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은 고요하고 끝나지 않은 어둠속에서 두눈이 반짝 빛났다. 누군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였다.  숨을 크게 들이 내쉰 클라우드 펠렛은 일어나자마자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꿈속의 자신은 새가되고 꽃이되고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끝없는 순간을 끝으로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왔다. 너무 깊게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누구였지 깨달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눅눅한 공간 속 몸을 일으킨 펠렛은 아무것도 없는 벽돌로만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잠들기 직전 마지막 기억 속 자신은 이렇게 습기 가득한 공간에 온 기억이 없었다. 아니 너무 오랫동안 머물려 있던 탓일까? 온전히 떠오는 기억 조차 없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펠렛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몸 위에서 떨어지는 먼지들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게 해주고 있었다.   



--------------------------------



생 드래프트 궁전은 이곳에 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봐야되는 유명한 관광지였다.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써 이름을 떨치던 생 드래프트 제국은 그 명성에 걸맞게 누구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궁전의 규모와 역사적인 문화유산 그리고 화려하기로 유명한 정원까지 누구나 평생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을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로 손 꼽히는 곳이 되었다. 


그 곳 생 드래프트 궁전의 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 중인 하중역은 이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좋아했다. 낮에는 관광객들도 북적이는 이 곳은 새벽이면 고요하다 못해 외롭기까지 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오늘은 특히 더 조용하네 이렇게 조용한 날이면 좀 오싹하던 말이지'



옛날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곳 생 드래프트 궁전은 최첨단 보안 기술이 무색하게 새벽마다 교대로 0순찰을 도는건 하중역 몫이였다.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는 반짝이는 빨간 불빛의 CCTV와 은은하게 창 안으로 넘어오는 달빛 그리고 손전등이 이 새벽 유일한 동료였다. 으슬으슬한 기운을 느끼며 순찰 막바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여긴 밤이 되면 머리 풀어 헤친 유령이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있어 홀리지 않을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라고' 



고참 경비원이 한 얘기가 떠올라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중역이 여기에 지원한건 단순한 이유 였다.  여행으로 온 이곳에 오자마자 하중역도 개나소나 다 온다는 생 드래프트 궁전으로 관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하중역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궁전도 끝도없이 펼쳐진 정원도 아닌 무심한 듯한 눈빛 가진 어떤 인물의  초상화 였다. 그 초상화 속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물의 옷차림이나 표정에서는 느껴지는 분위기와 무심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뚫어보는 듯한 눈빛이 하중역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관광객 신분으로는 주어지는 시간은 미약하지만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초상화를 두 눈에 가득 담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있을거라는 계산에 이곳 공고가 뜨자마자 지원하게 된 하중역이였다. 덕분에 하중역은 자신의 사심을 담아서 마음껏 초상화를 감상 할 수 있었다. 첫날엔 얼굴 그 다음엔 그의 손끝 그리고 그 다음엔 그의 과거를 상상하면서 초상화 속 인물을 그려보았다. 어느날은 친구 같으면서도 또 다른 날은 고귀한 자태로 그 자리 그대로 있는 모습에 점점 빠져버린 하중역이였다. 


'이 코너를 돌면 드디어' 


하중역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드디어'


초상화를 보러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대충 일해서 일까? 아니면 고참 경비원의 말이 진실이였을까? 어쩌면 어제 먹은 술이 아직 깨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평소와 같아야 되는 그곳에 처음보는 검은 덩어리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여기 생 드래프트 궁전에는 유령이 살고 있는데 그 유령이랑 눈이 마주치면 홀려서 잡혀 먹으니 절대 그 눈을 보면 안되' 



제법 진지하게 말하던 고참 경비원의 말이 스치듯이 떠올랐다. 처음에 그 말을 들을때에는 코웃음 치며 요즘 세상에 유령이 어디있냐며 유령 그림자라도 구경하고 싶으면 좋겠다고 기세 좋았던 하중역이였지만 막상 뜻하지 않는 물체의 등장에 몸이 굳어지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였다.   



'저게 도대체 머지?' 


눈을 갸름하게 뜬 하중역은 천천히 그 검은 덩어리에 가까히 다가가면서 손전등을 비추어보았다. 꿈틀꿈틀한 그 검은 덩어리는 불빛에 반응하는건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하중역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 정체 모르는 검은 덩어리가 소리쳤다. 잔뜩 찡그린 표정에서는 적대심이 가득했지만 그의 색바랜 오래된 옷과 넘칠거리는 긴 황금색 머리를 보는 순간 하중역은 생각했다. 



'음 관광객인가?'



종종 그랬다. 생 드래프트 궁전은 거대한 곳인만큼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오는 관광지였고 정상적인 상식의 관광객이라면 조용히 구경하고 돌아갔겠지만 자신이 과거에 왕족이였다고 자신의 집을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가다 아니 가아끔 만나볼수 있었다. 개점시간, 폐점시간이 정확한 곳이지만 어떻게 숨었는지 자신들의 눈을 피해 새벽까지 있는것자체가 신기할 노릇이였다. 그 덕분에 생 드래프트 궁전에서 하중역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처음엔 유령이라고 겁 먹었던 모습도 점점 '아 또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 계시면 안되요. 폐점시간 끝났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  

"...."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대로 뒤돌아가는 관광객에게 하중역은 더 가까히 다가갔다. 



"손님 여기 계시면 안됩니다"

말을 못 알아듣는건가? 하중역은 그에게 가까히 다가갔다.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번쩍하면서 그의 손끝이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도둑인가?' 



하중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소품 하나라도 망가진다면 어마어마한 대형사고다. 


자신이 이상한 관광객에서 도둑으로 특급승진한걸 모르는 클라우드 펠렛은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누군가의 무덤같았던 비밀공간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던건 그저 우연이였다. 밖으로 나올때만 해도 클라우드 펠렛은 잠깐 자고 일어난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중역은 다가오는 클라우드 펠렛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그를 주시하면서 호출기의 전원을 켰다. 


"여기는 올빼미 제2구격 관광객 출몰했습니다" 

찍찍 

"알았다 오바"



일반적인 관광객이라면 경비복장을 하고 있는 하중역을 보자마자 도망가기 일수였지만 생 드래프트 궁전에서 나고 자란 클라우드 펠렛은 그런 하중역의 존재가 불편하다는 식의 표정으로 쳐다보기 할뿐이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불을 쓰는걸 보니 마법사인가?"


손전등 때문이였을까? 이 상황에서는 전혀 안 어울리는 말이 뛰어나왔지만 다른 관광객들도 자기가 전생에 공주이니 왕족이다는 둥 다양한 사례에 적응이 되었는지 하중역은 놀랍지도 않았다. 



"마법사라면 잘 알겠군. 여기가 어디지?"



하중역은 잠시 고민했다. 이 상황에 어울려주면서 시간을 벌것인지 아니면 제압해서 데리고 가야되는건지 조용히 넘어가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였지만 눈을 씻고 봐도 제압해서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건장해 보이는 체격에 침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무선도 했고 조금있으면 지원오겠지 맞장구나 좀 치다가 내 보내자'



손에 든 손전등의 전원을 껐다 켰다 하면서 하중역이 말을 했다. 



"네 전 마법사 하중역입니다. 여기는 생 드래프트 궁전이고 여기는 시간의 방 이라는 곳입니다. 역대 왕조들과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죠"



하중역을 말을 들은 클라우드 펠렛은 '으음.' 생각에 잠긴듯이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 하중역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클라우드 펠렛은 어느 그림 앞에 서서 천천히 동작을 멈추기 시작했다. 


"...."


고요한 침묵이 흐르고 하중역은 초조한 눈빛으로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꽉 다문 턱과 정갈하게 뻗은 콧날 그리고 길게 곱슬거리다 못해 흘러내는 황금색 머리카락까지 가만히 있어도 클라우드 펠렛은 참 그림같은 사람이라고 하중역은 생각했다. 어디에서 이런 남자가 뽕하고 뛰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누구보다 화려한 이 생 드래프트 궁전에 잘 어울렸다. 



'이쯤되면 올법도 한데 왜이리 늦지? 다들 놀고 있는거 아냐?' 



왠만하면 혼자서 해결할법도 했지만 이렇게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제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체격 하나만 보고 경비원에 지원해서 들어왔는데 자신보다 비슷 아니 조금 더 커보이는 클라우드 펠렛을 보니 이거 쉽게 끝날 일이 아닐거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만 보낼수도 없는 노릇



"여기에 계시면 안됩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시간?"

시간이는 말에 침묵하던 클라우드 펠렛이 반응했다. 



"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여기는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올수 있는 곳이니까요. "

"정해진 시간만이라.... 여기에 들어올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냐?"



조금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긴 했지만 표를 끊고 관람이 가능한 시간안에 이곳을 방문하는게 조건이라면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하중역은 대충 대답했다. 



"시간이 다 되면 어떻게 되는것이냐?"

"문을 닫고 다시는 들어올수 없게 됩니다"

"그럼 너는 여기를 지키는자인가?"



비록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 자신은 여기 경비원이였다. 


"네 이제 여기서 나가셔야 됩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이게 통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클라우드 펠렛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다음 하중역 말에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옳겼다. 



하중역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지난밤 길 잃은 관광객을 찾아서 되지도 않는 마법사 흉내까지 내면서 데리고 나가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를 데리고 온게 문제였던 건지 아니면 발견한게 문제였던건지 환한 불빛아래에서 본 그는 정말 신이 내린 조각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로  대단한 외모를 가졌었다. 상아빛깔이 감도는 투명한 피부와 그 위를 수놓은듯한 황금색 머리는 흡사 파도 물결 같아 보였는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감 마저 불러 일으켰다. 



'음.. 저렇게 잘생겼는데 어쩌다가... '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은 물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저 미소만 방긋 짓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것도 난감한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온게 문제였을까? 내일 모레면 달로 소풍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요즘같은 현대사회에 아무소리나 하면 병원이든 경찰서인든 넘길건데 이상황에 아무것도 기억안난다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될지 여간 난감할 일이 아니였다. 그리고 나 말고 다른사람은 호의적인건지 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떨어주지를 않나 배고프지 않냐며 간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모습의 고참 모습이 여간 어색했다. 


"어쩌다 이 구한분께서 여기에 오셨나이까"


처음에는 '어어어 왔어?' 하면서 먼가 시쿵둥한 표정으로 CCTV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던 고참 이였는데 지금은 금이야 옥이야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관자부위를 꾸욱 누르면서 지끈거림을 다스리고 있는 찰라에 클라우드 펠렛과 눈이 마주쳤다. 옷에 붙은 먼지를 털고 가볍게 미소짓는 그를 보는 순간 좋다고 심장이 벌컹벌컹 뛰는걸 보니 순간 밀려왔던 두통이 싹 가시는게 느껴졌다. 



'역시 잘생긴게 최고구나... '






 








  




 


  


 


















배덕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