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이 형을 다시 본건 발인식후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


나는 한 5일동안 출근도 하지않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 힘든거 알아달라고, 시위하고 싶은 맘에서 그랬으려나. 5일간 씻지도, 먹지도 않다가 머리가 너무 간지러워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막 드러누우려던 찰나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잘 지냈냐?"


현관문을 막 열었을때, 태형이형은 말끔한 얼굴로 내게 반찬통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인사했다. 

나는 당연히 들여보내줄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이 형은 너무 잘나고 착했으니까.


-

태형이형은 나를 위해서 두부조림과 깻잎김치까지 만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게, 잡채는 갑자기 왜. 나는 부엌에서 태형이 형의 반찬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 식탁 앞 의자에 철푸덕 앉았다. 얼굴 꼬라지좀 봐라, 태형이형이 내 얼굴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나 시위하는거야.

나 사랑이고 뭐고 전부 조진게 틀림없어서, 인생에 의욕이 없거든.

이라고 말했다간 착한 태형이형은 나를 보고 있는대로 시무룩해질것같아서, 난 말대신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수염이라도 좀 깎지."

"아, 몰라. 귀찮아."


태형은 못말리겠다는 얼굴로 부엌을 뒤져 햇반을 데우고 있었다. 내가 언제 밥을 먹었었나? 기억이 안난다. 
나 좀 슬픈건가.

젠장, 뭐가 그렇게 슬픈건가.

대체 뭘 또 마주해야되는걸까. 아, 이제 정말로.


"수염 깎고 오라고!"


태형이형은 내시같다며 내 수염을 비웃었다. 나는 턱 밑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그렇게 꼴보기 싫은가. 벅벅.


"수염 깎는거 잊어버렸어."

"그럼 밥먹는것도 잊어버렸냐?"

"그런가봐.."


태형이형은 내 말에 슬픈 표정을 짓는다.

태형이형은 전자레인지 알림소리를 듣고 햇반을 가져오다, 오도카니 잠시 서있었다. 나는 그런 태형이형을 멍하니 바라봤다. 부엌등에 비친 태형의 얼굴, 뭘 생각하고 있을까.


아, 설마.


"지민이형때문은 아닌거 알지?"


나는 눈썹도 간지러워 눈썹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말에 태형이형은 어색한 미소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안에서 소주 한병을 가져왔다. 새로 한병. 술을 보자마자 태형이형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너 빈속에 술먹게?, 그 말에 나는 대답대신 자리에 철푸덕 앉아 소주병을 깠다. 나는 소주병을 깔때의 그 경쾌한 소리가 너무 좋다. 술을 먹을 때가 됐다는 말이다.


"안주는?"

"형이 가져온 두부조림이랑 먹을게."

"허."


나는 태형이형에게 따라주지도 않고 혼자 자작을 했다. 나도 마실래, 태형이형의 말에 나는 테이블에 뒹굴어다니는 잔을 하나 내밀었다. 태형이형은 묵묵히 내가 준 소주를 마신다. 캬아, 하면서 찡그리는 미간도 매력적이다. 역시 지민형이 반한 남자. 우리는 말대신, 서로 묵묵히 소주를 따라줬다. 할말이 있는건가. 아니면 내 초췌한 몰골에 태형이형은 전의를 잊었는지 말을 하고 싶지 않은건가. 나는 묻고 싶지 않았다. 저 꾹 다문 입술이 이제 조금 무섭다.

또 뭐라고 지민형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착한 남자를 절대 배신하고 싶지도 않고, 배신할수 없으므로 더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발인식내내, 내 옆에 있어준 태형이형. 그리고 내가 굶어죽을까봐 음식을 만들어온 태형이형.

그리고 나는 발인식이 끝나서도 집에 쳐박혀서, 전남편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알면, 태형이형은 또 슬픈 얼굴이 되려나.

아니면 천하의 못된 놈이라고 욕을 하려나. 아무튼 둘 다의 모습을 보고싶지 않으므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민이도 많이 힘들어해."


역시 또 박지민 얘기.

그런데 난 생각보다 듣고싶지않다는 생각보다, 5일 넘게 지민형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궁금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또 궁금한게 있다.

내가,

보고싶지 않은지. 

너는.


"지민이도 나도, 어렸을적부터 봐왔잖아. 너희 엄마."


나는 잠시 떠올렸다. 우리 결혼식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엄마의 웃음을. 지민형은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까지 했다. 나는 그 옆에서 괜시리 머쓱해서, 입맛을 쩝쩝 다시고. 우리 엄마가 아플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병간호를 하던 지민형의 얼굴도. 그리고 그 옆에서 괜히 민망해하며 엄마의 얼굴을 살피던 나의 얼굴까지.

그리고 그 두명은 이제 나를.


"응."

".........그래도 정국아. 너 힘 내야지."


하느님은 우리 엄마를 가져갔고.

태형이형은 이제 나에게서 박지민을 가져가려한다.

그 당사자가 내게 힘을 내라니.


나는 태형이형을 유심히 쳐다봤다. 정말 악의 하나 없이 풀이 죽은 형의 눈빛을. 태형이형은 몇시간동안 나를 위로해줬고, 난 그 안에서 박지민 얘기만 나올때마다 눈을 빛냈다. 그리고 지민형의 얘기를 꺼낼때마다 나는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걸 느꼈다. 분명 소주를 엄청 많이 마셨는데. 그치. 그리고 나는 또렷한 정신으로 말했다. 술김에,가 아니다. 정말 오늘은 하나도 안취했는걸.


"나 곧 아빠한테 말할거야."

"뭘."

"우리 이혼했다고."

"................"


이제 엄마는 없으니까, 더이상 거짓말을 칠 이유가 없기에. 나는 정신을 차리는대로 말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집 팔거다."

".............."

"으으. 혼자 살기엔 너무 넓잖아!"


32평짜리라고. 

혼자 청소하는데에만 반나절이 다가는 쓰잘데기없이 넓은 집. 그리고 이 집을 청소하다보면 너무 쓰잘데기 없는 추억들이 내 가슴을 치기에,

가령 사진들이나, 지민형이 놓고간 옷가지들. 그것들이 나를 지금도 괴롭히고 있다.


"팔면 반띵해서 박지민한테 준다 말해."

"크크."


태형이형은 조금 웃었다.

난 태형이형의 웃음에도 눈물이 나올것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나는 다음날 밀려오는 숙취에도, 일어나자마자 아빠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박지민과 이혼했다, 라고. 아부지. 내 말에도 성한번 내지 않고 잘했다고 하셨다. 뭘 잘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난 아빠한테 왜 혼내지 않냐고 물었는데 아빠는 더이상 힘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네가 잘한게 아니라 지민형이 잘한거라며 지민형의 칭찬을 했다. 끝까지! 아빠는 심지어 이혼한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네 잘못이겠지, 아빠는 흥 하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숙취에 이마를 짚으며 짐을 쌌다. 짐이 한두개가 아니다. 일단 짐정리가 대충 끝나는 대로 부동산으로 갈것이고.


그리고, 나는 짐청소를 하다 우두커니 걸음을 멈췄다.

이 집을 팔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수 있는건가.

결혼전으로.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이미 박지민은 빠진게 매우 오래 되버린일이고, 나는 힘들지만 이미 굶어죽지도 않고 그럭저럭 일도 잘하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태형이형은 언젠가 박지민과 결혼을 할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그냥 내 인생 살면 되는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재혼을 할수도, 아니면 안할수도. 아니면, 못할수도.


왜 그런데 그런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되는 일인데. 내 인생에서 아예 박지민 하나를 그냥 빼버리면 되는 일인데. 나는 박스에 옷가지들을 정리하다 잠시 주저앉았다.

이제 정리하면 되는 일인데. 마룻바닥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


나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

지민형은 며칠뒤 우리집 문을 쾅쾅 두드리며 쳐들어왔다. 술냄새를 잔뜩 풍기면서. 그날은 새벽 한시쯤이였고, 나는 막 잠이 들어서 코까지 골고있는 찰나였다. 전정국! 문열어!, 째지듯이 소리지르는 지민형의 목소리에 나는 졸린눈을 번쩍 뜨며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뭐야, 나는 팬티바람으로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지민형은 나를 막 때리려고 주먹을 들었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내 머리를 감싸쥐었다.


"................"


지민형은 나를 막 때리려다, 거실로 뛰어들어와 거실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미쳤냐?"


나는 그렇게 말했으나 지민형은 대꾸도 없다. 마룻바닥에 얼굴을 납작하게 들이밀고 숨만 쉬고 있다. 나는 엎드려 누워있는 지민형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밀었다. 술 취했으면 곱게 너네 집 가서 잠이나 자지!, 내 말에도 미동도 없다.나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등을 켰다. 지민형은 검은색 츄리닝 차림으로 엎드려있었다.


"자?"

"아니."

"뭐하는거야?"

"..................."


거실 냄새맡는다.


지민형은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하며 킁킁거렸다. 신종 술버릇인가.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지민형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 남자도 정신이 나간건가. 나처럼.  술냄새가 진동을 하기에, 나는 쯧쯧거리며 냉장고를 열어 냉수를 따라와서 지민형에게 내밀었다. 지민형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꼭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 자는거야, 마는거야.


"자는거지?"

"...........눈물 나올까봐 참고있는거야."

"........왜 또."


지민형은 그렇게 말하고 거실바닥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된 지민형의 얼굴.

어두워서 몰랐는데.

나는 눈을 쨍하니 뜨고 지민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 집 판다며."

"..........어..태형이형한테 들었구나."

"진짜구나."


그 말을 끝으로 지민형은 소리내어 울기시작했다.


"야. 왜 그래?"


나는 너무 놀라서 지민형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지만 너무.

지민형은 얼굴까지 있는대로 찡그리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서럽게 울었다. 마룻바닥부터 내 옷까지 축축히 젖을 정도로. 나는 계속 지민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왜 그러는데. 어? 왜 우는데?

창문 밖 까만 야경이 우리들 사이로 정신없이 쏟아졌다. 나는 너무 놀라서 계속 지민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지민형은 울다가 주저앉아 마룻바닥을 두 주먹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야. 박지민 야..


나도 울고싶었다. 왜 그러는데.

왜 그렇게 서럽게..

나는 머리를 헤집으며 쓰러진 지민형의 등을 쳐다봤다. 조그맣고 왜소한 등. 야. 이 바보야.



"집 팔지마라.."

"뭐?"

"팔지말라고."

"왜?"


지민형은 내 말에, 술에 흐트러진 눈으로 거실을 쏘아봤다. 멍하니 빛나는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떨어졌다. 지민형은 조그만 손으로 손짓을 하며 중얼거렸다.


저기, 저기 결혼사진 걸려놓은 못도 내가 박은거고..


어. 알어 뭔데..


저거 못 박다가 내가 못질하다 손 다쳐서 너가 해준거고.


그게 왜.


저기 부엌에 있는 잔 두갠데 내가 싸우다가 하나 던져서 하나밖에 없잖아.


그게 왜.


'박지민,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한거지?'

나는 묻고싶었다.

우리는 이제 남이고, 아니 진작 남이고.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인데.


나는 머릿속에서 계속 그렇게 생각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고여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눈물을 참아내는데도 지민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이 집을 팔아버리면.."

".............."

"우리 결혼생활이 더이상 없던 일이 되는거잖아."


그 말을 끝으로 지민형은 내 어깨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숨이 넘어갈정도로 지민형은 크게 울었다. 눈부터 입술까지 전부 빨개져서, 지민형은 팅팅 부은눈으로 나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물기 젖은 얼굴이 내 가슴에 닿았다.

 아, 나는 멍하니 거실부터 부엌을 쳐다봤다. 


[더이상 없던 일이 되는거잖아.]


집 팔지마..정국아..


지민형은 급기야 눈물젖은 목소리로 빌기까지 했다.


이거 팔아서 너 다줄게. 그래도 싫어?


내 말에도 싫다고 지민형은 고개를 젖는다.

 

이 짠돌이가. 진짜 드디어 미쳤구나? 


내 말에도 지민형은 웃지도 않는다. 내 옷을 못쓰게 만들작정인지 티셔츠를 있는대로 구기고 잡아당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지민형은 웃음이 나오냐고 내 어깨를 있는힘을 다해 때렸는데도, 나는 계속 웃었다. 


나는 계속 지민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발의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나는 언젠가, 이 머리카락도 더이상 만질수 없겠지. 이 정신나가고 미련한 남자의 머리칼을.

 네 새출발을 위해서 이렇게 옆에서 빌어주는 전남편을 두고, 왜 이러는건지.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민형은 가벼운 몸을 나에게 맡기고 여전히 흑흑거렸다. 


그래도 형.


"집 팔거야. 형."

"................"

"미안해, 팔거야."

"............"

"그리고 이건 내 부탁인데.."

"............."

"더이상 나에게 얽매이지 마라."

".............."

"나같은 나쁜놈 이제 잊어. 지민아."




-

나는 잠들어 있는 지민형의 얼굴을 밤새 바라봤다.

내 등에 업혀서 침대에 대자로 누운 지민형의 얼굴을. 오랜만에 우리가 눕던 침대에 혼자 누워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눈물자국이 묻어 찐득찐득해진 얼굴도 오래 오래 쓰다듬었다. 날이 밝고 아침의 햇살이 쏟아지는 따뜻한 날씨에도,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지민형은 술과 잠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내게 쉰 목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조그만 두손으로 생명줄이라도 되는것처럼 내 티셔츠를 잡아당기던 그의 손아귀 힘에서, 나는 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싫어, 얽매일거야.'

'...............'

'평생 얽매일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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