈질로 소년을 보았다. 음료를 손에만 들고 마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 위험한 사람 아니야, 마셔도 돼. 아까 편의점에서 사는 거 다 봤잖아.”

“아? 아뇨, 그런 거 아니고요. 이거 할머니가 좋아하셔서 할머니 가져다드리려고요.”


맥주를 마시던 영윤은 멈칫하고 소년을 보았다. 


아뿔싸! 잘못 걸렸다. 무슨 사연인지 모른다. 제대로 걸린 것이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소년의 어깨 위에, 그 가슴속에 어마어마한 사연이 숨어져 있다는 게 그 한마디에 모두 함축되어 있었다. 


슬쩍 소년 너머 송견을 노려보았다. 


‘저, 저… 개새끼가! 쯧,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송견은 일부러 시선을 영윤 반대쪽으로 돌려 회피했다. 영윤은 입에 머문 맥주를 꿀꺽 삼키며 대화를 이었다. 


“그, 그래 할머니랑… 사는구나.”

“네.”


말하고도 조금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윤은 인간인 소년에게 거금 1000원이라는 금액까지 써가면서 음료수를 사주는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 


‘송견과 이 소년의 관계는 뭘까? 송견의 말에서 보면 먹잇감은 아니고….’


“그래, 뭐 그건 알아서 하는 거고. 아까 손에 든 그거 저 개 주려고 사 온 거 아니야?”

“…네? 네.”

“얼른 까서 줘, 개 덩치에 그거 한 열 개는 먹어도 부족할 테니까.”


낯가림이 심한 건지, 내성적인 건지, 그냥 어벙한 건지 소년이 영윤의 말에 뭔가 용기를 얻은 듯이 사료 뚜껑을 까 송견 앞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영윤은 뭔가… 영, 이 소년이 싫지 않았다. 


“고등학생?”

“…네? 네, 고1이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거지만, 영윤은 모른다. 


“으음, 그렇구나. 그런데 고1이면 몇 살이지?”


정말 일절 모른다는 표정으로 맥주 캔만 홀짝이는 영윤을 소년이 의아하게 응시했다. 


“열일곱 살이요.”

“괴로울 때네.”

“…네?”


영윤처럼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소년은 보통 어른들에게 열일곱 살이라고 하면 좋을 때다, 패기 좋을 때다. 이러는데…, 옆에 앉은 그는 달랐다. 


외모도 예쁘다고 생각하면, 엄청 잘생겼고, 그렇다고 진짜 미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인 같은 오묘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거기다 열일곱살인 자신과 그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 않은 대학생 느낌인데, 겉으로 풍기는 아우라는 범접할 수 없었다. 한 눈에도 엄청 잘 사는 그런 집의 도련님 같았다. 


소년은 독특한 영윤이 싫지 않았다. 


“내가 열일곱 살 때 엄청 괴로웠거든.”



1차 BL 질문 https://peing.net/ko/avril_s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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