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핸들을 고쳐 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지루한 도로 위에서는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다. 왼손으로는 머리를 괴고 오른손으로는 핸들을 대충 쥐고서 액셀을 밟는다. 황량하고도 공허한 그 도로에, 나는 목적지조차 잃은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손 틈 새로 흐르는 일말의 희망조차 저지하지 않고서 그저 다가간다. 이렇게 하염없이 달리고 나면, 질 것 같지 않은 뜨거운 태양이 지고 나면, 네가 있을까 싶어서.

 

 

 

 

 

 이명처럼 들리던 네 이름을 쫓아 운전석에 오르고 핸들을 쥐는 순간까지도 이 여행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막상 떠나려니 겁이 났던 걸까. 아는 이라고는 없는 이 황량한 땅에 외로운 집 하나. 그나마 위안을 주었던 이곳마저도 떠나려니 가슴 어딘가가 아릿했다.

 짐이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작은 가방을 뒷좌석에 대충 던져두고 모래 바람 부는 도로 위를 달렸다. 너의 이름만을 하염없이 되뇌면서. 네가 있는 그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하면서.

 

 

 

 

 

 

 분명 네가 내 옆자리를 채웠던 적이 있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웃던 때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올드 팝송에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이곳을 즐겼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털어 산 오래 된 중고차였음에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적도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고 숨결을 나누었다. 삭막한 땅 위로 쏟아지던 별을 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낡고 오래 된 중고차는 우리에게 집이 되어주었고, 발이 되어주었다. 목적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너와 나, 우리라는 존재가 이 여행의 목적이라는 듯. 그렇게 오롯이 우리뿐이었다.

 젊은 날의 빛이 오직 우리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도로 위로 쏟아지던 뜨거운 태양이 우리만의 것인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도 도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은 애초에 켜놓지를 않았다. 너와 수많은 날을 함께 했던 도로였기에 어디쯤 가야 다른 도시로 나갈 수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이곳을 알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알았더라면 무섭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곳을 아주 잘 알았기에 두려웠다. 어느 도시로 가든 너는 없을 것이었기에 머릿속을 지워내고 싶었다.

 창문을 모두 닫고 앞만 보았다. 온통 붉은 사막을 달리는 것 같았다. 낡고 오래 된 차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태양을 막아주지 못했다. 이 숨 막히는 더위를 함께 나눌 네가 없어 숨이 막혔다.

 

 

 

 

 

 

 

 주유구를 열었다. 네가 장난스럽게 붙여놓은 스티커가 이제는 색이 바래 그 모양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피로한 다리를 이끌고 차에 기름을 넣는 동안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곳이 어디인가 싶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익숙하고도 낯선 땅이 무서웠다. 두려울 것이 없었던 청춘은 저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처럼 흩어져 없어지고 그 자리에 나약함만이 남은 것 같았다.

 기름도 넣어주고 보살펴 주어도 끝내 수명을 다하는 자동차처럼 이 목숨도 그러하던가. 더 이상 채워줄 무언가가 없으면 쉽게 부서질 만큼 더욱 나약하던가.

 주유소에 딸린 작은 가게에서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해가 저물어감에도 더위는 식지 않은 듯 이름 모를 가게 주인이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기름을 다 넣고서 걸음을 옮겨 가게 안으로 향했다. 오래된 냉장고에서 생수와 맥주를 꺼냈다. 주머니 속 넣어두었던 구겨진 지폐를 내밀었다. 마지막 미련을 털어냈다.

 

 

 

 

 

 

 

 자정이 되어서야 작은 모텔에 닿았다. 미지근해져버린 맥주와 생수를 챙겨들고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았다. 맥주를 담았던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낡은 침대와 지저분한 욕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아주 작은 냉장고뿐이었다. 냉장고 속 알 수 없는 얼룩을 대충 닦아내고서 맥주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럼에도 봉투 속에는 묵직한 무게감이 있었다.

 봉투에 손을 넣으니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하나. 단 하나의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 총을 꺼내어 베개 아래에 넣어두고서 잠시 몸을 뉘었다. 두려울 것 없었고 그랬기에 잃을 것이, 잃은 것이 많았던 젊은 날의 회한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버릇이 되어버린 단 한 발의 총알이 무거웠다.

 잃게 했던, 아프게 했던, 잊을 수 없게 했던, 무기력하게 했던, 버릇이 되게 했던 총알이 무겁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의 유일한 다리가 이 총알이라는 것이 무섭다.

 

 

 

 

 



 새벽이 밝아왔다. 여전히 이 여행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시원해진 맥주를 모두 비워내고도 잠이 오지 않았다. 붉고 뜨거운 땅 위로 푸른 새벽이 내려앉았다.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이곳의 서늘함이 나쁘지 않았다.

 짐을 모두 챙기고 카운터에 열쇠를 돌려준 후 일찍 차에 올랐다. 새벽은 여전히 시리도록 푸르렀고 이 도로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다시 달렸다. 의미 없는 이정표를 몇 번이고 지나치고서야 아침이 밝아왔다. 다시금 그 더위가 찾아왔다. 창문은 닫지 않았다.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라디오를 틀었다. 알아듣지 못할 팝송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올드 팝송은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오래된 기억일지라도 이토록 지속될 수 있다는 듯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내게 들려왔다.

 

 

 

 

 



 끝이 없어보이던 도로도 결국에는 끝이 난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행도 결국에는 끝이 난다. 태양이 도로의 열기를 더해갈 무렵 그곳에 닿았다. 무의식이 이끈 목적지가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알 수 없었던 여행의 목적,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발을 타고 올라오는 도로의 열기가 뜨거웠다. 생명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곳에 너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날의 총성, 너의 피비린내, 절망과 절규. 이제는 모래가 되어 흩어진, 잊혀진 기억. 겨우 살아났던 나의 걸음이 또다시 이곳에 닿았다.

 구겨진 종이봉투에 담겼던 묵직한 총이 오른손에 들린다. 너를 앗아갔고 내게 버릇이 되어버린 총알이 단 하나, 들어있었다. 차의 문을 닫았다. 창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있었다. 낡은 자동차의 라디오가 더 이상 선명하지 않은 소리를 내었다. 지직거리는 소음이 담긴 올드 팝송이 흘렀다.

 너의 손길이 닿았던 차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태양이 눈꺼풀에 닿아 시야가 붉었다. 마침내 이 여행의 목적지를 깨달았다. 네가 어디에 있는 그곳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른손을 들었다. 차가운 감촉이 머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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