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꼬리




눈꼬리가 참 귀엽다.

문득 든 생각이다. 아니 때때로 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자주.


앞문에서부터 느릿하게 걸어오는 널 곁눈질했다. 시시콜콜한 준석의 수다에 귀 기울이고 있는 양 고개를 주억였다.

신경은 온통, 동그란 안경 뒤 순하게 처진 눈꼬리에 머무른 채다.

 

 

 


* * *



 


일주일간 방학이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 절망했다. 그 말뜻은 일주일이나 널 보지 못한다는 의미였기에. 답지 않게 우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무슨 일 있어?”

 

 

버스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던 중 발장난을 멈추고 불쑥 네가 물었다. 평소와 다른 내 표정을 눈치챈 모양이다.

 

 

“어디 아파? 날이 너무 더운가?”

 

 

걱정이 담긴 음성에 고개를 기울였다. 마주한 눈꼬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축 떨어진 채였다. 순간 숨이 훅 막혀, 미쳐 답을 하지 못했다. 팔랑팔랑 두어번 속눈썹을 깜빡인 넌 다시금 입술을 움직였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어지는 침묵에 입술만 달싹이던 네가 몸을 일으켰다. 난 그런 널 멍청이 보기만 했다.

 

 

“오늘은 내가 사줄게. 좋아하잖아, 아이스크림.”

“…응. 좋아하지, 아이스크림.”

 

 

보다, 널.

 

 

 


* * *



 


독서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펼쳐놓고도 통 집중하질 못했다. 나열된 글자 중 ‘ㅂ’만 봐도 머릿속은 절로 널 연상시키기 바빴다. 버릇처럼 핥는 입술이라던가, 여자애들보다 예쁜 손가락이라던가, 얇은 입술 위에 조그마한 점이라던가, 순하게 처진 눈꼬리라던가. 그런 것들이 말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널 떠올리다, 처음 널 봤을 때로 거슬러 갔다. 쭈뼛거리며 학원 교실로 들어온 넌 낯선 환경이 어색한지 혀로 연신 입술을 축이며 까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댔다. 울망한 눈망울이 강아지라던가 다람쥐라던가 그런 종류의 소동물을 떠올리게 했다. 또래의 남자애들답잖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눈길이 마주쳤다. 아주 찰나의 눈 맞춤이었다. 네가 금세 시선을 돌려버린 까닭에. 하지만 그 찰나에 홀랑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귀여운 거에 사족을 못 쓰는 성향 탓도 있을 테고, 두근- 하고 제멋대로 울려버린 심장 탓도 있을 테지.

그때부터 내 신경은 온통 너로 향했다.

 

 

변백현 금단현상에 달달달 다리를 떨다 옆자리 여자애한테 눈총을 받았다. 연락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좀 나을 텐데. 행여나 네가 부담스러울까 봐 번호도 묻지 못했다. 넌 별로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하니 더욱 조심스럽고 망설여졌다. 고심 끝에 건넨 인사에 화답이 돌아오지 않은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 괜히 혼자 골이나 한동안 널 보지도 않았더랬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너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끙끙 속앓이만 하고 있었겠지.

 

 

 

열아홉의 인내심은 턱없이 부족했다. 무럭무럭 자라나 흠씬 부풀어 버린 감정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무작정 너의 학교 앞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쓸었다. 그다지 소용은 없다. 다시금 땀이 차올랐다. 여름의 한복판임을 과시하 듯 정수리 위에서 흉흉하게 내리꽂히는 태양 탓만을 아닐 터였다. 널 만날 생각만으로 긴장감과 더불어 기대감, 묘한 설렘이 온 세포를 들썩이게 했다.

 

 

“……어?”

 

 

교문 기둥 아래 비좁은 그늘에 서서 교정을 기웃거리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눈썹이 들썩이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야에 네가 들어온 것까진 좋았다. 신경을 거슬리게 한 건 네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남자애 때문이었다. 장난스레 툭툭- 네 어깨를 건드리는 행동도 못마땅한데 심지어 넌 걜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주 생글생글하게. 나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이다. 괜스레 심술이 차올랐다. 긴 다리를 뻗어 성큼성큼 다가가 다짜고짜 너의 팔뚝을 잡아챘다.

 

 

“안녕.”

“으, 어?”

 

 

난데없이 등장한 나를 보고 놀랐는지 눈꼬리가 댕그란 모양이 되더니 이내 뻐끔뻐끔 입술을 움직여 반사적으로 ‘안녕.’ 인사를 해온다. 움찔 손가락이 떨렸다. 반팔 아래로 잡힌 조금 끈적하고 보드라운 살결의 감촉에 그제야 흠칫 놀라 손을 떼어냈다.

 

 

“어? 현대고 박찬열?”

 

 

너의 옆에 있던 남자애가 대뜸 아는 채를 해왔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찌 알아? 라는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남다른 껍데기 탓에 흘끗거리는 시선에는 애초에 적응했고 생판 초면인 사람이 날 아는 것 또한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고 반갑진 않았다. 첫인상부터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악의부터 들었다.

 

 

“변백. 너 박찬열이랑 친함?”

“아, 으응. 뭐… 그냥.”

 

 

나를 슬쩍 올려보곤 곤란한 듯 어물쩍 넘기는 대꾸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서서 친한 사이라 네 답을 정정할 수도 없다. 일주일에 세 번 학원에서 마주치는 게 다였고 요즘에서야 겨우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야- 가까이서 보니까 존나 잘나긴 했다, 야. 여자애들이 왜 박찬열, 박찬열 하나 했더니. 이제 이해가 가네. 넌 친했으면서 왜 나한테 말도 안 해줬냐아. 종대 서운해요.”

 

 

남자애가 너의 어깨를 또 툭툭 건드린다. 넌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는다. 맘에 들 리가 없다. 좁아지려는 미간이 느껴져 얼른 눈매에 힘을 줬다.

 

 

“지나가는 길에 너 보이길래. 반가워서.”

 

 

넌 별다른 말 없이 흘러내린 안경을 손등으로 추켜올렸다. 동그란 뺨이 약간 발그레해졌는데. 더위 탓일까.

 

 

“이제 집에 가?”

“아니. 백현이랑 나랑 떡볶이 먹으러 갈건뎅. 박찬열 너도 갈래?”


 

네가 건넨 제안이 아니란 게 마뜩잖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왕이면 쟤 빼고 둘이 가면 좋겠다는 마음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존맛탱!”

 

 

포크로 길쭉한 떡볶이 하나를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열심히 볼을 움직이는 모양을 지켜봤다. 아이스크림 먹는 거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감상에 빠졌다. 앞에 두고 온종일 먹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넌 왜 안 먹어? 존나 맛있는데. 떡볶이 안 좋아함?”

 

 

종대라하는 남자애의 물음에 떡볶이를 들어 올리던 포크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네가 나를 봤다.

 

 

“어. 별로.”

 

 

솔직한 대답에 너의 눈망울에 의문이 스몄다. 갸웃- 고개도 살짝 기울어진다.

 

 

“뭐야. 근데 왜 따라왔냐?”

“그냥.”

 

 

허공에 멈추었던 포크가 도로 접시로 내려왔다.

 

 

“그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피식- 웃음이 새었다. 아이스크림 한번 좋아한다고 했다고 매번 아이스크림 타령인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내 속도 모르고.

 

 

 

 

 

 

더위 사냥 반을 뚝 갈라 긴 쪽을 너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도리 저은 네가 반대 손에 있는 작은 아이스크림을 낚아채 간다.

 

 

“난 떡볶이 많이 먹어서 배불러.”

“잘 먹긴 하더라.”

 

 

민망한지 붉어진 귓불을 긁적이며 ‘아니. 점심에 오이 냉국이 나와서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배가 넘 고파가지구.’ 중얼거린다. 달싹이는 입술을 보고 있자니 속이 좀 탔다. 애가 닳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자꾸만 그랬다. 염치없이 자라기만 하는 마음이 버거워 지고 있었다.

 

 

“근데 너 집 이쪽 아니잖아.”

“응.”

 

 

네 손에 들린 빈 껍질을 가져왔다. 물기 묻은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닦고는 가방끈을 만지작거린다.

 

 

“그럼 어디가?”

“너희 집.”

“응?”

 

 

동그래진 눈꼬리를 내려봤다. 갈증이 일었다.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 같기도 하다.

 

 

“데려다주려고.”

“왜?”

“그냥.”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라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안녕.”

“응. 들어가.”

“학원에서 보자.”

 

 

욕심은 여기까지 부리기로 했다. 네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거까지만 보고 돌아오는 월요일을 기다리기로.

 

 

“왜 안가?”

“너 들어가면.”

 

 

네가 머뭇거리며 혀로 입술을 축인다.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침묵의 틈에 맴맴- 매미가 울었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땀이 배려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돌이켜보면 오늘 유난스럽게 굴긴 했다. 학교 앞에 찾아가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부담스럽다고 하면 어쩌나.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말자고 하면 어쩌나. 네가 말 꺼내기 전에 먼저 돌아 서버릴까.

 

 

“저기. 찬열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찬열이란다. 네가 나한테 찬열이라고 불렀다. 처음이다. 이름을 불러준 게. 그게 뭐라고 심장이 발광이다. 그 한마디에 초조함은 사라지고 묘한 기대감이 물씬 부풀었다. 저렇게 불러놓고 내가 싫다느니, 별로라느니 그런 말을 하진 않겠지.

 

 

“수학 모르는 문제가 있는데…. 아무래도 안 풀려서. 해설을 봐도 모르겠고. 알려줄래? 우리 집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많은데.”

 

 

차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해했어?”

 

 

끄떡이는 고갯짓을 따라 결 좋은 머리칼이 사락사락 나부꼈다. 옅은 비누 향도 풍겼다. 그만큼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설명 되게 잘한다.”

 

 

칭찬이 머쓱해서 어깨를 으쓱하는 거로 답을 대신했다. 설명을 위해 가까이 붙였던 몸을 뒤로 물렸다. 가는 손가락 사이로 샤프를 굴리며 문제를 복습하는 널 물끄러미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안경을 벗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현아.”

 

 

내 부름에 화들짝 어깨를 들썩인 네가 파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냐. 얼굴까지 빨개졌네.

 

 

“안경 벗어봐.”

“안경?”

“응. 안경.”

“…싫어.”

 

 

경계심인지 슬쩍 몸을 물린다. 손을 뻗었다. 안경 브리지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휙- 거두었다. 잽싼 내 움직임을 미처 피하지 못한 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방어했다.

 

 

“보고 싶은데. 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아니야.”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내가 문제도 알려줬잖아.”

 

 

검지로 톡톡 손등을 건드렸다. 살살 구슬리면 보여주지 않을까.

 

 

“다음에도 모르는 문제 있으면 알려줄게. 응?”

 

 

손가락 하나를 잡고 슬며시 당겼다. 마지 못한 듯 너의 열 손가락이 천천히 거두어졌다.

 

 

“눈도 떠야지.”

 

 

어찌나 질끈 감았는지 파르르 경련하던 속눈썹이 마침내 들어 올랐다. 심장이 널뛰는 건 당연했고 숨 쉬는 법 또한 잊었다. 표정은 아마 죄 풀렸을 테지. 바보처럼.

 

 

“돼, 됐지? 얼른 안경 줘.”


 

다짜고짜 눈꼬리에 입술을 갔다 대면 네가 싫어하겠지? 만져보기라도 하면 안 될까? 넋을 놓은 틈에 내 손에 들린 안경을 가져가 다시 써버린다. 야속하기도 하지.

 

 

“예쁜데.”

“……진짜 덥다. 에어컨을 틀어도 덥냐.”

 

 

손가락으로 팔랑팔랑 손부채질한다. 목덜미까지 새빨개진 게 상당히 민망한 모양이다. 그 모습조차 귀여우면 어쩌지.

 

 

“좋아해.”

“……어? 아, 아이스크림? 갖다 줄까?”

 

 

그놈의 아이스크림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는 아이스크림 말고 널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는 날이 오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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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 서로 좋아하는데 그것두 모르구~~~

그나저나 무더위는 대체 언제 가시려나..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찬백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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