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리컨(@twolican)님의 연성을 보고 떠올려 쓰게 된 이야기입니다

*유중혁이 펫샵에서 김독자를 사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을 펫숍 오브 호러즈로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 했으나 러브스토리입니다 죵말로요








반려 동물을 들일 때는 조심해야지

그건 네 생명만큼, 네 시간만큼, 네 애정만큼 자라날 테니까

선택한 건 너였겠지만 책임지는 건 너뿐만이 아니거든



인외인종

희생과 구원과 선택



유중혁이 이화사거리를 지나 동대문역사공원으로 향하던 시간은 오후 여덟시 십육분이었다. 평소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거리는 도로를 하나 건너자 한산해졌다. 겨울이어서 그런 걸까. 희미한 빛을 내는 평화시장 간판을 바라보던 그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사람이 적은 건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 익숙하지 않았고, 주차장까지 의외로 멀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어 오를 뿐이었다.

혜화역에서 봐.

문자로 그렇게만 말했던 한수영은 별다른 용건으로 그를 부른 건 아니었다. 바로 일본으로 날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그를 서울에서 만나자고 한 여자는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나중에 나한테 절하고 싶어질 거다.

물론 유중혁은 그 말을 개소리라며 무시했다. 한수영은 딱 십오분을 함께했다. 커피가 나오고, 자신의 손에 쿠키를 쥐어준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동생 만나러 간댔지? 잘 다녀와라.

그는 곧장 얼굴을 구겼다. 차를 끌고 나왔으니 당연히 차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나, 시간이 촉박해졌다. 한수영은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묻히곤 손을 흔들었다. 도대체 부른 이유가 뭐지. 그는 평소 성질대로 부리려다 참았다. 삼개월만에 만나는 동생이 일본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유유자적한 그녀는 그가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긴 하는지 지하철을 가리켰다. 그는 작은 그녀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한수영은 한가롭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에 두고 보지.

자신의 굳은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그녀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넌 나한테 절하게 될 거라니까.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미련 없이 사람 속에 섞여들었다. 생각해보면 혜화는 그녀의 집에서도 가깝지 않았다.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비행기 시간이 정말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비행기는 놓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 모퉁이를 돌아 쭉 직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그는 척척 걸음을 옮겼다. 캐리어도 없는 간소한 여행이었으나 괜히 돌아가야 하는 길이 두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한수영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떠올린 그는 더욱 얼굴을 구겼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데 여기까지 일부러 와야 했다는 생각도 떨어지지 않았다.

쿵.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움직였다. 길에는 사람이 적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시선을 끈 것은, 그런 사람들 쪽이 아니었다.

짐승?

유중혁은 눈을 깜박였다. 현실감이 사라졌다. 조금만 고개를 들자 멀리 평화시장의 희붐한 간판이 보였다. 청계천 주위를 거니는 연인들과 불이 다 꺼진 시장의 어두운 셔터 사이로 불이 켜진 가게는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쇼케이스로 다가갔다. 툭, 툭.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글자가 덕지덕지 붙은 뿌연 쇼케이스는 대형견을 가둘 정도로 거대했지만,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소리는 그 짐승이—아니, 사람이 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것인지 어정쩡한 자세의 남자는 그가 다가갈수록 불투명한 유리창에 더 달라붙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그러나 뿌연 유리 탓에 제대로 안이 보이지 않았다.

간판은 없다. 마치 펫샵처럼 보이기도 했다. 좁은 우리 안에 사람을 가둬두고 조명을 쏘아보내는 건 그보다 은밀한 가게를 떠올리게 만들었긴 했지만.

잠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푸른 빛이 은은하게 쏟아지는 쇼케이스 안에서 남자가 가느다란 속눈썹을 떨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눈동자는 제법 선한 인상이었다. 그렇고 그런 가게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화려한 일본의 네온 사인 아래 온갖 특이한 가게를 목도했던 유중혁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들어가볼까.

건강한 성인 남성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성매매가 불법이긴 하지만 위험한 가게가 아닐지도 모른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는 생각을 곧잘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며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셔터가 줄줄이 늘어선 가게에는 이런 맑고 청아한 종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잡은 문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엔티크 카페에 어울릴 법한 오크문이었다. 반질반질한 손잡이엔 멋드러진 장식까지 달려 있는.

오늘의 첫 손님이로군.

그가 들어서자마자 후드를 깊이 눌러쓴 남자가 말했다.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운 묘한 목소리였다. 남자라고 생각한 건, 그의 키가 거의 천장에 닿을 만큼 크고 윤곽이 거의 직선으로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유중혁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 그는 잠깐 생각했었다. 이건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가게가 아닌가? 그러나 사창가 특유의 냄새도, 붉은 전등도, 화대를 받는 여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건 무엇인가? 그는 자신이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따라붙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웅크리고 있던 것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바깥의 얼룩과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창에 비하면 안쪽 유리는 크리스탈처럼 깨끗했다. 덕분에 수조같은 유리창 안에 갇힌 남자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날개는 정확히 ‘그것’의 등에 달려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유중혁은 자신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했다.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탔더니 머리가 돌아버린 걸까? 그렇기엔 소독약 냄새가 지나치게 선명했다.

그래, 마치 병원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

“저 아이에게 관심이 있나?”

“…….”

남자는 소리 없이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 유중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바각, 바각, 얇은 손톱이 유리를 긁었다.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날개들이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애처로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데.”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유중혁은 미간을 모았다. 커다랗고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만 향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 꼴은.

“매춘인가.”

“설마.”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자 아래로도 질렸다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으나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지 기분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유중혁이 좁은 가게 안에 커다란 수조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남자가 먼지 쌓인 책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대형특수인외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군.”

남자가 던지듯 카탈로그를 건넸다. 그는 책자를 팔랑팔랑 넘겼다. 적절한 예라고는 할 수 없는 게 분명하지만, 그 책자는 마치 애완동물 용 카탈로그처럼 보였다. 대형특수인외인종이라는 표지 뒤에는 예쁘게 찍힌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이 첨삭되어 있었다. 특수분장을 한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커다란 새와 고래를 닮은 물고기, 뿔이 돋은 거북이를 비롯한 이상한 생물의 사진이 가득했다. 가게 안에 있는 물을 한가득 채운 수조에 들어 있는 오징어처럼 생긴 생물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당연히 대형특수인외인종 취급 자격증도 없을 거고.”

남자의 깔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지금 그의 관심은 하나뿐이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수조 밖으로, 마치 조금이라도 그와 닿으려는 듯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하얗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성인 남성이다. 키도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닌 모양이고, 등에 달린 비정상적인 날개가 아니라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남자였을 거였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볼 때보다 깨끗한 까만 눈동자가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새까매서,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이 마치 별처럼 보였다. 유중혁은 기어이 틈을 비집고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손가락을 붙잡았다. 얇은 손끝은 차가웠다.

“당신이 볼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일 것 같은데, 카탈로그를 보겠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손을 쥐었다. 가게 주인은 그의 손에서 카탈로그를 빼고, 새로운 책자를 쥐어주었다. 자신을 올려보는 날개달린 남자가 헤실 웃었다.

“사람이군.”

“뭐, 그렇게 느낀다면.”

그의 중얼거림을 가게 주인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이런 사람을 여러 번 봐왔다는 투였다. 유중혁은 자신을 보며 가늘게 웃는 남자의 손을 꾹 쥐었다.

“얼마지.”

기본적으로 유중혁이라는 남자는 체제에 불응하고 사회에 저항하는 성격이 아니다.

“지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전에, 대형특수인외종 취급 자격증은 있나?”

꾹.

수조 안의 생물이 유중혁의 손을 좀 더 잡았다. 절박한 표정이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의 악력이었으나, 아프지 않았다. 가게 주인의 물음에 유중혁은 할 말이 없어졌다. 프로게이머라는 한 직업만 쭉 파던 그에게 있는 자격증이라고는 영어, 일본어 자격증 정도가 다였다. 그나마도 가족들이 미국에 살고 있기에 필요에 의해 배웠을 뿐이었다.

유중혁은 대답 없이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한수영.”

[너 진짜 나한테 잘해야 돼.]

그녀는 욕을 하면서도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당장 가지고 있는 건 카드 한 장과 여권, 핸드폰 뿐이었지만 세상은 편리했다. 그는 오 분 만에 십년 된 적금을 해약하고 잔금을 치뤘다. 남자는 익숙하게 유리창 아래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이 애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면 팔지 않았을 테지만.”

가게 주인이 한숨처럼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한수영은 당장 자격증을 가져올 순 없지만 유상아가 그런 자격증이 있다며 번호를 불러주었다. 덕분에 구매인은 유상아라는, 유중혁으로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여자의 이름이 되었다.

몇가지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야 가게 주인은 유리 케이스를 완전히 열어주었다. 구겨져 있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마치 세상에 처음 태어난 생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이 남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쇼케이스에 갇혀 있었는지 셈하지 않았다. 굳이 셈할 필요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나온 남자는 가게 주인을 흘끔 바라보았다. 싸늘한 표정이었다.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도리어 차갑게 느껴지는. 가게 주인은 그에게 가벼운 숄을 걸쳐주었다. 긴 천자락이 몸을 대충 가려주었다. 유중혁은 그동안 남자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무표정한 남자는 단아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마치 꽃이 피듯이.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남자의 얼굴이 활짝 폈다. 새초롬하던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감정 없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심장이 덜컹 소리를 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오래 기다렸던 것처럼, 그렇게 품에 안겨들었다. 커다란 날개 때문에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오히려 그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안겨든 무게에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기분 좋아 보이는군.”

남자의 팔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유중혁은 자신의 품에 매달린 생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안겨 있는 하얀 등에는 어떻게 봐도 이어진 게 분명한 날개가 여섯장이나 달려 있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뭐지?”

큰 기대를 가진 물음은 아니었다. 가게 주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직접 지어주는 게 좋지 않겠나.”

생물을 구입한 대가라고 하기에 손에 남은 종이 몇 장은 너무나 하찮게 여겨졌다. 심지어 가게 주인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취급 설명서는 단 네 줄이 전부였다.

꿀과 우유 외에는 먹이지 말 것. 상처가 난다면 대형특수인외인종 전용 병원에 데려갈 것. 윙 컷을 하지 않아 개체가 도망쳤을 때의 책임은 가게에 없음을 숙지할 것. 기타 문제 사항은 가게에 연락할 것.

종이를 뒤집어 보았으나 다른 주의사항은 없었다. 하물며, 그의 동생인 유미아가 난리를 쳐 데려왔던 강아지 설명서도 이보다는 길었다. 유중혁은 자신의 품에 안겨든 약간 서늘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옷을 입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체온이 낮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제 품에 꽉 차게 안겨든 남자의 날개가 바르르 떨렸다..

“이제부터 네 마음대로 할 텐데.”

마치 꼭 그렇게 될 거라는 듯한 목소리. 유중혁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가게 주인은 조금 웃고 있었다.

“잘 키우길 바라네.”

어쩐지 남자의 표정이 조금 초조해 보였다. 바스락거리며 더 제게 붙는 게 느껴졌다. 유중혁은 품에 안긴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 사람과 꼭 같이 생긴 그것은 뻐끔거릴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대형특수인외인종. 그건 사람이 아니었고, 지능이 있다곤 해도 인간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가게 주인은 그가 잔금을 치르고 계약서에 서명할 때 분명히 이야기 했었다.

네가 그걸 인간으로 착각하지 않길 바라지.

“그건 네 선택에 따라, 구원의 마왕이 될 수도 선택받은 기만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묘한 목소리였다. 유중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










-To be continue


ㅠㅠㅠㅠ꽉리컨님 연성 넘 갓갓이었습니다

소재 사용하실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중으로 2편도 올라와용




레즐리Lesely Christmas=체리크렉Cherry Crack 마약처럼 중독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iss, 크리스마스라고 불리고 싶었던 라스트네임은 잊혀진 지 오래. with all my XO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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