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언저리쯤을 읽고있습니다. 최신화와 스토리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대박날조 적폐해석 주의

*한 편으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두편으로 나눠질 것 같습니다.

*오타 비문 등 퇴고안함.






각성자와 던전이 생긴 이례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송태원의 정시퇴근은. 그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잘한 사고부터 송태원이 아니라면 처리할 수 없는 업무까지  매일같이 송태원을 괴롭혔다. 스스로 일을 사서한다고, 불쑥 각관실을 찾아오는 성현제가 송태원의 구겨진 미간을 살살 누르며 말하곤 했었다. 그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서류를 보고 있으면 성현제도 굳이 송태원의 대답을 바란건 아닌 듯 어느때와 같이 송태원이 일하는 구경하다 홀연듯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별개였다. 아무리 제가 일에 미쳐산다는 평을 듣는다고 해도, 연인과 함께 맞이하는 첫 주말의 시작을 야근따위로 늦고 싶지 않았다. 5시 50분. 평소의 그라면 시계를 흘끔 보고 직원들에게 별일 없다면 퇴근하라는 말과 함께 저는 다시 서류를 눈을 돌릴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자신이 들고다니기엔 조금 작아보이는 서류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따위를 집어넣고 있었다. 5시 53분.  퇴근인 6시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송태원은 옷걸이에 걸린 자캣을 집어들었다.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퇴근 하십시오."


그 말을 뒤로 그는 성큼성큼 각성자관리실을 나섰다. 여태껏 같이 일하는 동안 자신의 상사가, 고작 몇 분이지만 정시보다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본 적 없던 직원들은 입을 턱 벌리고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태원의 걸음걸이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건물을 완전히 벗어나 택시를 잡을까 하고 들렸던 손이 다시 아래로 툭 떨어졌다. 퇴근시간의 도로는 막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게 나으려나.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며 지하철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뛰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나 땀 범벅이 되어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일찍 퇴근한 덕일까 지하철 역엔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 덩치탓인지 송태원은 조금 구겨지듯 올라탔다. 벽 한쪽에 기대어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송태원은 주머니속에 요란히 진동하는 전화기를 꺼내고 싶었다. 정확한 발신자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제가 예상하는 사람이리라. 생각보다 사람이 적다고는 해도 러시아워의 지하철은 그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금만 실수로 사람을 친다면 그가 얼마나 다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늘, 송태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긴장을 한다. 성현제가 부셔놓았던 차만 아니었다면, 도로가 막혀도 차를 이용했을텐데. 짧은 한숨을 뱉어내고 다시 시선을 창문 밖으로 던졌다.


그냥 택시를 탈 걸 그랬다. 역 하나가 지날수록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S급인 탓에 사람들이 최대한 자신에게 붙지 않으려고 하는 걸 알았지만 좁은 공간에서는 소용없는 발버둥이었다. 최대한 벽에 달라붙었던 송태원은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방송에 숨을 토해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은 요란스럽게 진동하다 이내 잠잠해졌다. 지하철에서 내려서야 겨우 휴대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건의 문자와 한통의 전화. 그로써는 꽤 인내심을 가지고 남긴 부재중이었다.


송태원은 문자를 확인할 생각조차 않고 통화목록 제일 위에 있는 '세성 길드장'을 눌렀다. 짧은 신호음이 끊기더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끊겼나? 하고 저도 모르게 화면을 살폈다.

00:07 전화는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 있었다.


"세성 길드장님?"

"... 아직도 그 호칭인가?"

"아... 성현제씨."

"한결 낫군."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송태원은 웃음이 났다. 예전같았으면 웃음보다는 얼굴이 구겨지는 것이 먼저였겠지만, 지금은 업무중도 아니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은 남자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뭘 하느라 전화도 안받고 있었지?"

"지하철을 타고 있느라 휴대폰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퇴근시간이잖습니까.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세성길드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조곤조곤 대답을 했다.


"쯧, 차는 어디다 두고 지하철을 타고다니나."

"성현제씨께서 폐차 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아직도 차를 새로 안샀나? 그러게 내가 사준다니까."

"받을 수 없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융통성 없기는..."


여느때와 같은 대화였으나 목소리만큼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긴 다리로 조금 빠르게 걷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세성길드 로비에 들어와있었다.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오는 세성의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성현제의 사택과 연결된 포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보군, 아직 7시도 안됐는데 자네가 오다니."

"저라고 야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랬나? 늘 자진해서 남아있길래 야근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 "


올라오게. 예. 짧은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송태원은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포털키를 만지작거렸다. 송태원은 성현제의 사택에 제약없이 드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에 하나였다. 그렇다고 여태껏 마음대로 드나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러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사택과 연결된 포털 앞에 서서 짧게 심호흡을 했다.


시용해본 적 없는 것을 쓰려고 하니 어쩐지 긴장이 되고 손에 땀이 맺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늘 입고다니는 정장에 쓱쓱 땀을 닦고 푸른빛으로 빛나는 포털로 발을 내딛는다.




-





성현제의 자각은 빨랐다. 부정할 생각도 없었고, 인정 역시 빨랐다. 하지만 그와 사귈 생각은  하지 않았어서 처음 송태원의 입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나왔을때엔 난생 처음 제어되지 않는 감정과 심장이 아플정도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듣기 좋은 저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끊긴 휴대폰을 대충 던져두고 성현제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포털이 열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예민한 감각은 멀리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척을 쉽게 잡아내었다. 


성큼성큼 주인을 닮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제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찼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선 우뚝 멈춰서는 남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청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서서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맞췄다. 먼저 입을 여는 것은 언제나 늘 성현제였다.


"어서오게."

"예, 그, 음... 다녀왔습니다."


조금 어색한 듯 손을 들어 자신의 뒷목을 만지던 송태원이 살짝 웃어보였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알았군. 송태원을 보며 눈을 휘어 웃은 성현제는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섰다. 물러서지 않고 저를 보는 그와의 거리가 한 걸음 남았을때 송태원이 성큼 다가와 성현제를 품에 안았다. 어색한 행동이었으나 싫지 않았다. 되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송태원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었다. 한참동안 성현제를 끌어안고 있던 송태원은  등을 감싸안았던 손을 풀었다. 떨어지는 그가 싫어 마주 않았던 손을 풀지 않은 성현제가 고개를 떨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식사는 뭐가 좋겠나. 언제 올지 몰라서 준비를 해두진 않았기는 했다만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저는 뭐든 잘 먹습니다. 특별히 가리는 것도 없고. 성현제씨 드시고 싶으신 걸로 하죠."

"그럼 준비하는 동안 씻고 오겠나? 자고 갈거지?"

"예. 그럼 실례좀 하겠습니다."


송태원에게서 떨어져 욕실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르켰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송태원 뒤로 옷은 문앞에 두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주방으로 가기 전 그가 입을만한 옷을 욕실 앞에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재료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늘 냉장고 안에 놓여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하기엔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 같아 성현제는 조리법이 복잡한 음식대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계란말이와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 저녁식사에서 제일 오래 걸리는 것은 뜸을 들여야 하는 밥일것이다.


씻고 나온 송태원은 앞에 놓여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끼는가 싶었지만 한 두번 몸을 움직이니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머리에 맺힌 물기를 수건으로 털며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니 앞치마를 매고 칼질을 하고 있는 성현제가 보였다. 이질적이었으나 묘하게 잘어울렸다. 하기사 잘생긴 남자는 무얼 해도 잘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로 다가가니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앉아있게."

"도와드릴건...."

"없다네."


뒤를 돌아 잠시 눈을 마주쳤던 성현제는 다시 칼질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집이 아무리 넓다고 한들 190이 넘는 남자 둘이서 주방에서 움직이기엔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송태원은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정갈하게 담긴 그릇들이 식탁위를 채워갔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먹음직 스러운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 성현제가 끓고있는 국 냄비의 뚜껑을 닫고 송태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밥은 다 되려면 조금 걸릴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배가 많이 고픈것도 아니고..."


그래. 성현제의 답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엔 또다시 침묵이 돌았다. 늘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나간 것은 성현제였으니 이상하게도 오늘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런적이 있어봤어야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슬쩍 손을 뻗어오는 송태원이 보였다.


식탁위에 놓여져있던 성현제의 손을 끌어 마주 잡은 송태원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늘 찌푸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만 보다가 저런 얼굴을 보니 고요하던 심장이 다시 요란해지는게 느껴졌다. 위험하군. 아무대서나 웃지 말라고 해야겠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은한 미소를 짓던 송태원이 몸을 일으켰다. 잠시 높아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금세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무척이나 가벼운 키스였다. 살짝 닿았던 입술은 키스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입맞춤을 남기고 떨어졌고, 성현제는 손을 들어 송태원의 뒷목을 잡아 떨어지려는 것을 막았다. 다시 맞닿은 입술은 사이에 식탁을 두고 질척하게 이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얽어든 혀와 숨결이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키스는 점차 질척해졌고 떨어지기 싫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식사는, 좀 나중에... 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입술이 스치며 속삭여왔다. 그러지. 명백한 승낙의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송태원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정신없이 서로를 탐하는 사이에 성현제는 송태원에게 달랑 들려져 있었다. 아무리 S급이라지만 가뿐히 저를 들고 움직이는 그에 웃음이 흘렀다.  웃는 탓에 살짝 떨리는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숙여 콧잔등위에 입술을 부볐다 떼어낸다. 높게 들려있던 몸은 넓은 소파 위에 내려졌고 몸을 감싸고 있던 옷들은 하나 둘 소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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