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너에게 관심이 있었냐고 하면, 사람 대 사람의 궁금증으로는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다정한 듯 하면서도 거리감을 두는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너를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너는 고1때의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고1때의 너를 안다. 조금 위험하고, 이상한 말이라는 거 안다. 누가 보면 혐오스럽게 여길 것 같은 것도 안다. 그저, 다가가고 싶어도 그 선이 너무 명확하게 잘 보여서,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을 뿐이다. 학교도 다르고, 학원 반도 다르고, 접점이 없는데 어떤 핑계로 말을 걸어, 친화력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지만, 저런 사람은 다가가기 힘들단 말야. 기회만 엿보면서 날린 시간이 1년이었을까, 여전히 너는 틈을 주지 않고, 나는 너의 주위를 서성이고. 물론 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너가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너가 알아채서 날 더 멀리하지 않도록. 가뜩이나 고등학교 생활로 스트레스 받아할 게 뻔한데 나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도 한다. 그냥 눈 딱 감고 미친 척 한 번만 할걸. 좀 더 일찍 친해지고 싶다고 할 걸.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들어서 친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평생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정말 우연히도 너도 나를 보고 있었지. 항상 내가 널 보고 있었어서, 너가 나를 보는 걸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너도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것이 어떤 의미의 관심이건, 기뻤다. 설령 내가 싫어서 그런 거라 하더라도, 나를 아예 무시하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는 나으니까. 혹시나 하고 너에게 다가갔던 그 때를 기억한다. 쌀쌀맞을거란 내 예상과 다르게 너는 굉장히 긴장한 듯 했지, 그 차이가 좋아서 계속 다가가버렸고, 정신 차려보니 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아, 우리 정말로 친한 사이가 된 거구나 싶어서 기뻤다. 이렇게 되기만을 바래 왔거든.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학원에서 너의 얼굴을 본 그 순간부터 친해지고 싶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반했다, 라는 건데 그 당시에는 나도 그런 감정인 줄 몰랐으니까.

 


너는 생각보다 더 선이 확실했고, 벽이 두꺼운 사람이었지. 그걸 뭐라고 할 마음은 없었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걸 어쩌겠어, 나 또한 선이 있는 사람이고, 그런 면에서 너와 나는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왜인지 모르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내가 되어서, 너가 기분나빠하지 않을 이야기들이 뭐가 있을지, 너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생각 뿐만이 아닌 이런저런 다른 이야기들을 주수어 모았었다. 피곤하긴 해도, 너와 말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가뿐히 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동시에 내가 아무리 관찰해도 너에 대해서 알아낼 수 없단 것 정도는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널 바라보게 되더라. 이젠 혼자서 관찰할 필요는 없는데도, 그렇게 관찰하는 것보단 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그렇게 밝기만 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그동안 이렇게 집요하게 사람을 관찰한 적이 없었으니 몰랐지, 그럴 사람이 없었으니까. 나는... 너로 인해 내 음습함을 깨달았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단 둘이서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이 늘었다고 생각해서, 기쁘기까지 했다. 내가 조금 이상한가... 싶어서 친한 친구에게도 물어봤다. 야, 나 이상하냐. 내 이야기를 쭉 들은 친구가 그랬더랬지, 너 이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라. 손절당하는 거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아, 그 정도로 이상하구나. 나를 잘 아는 친구는 그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 뿐이었다. 이 이상은 물어볼 수가 없어서 알겠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이상한가 싶기도 했다.


너는 아직 완벽하게 선을 지우지 않았는걸, 그 정도야 훤히 알 수 있지. 선을 긋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선까지 보이니까. 그 선의 두께도, 선 안의 공간도. 그런 면에서 너는 정말로, 진중하게 사람을 들이는 스타일이구나. 대화하며 너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신기하기만 했다. 그동안 내가 만나온 사람들 중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이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샘솟는데 그 사람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한다? 로또보다도 극악의 확률이다. 그리고 난 그걸 해냈지. 행복했다. 지금도 행복하고, 너가 언제 선을 지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지우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해 줘야 할 일이고, 그렇게 신뢰를 얻어야 나도 내 선을 지울 수 있으니까. 그저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안 하는 날엔 그저 둘이 앉아 묵묵히 문제만 풀기도 했고,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이면 내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도 했고. 너가 먼저 이야기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분에 넘치는 건 당장 바라지 말아야지, 그래야 차근차근, 내가 생각한 대로 나아갈 수 있지. 이런 나를 너의 앞에서는 꽁꽁 숨겼다. 이상하다고 지적받은 면에 대해서는 숨기는 것이 더 낫다는 깨달음도 있고, 나를 너가 싫어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서. 그래서 숨긴 것도 있다. 나도 아직은 사람처럼 행동하나 봐, 너 덕분이니까 언젠간 꼭 감사를 표해야지. 근데, 감사 인사는 어떻게 전하지, 아직도 방법을 모르겠어. 언젠간 알게 되겠지.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학원에서도 쉬는시간 없이 계속 수업과 문제풀이의 반복이지, 학교는 달라서 만날 수도 없지, 개인적으로 연락한다 해도, 나만 붙잡고 있을 수가 없지. 이러다가는 미칠지도 모르겠다. 싶으면 학원에서 겨우 얼굴을 보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버텼던 건지 모르겠다. 2학년 때는 소소하게 떠들거나, 같이 간식도 먹고, 웃기도 잘 웃을 수 있었는데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여유가 아예 사라져 점점 지쳐갔다. 나도, 너도, 반의 다른 애들도, 다른 반의 애들도. 오죽하면 선생님께서 이 바빠야 할 기간에 쉬라고 휴가까지 내 주셨을까. 그저 뒹굴거리며 집에서 누워있으려고 했다. 너도 그럴 것 같아서, 그런데 너가 나한테 그랬었지. 누워만 있을거야? 전혀, 그럴 리가. 어디 카페라도 갈까, 좋다는 너의 말에 피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다 사라졌다. 기운 없던 나는 어디로 가고 기운이 넘치는 나만 남은걸까. 상관 없나, 그렇게 짧다면 짧은 3박4일의 방학 내내, 우리는 만나서 빈둥대기로 했다. 아마 너는,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는데 정작 어디 가기엔 부담스럽고, 카페라도 갈까 해서 나를 부른 거겠지. 그런 거라고 믿기로 했다. 쓸데없는 희망을 품었다가는 나중에 아픈 건 나 혼자니까. 너도 같이 아플 거라면 상관 없지만 그러지는 않을 거 아냐. 그래도 불만은 없다. 아마 나는, 너가 나로 인해 아프길 바라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사람이지 싶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카페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뭔가 하기는 했지. 커피를 마시고, 베이커리류도 먹고, 말도 하고. 그치만 그걸 제외하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카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 구경 하는 것도 재미없고, 음료야 테이크아웃 해서 집에서 편히 마시면 되지.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카페를 좋아해보기로 했다. 너가 카페를 좋아한단 말에, 그러면 나도 그래야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말해버린 탓에. 물론 그럴 예정이긴 했으면서도 순간 당황스럽기는 했다. 오히려 너는 농담으로 웃어 넘겼지만, 다행이었지. 순간 나에 대해 눈치챘을까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찰나에 여러 갈래로 고민했었으니까. 마치 너가 나를 시험해보는 것 같아서, 잠깐 놨던 긴장의 끈을 다시 꽉 잡았다. 그렇게 한가로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너를 통해 새로운 걸 배우고, 너를 통해 재미있는 걸 배웠다. 너는 그래,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끈다. 그 뿐만이랴, 새로운 길로 이끌면서 내가 어떻게 나야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도 준다. 직접 도와주지는 않지만, 너의 모든 움직임과 말이 나에게는 힌트다. 물론, 너는 몰라야 했다. 알면 재미없잖아.


그러고보니 카페에서 너가 그랬었는데, 이렇게 선 없이 대하는 거 정말 오랜만이라고. 그 말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내가 너에게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티 안 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까. 알아달라는 말은 아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튼, 이 말들을 했을 때의 너의 반응은 어떨까, 응? 왜 아무 말도 없어, 미캉아.


편지? 코비가 웃으면서 품 속에서 꺼낸 편지는, 읽은 티가 났지만 곱게 접혀져 있었다. 편지 읽어 봤어. 진짜 기쁘더라고, 너가 날 그 정도로 소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준다는 거,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는 듯이, 코비는 편지를 조심히 품에 안고 말을 이었다. 근데 미캉아. 너랑 나의 애정의 깊이가 조금 다른 것 같아, 그치? 너 지금 떨고 있잖아. 그 말 대로, 미캉의 손은 바들바들 덜고 있었다. 왜? 그동안 같이 지내온,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왜 떠는 거지. 자신도 모르게 미캉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한테 보여준 모습은 다 거짓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너무 좋아서 이러는 건지. 미캉은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 공포의 끝에 서 있기 때문이리라. 평소와 똑같이 은은하게 웃어주는 얼굴일 터인데, 왜 저 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고 있는 것 같을까. 사실 미캉은 편지를 쓰는 내내 이상하다면 이상할 고민을 했다. 내 감정이 너무 깊어서 코비가 불편해하면 어쩌지. 그 걱정을 했던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오히려 코비의 애정이 너무 깊고 뒤틀려있어서, 자신이 느끼기에도 무섭다고.


무슨 생각을 하길래 내 말도 안 들어줘. 응? 나긋나긋하지만 어딘가 뒤틀린 듯한 목소리에 미캉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히 코비일텐데도,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연기야? 연기였던 거야? 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물어보는 미캉이 사랑스럽다는 듯, 코비는 활짝 웃으며 미캉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에서 인간미가 사라지고, 코비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는데? 무슨 소리야, 말도 없었잖아. 가만히 있었잖아. 왜 그러는거야, 미캉이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코비는 히죽 웃고서는, 내가 대답하라 할 때 대답해 줘. 알았지? 라며 천연덕스럽게 다정함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있지, 미캉아. 이런 내가 싫니?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로 코비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어쩌겠어. 이런 면도 나고, 너가 봐 온 다정한 나도 나인걸. 미캉이 너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이 있듯이, 나도 이 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 목소리에 묻은 물기가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게 했지만, 눈빛은 전혀 우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어서 진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애정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그런 너마저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대답할까봐 미캉은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무섭지,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 그럼에도 너의 눈은 빛나. 그래서 마음에 들어. 미캉을 쳐다보며 코비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선이 두꺼운데도, 순수하고 사람을 잘 믿지. 아니, 그러고 싶은 거지. 시니컬한 척 하지만, 사실은 아니잖아? 코비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자신의 약점이 다 드러날 것만 같아 미캉은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어느새 꼭 쥔 손에서는 땀이 나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식은땀일까,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막힌 듯 아무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괜찮은 걸까, 아니. 괜찮지 않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웬만한 상황은 다 겪어봤다고 자부했음에도 너 같은 사람은 사실 처음이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뭘 어째야 해, 이제 와서 도망가? 그러기에는 너에게 품은 애정이 나를 잠식한 지 오래인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계속 너의 이야기를 듣기엔 내가 무서워. 어째야 할지 모르겠는 그 때, 코비가 나한테 질문했다. 좋아해? 누구를? 나를. 그 순간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애정이 내 마음에서 자라나 사랑이라는 옷을 만들어 줬으니. 그래, 나는 사랑을 해. 이 미친 사람이랑 해 보려고 해. 미캉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편지의 내용대로 나는, 널 좋아해. 떨리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전했다. 내 스스로 이 사랑에 나를 가둘 수 있도록.


의외야, 코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은 다 도망가던데, 그 후에 내 근처에 얼씬도 않던데. 미캉이 너는 다르네. 그렇기에 더 재미있겠지. 이 감정을 흥미로만 해석할 수는 없겠지. 좋아한다는 감정이 이런 걸까? 너를 볼 때마다 흥미롭다보단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은 감정이 더 강해지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시 알까? 이런 성격임에도 그 사랑이란 거, 한 번 해 볼수 있을지. 더군다나 우리는 이제 성인이니까. 이제 20살이니까. 뭘 해도 괜찮은 시기 아니야? 코비는 미캉을 보며 싱긋, 웃더니 밝은 표정인 채로, 좋아. 라고 답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보고 말하는 것처럼. 그치만 그 안의 애정을 읽어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미캉이었다. 사랑은 씁쓸하다고들 하는데, 이건 씁쓸함을 넘어선 아려오는 맛이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될 것이고, 아마 계속 그러겠지. 미캉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고, 코비의 표정은 생글생글 웃는 그대로였다. 사랑, 한 번 해보자. 의도가 다르지만 같이 내뱉은 말. 둘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덫에 같이 뛰어드는 걸 선택했다.



원피스의 코비연인드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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