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꿈에서 죽었다. 죽는 꿈을 종종 꾸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바로 꿈에서 깨지 않고 죽음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서 순간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다. 꿈적(的) 죽음이었다. 충격 때문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꿈은 자살이었다.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권총을 쥐고 턱 아래를 겨냥하고서 몇 초간 주저한 뒤에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고, 그 순간 정전이 된 듯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금 이따 얼마 뒤 아주 깜깜한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재생되지 않은 까만 스크린이 보였다.


 꿈적 죽음은 충격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침대에서 뛰쳐나와 가장 먼저 했던 행동마저 기억하게 한다. 그것은 베개를 쳐다본 것이다. 꿈적 죽음에서 총성과 함께 나타난 까만 스크린과 베개가 겹쳐 보였다. 가로세로 비율 또한 똑 닮은 베개는 꿈이 재생되던 꿈속 스크린의 구현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사물에 의해 의식이 형성되고 의식에 의해 사물이 만들어진다는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처럼, 사물은 이용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그 사물적 의식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물과 의식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며 무엇이 선행하는지 알 수 없는 관계 속에 있기에 스크린을 통해 꿈을 꾸는 것은 네모난 베개를 벴기 때문이고, 베개가 네모난 것은 네모난 꿈의 스크린을 통해 꿈을 꾸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물과 의식의 관계망 속에서, 꿈을 꾸는 동안 움직이며 만들어진 움푹 눌린 베개의 굴곡과 주름진 베갯잇의 모양은 꿈적 죽음이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보통 며칠, 아니 몇 분 만에 꿨던 꿈의 내용을 까먹는 것은 그때의 굴곡과 주름을 금방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침대에서 뛰쳐나와 베개를 쳐다본 것은 꿈의 내용을 간직하기 위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흔적을 더듬으며 미지의 세계 죽음을 조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서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무도 당연하게도 죽어보지 않는 이상 죽음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꿈적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알기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꿈적 죽음 역시, 죽음에 관한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그 이미지적 의식의 결합체로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 그 꿈적 죽음을 보고 있었는지다. 그곳은 영화관이었고, 좌석에 앉아 까만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인생과 영화 역시, 인생은 영화가 되려고 하고 영화는 인생이 되려고 한다.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로 되려는 '중'인 상호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가 서로의 가장 훌륭한 수사법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영화 같다고, 영화가 인생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총알이 턱을 뚫고 죽음으로 보냈을 때, 정전과 함께 나타난 까만 스크린을 본 것은 인생을 영화로, 영화를 인생으로 보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모난 베개를 네며 네모난 스크린으로 인생을 보며 만들어진 의식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네모난 의식의 특이 네모난 베개를 만들어낸 것이다.


 베개는 이런 인생과 영화의 불가분 관계와 비슷하다. 앞면과 뒷면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똑같이 생겨서 이 둘을 구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평소에 베는 쪽을 앞면으로 생각하고 벨 뿐이다. 누군가 몰래 뒷면으로 바꿔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바뀐 사실도 모른 채 그냥 잘 것이다. 베개를 한쪽으로만, 앞면으로 베고 있다고 착각을 하듯이 우리는 '현실'이라는 하나를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양면의 스크린을 겹쳐서 세상을 보고 있다. 베개라는 양면의 스크린을 통해서 인생을 영화로, 영화를 인생으로 보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영화적 인생을, 인생적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인 꿈을 꿀 때조차 양면의 스크린 안에 있다. 베개는, 베개라는 스크린은 한시도 떼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베개로부터 떠날 수 없는 우리는, 베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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