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도 9월, 부산 디페스타에서 판매된 회지로, 일부분의 문장이 수정되었습니다. 스토리가 변경된 점은 없습니다.




룬의 아이들 보리스 진네만 가족 이입 드림

3000원

 

주의. 본 회지는 한국과 비슷한 현대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하며, 트라바체스를 배경으로 하지 않습니다.






보리스가 어색한 얼굴로 초등학교 현판 옆에 섰다. 나는 카메라를 세로로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음, 잘 나왔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리스가 얼른 내 곁으로 왔다.

교문 주변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 중이었다. 둘이 온 건 우리뿐이지만. 예프넨이랑 왔어야 했나. 아냐, 걔도 오늘이 개학인데.

나쁜 건 엄마 회사다. 어느 회사가 입학 시즌에 출장을 보내냔 말이다.

“누나, 아파요.”

보리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얼른 잡고 있던 보리스의 손을 놓았다.

“미안, 누나가 힘 많이 줬어?”

손을 다시 쥐며 묻자, 보리스가 느리게 끄덕거렸다.

보리스가 막 왔을 때는 이렇게 손잡을 거라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젠 불편하다고 말도하고. 나는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감동을 외면했다. 감상에 잠겼다가 보리스의 입학식을 놓치면 어떡해.

나는 먼저 받은 안내문을 다시 확인했다. 입학식 장소는 강당. 주변을 둘러보자 한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쪽이 강당인가 봐.”

보호자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죄다 푸른색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저 중 몇이나 우리 보리스랑 친해질까. 나는 보리스의 손을 고쳐 잡고 천천히 그 흐름에 합류했다.

강당으로 들어가자 단상 앞에 놓인 팻말이 보였다. 그 옆으로 한 명씩 서 있는 게, 선생님인가? 나는 보리스가 배정받은 반을 찾아주고 뒤로 빠졌다.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입학식이 시작됐다. 나는 끊임없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학과 단체 메시지 방에서 어디냐, 같이 입학식 가자는 소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알람을 대충 지우고 핸드폰 카메라로 보리스를 찍었다. 교장의 축하와 교감의 폐회사는 어딜 가도 지루한 것 같다. 식이 완전히 마무리되자 선생님이 팻말을 들고 아이들을 인솔했다.

주변의 보호자들과 섞여 나도 보리스를 쫓아갔다. 교실에 도착한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운 좋게도 창가에 서서, 안쪽을 볼 수 있었다.

키 순서대로 앉은 건지, 보리스는 중간에서 약간 뒤쪽에 있었다. 칠판에 적힌 선생님의 이름은 알렉산드라. 나는 그 이름을 한번 중얼거리고 보리스를 살폈다.

주변에서 계속 찰칵 소리가 났다. 지금 카메라를 꺼내긴 어려운데…. 나는 고민 끝에 핸드폰 카메라로 보리스를 몇 장 찍었다.

불현듯 핸드폰이 진동했다. 뭐지? 상단 바를 내리자 예프넨이 보낸 메시지 미리보기가 떴다.

[예프넨 : 보리스 입학식 끝났어요?]

[입학식은. 지금은 담임 선생님이랑 인사 중.]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고 조금 전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유리창 너머에서 찍은 터라 아주 선명하진 않지만 보리스 얼굴은 잘 보였다. 예프넨은 곧장 확인한 것 같았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인가.

나는 답장을 곧장 머리에서 지우고 보리스의 사진을 더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우렁차게 인사했다. 나오려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 사람들을 헤치고 교실 뒷문으로 갔다.

곧 아이들이 한 줄로 걸어 나왔다. 보리스 역시 금세 나타났다. 보리스는 잠깐 두리번거리나 싶더니 곧장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흔들던 손을 내려 보리스를 잡았다.

“밥 먹으러 갈까?”

“네.”

보리스를 데리러 와야 할 테니, 저녁엔 대학에서 여기로 오는 법을 알아둬야지.




 

 

보리스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나는 빠르게 정리하고 일어났다.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무시했다. 나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의자를 대충 넣었다.

정문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이십 분. 연이은 파란불 덕에 쾌속으로 도착한 초등학교에는 벌써 사람이 많았다. 나는 사람들이 조금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 떠나지 않은 아이들이 알렉산드라 선생님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나 분이 오셨네요.”

내가 웃는 동안 선생님이 보리스를 보았다. 그리곤 시선을 맞추며 나긋나긋하게 인사했다.

“보리스, 집에 잘 가렴. 선생님이랑 내일 또 보자.”

“네, 안녕히 계세요.”

보리스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손을 내밀자 보리스가 자연스레 내 손을 잡았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보리스와 손을 잡으면 늘 새로운 감동이다.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어?”

“어, 프리타타?”

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떠올렸다.

“치즈를 잔뜩 넣은 게 좋아, 아니면 소시지가 잔뜩인 게 좋아?”

“…치즈?”

“그럼 가는 길에 치즈만 조금 더 사서 가자.”

“네.”

보리스가 크게 끄덕거렸다. 나는 씩 웃으며 보리스와 보폭을 맞췄다. 점심 먹고 보리스는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나는 조별 모임을 하러 가면 되겠다.


*****


테이블에 둔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으로 해둔 탓에 다른 조원들이 은근히 눈치를 줬다. 나는 작게 사과하고 화면을 확인했다. 엄마가 왜 이 시간에 문자를 보냈지? 근무시간일 텐데.

[엄마 : 갑자기 일 생겼어. 예프넨 상담 좀. 8관 204호]

일? 예프넨 상담? 뭔, 아, 예프넨 진로 상담? 그거 오늘 세시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은 두 시 반…이 조금 넘었는데.

여기서 예프넨 학교까지, 삼십 분…만에 가라고? 반사적으로 침이 넘어갔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자료 들고 얘기할까요?”

“네, 네!”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조원들이 나를 의아하게 보았으나, 가방을 챙기는 게 더 급했다.

“동생한테 일이 생겨서요. 오늘 할 건 다 한 거 같으니까 먼저 갈게요. 다음 회의 시간은 메시지 보내주세요. 미안해요!”

조원들의 시선이 따가웠으나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나는 카페를 뛰쳐나와 방향을 가늠했다. 예프넨 학교, 중학교가… 저쪽! 대학교와 가까운 곳이 아니라 집과 가까운 곳이라 다행이다. 걸어서 삼십 분…, 아까 남은 게 삼십 분이었으니 지금은 이십 분이려나.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중학교에 도착했을 땐 갈비뼈 아래가 욱신거려서 더 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오른쪽 옆구리를 왼손으로 누르며 핸드폰을 꺼냈다. 8관 204호, 8관, 8관…. 저긴가?

맞기를 기도하며 간 파란 지붕 아래로 8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와, 만세! 나는 곧장 2층으로 가 204호를 찾았다. 도착한 문 앞에 복잡한 표정의 예프넨이 있었다.

예프넨! 하고 부르면 될 텐데, 입 안이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빠르게 걸었다.

불현듯 예프넨이 고개를 들었다.

“누나?”

얼떨떨한 목소리에 나는 발을 멈추고 허리를 숙였다. 부족한 숨을 바삐 채우려니 폐도 아픈 기분이다.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힘들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예프넨 옆으로 문이 열리고, 학생과 보호자가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목례하고 예프넨 곁으로 갔다. 예프넨은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예프넨?”

“아, 선생님.”

“이모님…이 오시기로 하지 않았니?”

내게 닿는 시선이 의문과 떨떠름 사이 어딘가 같으면, 과민한 건가?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평소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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