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바람이 살랑하고 불어서 창가에 매달아 놓은 동그란 유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흔들려. 맑고 청아한 그 울림에 무심코 고개를 올려 바라보았더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빨갛게 금붕어가 그려진 에도풍 풍령(風鈴)이었지.

 그것은 언젠가 매미조차 울지 않던 여름의 끝자락에 네가 나에게 선물해준 소중한 것. 너와 함께했던 그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너의 마법이었어.


  '있잖아요, 이 풍령이 울리는 건요, 제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 때일 거예요. 시노부 상.'



* * *



 네게 이 풍령을 받은 것은 작년 내가 일본에서 세이소 음대를 다니고 있었던 때였어. 기억하니? 카나자와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너는, 호의가 가득 담긴 예쁜 미소로 내게 인사했었지.

 ‘처음 뵙겠습니다. 세이소 학원 고등부 2학년 보통과에 재학 중인 히노 카호코라고 합니다.’

 너의 첫인상은 전후 사정도 모른 채 갑자기 참가하게 되었는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후배였단다. 하지만 상냥한 마음씨와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은 누구보다도 대단해서 어느새 콩쿠르가 끝날 때쯤엔 나의 조언 따위는 필요 없을 정도로 훌쩍 성장해 있었지.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어쩐지 서운하기도 한 나에게 너는 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성장할 수가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었어. 나는 그런 너를 어느새 부턴가 점점 좋아하게 되었단다. 응, 깨달았을 땐 벌써 너를 굉장히 좋아하게 된 후였어.


 그때가 언제였더라…. 그래, 해바라기도 슬슬 져 가는 8월 말의 주말이었을 거야. 빈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 지원서를 넣었다고, 네게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이야기했을 때 너는 한순간 불안한 눈을 했지만 곧바로 그런 눈빛을 거두고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해주었었지. 네가 소중하고 소중해서, 누구보다도 좋아한다고 말하게 된 지 겨우 두 달 남짓 되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떠나게 될 줄은 나도 솔직히 몰랐었는데 말이야….


 예전부터 교수님들의 추천도 있었고 더욱 더 많은 음악을 만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었지만 역시 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아쉬워서 사실 원서 마감일 직전까지 참가 여부를 고민했었어. 행여나 네가 보고 싶어서 돌아와 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책임과 기회를 내던지는 어리석은 짓을 할 만큼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면서도 역시 네가 보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네가 외로워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거든. 연상인 내가 좀 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란 생각에 네 앞에서는 이런 나약한 말 절대 할 수 없었는데…. 그랬는데도 너는 다 안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었었지.

 “저번에는 시노부 상이 절 응원해 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선배를 응원해 드릴 차례네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선배라면 꼭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카호쨩…….”

 그때 얼마나 네게 감동했었는지, 네 말에 얼마나 많은 용기를 받았는지 너는 아마 모르겠지…?


 우리는 그 후, 땀이 날 것 같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거리를 걸었었어. 지금 함께 있는 이 순간이 1분 1초라도 아까워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웃으며 차곡차곡 추억을 쌓았었지. 응,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때는.


 모토마치 부근이었던가? 쇼핑가에 왔을 때, 문득 어딘가에서 딸랑딸랑하고 풍령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었지. 기억하니? 더위를 가시게 할 정도로 맑고 예쁜 소리가 바람 소리에 겹쳐져 들리길래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그 소리를 찾아 골목으로 들어가 봤었잖아. 거기서 풍령을 파는 가게 하날 발견했었지.


 그 가게에서는 끝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색색의 풍령들이 반짝반짝 흔들리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느낌이 드네. 너는 그 수많은 풍령 중에서도 빨간 금붕어가 그려진 풍령에 눈을 빼앗긴 듯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지.

 “그게 마음에 드니?”

 내가 묻자, 너는 시선을 풍령에서 떼지 않은 채 끄덕거렸었단다.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괜찮으면 내가 사줄게, 하고 말했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었어.

 “…시노부 상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요. 이 빨간 풍령.”

 “에? 나한테……?”

 내가 뜻밖의 말에 놀라는 사이에 너는 결국 사기로 했는지 이거 주세요, 하고는 순식간에 계산을 끝마쳐 버렸었지. 그 정도라면 내가 샀어도 괜찮았을 걸 말이야.


 가게에서 나와,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나? 너는 생긋 웃으며 종이에 예쁘게 포장된 풍령을 ‘선물이에요.’ 하고 나에게 내밀었어. 빈으로 떠나는 시노부 상에게 마법을 걸어 드리려구요, 하고 말하며, 너는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약간 숙인 내 귀에 살그머니 속삭였었지. 이렇게 말이야.

 “있잖아요, 풍령이 울리는 건요, 제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 때일 거예요. 시노부 상.”

 그러니까 빈에 가서도 소중하게 간직해 주세요. 약속이에요? 하며 살짝 내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던 너의 수줍은 얼굴은 지금까지도 나의 보물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단다.


 맑고 예쁘게 울리는 풍경 소리,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은 추억, 복숭앗빛으로 물들던 네 얼굴, 눈물을 또록또록 떨어뜨리면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소를 지으며 배웅해주던 일본에서의 네 마지막 모습.


 딸랑──


 겨울바람이 차갑게 부는구나. 역시 겨울에 풍령은 어울리지 않을까나, 하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떼어놓을 수는 없었어. 왜인지 아니? 비록 살짝 열어둔 창문 틈새로 찬바람이 스민다 해도 그 한 줄기 바람이 네가 보내주는 메시지가 되어 투명하게 울릴 테니까. 전화 한 통, 편지 한 통만큼이나 소중한 너의 마음이 그 여름으로부터 1년 반이나 지나있는 지금도 변함없이 딸랑거리며 울어 주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는 알고 있을까.


 만약 모르고 있다면 가르쳐 줄게. 성 발렌티누스의 날 밤에 네게로 날아가 그동안 네가 준 수많은 풍령 소리만큼 가득 찬 내 마음을 달콤하고 상냥하게 울릴 바이올린 소리로 바꿔서──.


 네게 바치는 ‘사랑의 인사’를 켜자.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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