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런 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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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동기? 앞으로의 각오?"

"그런 건 작년 면접에서도 물어봤잖아."

"그럼 이번엔 뭘 물어볼까? 뭐, 이 자리에서 저를 당황시켜보세요 이런 거?"

"무슨 입사 면접 보냐?"

 

일 년 내내 하도 까마득해서 현실감조차 없었던 블락버스터 면접 날짜가 가까워지나 싶더니 어느새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일학년, 아니 이제 이학년이 된 동아리원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던 대화 주제는 요 며칠 단연 최고의 화두였다.

 

"민호야, 네 생각은 어때?"

"아무래도… 랩 같은 거 시키지 않을까? 그동안 가사만 몇 번 썼지 제대로 랩 하는 걸 보여드릴 기회는 거의 없었으니까."

 

민호의 답에 동아리원 중 하나가 우는 소리를 냈다.

 

"아, 망했다. 난 그런 긴장된 분위기에서 랩 절대 못해."

"그럼 안 할 거야? 못해도 해야지."

 

지훈이 즉각 답하면서 제 핸드폰을 뒤적였다. 할 만한 랩 가사가 있는지 찾는 거다. 민호는 이미 겨울 방학 때 자작 랩을 주제별로 몇 개씩이나 준비해 놨다. 뭘 시킬지 모르니 최대한 많은 걸 준비해야 했다. 랩뿐만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생각한 예상 질문지를 만들어서 동아리원들에게 돌렸다. 다 같이 잘 되면 좋으니까.

 

"근데 그거 진짤까? 몇 년 전에 한 학년 전체가 다 떨어진 거."

"그거 박경 선배님한테 물어봤더니 진짜라던데?"

 

전설, 혹은 괴담처럼 이런 소문들은 작년 내내 심심치 않게 일학년들을 괴롭혀왔다. 어떤 학년은 한 명만 붙었다더라, 어떤 학년은 전원이 다 떨어졌다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일학년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나마 패기 좋게 굴었다. 우리는 다 붙는 최초의 학년이 되자.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민호도 그걸 바랐다. 분명 그랬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당장 제가 붙을지 떨어질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의 합격을 얘기하는 건 기만 같기도 했다. 누구에 대한 기만? 아마 떨어질지도 모르는 저 자신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분명 작년 초까지만 해도 본 면접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다. 주변 분위기도 그랬고. 쟤 아니면 누가 붙어? 이건 송민호를 설명할 때 주로 따라붙곤 하는 수식어였다. 그랬는데 한 학년을 거치며 일련의 사고들을 치고 나니 자신이 없어졌다. 두 학년 선배인 한해 랩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 가사 하나 제대로 써오지 못해 무려 지호에게 대필까지 하게 한 것, 그런 굵직한 것 외에도 중간 중간 동실 청소를 제대로 못 해서 불려가 혼난 것, 동실 문을 못 잠그고 하교해서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까인 것 등 자잘한 잘못 역시 양 손으로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이 쳤다. 처음에 괜찮은 평가를 받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끝날 때 잘 해야지. 자조적인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가면 한참은 멍하니 아무것도 못했다.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당장 내일이 면접이니 그간 달달 외웠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했다.

면접 당사자인 민호가 면접 질문을 예상하는 건 너무 막연하기만 해서 지난 일 년 동안 제법 친해진 지호한테 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지호는 민호가 부단히 눈치 본 끝에 슬쩍 던진 질문에 그와 눈도 마주쳐주지 않고 먼 곳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걸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아니, 우리한테 뭘 질문할지 묻는 게 아니구요. 작년에 형이 들은 질문이요.'

'그게 그거잖아.'

'…그런가.'

'그게 그렇게 궁금해?'

'당연하죠. 저 떨려서 요즘 잠도 안 와요.'

'뭘 떨어. 당연히 너한테 궁금한 걸 질문할 거고 거기에 답하면 되지.'

 

그러니까 저한테 궁금한 게 뭔데요. 민호는 뒷말을 애써 삼켰다. 물어봤자 말장난이나 치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을 거였다. 민호도 지호와의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구체적인 면접 질문을 미리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대략적인 분위기나 질문 난이도가 궁금한 거였을 뿐.

 

면접 당일, 송민호는 긴장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고 학교에 갔다. 잠이 현저히 모자란데 피곤하지도 않아 정규 수업 내내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겨 사전에 공지 받은 밴드부실로 들어갔다. 작년 내내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힙합 동아리실 바로 옆이었다. 낯선 내부에는 이미 자리 차지하고 앉은 눈에 익은 친구들 몇이 보였다. 유일한 삼학년은 지호 옆에 있는 걸 몇 번 봤던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다. 이승훈. 가슴팍에 붙은 명찰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민호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이승훈에게 인사하고 제 친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갔다. 친구들과 영혼 없이 주고받던 잡담은 이내 끊겼다. 모두 머릿속이 복잡했다가 하얗게 지워졌다가를 반복했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된 적이 있었을까.

 

"대충 다 온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설명할게. 여기서 가나다 이름 순서대로 한 명 씩 면접 보러 동아리실 들어갈 거고 면접 본 사람들은 그대로 학습실 가서 야자하면 돼. 여기선 면접 질문 유출 우려가 있어서 핸드폰은 사용 금지야. 굳이 걷거나 하진 않아도 되지?"

"네-"

"음, 김지원부터 가방 챙겨서 가봐."

 

명단을 확인한 승훈이 지원을 호명했다. 잔뜩 언 김지원이 가방을 챙겨서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갔다. 이름 순서대로라면 송민호의 차례도 멀지 않았다. 거의 마지막 순서인 표지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책상에 엎드렸다.

 

"차라리 빨리 보는 게 낫지 이게 뭐야."

"그래도 나중에 보면 더 오래 준비할 수 있잖아."

"질문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더 준비해?"

"하긴 그래."

 

어젯밤에는 면접에서 선보일지도 모를 랩을 연습하는 대신 지호가 한 말을 곰곰이 뜯어봤다. 나에게 궁금한 게 뭘까. 선배들이 나에 대해 모르는 것. 그 중 알고 싶은 것. 아무래도 랩에 대한 열정일까. 제 열정은 작년과 똑같은데, 커지면 더 커졌지 작아지진 않았는데 그간 친 사고들 때문에 선배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이걸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뭐가 최선의 방법일까. 민호는 반질반질하게 코팅된 나무색 책상을 빤히 바라보며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송민호."

"네?"

"가봐. 네 차례야."

 

갑작스레 불린 제 이름에 벌떡 일어날 때 까지 답은 단 한 가닥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민호는 방송실을 나섰다. 야, 잘해라! 친구들의 응원을 뒤로 하며.

일학년 면접 때는 이, 삼학년 다수 대 일학년 다수로 면접을 봤다. 선배들의 시선이 전부 한명의 일학년에게 꽂히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이번엔 달랐다. 민호는 제 집처럼 드나들던 방송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고 선배들을 마주보는 위치에 놓인 빈 의자에 혼자 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민호를 스쳐지나갔다. 호칭만 선배님이지 어렵지 않게 장난치던 익숙한 얼굴들, 익숙한 장비가 가득 놓인 동아리실임에도 아까 처음 가보는 밴드부실에 있었을 때보다 더 떨리고 어색했다. 과연 무슨 질문을 들을까. 완벽하게는 못하더라도 멍청해보이진 않게 답해야 할 텐데. 민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채 숨기지도 못하고 짧은 손톱을 손바닥에 꾹꾹 박아 넣으며 질문을 기다렸다. 일 년을 기다려오고 두려워했던 그 면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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