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안 돼. 아직 나는 준비가…….”

놀란 유하가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까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

“쉿!”

한결이 유하를 잡아먹을 듯 보았다. 강렬한 눈빛에 유하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으…헉.. 뭐…뭐하게?

유하의 뺨을 살짝 감싸 쥐고 부드럽게 키스했다. 한결의 키스는 갈수록 실력이 늘었다. 

“우웁.”

달콤하고 부드럽고 아찔한 키스였다. 온몸이 녹는 듯 했다.

유하는 눈을 감고 키스를 즐겼다. 침대에서 하는 키스라 기분이 묘했다. 

너무 좋은데…. 기분이 그 어느 때 보다 이상하고 야릇해. 

쏴아아아

창밖에는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요란스레 두드렸다.

한결의 손이 유하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잠옷 위로 목, 어깨, 허리를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손이 불쑥 옷 안으로 들어왔다. 유하는 맨살에 한결의 뜨거운 손이 닿자 소름이 쫙 끼쳤다. 그 손이 유하의 허리 아래로 쑥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헉…. 안 돼. 나는 너무 두려워.

키스에 빠져있던 유하가 놀라 서둘러 한결의 손을 붙잡았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하게 키스하며 한결은 눈을 감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유하는 뻔뻔한 한결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신경전을 벌였다. 유하는 한결의 손을 꽉 잡고 더이상 못 내려가게 막았다. 

결국 한결은 키스를 끝내고 유하에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뺐다.

어휴. 십 년 감수했네. 갈수록 능글맞네. 

유하는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아직은 안 돼. 진짜 아니야.

“왜 안 돼요?”

한결은 유하를 살짝 원망하는 듯 쳐다보며 아랫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아직은 아니야. 다음에…….”

유하는 숨을 헐떡이며 몰아 쉬었다.

헉헉. 숨 좀 쉬자.  

살짝 심통난 한결은 유하가 숨을 헐떡이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유하의 몸 위로 올라왔다. 

“쪽. 쪽. 쪽.”

목에 사정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후읍.”

유하는 한결의 너무 열정적인 키스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우왁. 깜짝이야. 쉬고 있는데…. 

한결은 유하의 아기고양이 같은 신음소리에 흥분한 듯했다. 새하얀 목에 키스하다가 갑자기 깨물었다.

“악”

유하가 아픔에 그만 소리를 질렀다. 온몸이 찌릿했다. 한결의 어깨를 마구 때렸다.

“아파. 아프다고!”

한결이 미안한지 유하의 품에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나갔다.

유하가 고개를 숙여 곁눈질로 보니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키…키스 마크야. 미친. 어쩌자고.

한결은 유하의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보고 만족한 듯 씩 웃었다.

한술 더 떠서 손으로 이빨 자국을 만져보고는 흡족해했다.

“야! 야잇. 변태야. 왜 자국을 남겨!”

유하가 베개로 한결의 등을 마구 쳤다.

“크크크큭.”

한결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복수예요. 힛.”

“뭐 복수?”

유하는 그제야 한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예전에 유하가 한결의 팔뚝을 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살짝 깨물었는데 이번 거는 너무 자국이 선명하고 아팠다. 손으로 살살 문질렀다. 

“나. 아픈 거 싫단 말이야. 너무 아팠어. 진짜.”

유하는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 채 한결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한결은 힘이 다 빠진 듯 축 늘어져 침대에 누웠다. 조각 같은 옆모습이 조금은 심통이 난 것 같기도 했다.

유하는 한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다시 확인차 말했다.  

“야…. 야. 손만 잡고 자는 거다.”

유하는 아팠지만 차마 나가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한결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설마, 동정심을 유도하는 고도의 작전은 아니겠지……. 

한결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알았어요. 손만 잡고 자요. 선배가 원하면 그렇게 해요.”

조금은 실망한 듯한 말투였다.

한결은 곧 손을 내밀어 유하의 손을 꼭 잡았다.

“후우.”

진한 한숨 소리와 함께 잠시 후 한결은 잠든 듯 미동이 없었다.

유하는 한결이 잠든 걸 보자 그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뭐야, 이렇게 잠을 잘 자면서 약이 없으면 못 잔다면서….

한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살짝 어루만졌다.


아침이 되었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슬며시 비쳤다.

유하는 잠에서 깼지만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몸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지. 피곤해.

힘겹게 눈꺼풀에 힘을 주고 눈을 뜨니 한결이 유하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이마에 한결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유하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눈을 치켜뜨니 잘생긴 한결의 콧구멍이 먼저 보였다.

잘생긴 사람은 코…콧구멍도 잘 생겼네. 크큭. 아후. 피곤하다.

유하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였다.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뒤척이며 일어서려고 했다.

“어디 가요.”

한결이 유하의 몸을 더 꽉 옥죄였다.

“이거 좀 나 봐. 나 지금 화장실 가야 해. 급해.”

한결이 눈을 떴다. 유하와는 달리 숙면을 취한 듯 얼굴에서 반짝 빛이 났다.

“빨리 갔다 와요.”

“어.”

유하는 한결의 품에서 탈출해서 화장실로 갔다. 한결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였다. 

설마… 밤새도록 나를 안고 잔 건 아니겠지. 게다가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한결이 내 에너지 다 빨아먹은 거 아니겠지.

유하는 비틀비틀 화장실을 갔다 왔다.

침대로 가자마자 다시 한결이 손과 발을 이용해서 유하를 마치 애착 인형처럼 꼭 끌어안았다.

“흐읍. 살살해. 너무 꽉 조이지 마. 나도 살아야지.”

“네.”

한결이 고분고분 대답하며 팔의 힘을 살짝 풀었다.

“너무 좋아요. 이렇게 둘이서 같이 자니깐.”

“어? 글쎄..난”

유하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한결은 눈을 감은 채 조금 더 잤다. 그리고 완전히 에너지를 풀로 충전한 듯 일어나자마자 푹 퍼져 멍한 유하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모닝 키스. 히힛.”

유하는 그냥 멍하니 당할 뿐이었다.

모…모닝 키스 싫다. 난 더 자고 싶을 뿐이야. 피곤해.

“어.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벌써 9시예요. 수업은 아직 멀었지만.”

한결이 잠든 유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손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선배, 우리 오늘 수업 째고 이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을래요? 네?”

한결이 유하의 옆에 바짝 붙어 누워서 목, 쇄골, 가슴을 손으로 은근히 훑었다. 유하는 눈을 부릅떴다. 한결의 손이 배꼽에서 더 내려가기 전에 잡았다.

자…잡았다, 요놈.

“아니야. 그냥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 하핫.”

어휴. 피곤하지만 일어나겠다. 아침부터 이 야릇한 분위기는 또 뭐야.

“하암.”

유하는 하품을 입이 찢어져라 했다. 

“귀여워요.”

한결이 멍하니 유하를 바라보았다. 

“우리 매일 이렇게 같이 자요, 선배. 어제 손만 잡고 잘 잤잖아요.”

“안 돼. 난 싫다.”

유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눈이 퀭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서둘러 욕실로 갔다.

“윽. 아파.”

거울에 목을 비춰 보니 역시나 키스 마크가 선명했다. 어제 독하게 목을 깨물던 한결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무서운 녀석. 뱀파이어도 아니고. 뭐야 이게. 

한결은 아마도 욕구 불만을 이렇게 표출한 것 같았다.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워했다. 유하는 서둘러 파스를 찾아서 붙였다.



한결은 2층으로 올라가서 샤워를 했다. 

샤워기를 틀자 따끈한 온수가 온몸을 감쌌다. 

쏴아아아.

이렇게 숙면을 취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은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특히나 어제처럼 날씨가 사나울 때는 늘 약을 복용하고 잠을 잤다. 일어나면 머리가 멍하고 헛구역질이 났다.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유하 선배랑 같이 자다니 너무 행복했어. 역시나 마음이 약해서 받아줄꺼라고 생각한 게 맞았어. 힛. 문 안 열어줄지 알고 열쇠로 따고 들어가길 잘했어. 크큭. 

한결은 어제 일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붕 떴다. 

맹세코 어젯밤은 유하에게 흑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위로를 받고 싶었다. 유하가 연인으로서 위로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시울까지 붉히며 부둥부둥 안아서 위로해주는데 그 모습이 너무 곱고 예뻤다. 감동했다.

유하 선배가 날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는구나. 이제 나 혼자하는 짝사랑은 아니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키스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번 키스를 하게 되면 멈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키스하고 말았다.

무려 유하의 침대 위에서 키스를 했더니 정말 마음이 어찌나 동하던지.

참을 수가 없었다. 

으윽.

한결은 바디샴푸를 짜서 거품을 내고 온몸에 문질렀다. 

다시 샤워기를 틀어서 거품을 씻어냈다.

결국은 못 참고 키스해버렸고 더 진도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유하가 키스에 한눈판 사이에 몰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말랑하고 따뜻한 속살을 만지니깐 피가 끓어올랐다.

손이나 얼굴을 만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근육이 하나도 없는 매끈한 피부였다. 단단한 한결의 몸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후끈 몸이 달아올라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곧 정신을 차린 유하에게 손이 잡혀버렸다.

평소에는 느릿한 사람이 그럴 때는 얄밉게도 동작이 빨랐다.

어휴.

한결은 살짝 삐졌다. 

키스도 하고…. 더 하면 왜 안 되는 건지…. 선배도 저 좋다면서요.

속상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마음이 살짝 삐뚤어 져버렸다.

그래도 키스로는 부족했다. 뭐라도 더 하고 싶었다. 

새하얀 목덜미에 입을 맞추다가 문득 깨물어서 키스 마크를 남기고 싶어졌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살짝 깨문다는 게 그만 흥분해서 힘 조절에 실패서 꽉 깨물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아주 조금 일부러 의도한 것도 있었다.

유하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소리를 꽥 질렀다.

생각보다 엄살이 심했다. 큭.

조금 미안했지만 한결도 전에 유하에게 물린 적이 있기에 그걸로 퉁 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듯하기도 했다. 뭔가 사랑의 증표를 남긴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크큭.

아프다고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유하를 보니 미안하긴 했다. 아마도 갑자기 물려서 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 싶었다. 

그러니깐 자꾸만 사람 애만 태우지 말라고요.  

어제 같이 잤다는 거 자체에 한결은 크게 만족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같이 자고 싶었다. 

유하는 뭔지 모르게 늘 다음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결은 혼자만 안달복달하는 거 같아서 속상했다.

에잇, 자존심 상해. 그 다음번에라는 게 도대체 언제인 거야. 그날이 오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밤새도록 복수할 거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샤워를 마무리하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거울을 보았다. 잠을 잘 잤는지 피부가 촉촉하고 뽀송했다.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했다. 

“와. 오늘처럼 이렇게 잘생긴 거 또 처음이네. 유하 선배 덕분에 회춘한 것 같아. 히힛.”

한결은 거울을 보며 흡족한 듯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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