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메인스토리 초반 스포가 있습니다.........






편속성 크리스탈의 응용을 위해 시드가 엔터프라이즈를 개조하는 동안,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이 생겼다.

그리다니아의 햇살은 따사롭고 기분 좋았다. 커르다스의 추위는 사람들에게 냉혹했고, 알피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숲에 있는 것이 좋다. 은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철그럭, 금속제 갑옷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도련님? 뭐 하고 있어?"


나이트로, 늘 선두에 서는 황혼 부족 사람이었다. 그녀는 알피노의 곁을 지나쳐 테라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섰다. 손에는 칼라인 카페에서 파는 도토리 쿠키가 들려있었다.


"자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고, 표정도 다양하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함께 대화를 할 때면 퍽 유쾌해 했다. 장난스레 농을 하기도 했다. 과묵하게 검만 잡는 것은 아닌지 음유시인의 노래도 할 줄 알았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생각보다 높고 청량하다. 또, 그녀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들을 줄 알았다. 모험가들을 환영하지 않았던 하얀테 전초지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보기보다 상냥한가,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고 제 출신처럼 어두운 황혼의 그림자가 걸려있는 듯했다. 가끔 그 그림자가 알피노의 눈에 밟혔다.


"몸은 좀 괜찮은가?"


돌방패 경계초소에서 예기치 못하게 드래곤을 상대해야 했을 때 알피노는 또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그림자를 보았다.


"당연하지."


그녀의 대답은 기운차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그녀는 말을 하다 잠시 머뭇댄다. 타이밍을 재는 건지, 알피노 그를 재는 건지 불확실하다. 알피노는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음 말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레네."

"응?"

"내 이름은 레네야."


알잖아,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엘레젠 소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야 안다. 그녀의 동료들은 모두 그녀를 레네라고 불렀다. 처음에야 애칭 정도로 생각했지만, 알피노는 아둔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명석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평범한 엘레젠족이라면 그녀의 이름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진즉 눈치챘을 터다.

그녀가 자신의 다른 이름을 알려주었다는 것은 곧.


"나 말일세, 자네와 조금 더 친해진 건가?"

"그러려나."


턱을 괴고 레네가 웃었다. 높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공중에 흩어진다.


"뭐, 알피노 도련님도 날 걱정해주긴 했으니까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


걱정? 알피노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또 깨닫는다. 돌방패 경계초소에서 그랬었다. 제일 먼저 그녀에게 달려갔었지. 갑자기 닥친 위험에 가장 피해를 보았을 게 분명했으니까.


"......자네의 얼굴이 어두웠다네."


알피노가 달려갔을 때 그녀의 얼굴은, 드래곤을 물리쳐 안도하는 것과는 달랐다.

미안하네. 자네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어.

걱정되어서.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지도.


"그랬나......."


레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앞에 서는 자는 책임이 있으니까?"

"하기야 그렇지. 자네는 방패를 들었고."

"후후, 멋진 역할이야. 동료를 지킬 수 있잖아. 너를 포함해서."

"거기에 나도 있었단 말이군."

"또 잃으면 안 되잖니."


마지막 말은 알피노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한 중얼거림이었다.

한참을 미소만 짓던 그녀가 소년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크고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잠시 커졌다가, 이내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웃었다.



어쩐지 낯간지러웠지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원더메어와 보탈리아에 상시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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