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만남을 가지려 했던 처음의 계획과는 달린, 나는 그와 제법 자주, 그리고 규칙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아바마마를 뵈러 가는 길에도 오늘도 그를 만날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가 괜찮은 유희 거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브티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말이다.


"아바마마, 저 왔습니다."

"어, 그래. 왔느냐."

"그냥 방으로 부르시지, 뭘 번거롭게 온실까지 부르십니까?"

"네게 이 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다."


그러면서 아바마마가 가리킨 꽃은 히아신스였다.


"아주 예쁘게 피지 않았느냐? 히아신스는 그 향기로도 유명하지. 게다가 네 탄생화이기도 하여 내가 참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데... 여름이 채 되기도 전에 다 져버리고 마니, 이 꽃을 보고 싶을 때에는 온실을 찾을 수밖에 없구나."

"..."


그 향이었다. 그와 만날 때마다 느낀 향. 나는 히아신스로 가득 찬 정원을 둘러보다 분홍색 히아신스를 발견했다. 그와 머리색마저 똑 닮은 것이 그의 분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 향이, 나쁘지 않네요."

"그렇지? 네 마음에도 쏙 드는 게로구나."

"마음에 쏙 드는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나쁘지 않은 정도입니다."

"솔직하지 못하긴."


그러면서 아바마마는 허허-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뭘, 알면서 그러냐. 당연히 언제 황제의 자리에 앉을 건지 물어보기 위해서지."

"생각 없습니다."

"왜 그러냐? 황제가 얼마나 좋은데? 이 세상이 너의 밑에 있게 되는 거야."

"그렇게 좋으면 아바마마나 실컷 하십쇼."

"아니, 좋은 건 나눠야지. 나는 오래 했으니까,"

"이런 시답잖은 소리나 할 거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잠시만. 앉아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실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문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분홍색 히아신스를 발견했다.


"허허, 이것 참. 우리 베리가 또 장난을 쳤나 보구나."

"..."


나는 말 없이 그 꽃을 주워 들고 온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황제 폐하의 온실에 잠시 다녀왔는데, 히아신스가 예쁘게 피어 있어서 말이죠. 이 분홍색 히아신스가 꼭 비의 머리색과 같아 비에게 전해주고 싶지 뭡니까. 받아주시겠습니까?"


그 꽃을 그에게 주었다.


"황송합니다, 전하.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별 것 아닌 꽃 한 송이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으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어김 없이 정원에 나와 다과를 들고 있는데, 그가 평소와는 달리 금세 포크를 내려놓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드시지 않고."

"전하, 제가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럼요. 하나가 아니라 열 개라도 괜찮습니다."


그가 내게 질문을 한 것은 처음인 듯하여 어떤 질문을 할지 조금 기대가 되었다.


"아니, 그 정도로 질문이 많지는 않은데... 전하께서는 어째서 항상 아무 것도 드시지 않습니까? 아, 차 이외에는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음..."


그리고 그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되었다. 사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대답하면, 내가 크레이프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했던 거짓말 역시 들통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답하기는 상당히 곤란했다. 그렇게 대답해야 할 말을 고르고 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조금 놀랐다고 할까요?"

"예?"

"나의 비는 항상 먹는 데에만 집중하여 나는 뒷전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그리도 관심이 많았다니. 놀랍기도 하고, 조금 감동인걸요?"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사탕발린 말이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비가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불러 먹을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저보다 비가 한 입이라도 더 먹는 게 보기 좋습니다."

"그래도..."


정말로 내가 전혀 먹지 않는 것이 속상하다는 듯 축 처지는 눈썹이 안쓰럽다.


"비가 함께 먹길 원한다면 같이 먹지요."


그래서였다. 충동적으로 그런 말을 뱉은 건.


"그럼, 같이-"


언제 처져 있었냐는 듯 금세 밝게 웃는 게 볼만 했다.


"그래, 그 대신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이번에도 충동적이었다. 아니, 이것도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갔다. 그래, 이건 본능적이었다. 그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길, 본능적으로 원했다.


"... 예?"

"이렇게 시간을 보낸 지도 어언 두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서로를 이리 딱딱하게 부르니 마음이 불편해서 편히 먹을 수 있겠습니까?"

"하, 하지만,"

"아, 제 이름이 부르기에는 조금 길긴 하죠. 세인이라 불러주세요."

"아니, 제가 어찌 감히..."

"허면 평생 저를 전하라 부르실 겁니까? 이제 평생을 함께 해야 할 부부가 아닙니까."

"... 그건 아니지만..."


갑자기 호칭을 바꾸라니, 내가 생각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럼에도 나는 뜻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음... 아무래도 비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싫은가 보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무어라 여길지, 무례하다 여기지는 않을지 우려가 됩니다."

"내가 허락했는데, 감히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

"... 나의 비는 정말로 걱정이 많은 사람이네요. 그렇다면, 나도 비를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지요. 그거면 되겠습니까, 하임?"

"어..."


이건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사심이었다. 그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고, 내가 부른 그의 이름에 그가 얼굴을 붉혔을 때에는 작은 희열감마저 느꼈다.


"하임? 어서 제 이름도 불러주세요."

"아,"


우유부단한 그의 태도가 처음에는 못마땅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이 답답하기는 커녕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 세인."

"예? 잘 들리지 않는군요. 다시 한번 불러주시겠습니까?"

"세인..."

"듣기 좋군요.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세인."

"네, 하임."


그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듣기 좋았다.


"... 이름으로 불렀으니 어서 전하도 케이크를 드세요."

"세인."

"... 예?"

"방금 다시 전하라 부르지 않았습니까. 세인이라 부르기로 약속해놓고."

"아, 알았으니까, 세인. 세인도 어서 케이크 드세요."

"네, 하임."


이름에 계속 집착한 건 그 때문이었다.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간지럽고 계속 귓가에 그 목소리가 맴돌아서.


나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먹었다. 하임과 같이 케이크의 앞부분을 잘라서. 케이크는 달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제법 만족스러운 다과였다.


"이제, 들어가 보아야겠습니다. 하임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남은 업무가 있어서 말이죠."

"예."


아쉬워하는 게 뻔히 보이는 그의 태도에 나는 다시 충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 그래. 앞으로는 다과를 함께 할 게 아니라, 식사를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예?"

"식사를 함께 하면 매일 볼 수 있으니,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 좋지 않습니까?"

"예, 좋습니다..."


뛸 듯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물론 기뻐하긴 하였지만 동시에 약간은 아쉬워하는 듯했다. 하임의 생각을 알게 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와 다과를 드는 것도 제 하나의 기쁨이니, 가끔은 이제까지처럼 정원에서 다과도 함께 즐겨주시겠습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마로 올라가는 입꼬리가, 깜찍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하임의 방으로 시종을 보내겠습니다."

"예."

"... 끝입니까?"

"예?"

"무언가 반응을 해주면 좋을 텐데요. 언제나 표현이 없으시니 섭섭하기만 합니다."

"아, 음... 기다리고... 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요. 기대하며 기다리고 계십시오. 아주 맛있는 조찬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오늘은 이제 정말로 들어가 보아야겠군요.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예, 전하도 평안한 하루 되세요."

"저는 아무래도 내일이 기대가 되어 평안하지 않을 것 같지만, 노력해보죠."


마지막까지 나는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 할 말들만 내뱉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내가 원래 이리도 충동적인 사람이었는지.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내가 뱉은 말 중에 후회되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리 만들었는지. 





등장인(?)물 프로필

베리, 1340년 1월 1일생.
: 황제의 반려견. 황제가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들여왔다. (사실은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한때는 용맹한 사냥견이었으나 이제는 노견이 되어 황제의 온실에서 주로 지내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제 글 버릇(?)이랄까, 많이 쓰는 표현들이 항상 눈에 띄는데요. 그게 한 번 보이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라서 여러 표현을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네요... 그게 어떤 표현인지 말해버리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신경 쓰이실 수 있으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신경 쓰이지 않으시도록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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