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에게.


 "빛 마법은 정말 도움이 안 됩니다. "

 처음 공화국의 학교에서 만났을 때, 빛의 신의 선택을 받은 기사라 떠받들어지던 마들렌을 쏘아보며 에스프레소가 한 말이었다. 어두운 피부, 안경, 누군가를 비웃고 있는 것이라 오해할 것같은 반쯤 감은 눈을 가진 그 쿠키는 학교에 있는 동안 자신의 급우는 물론 동기, 학우들, 교사들에게까지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소위 말하기를 문제아 쿠키였다. 입학 성적은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타 귀족의 자제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그랬기에 공화국의 귀족들에게 좋지 않은 눈초리를 받았다. 이는 선생들도 마찬가지였고,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여, 빛의 신의 신탁이 향한 곳을 향한 태클을 긍정적으로 볼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적어도 한 명. 그에게 긍정적인 눈빛을 보내는 쿠키가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있었다.

 "자네가 어찌 그리 생각하는지 알고싶군. "

 태클의 표적이 된 마들렌은 오히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에스프레소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다.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의 반응은 분명했다. 너그러운 마들렌과 비틀린 에스프레소. 교내의 여론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령 공화국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봉건제의 여력은 남아있었으며, 출신이 상대적으로 미천한 에스프레소가 절대 다수의 귀족출신 학생들에게, 더군다나 에스프레소 자신보다 우월한 것이라고는 신분밖에 없는 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허나 에스프레소는 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언제나 성적은 상위권을 달렸으며, 누군가의 욕설이나 악의적인 괴롭힘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 특히 성적은 나락이지만 가문을 등에 업고 학교에 들어온 쿠키들이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운 털이 굵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볼 때마다 차가운 표정인데, 이유라도 있나. 에스프레소. "

 "그 쪽과 같이 선천적으로 혜택을 받고 태어난 이들은 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까닭입니다. "

 "자네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에는 평생 걸릴지도 모르겠군. "

 "당신이 이리 말을 거는 이유 또한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당신과 제 쪽으로 모이는 시선들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으니까요. "

 그제서야 마들렌은 뒤로 돌아보았다. 수십 개의 시선이 그들의 등을 찌르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겠지. 교내 최고 아웃풋과 성적이 좋을 뿐인 평민이 교정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 에스프레소는 뒤쪽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계단에서 일어나 먼지를 툭툭 털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야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쪽으로 발을 옮기었다. 마들렌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에스프레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의중은 파악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다음날부터, 에스프레소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에스프레소는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도,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에스프레소를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하여 그리도 간절히 소원나무에 편지를 거셨습니까. "

 "오랜만이군, 에스프레소! 와하핫! "

 "회포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말이지 당신은... "

 어릴 때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얼굴을 에스프레소는 지어보였다. 여전히 차갑고, 얼음장과 같은 목소리였지만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있었다. 절대다수의 열등감 아래 깔린 이들이 절치부심하던 미소. 다만 마들렌은 -어쩌면 자신이 가문의 혜택을 크게 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환한 자신의 미소를 보이며 화답했다. 그리도 보고싶었습니까. 에스프레소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이에 마들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나누고픈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았다. 허나 입을 꾹 다물었다. 에스프레소는 자신이 아는 쿠키들 중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허나 한 가지는 묻고싶었다. 단 한 가지, 그에게 묻고싶은 것이 있었다.

 "그 시간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군요. 단순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공교롭게도... "

 어느 문파의 수장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리 말하며 지은 웃음에 봄이 핀 듯 차가운 것이 녹아있었다. 마들렌은, 그 미소를 봄과 함께 침을 삼켰다. 질문들을 삼키었다. 하고싶었던, 준비해왔던 이야기들을 속에 묻었다. 동시에 에스프레소에게, 자신이 하고팠던 이야기을 뭉친 다음, 입 밖으로 토해내었다.

 "보고싶었네. "

 "......유감스럽게도 그 날 이후로 당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허나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주지 않았나. "

 "당신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싶었다... 정도로 해두죠. "

 내 얼굴이 그리 얼빠진 듯 보이나. 마들렌은 중얼거리며 제 얼굴을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에스프레소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끅끅 웃고 있었다. 제가 그렇게 보고싶었습니까. 훅 들어온 그의 질문에 마들렌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프레소는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마들렌은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이며,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리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답이지만, 막상 들으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별안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풀잎이 바람에 맞춰 음악을 연주했다. 마들렌은 자신의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을 때, 에스프레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를 마주친 것이 꿈결인 것처럼.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