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진짜 소개를 받았다고? 이 자식아? 제정신이야?!"


윤기형은 테이블을 쾅, 치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잔이 들썩일정도로. 그 다음은 무식하게 등짝만 얻어맞았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빈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원샷을 했다. 캬, 시원하다. 

이렇게 한잔, 한잔 마시면서 전부 잊자.


나는 그렇게 카페에서 도망치고, 할일없는 윤기형을 불러 술을 퍼마시고 있다. 


"끝까지 들어봐. 그래서 중간에 그냥 나왔다니깐."

"그래도 받지 말아야지!"

"그럼 울면서 이젠 전부 끝이라고. 소개 받으라고 하는데 거기서 싫다하냐?"


나는 오늘의 오후를 기억한다.

어색한 셔츠를 입고, 쾡한 얼굴로 차를 끌고 카페에 도착했을때의 그 기분을. 푸석한 두 손으로 몇번이나 얼굴을 만졌다. 말도 안되는 이상형이 나와서, 제발 내 맘을 흔들어주라고 기도까지 하고 왔다. 그 기분을 윤기형은 이해할까.


지금이라도 태형이형 멱살을 짤짤 흔들던지, 아니면 무릎꿇고 바지 한쪽 가랑이를 잡고 빌던지. 

그래도,

이젠 박지민이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할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윤기형은 이해할까.


"나는 이제 진짜 다 포기야. 다 끝났어."

".........."


디 엔드. 진짜 디 엔드다.

THE END, 라고.

디 엔드라고 하니깐 떠올라버렸다. 언젠가 더 엔드라고 읽었다가 무식하다고 지민형에게 비웃음을 당한 기억들까지. 


"진짜로 끝인건가."

".............."

"사실.. 어제 지민이 카페를 갔었거든. 박지민 보려고..."

"............."

"진짜 끝인건가.."


윤기형은 어울리지 않게, 한쪽 손에 턱을 괴고 깊이 생각했다. 윤기형은 지민형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고 한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이제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대충, 알것같다. 이젠.

저음에 굵은 윤기형의 목소리. 체념한 얼굴. 나는 멍하니 사람이 왔다가, 사라지는 창문밖 거리를 바라봤다. 윤기형은 혼자서 술을 마셨다. 술집의 노란 조명이 윤기형 얼굴에 쏟아졌다. 나는 우울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그리고 소주잔에 찰랑거리는 소주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형, 박지민 좋아하는구나."

"..............."



***


나는 드라마틱한 그 순간을 기억한다. 윤기형의 찢어지고 조그만 눈이, 멍하니 커지고. 바보같이 입을 벌리고, 소주잔을 넘어뜨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쾌활하게 웃었다. 언제부터야. 나는 조용히 물었다. 


"중학교 2학년, 막 사춘기가 시작될쯤이지."

"............."

"그 해에 키가 10센치나 자랐었거든."


뭐 별거 없어. 나는 자신이 없었거든.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해본적도 없어. 거기다 나, 눈치가 꽤 빠른편이거든.


나는 지민형을 좋아한다는 윤기형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윤기형은, 진짜로 좋아하고 있어서. 진짜로 좋아해서, 지민형의 행복을 빌어주는것같아서. 매일 우리 사이에 끼어서 우리를 화해해주고. 결혼식장에서도 제일 크게 박수를 치면서,

울던 윤기형.


태형이형과 사귄다는 소리에, 술에 취해 행복하라고 큰 소리치던 윤기형.

오늘도 내 병신짓을 받아줄 모양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윤기형을,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국아."

"..........."

"내가 박지민을 좋아하니깐 보이더라고."

"............"

"얘 시선이 어디에 가있는지. 얘 관심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


내가 아무리 진을 치고, 난리를 치고, 너네 사이를 방해해도. 소용없을거라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안했어. 그냥 노트에 가끔 박지민 얼굴이나 끄적이고. 새벽 두시쯤 문자 몇번 보내보고. 고민 상담들어주고.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싶었어.


"근데 진짜 이상하지."

"..........."

"나, 나이도 여기서 제일 많으니까, 김태형이 유학가고나서 항상 혼자 있던 지민이를 챙겨주는건 나였어. 잘해주는건 내 쪽인데. 박지민은 습관처럼 항상 너를 봐. 그리고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정국이는? 이거야. 뭐 맛있는거 먹을때도. 정국이는? 어디 놀러갈때도. 정국이는?"

".........."

"나는 매순간 너한테 지고 있었다."

"..........."

"늘."


어렸을땐 멋대로 널 라이벌로 생각했었어. 그건 미안하다.


윤기형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윤기형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윤기형은 볼캡을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 이 순간부터 난 형이랑도 경쟁해야하는건가."




"글쎄."

"............"

"근데, 계속 그런식으로 하면 내가 뺏는다."



***


난 한참을 궁시렁대면서 걷고 있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던가. 후회하면 후회한다고 말하던가!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 너는?!]


윤기형은 술집에 나와선 담배를 물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럼, 지는?!

지도 고백 안한주제에!


마음속으론 그렇게 외쳤는데, 실상은 아무말도 못했다.

윤기형은 그렇게 말하고 대뜸 입을 다물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담배 꽁초를 발로 밟았다. 윤기형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윤기형도 생각했을것이다.

저가 한 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것인지.


나는 이젠 모른다.


"확신이 들지 않아.."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나는 술기운에 지민형의 아파트 앞까지 갔다. 그냥 정처없이 떠돌다, 술김에 단번에 와버렸다. 오늘이야말로 확인할것이다. 나는 지금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셔서, 용기가 장난아니다. 그래서 나는, 냅다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집 앞이야, 나와.]


그렇게 말하고, 바로 끊어버렸다. 지민형은 욕을 하면서 밖에 나오겠지. 아무튼, 나오면 난 말할것이다. 

나를,

여전히,

조금이라도,


셔츠엔 술냄새가 술술 풍기고, 아침에 만졌던 머리는 헝클어져있는데. 지민형은 날 어떤 모습이든 좋아해줬으니깐. 오래토록 좋아해줬으니깐..

얼마나 세심한 사람인지, 향수 냄새가 조금 달라져도 알던 사람이었으니깐.

이렇게 불쌍하고 술에 취한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난 일부로 술을 몽땅 마셨다.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날 절대 밀쳐내지 못할거라고.. 만약 거절하면 길바닥에 엎어져서 펑펑 울면서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것이다. 

나 불쌍하지 않냐구.. 나 진짜 너 사라지고 인생 조졌다구.. 

나 책임지라구.. 잉잉 울생각이다. 진짜로...

멀리서 지민형이 걸어나왔다. 회색 후드집업을 뒤집어 쓰고, 츄리닝 차림에 쓰레빠를 질질 끌고. 나는 냅다 달리려 했다. 새 구두에 발 뒤꿈치가 몽땅 까져서 쓰렸지만, 그런건 별게 아니다. 지금 내 앞에 박지민이 있다. 이번엔 말해야한다. 진짜로. 


진짜로..


"..................."


그 때 아파트 앞에 주차된 차에서 태형이형이 나왔다.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아우디 차에서 내린, 태형이형은 지민형을 보자마자 단숨에 꽉 끌어안았다. 


달리려했는데.


달려야되는데.


"..................."


[내가 박지민을 좋아하니깐 보이더라고.]

[얘 시선이 어디에 가있는지. 얘 관심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


나는 멍한 눈으로 그 둘을 쫓았다. 반가워하며 인사라도 할 모양으로 높게 손을 든 오른쪽 팔이.


".............."




[얘 시선이 어디에 가있는지. 얘 관심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





나는 다음날 아침에 기분이 매우 좋아서, 푸른 바람을 맞으면서 헬스장까지 달려갔다. 문을 열면 좋은 아침!, 이라고 말하고 활기차게 일을 할것이다. 

일부로 핸드폰도 꺼놨다.

더이상, 신경쓰지 않을것이다.

나는 오늘 최상의 컨디션이다. 기분은 진짜로 끝내주고.


나는 진짜로, 진짜로..


헬스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렁차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더이상 신경쓸거 없단 말이야. 그 때, 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헉헉, 거리면서 거친 숨소리도. 


내가 인사할 겨를도 없이 지민형은 바로 사무실 문을 열고 말했다. 어제와 같이 푸석한 머리에 회색 후드집업을 뒤집어 쓰고.


"너, 왜 전화를 안받아.."

"..........뭐? 여긴 .."

"어머님 돌아가셨다고!"


지민형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



***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다.

좋은 정장 한벌쯤은 항상 준비해두라고. 언제 쓰일지 모르니깐. 결혼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지민형은 멍한 나를 보고, 엉엉 울며 운전을 했다. 단숨에 집 앞까지 운전해서 정장을 찾고, 나 대신 상주인 큰 형에게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를 위로 했다. 


"막내가 충격이 큰것같은데.."


조문을 온 조문객들은, 나를 지나치며 한소리를 했다. 울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아무말 없이 지나치지 못했다.

언젠가 돌아가실걸 알았다.

위암 말기신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오늘 아침, 여덟시에 어머니는 운명하셨다고 했다.

나는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했다.

그저, 어제 박지민 때문에 화가나서.

연락을 기다리는것도, 카카오톡 프로필사진도 보기싫어서 핸드폰을 줄곧 꺼뒀기 때문이다.


조문객이 오면 인사를 드리고, 같이 절을 했다. 멍하니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밥도 안먹는 날 보고 지민형은 또 울었다. 손수 손을 끌어다 밥을 먹으라고 해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 사진만 보면서 앉아 있었다. 지민형은 나 대신 열심히 조문객을 맞이 했다.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지 않는 나를 보며 어깨를 감싸고 울었고, 나는 한번도 울지 않았다. 윤기형과 태형이형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태형이형은 나보다 더 울었다. 눈이 팅팅 부을정도로 운 형을 보고 도리어 웃었다. 역시 김태형은 착하다, 진짜 미울만큼.. 태형이형은 정말로 3일 내내 내 옆을 지켜줬다. 

이런 태형이형을 두고, 난 나쁜 생각이나 하고 있고..

지민형도 마찬가지다. 지민형은 카페를 한번도 가지 않고, 내 옆에 달라붙어 조문객을 맞이했다. 저녁이 되면 아무데나 쓰러져서 잤는데, 그럴때마다 지민형은 날 꼭 껴안아줬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정도로,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발인식때도 지민형과 태형이형, 윤기형은 내 옆에 꼭 있어줬다. 태형이형은 말 없이 내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왜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지.

나는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


"피곤하지, 정국아."


지민형은 발인식이 끝나고 나 대신 운전을 했다. 지민형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먹기 싫으면 물이라도 마셔, 너 그러다 쓰러져.."


지민형은 운전대 옆에 있는 물을 마시라고 권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물을 마셨다. 지민형은 푸석푸석한 얼굴로 필사적으로 내 옆에 있어줬다. 3일 내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지민형은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잘됐다."

"...뭐가?"

"우리 이제 이혼한거 아빠한테 말하면 되잖아."

"..........."

"엄마 때문에 이혼한거 숨긴거니깐. 지금 당장 말해서. 너 김태형이랑.."


그 때, 지민형이 운전대를 휙 돌렸다. 아악!,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차가 우당탕,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목이 순식간에 앞으로 나와서 머리가 부딪힐뻔 했다. 차 범퍼까지 맛이 갈정도로 크게 부딪혔다. 지민형은 운전대에 머리를 쾅 부딪히기까지 했다.


"너 뭐하는짓이야?!"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지민형이 운전대에 박힌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지민형은 바로 안전벨트를 푸르고, 차에서 내렸다. 


"너, 씨발. 내려. 개새끼야."


지민형은 내리지 않는 나를 두고, 조수석 문을 발로 찼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차에서 내려,


".............."


지민형에게 얻어맞았다. 처음엔 코였고, 그다음 턱이었다. 정통으로 주먹이 들어가자 휘청거리는 나를 향해 발로 차기까지 했다. 정강이를 얻어맞고 도로에서 데굴 데굴 굴렀다. 

역시, 이 남자 주먹질도 잘한다. 내가 반한 남자가 맞다.. 그런데 너무 아프잖아!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이야?!"


나는 도로에 드러누워 지민형을 아래에서 쳐다봤다. 아래에서 쳐다보는 지민형의 얼굴은 끝내줬다. 푸석푸석한 얼굴에도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다. 지민형은 분한지 엉엉 울기 까지 했다. 조그만 주먹으로 눈가를 비비면서 우는데, 가슴이 찢어질것같다.


이상하다.. 이상해.


"..............."

"어머님 돌아가시고 어떻게 바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진짜 우리 엄마. 

이제 없는건가..


지민형은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나는 지민형이 그렇게 우는건 처음 봤다. 세상이 끝난것마냥 처량하게 우는 박지민. 제 풀에 넘어져서, 바닥에 앉아 우는 박지민. 


나는 지금 코에서 코피가 뚝뚝 흐르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다.

박지민도 운다.


진짜 우리 엄마가..


"너 진짜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돼.."

"............."

"어머님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

"어릴때부터 정말로..."


지민형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들게 일어났다. 두 팔로 날 부축을 하며 일으켜주기까지 했다. 하얀 얼굴이 짓뭉개지도록 애처롭게 우는 지민이형. 


"난 형 생각해서 한 말인데.."

"............진짜 너 미쳤구나?"


지민형은 또 날 때릴참인지 주먹을 보였다. 윽, 난 무서워서 바로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엄마가 돌아가신 첫 날처럼 푸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때처럼 상쾌하고 좋은 날씨. 작은 새가 지저귀고.


"그런데 진짜.."

".............."

"우리 엄마 돌아가신거지?"

"............."

"진짜인거지?"

".............."


지민형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펑펑 울고 있는 지민형. 난 도로 한복판에서, 지민형을 붙들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묻고 있다.


"진짜로 돌아가신거지?"

"............."

"이 세상에 진짜 없는거지.."

".........."


정국아..


나는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나를 애처롭게, 불쌍한 사람을 보듯이 부르는 지민형의 목소리를 듣고. 


젠장.


"정국아.. 너 울어?"

".............."


나는 말하려했다.


[형, 나 한번만 꼭 안아주면 안돼?]


막 입을 달싹이려는데, 


"..............."


지민형은 단숨에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난 나보다 한참 작은 지민형 품에 안겨 아기처럼 울었다.


***


"우리 진짜 구제불능이네."

"..............."


우린 서로 퉁퉁 부은 눈으로, 차 좌석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했다.

난 지민형의 눈을 보고 푸하하, 웃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민형은 웃음기도 없이 얘기를 이어나간다. 


"차는 망가지고, 둘다 휴대폰 밧데리는 나가고."

"............."


지민형은 언제나 어른스럽다. 나는 지금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 날 전부 챙겨준건 형밖에 없다. 정신없는 나를 버려두지 않고, 끝내. 

전남편인데.

이제 전남편일뿐인데.


"돈은 있냐?"


지민형이 나에게 물었다. 무심하게 묻는 지민형 목소리.


"있겠냐. 그냥 막 나왔는데."

"아, 있다!"

"어디, 줘봐."

"아..삼성페이.."

".............."


차는 말도 안되게 심하게 망가지고, 심지어 타이어 바람까지 빠졌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때문에 지방까지 내려와서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그 탓에, 여기 주변이 어딘지도 모른다. 설상가상 3일 내내, 충전도 못한 핸드폰은 이미 밧데리가 다한지 오래다. 돈은 당연히 한푼도 없다. 차를 타도 네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거리에 거기다 이미 밤이 된지 오래고, 우릴 구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것이다.


지민형은 상황을 파악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

"분명 낮이 되면 사람들이 있을거야."


지민형은 어른스럽다. 난 끝없이 이 어른스러운 형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항상 든든한 형. 어디서 이런 사람이 왔을까.

우리 둘은 차 시트를 확 내린상태로 서로를 보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형."


시작은 나다.


"뭐."

"나 아퍼."

"어디가."

"아까 형이 때린 데.."

".........미안하다."


지민형은 저 답지 않게 바로 사과를 했다. 쑥쓰러운 눈치다. 귀엽긴.


"정국아, 많이 아파?"

"............"

"코 부러진지 확인이라도 해볼까?"

"..........."


날 걱정해주는 형때문에 삐죽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제 그만 울어야된다. 난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지민형을 쳐다봤다. 빤히 바라보자, 형의 얼굴이 금방 붉어진다. 형은 재빨리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이 지니, 시골 하늘엔 별이 총총 떠오르기 시작한다. 


"코 안부러졌어. 바보."

"나도 그냥 해본 소리거든?"

"걱정 되기는 하나봐. 잘생긴 얼굴 어떻게 될까봐."

"하나도 안잘생겼거든?!"


반응이 바로바로 나온다. 나는 큭큭, 웃으며 지민형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동글동글한 뒤통수. 나는 괜히 손바닥을 크게 펼쳐봐서 지민형의 머리통에 갖다대봤다. 머리통도 되게 작네. 


"형."

"응."

"잘거야?"

"자야지."

"..........."


얼굴 보고 자.


내 말에 형이 어깨를 흠칫 떤다. 나는 형에게 대놓고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민형의 어깨를 살살 흔들면서 나 좀보라고 징징거리자, 형은 바로 고개를 돌려 날 봤다. 팅팅 부은 눈에 얼굴은 빨개져서 진짜 못생겼는데,


좋다.


밤하늘의 그늘에 지민형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렁 자. 내일 아침 되면 서울 가야지."

"응."

"............."


지민형은 몸을 돌려, 잠을 잘 참인지 조그만 몸을 구부렸다.


"형."

"그만 불러. 나 잘거야."

"..............."

"형."

"..............."


지민형은 대답대신 한숨을 쉬었다.


"박지민."

"............."

"오래 살아라."


나는 눈을 비볐다.


"..........어?"

"...오래, 살아라.."

".............."

"......오래, 살아라."

".............."


너 가면 진짜 나 혼자다. 진짜.. 오래 살아라. 오래 오래 내 옆에서..

나는 이제 진짜 혼자니깐.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천치인데.. 내 옆에서 같이 늙어가면 안되냐. 우리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그 자식 옆에 가지 말고. 내 옆에서 같이..



"오래, 살아라."

"알겠어."

"오래, 살아라.."

"알겠다구."

"..................오래.. 살아라."


눈물이 후두둑, 얼굴에서 떨어졌다. 내 울음소리에 지민형이 뒤를 돌아봤다. 크게 놀란 눈이 바로 나를 쳐다봤다. 


"오래.. 살아라.."

"................."



날 꽉 안아주는 바람에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래, 살아라.

부디.











-

오랜만의 작가의 말:

사실 윤기가 지민이 좋아한다는 복선은 아주 많습니다.

알아차린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저만 알고있었네요...

윤기는 지난 노래방에서도 좋은 사람을 선곡하고 지민이를 향해 노래를 부르죠

심지어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지민이에게.

그리고 계속 지민과 정국, 태형이 사이에 끼어드는 윤기. 고민 상담이지만, 가끔 과해보일때도 있죠,

그리고 지민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윤기.

누구 편도 아니라는 윤기..

미워도 다시한번은 태형과, 정국, 윤기가 각각 지민이를 어떻게 좋아하는지를 관찰하는 것도 재밌을겁니다. 그럼...

쓰느라 땀을 뻘뻘흘렸고..

항상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가완사가 됐습니다.

다들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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