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썼던거 싸그리 백업할까 하는데 과거의 글을 보니 진짜 핵구리다.. 근데 뒤집어 엎기 귀찮으니까 적당히 수정만..


2016.12.01글 수정 공백포함 27,440자







류크는 어느날 칸의 사건 때 실제적으로 명이 다했지만 멀쩡이 살아있는 커크를 발견함. 그래서 명계의 왕 몰래 커크에게 사신의 눈의 힘을 부여하고 고악한 장난질을 치고야 마는데..



데스노트 설정 따온거라서 대충

사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상대방의 이름과 수명이 보인다.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면 그 동안의 기억을 잃는다만 알면 될듯

본인의 수명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서는 보이는 걸로



 평소와도 같은 안정적인 항해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어. 커크는 어제 조금 꿈자리가 사나웠던 터라 푹 자지 못해서 제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 그때 커크 귀에 갑자기 뎅-하는 소리가 꽂혔어. 깜짝 놀라 잠에서 깨고 소리의 출처가 어딘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자신과 눈이 마주친 브릿지 대원들은 자신의 당황한 눈빛에 오히려 의문을 던져. 그 순간 커크는 제 눈에 닿는 기이한 붉은 것에 눈을 비볐지. 갑자기 대원들의 머리 위에 기이한 붉은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그 숫자의 의미도 파악하기 전에 갑자기 제 어깨에 닿는 감촉에 커크는 제 자리에서 파드득 몸을 떨었어. 갑작스럽게 놀란 탓에 담이 온 목을 뻣뻣하게 위로 돌리니 스팍이야.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도 붉은 그것이 둥실둥실 떠다녀.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인 것 같지만 커크는 기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스럽게 그것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 커크는 스팍의 입이 뻐끔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을 알았지만 제 신경은 그 숫자에만 팔려있어서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지. 커크는 절로 창백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느끼면서 스팍에게 임시 함장을 맡아주길 바란다며 브릿지를 벗어났어. 메디베이로 달려가면서 제게 길을 비켜주는 대원들의 머리위에도 마찬가지로 붉은 숫자가 보였어.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가 고막을 때렸지. 메디베이에 들어가는 문 앞에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잠시 벽에 기댄 커크는 두렵게 그 문을 쳐다보았어. 그때 문이 열리며 한 대원이 나오다가 자신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 커크는 그의 머리 위로 시선을 두려고 하지 않으려 했지만, 스쳐 지나가듯이 보았던 그 숫자는 여기까지 오면서 보았던 그것들과 같아서 순간 눈을 질끈 감았어. 식은땀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어.



 커크는 힘없이 주저앉는 자신을 부축하는 손길을 느꼈어. 비틀거리는 다리로 그의 움직임에 몸을 움직이니 곧 다른 누군가의 단단한 손이 자신을 붙잡아왔어. 떨리는 눈을 살풋 뜨니 파란색의 옷자락이 보여. 커크는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어. 감히 그 위쪽을 볼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



"댐잇, 짐! 무슨일이야!"



 침대 위로 옮겨진 제 몸 위로 삐빅하는 트라이코더 소리 사이로 들리는 본즈의 놀란 목소리에 커크는 순간 시선을 그쪽으로 쫓았다가 눈을 꾹 감았어. 확연히 읽힌 그 숫자에 숨이 턱턱 막혀오더니 결국 핑글핑글 도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까무룩 기절하고 말았어.












 커크는 멍한 머리를 느끼며 천천히 눈을 굴렸어. 제 몸을 덮고 있는 얇은 이불을 그러쥔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 베개에 등을 기대고 숨을 천천히 내쉰 그에게 근처에 있던 간호사가 다가왔지.



"함장님, 이제 정신이 드세요?"


"....."



 커크는 여전히 상대방의 머리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그것에 숨을 삼켰어. 대답하지 않는 저에 간호사가 트라이코더를 켰지만, 커크는 그 화면에 어떠한 것도 뜨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었지. 예상대로 갸웃하며 트라이코더를 쳐다본 간호사가 곧 CMO를 불렀어. 곧바로 그에게 온 본즈에 커크는 울렁거리는 속을 내리눌렀어.



 "짐."


"....그냥. 기력이 쇠해졌나봐."



 커크는 그 숫자에 대해 입을 열 수가 없었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갑자기 누군가의 권능을 훔쳐 쓰고 있다고 느꼈어. 그리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언급할 수도 조차 없다는 것도. 입을 열다가 머릿 속에서 경종이 울려대는 것에 커크는 변명만을 읊었어. 물론 제 함장의 거짓말을 기민하게 눈치챈 CMO는 한 번 더 트라이코더를 살펴보았어.



"스트레스 지수가 꽤 높아. 그렇다고 공황발작에 빠진 건..."


"아...내가 좀 졸았는데..., 악몽을 꿨거든..."


"...."



 커크는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을 악몽으로 치부하고 싶었어. 물론 그렇다고 차근차근 줄어드는 저 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 파들거리며 떨리는 커크의 입술에 본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흐트러진 이불을 좀 더 꼼꼼히 덮어주기만 했어.



"오늘 업무는 스팍이 다 처리 한다고 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자."


"으응...."



 커크는 그가 놓아준 수면제의 몽롱함과 함께 다시 잠에 빠져 들었어. 모든 것이 그저 끔찍한 헛것에 불과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하지만 몇 시간 후 죽음 같은 잠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에도 현실은 그대로였고 커크는 조용히 절망한 채 메디베이에서 빠져나왔어.











 제 쿼터에 도착한 커크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어. 떨리는 몸을 거울 앞에 선 그는 곧 반대로 비쳐 보이는 숫자를 보고는 세면대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어.



 자신만 숫자가 달라. 커크는 샤워실에서 기어나오듯이 빠져나왔어. 그는 숨을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려고 했어. 물론 잘 되지 않았지.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어.







그가 본 이들은 열흘 뒤에 죽을 거야. 하지만 자신은 그 죽음의 시간에서 벗어나 있었어.














 커크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면서 몸을 일으켰어. 어젯밤에 한참을 펑펑 울다가 의식이 끊겼었는데 바닥에 쓰러진 채 그렇게 잠들었나봐. 커크는 퉁퉁 부은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어. 본래 자신이 기상했던 시간이었지. 커크는 결리는 몸을 침대로 향했어. 쓰러지듯 그것에 몸을 던진 그는 잠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가 혹시나하고 탁자에 놓인 개인용 패드를 집어들었어. 거울 모드로 보인 제 얼굴 위로 어제보다 아주 미묘하게 줄어든 붉은 숫자가 보였지. 커크는 견딜수가 없어서 패드를 던져버렸어.



 몇십분이고 멍하게 누워있으니 지금부터 씻고 해도 제 시프트 시간에 가기 빠듯할거야. 하지만 커크는 크루들의 명줄이 하나하나 줄어드는 것을 봐야한다는 것을 조금은 견딜 수가 없었어. 왜 갑자기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그저 질나쁜 환각에 빠진 것인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최근에 탐사하려 내려간 적도 없는데댜 머릿속으로 당연하게 인식되고 해석되는 그것들은 단순히 어떠한 질병으로 생긴게 아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패드로 메시지가 날라왔어.  



 확인해 보니 스팍이야. 혹시 오늘도 몸이 안 좋다면 쉬는 게 어떠하네. 분명 제가 씻을 시간이 지났는데 방 너머로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걱정되서 메시지를 보냈나봐. 아, 그러면 어젯밤에 자신이 울던 소리도 들렸을까? 커크는 괜히 눈 주변을 더듬거렸어.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그리고 혹시 모르니깐 다를 크루들의 붉은 숫자도 확인해 봐야하고. 10일.아니, 이제 남은 9일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 지켜봐야 하니깐. 최소 스무 명의 사망자가 발상하는게 단순한 탐사를 갔다가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닐거야. 적어도 엔터프라이즈호 자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외부의 공격이 있을 테지. 커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보았어.










"깹틴 온 더 브릿지!"


"함장님."



 함장석에 앉아 있던 스팍이 일어나서 막 함교로 들어온 커크에게 자리를 비켜주었어. 벌컨의 눈빛에 걱정이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을까. 커크는 그의 얼굴, 정확히는 스팍의 눈썹 이상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으려 하면서 인사로 고개로 끄덕였어. 물론 자리에 앉았을 때 보이는 바로 보이는 조타수와 항법사의 머리 위에 보이는 붉은 것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지. 220시간. 9일하고 4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죽을 거야. 커크는 보이지 않게 의자 손잡이를 틀어쥐었어.



 커크는 우선 앞으로 할 임무 예정표와 항해 경로를 확인했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지. 중립지역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 클링온과의 전투도 없을 거야. 커크는 스트레스로 당겨오는 목을 주무르고는 각 부서 전체에게 함선의 전체적인 검사 보고서를 올려달라고 했어. 각 부서의 치프들이 흘리는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커크는 혹시 모를 어떠한 문제점도 남겨둘 수 없었어.



 함선의 크기가 큰 만큼 나누어진 부서의 수도 만만치 않아서 반 년에 한 번 할만한 총 검사가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었지. 일주일 동안 올라오는 보고서의 양은 만만치 않았어. 커크는 잠도 줄여가며 그것들을 확인했지. 함교 대원들은 커크의 평소와 다른 행동에 불안해 했어. 그래도 지금 커크의 행동은 함선을 해롭게 할 일은 전혀 아니니 그저 날이 갈수록 거무죽죽해지는 커크의 안색만을 걱정스럽게 쳐다봤어. 스팍은 편집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행동하는 커크를 강제로 메디베이로 보냈고 그곳에서도 패드를 붙잡고 있는 그에 본즈는 강제로 그에게 수면제를 처방했어. 물론 깨어나자마자 노발대발하는 커크 때문에 다음부터는 영양제만을 주사할 수밖에 없었어.










 


 문제의 그날이 되었어. 커크는 굳은 얼굴을 하고 브릿지에 올랐어. 함선 내에 문제는 없었으니 외부에서 위험이 닥칠 거야. 쿵쾅거리는 심장에 커크는 긴장한 채 정면만을 계속 응시했어. 누가 되었건 간에 절대로 내 대원들을 해칠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커크의 두 눈이 시퍼렇게 번뜩였어.



"새로운 행성입니다, 함장님."



 30분도 남지 않아서 갑자기 외계 행성이 그들의 항로에 잡혔어. 커크는 푸른색의 행성을 보자마자 바로 이곳에서 도망쳐야 하나 생각했어. 광속보다 빠르게 항해하는 그들에게 30분이라는 시간은 몇 광년의 차이가 날 수있도록 했지. 사고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우주 한복판보다 이곳에서 일어날 일에 대하서 반응하기가 훨씬 쉬울 거야. 우선 커크는 술루에게 언제든지 워프할 수 있도록 대기하도록 했어. 의아해하던 그는 커크의 표정은 보고 아무말 없이 그의 명령에 따랐어.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껏 긴장하있는 함장에 함교 대원들은 입을 다물고 엔터프라이즈 컴퓨터에 잡히는 행성의 정보를 분석했어.



"M급 행성입니다. 표면상에 복잡한 기계 단지가 분포해 있습니다만, 현 위치에서는 그것들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는데에 13분의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주변에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네."



 1분 남았어. 커크는 손에 가득 고이는 식은땀을 계속 닦아내며 정면 창에 뜬 그것들의 구조를 뚫어지도록 쳐다봤어. 그때 그의 눈에 그들의 장치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어. 에너지가 한 곳을 향해 집중되고 있었지.



"술루! 당장 이곳을 벗어난다!"



 미약한 소음과 함께 엔터프라이즈호는 순식간에 그 행성에서 벗어났어. 커크는 워프 버블에서 반사되는 별빛을 바탕으로 보이는 술루의 숫자에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봤어. 초마다 줄어가는 그것에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빠르게 울려왔어. 그렇게 숫자가 줄어들더니 5, 4, 3, 2, 1......!



 0에 도달한 숫자와 함께 커크는 숨을 멈추었어. 그리고 갑자기 들리는 그 뎅- 하는 소리. 그것과 함께 차라락하며 숫자가 역행하기 시작해. 빠르게 차오르던 숫자가 점점 느려지더니 멈추었어. 그리고 다시 움직이는 숫자에 커크는 떨리는 숨을 겨우 내뱉고 함장석에 몸을 기댔어. 술루의 숫자와 체콥의 숫자가 달라. 겨우 몸을 돌려 바라본 스팍의 숫자도 달랐지. 커크는 절로 새어 나오는 눈물을 겨우 삼켰어. 자신의 잔뜩 일글어진 얼굴을 본 것일까, 스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다가왔어. 커크는 재빨리 얼굴을 훔쳤어.



"함장님?"


"큼...스팍."


 

 커크는 혹시나 목소리가 떨릴까봐 짧게 대답했어. 물론 스팍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제 이상을 눈치채고 그것에 대해 대답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지.



"음... 그 기계."


"함장님! 그 장치들은 공격용 에너지 사출구 였습니다!"



 커크의 대답을 가르고 한 대원이 퍼뜩 말했어. 커크는 그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까닥였지.



"어, 에너지가 모인 것을 보고..... 딱 감이 잡혔지?"


"....."


"요새들어.... 그... 내 뇌에서 삐용삐용하고 경고등이 계속 울렸거든. 그래서 음.... 이번 일에 대해서 아주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지."


"...... 함장님께서 이런 특정 상황에 느끼곤 하는 그 경고등에 대해 연구하고 싶을 정도군요."


"하하...농담도."


"벌칸은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음...."


"것보다 함장님은 이제 좀 쉬셔야 할 것 같군요."


"응?"


"네!! 함교는 쩌희들로 쭝분합니다!"



 커크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체콥의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니 옆에 있던 술루도 고개를 끄덕여. 커크는 자신을 맹렬하게 쳐다보는 그들에 괜히 얼굴을 쓰다듬었어. 아마 근 10일 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는데 그게 크루들의 걱정을 어지간히도 끼쳤나봐. 



 커크는 거절하지 않았어. 솔직히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거든. 메디베이에 도착한 커크는 본즈의 머리위에 있는 숫자를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어. 본즈는 멍청하게 웃고 있는 그의 등짝을 강하게 때리고는 무작정 침대에 눕혔어. 커크는 거절하지 않고 편하게 누운 뒤 바로 잠에 빠져들었어.









 어느 때보다 편안한 식사를 마치고 쿼터로 돌아온 커크는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가야겠다며 샤워실에 들어갔다가 거울 앞에서 우뚝하고 멈춰섰어. 그의 머리 위해 처음 붉은 것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숫자가 떠 있었거든. 커크는 1씩 줄어드는 그것에서부터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어.












"짐!"



 커크는 깜짝 놀라서 포크를 떨어트렸어. 앞에 앉아있던 본즈가 제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어.



"으응?"


"아침부터 뭘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는 거야?"


"어....어..."


"어, 뭐."



 커크는 묵묵히 프렌치 토스트를 먹고 있는 본즈를 내려보다가 입을 열었어.



"혹시 10일만 살 수 있다면 뭘 할 거야?"



 그리고 그 말에 본즈는 움직이던 손을 완전히 멈추고 커크를 심각하게 바라보았어. 곧 그는 주머니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트라이코더를 꺼내 그에게 가져다 대었지.



"나참, 본즈! 그냥 물어본 거야."


"젠장! 그런걸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건데?!"



 커크는 왈칵 화를 내는 그에게 대충 웃어보였어.



"바로 내일이라도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낸다고 하는..., 그런 글귀를 읽어서."



 본즈는 한참이나 커크의 분위기를 살피고는 다시 식사를 이어갔어. 대충 둘러낸 변명이 잘 통했나봐. 뭐, 다시 생각해보니 변명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본즈, 본즈! 그래서 넌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거야?"


"좀! 죽는다는 소리 좀 그만할래? 나는 여느 때처럼 다친 크루들을 돌보겠지 뭘 하겠어?"


"엑, 진심이야?"


"난 지금 우주선에 있거든요, 함장님? 내가 갑자기 내일 그렇게 된데도 당장 오늘 우주에 있는 내가 뭘할 수 있겠어. 평소처럼 내 업무를 하는게 최선이겠지 이 망할 꼬맹아. 이제 내가 식사하는 데 집중하게 해줄래? 망할 네 말 때문에 다시 한번 내가 이 망할 우주에 있다는 걸 상기했잖아!"



 커크는 본즈가 댐잇! 하며 던진 포크를 피해 식당에서 도망쳤어. 함교로 향하는 길에서 커크는 곰곰이 생각했어. 그래, 남은 10일동안 본연의 일을 하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제 10일이 나머지 전체의 대원들의 몫숨보다 값지지는 않을텐테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챙기려고 했는지. 커크는 브릿지 대원들의 각기 다른 붉은 숫자를 보면서 작게 웃었어.









 그래도 역시 일만 하다가 죽는 건 조금 슬프지? 커크는 완료 글자가 뜬 패드를 스팍에게 건네주려다가 패드를 물렸어. 빈 손을 허공에 쥔 스팍이 눈썹을 잔뜩 추켜세웠어. 커크는 키득거리다가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어.



"스팍! 내일 죽는 다면 오늘 뭘 할거야?"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군요."


"알찬 하루 보내기 프로젝트 중이야. 스파아악,  그래서 네 대답은?"


"전 하루하루를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완전히 이행하면서 삽니다. 애초에 알찬 하루를 보내려면 그러한 가정없이 계획을 빠듯이 세우고-"


"잠깐, 잠깐! ...... 벌칸한테 이런 질문은 참 의미가 없었다는 걸 까먹었어. 술루 너는?"



 갑자기 제게 온 질문에 술루가 당황해하다가 대답했어.



"글쎄요. 진부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다고 하겠지만. 함장님께선 아마도 엔터프라이즈에서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 같으니, ....함ㅈ....아니, 온실에 아껴두었던 과일을 모두다 먹어버리기, 겠죠? 아 그렇다고 함장님이 그걸 드시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술루는 활짝 웃다가 급 시무룩한 얼굴을 하는 커크를 무시하고 옆에 있는 체콥을 바라봤어.



"에..엣! 쩌...쩌는!"



 아무말도 못 하고 얼굴을 잔뜩 붉히는 체콥에 그 자리에 있던 스팍을 제외한 모두가 그 귀여운 항법사에게 미소를 지었어.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안도리안 대원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을 상상했을 게 뻔했지. 커크는 쿡쿡 웃으며 기여코 나머지 대원들까지의 대답을 모두 듣다가 스팍의 질책어린 눈빛에 결국 자리에 앉아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어.



 10일이라는 날짜는 길기도 했고 짧기도 했어. 크루들과의 술자리, 우후라와 캐롤과의 파자마파티, 스팍과의 체스 등등. 평소와도 같으면서도 마지막이라고 느끼니깐 조금더 색다르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한 나날들이 지나니 금세 당일에 다다랐어.











 탐사 미션이야. 커크는 조금 체념하고 탐사복을 입었어. 유서장은 어제 밤에 갱신했으니 자신의 죽음 후에 별 문제점은 없을 거야. 그런데 전송실에 도착하면서 계기판 앞에 앉아있는 스코티를 보니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어.



 죽고 싶지 않아. 솔직히 저기 있는 원형의 판이 마치 사형대처럼 보였어. 계기판 앞에 있는 투명한 보호판에 비치는 제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10분도 안 남은 채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고, 그 숫자들이 자신의 목을 열실히 조여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 커크는 순간 뒷걸음치고 말았어. 심장을 감싸쥐는 차갑운 기운을 느꼈거든. 그 방사능 구역에서 숨이 멎기 전에 느꼈던, 그 두려웠던 아득한 무엇인가를 말이야.



 제 상태를 눈치챈건지 스코티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뚝을 살살 흔들었어. 커크는 투명판에 반사된 제 것과 스코티의 것을 번갈아 보았어. 혹시.... 혹시 자신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아마도 사신이 도와주는 것일까? 커크는 이제 초단 위로 줄어드는 그것을 보고 눈을 꾹 감았어. 솔직히 자신은....






 뎅- 하는 소리, 그리고 차라락하는 되감기는 소리. 커크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살며시 눈을 떴어. 그리고 보이는 것에 그는 안 돼! 라는 비명어린 고함을 지르고는 그대로 힘이풀린 다리에 무릎을 꿇어버렸어. 스코티의 머리 위에 숫자가 변해있었거든.



 표준 지구 시간으로 치환하면, 210시간. 약 9일 이라는 날짜로 말이야.













 커크는 그동안 엔터프라이즈호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을 기적적으로 포착하고는 막아냈어. 외계인의 공격을 예상하고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학부의 끔찍한 실수로 생화학 물질이 퍼지려는 것을 막은 것, 스코티도 잡아내지 못한 생명 유지 장치의 미약한 오류 같은 것들을 잡아내는 것 등이 다섯번을 넘자 스팍은 기여코 인간, 특히 커크의 육감에 대해 연구한다며 그의 생활 패턴이나 뇌신경의 움직임을 꼬박고박 검사하기에 이르렀어. 커크는 그런 스팍에게 피곤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지.



 물론 커크가 제 상태, 그러니까 크루와 자신을 무조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기이한 상황을 알릴려고 노력을 안 한건 아니야. 하지만 붉은 숫자에 대해 알리려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저지하는 것처럼 관련 단어를 말할 수도, 쓸 수도 없었어. 단순히 그것, 저것으로만 겨우 지칭할 수 있었지. 꼬마 아이가 길을 찾기위해 흘린 빵부스러기도 이것보다는 허접하지 않을 거야. 물론 이걸 보고 다른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눈치채는 것은 가당치도 않지.










 오늘도 대원들의 죽음을 막았어. 그리고 그 순간부터 바뀐, 제 머리 위에 뜬 것은 또다른 죽음의 기회가 이틀 남았다고 알려와. 커크는 처음 숫자가 보인 후 크루와 자신의 죽음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려 했고 세 번의 싸이클이 지나면서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어. 크루들의 죽음의 선고가 처음 시작될 때 10일, 그것을 막아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10일. 자신이 죽지 않으면 다시 대원들에게 9일, 또 막아내면 그에게 돌아오는 9일. 8일, 8일. 7일, 7일...... 그리고 오늘 2일, 2일. 이번 자신의 이틀이 지나면 크루들에게 단 하루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을거야. 결국 커크는 처음 그 숫자가 보였던 그날처럼 바닥에서 펑펑 울고 말았어.














 왼쪽에 본즈, 오른쪽에는 스팍. 앞에는 오랜만에 기관실에서 벗어난 스코티와 술루, 우후라, 체콥, 캐롤이 한 테이블에 가득 앉아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어. 각자들 수다를 떠느라 바쁜 사이로 커크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어. 그러자 옆에 있던 본즈가 툭하니 건드리면서 식판으로 손짓을 해. 커크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패드의 시간을 확인했어. 이번 30분동안 자신을 죽일 만한 가능성 있는 게..., 이번에는 저녁식사인가? 매번 제 시간의 끝자락에 닿으면 기묘한 감각이 다가와. 차가운 손아귀가 향하는 것을 보면 자동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이르게 할 것임을 느끼곤 해. 첫번째의 전송장치라던가, 두번째의 스팍과 함께 타려던 터보리던 그런 순간들이 말이야. 물론 본즈와 술자리를 가지려다가 제 앞에 놓였었던 술잔도 빠트릴 수 없었지. 



 커크는 매 그 순간마다 조금씩 조여오는 붉은 올가미에 두려움에 떨었어. 물론 무던히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야. 하지만 그 순간마다 옆에 누군가가 있었고, 상대방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행동에 자신이 어처구니없게 죽어버린 뒤 혹시나 그가 죄책감을 가질까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어. 



 아니, 그건 변명일 뿐, 자신은 그저 살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렇게 밥먹으라고 해도 패드만 힐끗 보더니 손도 안 대는 커크에 맥코이는 기꺼히 친절을 베풀기로 했어. 식판에 놓여 있는 커크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모든 재료를 제외하고 양념이 된 닭고기를 포크로 찍어 커크의 입가로 내밀었지. 커크는 그것을 보고는 흠칫하며 고개를 뒤로 뺐어. 평소에는 이렇게 해달라며 닭살스럽게 치대더니 웬일이래. 본즈가 더 팔을 내밀었지만 커크는 아예 입을 손으로 막고는 고개를 저었어. 본즈가 커크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어. 커크는 다시 한번 패드를 흘겨볼 뿐이었지.



"무슨 장난 중일까....."



 본즈가 조금 화난 어조로 말하자 커크가 아니라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어. 하지만 그 입을 막고 있는 손은 그대로였지. 본즈는 여전히 포크를 내밀고, 커크는 의미 모를 거부의 몸짓을 하고 있었지. 둘의 기이한 대치에 테이블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차근차근 집중되기 시작해. 그때 커크가 갑자기 울멍거리는 눈빛을 띄었어.



"짐...?"



 본즈는 커크가 이상한 떼를 부리는 것이 아닌 걸 깨닫고 손을 내리는 순간 커크는 패드를 챙기고 부리나케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 테이블에 있던 이들은 당황스럽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 본즈는 식당 입구를 한 번, 아직 손에 쥐어진 포크를 한 번, 다시 입구를 또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포크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그는 스코티에게 정리를 부탁하고는 자리를 박차 달려갔어.









"짐?"



 짐의 쿼터는 잠겨있지 않았어. 맥코이는 자동으로 열리는 문에 조심히 들어갔어. 불도 켜있지 않은 그곳에 문이 닫히자 어둠이 방안을 채웠어. 희미한 별빛만이 그곳을 비추고 있어서 그가 불을 켜달라고 컴퓨터에 명령하려고 할 때, 아주 가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어. 맥코이는 바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는 침대로 달려갔지. 그곳에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는 한 인영이 있었어. 맥코이는 조심히 이불을 걷어 냈어. 짐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초라하게 앉아 있었어. 맥코이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들게 했지만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는 그는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만 있었어.



"짐..지미? 나 좀 볼래?"


"싫어...흐윽..."


"알았어. 쉬이... 난 그저 네 상태를 확인하려고 한거야."


"아..아니...히끅"


"응?"


"네가 시...싫단 얘기가 아니고....흐으..으으어엉"



 커크는 그 말만을 내뱉고는 서럽게 울었어. 24시간. 커크는 식당에서 보았던 모든 이들의 머리 위의 숫자가 변하며 보여준 그 끔찍한 것에 견딜 수가 없어 도망친 것이었어. 제가 지금까지 죽지 않아서 결국 그들의 삶이 채 24시간도 안 남게 되었지. 본즈가 제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저를 안아주고는 있었지만 커크는 미안함에 제 속을 토해내는 듯이 오열했어.








 얼마를 그렇게 울었을까. 커크는 본즈를 거의 쫓아내듯 내보내고 쿼터에 함장 최고 권한으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어. 커크는 패드에 도착하는 그들의 걱정어린 메시지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뜬 눈으로 그날 밤을 지새웠어.




 







 오늘 만큼은 더욱 쉬고 싶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알고..., 결국 커크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 뒤 지휘부 옷을 꿰입고 쿼터를 나섰어.



"깹틴....온 더 브릿...지?"


"좋은 아침이야."



 물론 의례적인 말이었고, 자신의 말을 들은 그들도 제 말이 그저 뱉은 것임을 안다는 듯 한 어두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어. 커크가 자리에 앉아서 오늘 처리할 서류를 살펴보고 있으니 여러 명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져. 그래도 고개를 들지 않고 패드만 묵묵히 보고만 있자 뒤에서 스팍이 다가왔어.



"함장님."


"미스터 스팍."



 커크가 나름 태연하게 대답하자 스팍이 조금 눈썹을 찌푸렸어. 이런, 저 눈썹 모양은 화가 났다는 표시인데. 커크가 그의 눈빛을 살금살금 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터보리프트가 열리며 바닥을 뚫을 것 같은 발구름 소리가 들려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스팍과 비교할 수도 없이 몹시 화나 보이는 본즈야.



"함.장.님."


"...보..본즈...?"


"CMO의 권한으로 오늘 하루만큼은 함장님의 업무를 모두 취소하고 메디베이에 입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뭐어?"


"중령, 함장님을 들고 메디베이로."


 

 본즈의 엄한 목소리에 스팍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커크를 들쳐 업었어. 커크는 격하게 반항했어. 당장 오늘 또다른 위험이 닥칠 거야.  그리고 메디베이에 있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지. 커크는 내려달라며 고함을 지르면서 스팍의 등을 마구 쳤어. 그 순간 그는 어깨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 되었어.










"...망할.....지금..몇시야..."


"일어나셨습니까?"



 커크는 흐릿한 눈을 비비다가 스팍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숫자에 몸을 급하게 일으켰어. 무작정 일어난 터라 이불에 엉켜 발버둥 치는 몸을 스팍이 진정시켰어. 커크는 씩씩대며 자리에 앉고는 스팍이 쥐고 있는 패드를 낚아챘어.



"젠장, 스팍!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지?"


"...."


"스팍!"


"함장님. 지금의 당신은 온전히 논리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라고 판단됩니다만."


"그건 네가 판단하는 게 아니야."


"닥터 맥코이가 진단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다 흥분, 불안 증세, 신경 과민는 최소 이틀 이상의 완전한 휴식을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스팍.... 명령...., 아니 부탁이야. 그... 경고등이 울렸다고.."


"최근에 급증한 알파급 사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당신의 그 능력은-"


"스팍.. 이번이 마지막이야. 정말로."


"알파급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당신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푸흐... 그렇지?"


"네. 그러니 당신은 그저 쉬는 게 논리적입니다."


"....스팍.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쪽 항성계에 진입한다고?"



 커크는 막 일어나려는 스팍에게 패드에 뜬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일지를 띄웠어. 스팍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지.



"....1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곳에 들어가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1시간이라는 시간을 정하신 이유를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커크는 스팍에게 패드를 건네면서 그의 눈을 마주보았어. 커크는 그 담갈색의 순한 눈동자를 오랫동안 눈에 담았고.



"......내일 알 수 있을 거야."



 커크는 눈을 파르르 감으면서 조그맣게 대답했어.












 커크는 차근차근 줄어가는 머리 위의 숫자를 바라보았어. 아마 자신의 숫자 끝으로 다음의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커크는 정말로,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것에 이제야 초탈한 것 같다고 느꼈어. 지금까지 구질구질하게 명을 이어오는 것도 그만 둘 때가 된 거지. 커크는 패드를 내려 놓고 제게 수면제를 주입하기 위해 온 본즈를 반갑게 맞이했어.



 본인의 삶이 12시간 남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커크는 메디베이의 침대에 일어나면서 생각했어. 9번의 부인, 9번의 분노, 9번의 타협, 9번의 우울, 9번의 수용의 단계를 매번 거쳐 왔지만 막상 정말로 죽음에 받아들이는 순간 편안함이 그를 감싸왔어. 커크는 잠시 실소하곤 남은 12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기로 마음먹었어.



 커크는 메디베이에서 밤을 새운 본즈와 아침을 함께 했어. 평소보다 아주 느린 식사였지만 본즈는 커크가 우선 거부감 없이 밥을 먹는 다는 것에 만족한 듯 했어. 본즈는 함교에 출근한다는 것에 기함을 했지만 딱 오전 업무만 본다는 것으로 겨우 타협했어.



 커크는 체콥의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브릿지에 올랐어. 어제의 그 난리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걱정어린 말을 던졌지만 여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커크의 모습에 걱정을 무르고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어. 물론 커크의 옆에서 오전 업무가 끝날 때까지 서있던 스팍 덕분에 혹시 모를 사단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지도 않은 거지만 말이야.



 커크는 스팍과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체스를 두었어. 연속으로 3판을 이긴 터라 스팍을 잔뜩 놀렸는데 그의 귀 끝이 약간 초록색으로 변하더라고. 커크는 그것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만, 스팍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오후 업무를 본다며 브릿지로 재빨리 가버렸어. 커크는 푸스스 웃으며 지금 어디냐고 패드 메시지로 닦달하는 본즈에게 기관실에 간다고 한 뒤 스코티의 뒷 모습까지 찍어 그에게 보내고 나서야 그의 잔소리에서 벗어 날 수 있었어.



 커크는 스코티와 킨저와의 느긋한 홍차 타임을 가졌어. 커크는 더 이상 이 향긋한 차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워 스코티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몇 번이고 그것들을 마셨어.



 커크는 술루의 온실에서 따뜻한 햇볕을 느끼다가 잠들 뻔 한 것을 겨우 일어나서 흙을 털고 밖으로 나갔어. 이번에는 그의 과일에 손대지 않았어. 매번 마지막 날이라고 과일을 하나씩 훔쳐 먹었으니깐 말이야. 미련없이 그곳을 나온 그는 제 쿼터에 가, 술병을 가지고 체콥의 라커룸을 따서 그 안에 넣었어. 매번 넣었다가 다시 도로 꺼냈었는데, 매번 그의 술을 훔쳐 먹는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의미의 선물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전달 될 거야.















 커크는 쿼터에 들어갔어. 방의 출입 권한을 함장 단계로 올린 그는 본즈에게 우선 쿼터에서 쉰다는 메시지를 보냈어. 그리고 2시간 뒤 이곳에 와 달라는 예약 메시지를 걸어두었어. 스팍에게도 같은 것을 달았어. 그리고 몇 가지의 설정을 변경하고 그 코드를 둘에게 예약 메시지가 자신의 그 시간에 도착하도록 조정했어.



 딱 한시간 동안 느긋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어. 따뜻한 물에 녹진녹진 하게 풀린 몸에 잠이 쏟아졌지만 꾹 참고 패드를 켰어. 그는 마지막 일기를 녹음했다가 아예 그 기간동안의 일기를 싹 다 삭제해버렸어. 패드의 용량에 비하면 아주 극소량의 데이터일 뿐인데 순간 기기 자체가 반토막이 나는 듯이 기이하게 텅비어버린 것 같았어. 커크는 그런 패드를 잠시 만지작 거리다가가 유언장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자신의 뜬금없는 죽음에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편지를 남기기로 했어. 뭐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어, 그저 절대로 너희들에게 어떠한 잘못도 있지 않고, 자신은 그저 죽어야 할 때가 와서 죽는 것이니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모두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썼어. 아무리 봐도 조금 꺼림칙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고쳐봤자 더욱 이상해지는 문장에 결국 처음에 썼던 것 그대로 저장했어.



 30분 남았어. 이제 이곳에 있는 어떠한 것이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게 될 거야. 커크는 천천히 둘러보다가 눈에 닿는 그것에 잠시 실소했어. 마지막이라고 너무 티내네. 커크는 그렇게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작은 커터칼을 손에 쥐었어. 방 안에 비상용으로 있는 페이저를 흘깃 본 커크는 그저 자신이 편안하고 깔끔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만이 아쉬었어.



 그래도 오늘은 확실하게 스팍이 과학부서에서 추가 근무를 해서 본인의 쿼터에 없을테니 샤워실의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 할거야. 욕조에 따뜻한 물이 채워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커크는 수면제를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었어. 순간 술을 체콥에게 준 게 아쉬었지만 대신 물을 마셔서 그것들을 삼켰어.



 욕조를 가득 타고 흘러내리는 물에 커크는 그대로 욕조에 몸을 담갔어.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 불편하게 달라붙은 옷을 조금 떼어냈어. 그래도 수면제의 효과가 살금살금 드는지 몽롱하게 잠이 드는 것에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커터칼을 물속으로 담금질했어. 커크는 차칵차칵하며 줄어드는 초침소리를 생각하며 숨을 잠시 참고 손목을 그었어. 다행이 약효 때문인지 잠시 따끔하고 말았던 거 같아. 커크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욕조에 몸을 더욱 깊이 담갔어. 어지러운 시야가 수면제 때문인지, 욕조 물을 붉게 물들이는 제 피 때문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어. 커크는 익숙하게 들리는 낮은 종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무의식으로 정신을 놓았어.



















"스팍?"


"닥터 맥코이."



 맥코이는 짐의 쿼터 앞에서 마주친 스팍에게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어. 스팍은 그의 어조가 어떻든 고개만 까닥였고. 맥코이는 그런 저 벌칸에 짜증이 몰려왔지만 성질을 내리누르고 커크의 쿼터의 벨을 눌렀어.



"함장님이 닥터도 부르셨습니까?"


"응? 너도?"


 

 맥코이는 스팍을 한 번 흘겨보고는 대답 없는 커크에 문을 두드렸어. 그래도 반응 없는 것에 맥코이는 이 자식이 사람을 부르고 쳐 자나 싶어 패드로 통신을 넣기 위해 패드를 들었는데 마침 커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어. 옆에서도 동시에 알람음이 울리는 걸 보아 스팍에게도 같이 보냈나봐. 혹시 자신이 다른 곳에 있다고, 그 곳으로 오라고 보낸 메시지는 아니겠지 하고 조금 화난 채 확인버튼을 눌렀다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스팍을 올려다 보았어.



".....왜 지미가 자신만 알고 있어야하는 함장 최고 권한 암호를 패드에 보낸거야....?"



 스팍은 대답도 하지 않고 서둘러 잠금 패드에 손을 올렸고, 곧바로 컴퓨터가 함장 권한으로 쿼터가 폐쇄되었다고 알려와. 맥코이의 심장이 차츰 두근 거리기 시작했어. 스팍이 딱딱한 목소리로 암호를 외었고 문은 암호를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주었어. 그 둘은 방안으로 달려갔고 불이 꺼진 채 정적이 흐르는 방 외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샤워실의 문을 벌컥 열었어. 그리고 밖으로 쏟아지는 습한 공기 사이로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 그것을 맡은 맥코이는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뛰쳐 들어갔어. 맥코이는 붉은 욕조에 잠긴 창백한 커크를 보고는 그를 황급히 꺼냈어. 입에서 계속 안 돼... 안 돼...! 하는 신음같은 울음이 터져나왔어. 아직도 피가 새어나오는 손목을 부여 잡고 사태를 파악하지도 못 한 듯한 스팍에게 고함을 질렀어.



"당장!!! 그를 메디베이로!!!!!"



 커크를 짊어지고 밖으로 달려가는 스팍을 보며 맥코이는 샤워실에서 비틀거리며 빠져나왔어. 바닥에 쓰러지듯 제가 떨어트린 패드를 잡은 그는 메디베이를 호출해 당장 커크의 혈액형과 같은 수혈팩을 잔뜩 준비하라고 소리쳤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쿼터에서 나오니 갑작스런 소란에 밖으로 나온 몇 명의 크루들이 그에게 다가왔어. 맥코이는 우선 문을 잠갔어. 그리고 제 바로 옆에 선 그에게 자신 좀 부축해서 메디베이로 데리고 가 달라고 했어.








 메디베이에 도착하자 마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아. 맥코이는 저를 부축해 주던 이를 밀어내고는 짐이 누워있는 침대로 달려갔어. 이미 심정지 상태에 맥박과 호흡도 잡히지 않았어. 그래도 간호사들을 헤치고 온 맥코이는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내렸어. 제세동기를 작동하고 수혈된 피를 억지로라도 그의 몸 안에 돌게했어.















"......"


"......"


 맥코이와 스팍은 멍하니 커크가 누워있는 침대를 바라보았어. 약한 바이탈을 잡아내었지만 기계로 억지로 붙잡고 있는 수준이었어. 시계를 확인해보니 쿼터에서 나온지 3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둘 모두 그 짧은 순간에 진이 몽땅 빠져버려서 입을 다물고 있었어. 한참을 그 사라질 듯한 희미한 사인만 보던 스팍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를 흘깃 본 맥코이도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어.



 장교 쿼터 층이어서 그런지 일반 대원들처럼 방금의 사태에 대해서, 철없이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이들은 없었어. 그들은 그저 불안한 눈으로 막 도착한 부함장과 CMO를 바라보기만 했지. 스팍은 우선 그들을 방안으로 들어가게 했어. 복도에 나와있던 이들이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둘은 잠겨있는 커크의 쿼터로 들어갔어.



  샤워실은 김이 모두 빠져나가 그 안이 휜히 보였어. 다행히 물이 계속 틀어져 있어서 처음 볼 때보단 옅은 핑그빛의 물 웅덩이었지만, 역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 맥코이는 아직도 맡아지는 듯한 비린내에 숨을 멈췄어. 이번만큼 후각이 무딘 벌컨이 부러울 수가 없었어. 샤워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만 서성이는 맥코이 대신 스팍이 그 안에 들어가 물을 잠갔어. 갑작스러운 적막에 스팍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소리만 들려왔지. 곧 스팍이 맨 손을 욕조에 집어넣고는 날이 빠져나와 있는 커터칼을 빼냈어. 세면대에 그것을 조심히 둔 그는 욕조 안과 그 주변을 꼼꼼히 살피더니 마개를 열어 핏물을 흘려 보냈어.



 맥코이는 개켜져 있는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어. 그리고 협탁 위에서 반짝이는 커크의 패드를 확인할 수 있었지. 아무런 잠금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것을 열어보니 짤막한 몇 줄의 문장이 바로 떴어. 5번을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나서 샤워실을 다 정리하고 나온 스팍에게 그것을 건네주었어. 맥코이는 자꾸만 비죽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어.



".....정황상 틀림없군요."


"..아니.., 어째서.."


"자살 충동은.... 당사자가 처한 상황 기타 우울 척도에 따라 극명하게 다르긴 하나 최근의 함장님의 상태를 되돌아 보면."


"애가 요즘들어 조울증이 온 것 마냥 행동하긴 했는데, 그래도......"


"닥터의 생각보다 자신을 감추는 것에 더욱 능숙하셨을지도요."


"아니! 정말로 상태가 안 좋았으면 오늘 오전 업무조차 허락 안 했다고! 신체적으로! 검사결과가! 나왔었는데....! 왜!!"


"....."


"후우우....짐, 왜..."



 머리를 감싸쥔 채 신음하는 맥코이를 내러다보며 스팍은 그때를 떠올렸어. 절대로 넘을 수 없었던 그 유리벽. 붉게 충혈된 채 잔뜩 일렁이던 그 눈빛. 두렵다고 말하던 그의....



"왜 페이저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너 지금. 뭐라고....했냐?"


"냉철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닥터 맥코이. 왜 굳이 손목을 긋는 방법으로 죽으려고 했을까요."


"....저번에 한 크루가 술에 취해 쿼터에 상비된 비상용 페이저를 마구 쏘아댄 이후로, 페이저 잠금 장치가 해제되면 자동으로 보안부에 알림이 가게 되었으니까...?"


"보안 크루가 이곳에 오기 까지는 최소 2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희에게는 이곳에 찾아오라고 메시지를 보냈으면서, 보안 크루가 올까봐 페이저를 포기하다니요?"


"그건..."


"짐은 죽음을 두려워 했습니다. 칸의 사건 때 피복되던 그 순간,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털어놓았습니다. 한차례 그것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처럼 자신의 죽어감을 느낄 방법을 택하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논리고 뭐고 정말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전 짐이 정말로 죽고 싶어서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다음날 주요 업무는 올 스탑되었어. 회의실에 모인 장교들은 어제 밤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함장의 자살 시도 소식에 정확한 내용을 알기 전까지 발만 동동 굴렀어. 아침 업무가 시작되자 바로 회의실로 모이라는 스팍의 전언에 부리나케 그곳으로 다들 모였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웅성이던 그들을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스팍과 초췌한 얼굴의 맥코이를 보고 입을 다물었어. 특히 맥코이의 얼굴을 보고 다들 불안에 떨었어. 그 얼굴은 아이스 튜브에 죽은 함장을 밀어넣고 밤을 새워 칸의 혈청을 연구할 때 보였던 끔찍한 그것과 똑같았거든.



 함장석을 비우고 그옆에 스팍과 맥코이가 앉자마자 체콥이 함장의 상태를 물었어. 보통 질문을 한다면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잔뜩 울먹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 누가 쓴소리를 할 수 있겠어. 맥코이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대답했어.



"함장님은 우선... 살아는 있다."



 살아는 있다라니. 장황히 말하지 알아도 순식간의 그의 상태를 파악한 체콥이 더욱 울망거렸어. 옆에 있던 우후라가 불쌍할 정도로 몸을 떠는 그를 달래주었지. 사실 우후라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어. 요즘 엔터프라이즈에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커크가 그것들을 잘 수습하고는 했지만 그래도 큰 일은 큰일이라서 그가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알았는데 그래도....., 우후라는 남겨진 자들의 한결 같은 변명인, 그가 그런 결정은 내릴 만큼 힘든 줄은 몰랐어요. 와 똑같이 생각하는 자신에 작게 욕설을 내뱉었어. 제 앞에서 커크가 발견된 일을 무뚝뚝하거 말하는 스팍에게도 같은 욕을 하고 싶었지만, 임시 함장자리를 술루에게 맡긴다하고 회의실을 나가버린 그의 모습에 다급히 그를 쫓았어.



"스팍!"


"니요타."


"... 당신 뭔가 다른 걸 알고 있죠?"



 우후라는 그래도 스팍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의 굳은 얼굴이 특유의 벌칸의 것이 아니라 반쪽 인간의 것을 나타내는 것을 알았고, 지금 그 감정은 단순히 슬픔만이 있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챈거지. 진지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는 그녀를 한참을 바라본 스팍은 빈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어.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스팍은 우후라의 얼굴에 손을 올렸어. 그것의 의미를 알아챈 그녀가 엄청나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그에 날카롭게 그의 손을 쳐냈어.



"도대체!"


"용서를 구하기전에 방금전의 행동은 혹시 모를 당신의 거짓말을 구분하기 위해 한 것뿐임을 알립니다."


"...거짓말이요?"



 스팍은 말없이 손을 올렸어. 우후라는 그의 표정을 읽고는 그의 손에 얼굴을 내밀었어.



"니요타 우후라. 당신의 제임스 커크가 자살을 하도록 의도하여 행동했거나, 부추긴 적이 있습니까?"


"무슨?!! 세상에, 절대 아니죠! 도대체가!!"


"마음대로 당신의 마음을 읽어서 죄송했습니다, 니요타."


"....방금 질문은... 짐이.. 그냥 자살 시도를 한게..."



 스팍은 그녀의 말에 긍정은 하지 않고 그저 어제 느꼈던 자신의 의문점을 말했어. 우후라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지.



"하지만 사실... 어제의 그의 모습에서 전형적으로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이 몇 개 있었던 것 같은걸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제 직접 본 모습과 몇 명이 말하는 것을 정리하면. 그 전날만 해도 불안 증세를 보이던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된듯이 태평하게 있던 것이요. 또한 메디베이에서 기어코 나와서 했던 오전 업무, 그때 그는 함장으로서 승인이 필요한 업무만을 골라서 했어요. 평소 싫다고 미루던 것을 모두 해치웠죠. 그리고.... 체콥이 오늘 아침 자신의 라커에서 짐의 고급 양주를 발견했다고 해요. 어떤 쪽지라도 남겨져 있던 아니었지만 체콥은 전에 그의 쿼터에 방문해서 보았던 것과 같은 양주라고 말했어요."


"소위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있었군요."


"그러니 그의...행동은 적어도 전날부터 계획했던.... 후우..스팍 제가 뭐라도 도와줄 수 없나요?"


"저는 우선 삭제된 그의 개인 일지를 복구해 볼 생각입니다."


"그건 제가 전문이죠."


 

 문은 열고 들어온 건 어두운 얼굴의 스코티와 훌쩍훌쩍 울고 있는 체콥이야. 당황한 그들에게 스코티는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잠갔어.



"부함장님, 저도 짐이 방사능실에 있었을 때 있었던 사람이에요. 절대로 그의 ...그 시도가 단순히 일어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요."


"끄흑..! 쩌도 도울... 쑤 있는게... 흥!... 개인 일기 로그라면... 딸꾹! 복구할 수.. 복구.. 해내겠씁니다!"



 스코티와 체콥은 스팍의 약한 마인드 멜드로 그들이 진심으로 커크를 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했어. 커크가 그렇게 된 게 어떤 이유에서부터 시작 된 것인지 모르니 최대한 밖에 알리려고는 하지 않았어. 그래도 함장을 맡은 술루에게는 이야기 해야 했어. 스팍이 커크가 저렇게 된 지금 당연히 맡아야 할 함장직을 내팽겨두고 무슨 딴 짓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했거든. 다행스럽게도 술루는 믿음직스럽게 제가 완벽히 통솔하고 있을 테니 커크를 위해서 힘써 달라고 스팍에게 말했어.














 스코티는 바로 커크의 일기가 삭제된 약 100일 분량에 해당하는 감시카메라 기록을 보내주었어. 커크가 이동하는 경로만 골라냈음에도 가히 어마어마한 양이었지. 커크는 알파시프트를 하는 것 외에도 거진 하루를 계속 엔터프라이즈호를 쏘다니는 데 보냈거든. 그래서 로그까지 말끔히 삭제된 커크의 일기를 복구하느라 바쁜 체콥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영상들을 분배해서 빠르게 돌려보았어.



 그가 만나는 사람은 많았고, 그들에게 반응하는 그의 행동들은 다양했지만, 영상을 보던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어. 커크가 대원들을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는 거였지. 분위기를 말하는 건 아니야. 정말로 말 그대로 크루들을 볼 때, 시선을 맞추다가 상대방이 등을 돌리면 그들의 머리 위로 꼭 한번쯤 시선을 둔다는 거였어. 혼자있을 땐 더 심했지. 그는 복도에 있는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머리 위쪽을 더듬곤 했어. 이때까지 커크에게 그러한 버릇은 없었기에, 그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어.



 커크의 행동 패턴이 일정하게 예민해졌다가 풀어지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을 확신했을 쯤 체콥이 커크의 일지를 복구해 내었어. 시작일 부근에의 대부분의 파일이 깨졌지만, 완전히 삭제되었다고 생각한 그것을 이만큼이라도 복구할 수 있다는게 다행이었지.



 누가 일기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선 그자리에 있던 그들은 스팍을 바라보았어. 그가 커크와 아주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고, 그만이 냉정하게 문제점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으니깐. 그들의 말을 듣던 스팍은 감정적으로 썼을 것이 다분한 그것을 자신이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라 하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맥코이를 언급했어. 그의 말에 그들은 잠시 침을 삼켰어.



 지금의 맥코이의 상태는 칸의 혈청의 부작용으로 커크가 2주동안 사경을 헤매는 것을 지켜보던 그때와 같으면 같았지 덜하지는 않았거든. 안광을 시퍼렇게 띄우고 커크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있는 그에게 커크의 일기를 보게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하는데, 이미 벌칸은 맥코이를 부른 뒤였지.



 맥코이는 바로 와주었어. 스팍은 그에게 아무말도 없이 패드를 통해 복구된 일지를 보내주었지. 도착한 패드를 한번 확인한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 가지고 왔던 메디컬 케이스를 열었어. 비타민을 포함한 각종 체력 보충제 하이포를 놓은 그는 짤막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어. 스코티는 툴툴거리며 하이포 놓아줘서 고맙다고 그가 있었던 자리를 향해 말했을 뿐이었어.











 다음날 맥코이는 자신의 쿼터로 그들을 불러내었어. 조금 시간을 낸 술루까지 온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본론을 말했어.



"짐은.... 아마도 자살하려고 했던 게 맞는 거 같아."


"헙."



 체콥이 입을 막았어. 화등잔만 하게 눈만 뜨고있는 그 대신에 스코티가 테이블을 쾅 내리쳤어.



"의사 양반.... 확실합니까..?"



 맥코이는 아무 말 없이 패드를 들어올려 정리 했던 일지를 재생했어. 바로 커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231. -도대체 어째서? 왜 나만, 그것이?-

 232. -전부다 같아, 나만 빼고...... 내가 막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238. -.....무서워.-

 239. -이제 나야?-

 240. -인생 별거 없지 뭐. 이렇게 죽는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라. 적어도 크루들의 몫숨을 살려냈잖아.-

 248. -다시 시작되었어....젠장!!!

 256. -... 패턴이.-

 281. -거울 속에 비친 그것이 너무 끔찍해서 거울을 깨부숴 버렸어. 발을 헛디뎌서 거울을 주먹으로 깨트렸다는 변명이 스팍에게 잘 먹혔는지 모르겠어. 하하.-

 282. -귀라도 멀어버렸으면 좋겠어. 망할 그 소리는 너무 소름끼쳐.-

 300. -내가 알파급 사태를 5번이나 막아내자 스팍이 나를 검사하기 시작했어. 솔직히 이건 검사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어서 아쉬워...-

 316. -사신이 손길이 닿아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 이번엔 본즈가 준 술에서 그걸 느꼈는데, 그게 독배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런데 그걸 마실 수 있을리가 없잖아. 본즈한테 못 할 짓이야.-

 317. -크루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죽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

 321. -이틀과 이틀. 하루 그리고 마지막 하루...., 하아.... 유언장을 지금까지 계속 수정해왔는데, 볼때마다 너무 힘들어.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데 시시각각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야....-

 324. -마지막 일기가 되겠지. 싹 다 삭제할 거면서 또 음성파일을 남기는 것도 미련한 것 같아. 뭐, 오늘 마지막으로 크루들 얼굴을 싹다 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냥 내가 바랬던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퍽 나쁘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 이렇게 말하니깐 또 너무 아쉽네. 본즈, 스팍, 스코티, 우후라, 술루, 체콥, 아, 채플까지. 음.. 킨저도...? 푸흐..., 흐으.. 아, 아! 큼. 마지막이라고 감상에 젖기는.... 그냥 이번에는 최대한 고통이 없을 걸로 선택됐으면 좋겠어.... 솔직히 저번의 터보리프트는 상상만 하는 것만으로도 토할 뻔했거든. 어쨌든 난 쿼터에서 안 나갈 거니깐 이 안에 있는 아무거나 되겠지. 어.... 순간 리플리케이터가 눈에 들어왔는데 저걸로 죽으려면 머리를 찍..... 이런, 자꾸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간다. 뭐, 이제 시간도 빠듯하네.....음.... 모두들 안녕. 커크 아웃.-"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주 비범해서 쪼개긴 몇 문장만으로도 예전에 있었던 일과 결부시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거야. 황망하게 꺼진 패드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맥코이는 말했어. 그들과,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확인 사살을 하기위해서 말이야.



"....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느날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 전체와 그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던 거야.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등차의 사이클을 가지고 있어서, 짐이 크루 전체를 위협하는 알파급 사태를 진정시키면 그 후 자신에게도 죽음의 신호가 왔던거지. 하지만 지금까지 매번 피해왔던 그는.... 결국은 죽기로 선택한 거고....."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차례를 그냥 넘겨버렸으면, 크루들을 살릴 기회조차 오지 않을 걸 알았었군요."


"........."



 스팍이 영상에서 보았던 그의 알 수 없었던 행동들까지 완전히 이해되는 것을 느끼며 말했어. 다른 이들도 죽음 같은 침묵만을 지켰어.



 모두가 쿼터 밖으로 나가고 제 방안을 배회하던 맥코이는 메디베이로 향했어. 그가 깨어나지 않은 지 4일. 기계에 의존해서 겨우 살아있는 커크를 맥코이는 그저 그렇게 계속 바라보기만 했어. 일기는 초반 부분은 거의 삭제되어서 별로 없었지만 중후반부분부터는 완벽히 복원되어서 커크가 그동안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었어.



 누가 의사고, 누가 친구인거야. 그가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몇달사이 자주 피로해하는게 함장의 중압감이 심해져서 그런걸 줄로만 알았지. 그의 긴장을 풀어준다며, 숨겨두웠던 스카치도 나누어주면서 허심탄회 나누고자한 술자리에서도 그렇게만 말했으니. 왠지 얼음이 담긴 잔을 조용히 흔들기만 하는 그가 뭔가를 숨기고는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혼자 이렇게 꾹꾹 묵혀두고 자신의 쿼터에서만 자괴감과 두려움을 털어놓다는게 끔찍할 정도야. 맥코이는 어제 일기를 정리하면서 펑펑 울었을 때처럼 주먹을 세게 틀어쥐었어. 침대에 늘어져있는 커크의 손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그렇게 전체 방송으로 함장의 행적을 읇어주는 스팍의 목소리가 찌르는 듯이 가슴을 파고 든다고 느끼면서, 맥코이는 커크가 저렇게 누워있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그 자리를 빠져나왔어.























"어........"



 커크는 뻑뻑한 눈을 꿈뻑거렸어. 음.. 저기에 보이는 건 수액으로 보이고...., 그게 내 몸으로 들어오고 있네.. 왜지?



"볹ㅡ! 윽!"



 커크는 제 옆에서 야차 같이 서있는 본즈에 깜짝 놀라서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혀를 대차게 씹어서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어. 그리고 보이는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제 팔에 고개를 갸우뚱 했어. 커크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을 때 본즈가 으르렁거리며 씹어 뱉듯이 말했어.



".......죽으려 했는데 멀쩡히 살아있어서 놀랍냐."


"어...?"


"네 일지를 복구해서 다 확인했어. 왜 자꾸....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었어!!!"


"어....어? 잠시만, 본즈?"


"네 그 피웅덩이 속에 있는 널 볼 내 생각은!!! 흐으... 남겨진 대원들 생각은... 안 했어?!! 안 했나고!!!"


"본즈..울어? 어어어, 울지마아아!! 내가 다 잘 못했어!!"


"네 잘못... 없어!! 내가 네 상태도...! 제대로...흑..."


 

 차마 자신을 때리지는 못 하고 침대만 퍽퍽 치면서 우는 본즈에 커크는 입만 뻥끗 거렸어. 그래도 커크는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해해야 했어. 제가 알지 못하는 일로 본즈가 울정도로 화를 내는데 사건의 가닥은 붙잡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저기, 본즈..? 것보다 나 왜 메디베이에 있는거야?"


".....뭐?"



 제 질문에 조금 진정한 듯한 본즈에 커크는 자신이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기억을 털어놨어.



"난 분명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만 있었는데? 그리고 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


"아..혹시 너무 오래 있어서 현기증으로 기절하기라고 했나? 헉. 그럼 혹시 스팍이 나 데리고 왔어? 혹시 알몸인 상태로 무식하게 안고 온 건 아니겠지?"



 맥코이는 또르르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아내고 트라이코더를 가져다 대었어. 뇌에 어떠한 이상은 잡히지 않은데.



"기억..안나...?"


".....음... 무얼?"



거짓말처럼 커크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했어.







 






 상대방의 머리 위를 왜 계속해서 보았냐는 질문에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멋져서 그랬다는 둥, 유언장을 계속해서 수정한 것에 대해서는 그저 수정할 게 자꾸 있어서 그랬다는 둥. 커크는 그의 알지 못할 기이한 능력에 대해서는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고, 관련된 사건은 아주 생뚱 맞는 것으로 이상하게 기억하고 있었어. 그의 일지를 건네주었지만 누가 제 목소리를 변화시켜서 이상한 장난을 쳐놨다고 화를 내기만 했어. 그의 반응을 보니 감시카메라 영상은 보여 줄 필요도 없었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그의 순한 눈빛에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스팍은 맥코이와 눈을 마주쳤어. 맥코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만 저을 뿐이었지. 스팍은 그저 보조의자에 조용히 앉아, 당신과 다시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이상한 말과 함께 그의 손을 세게 붙잡았어. 커크는 스팍의 기준으로 아주, 아아주 친근한 스킨십을 한다는 거에 눈만 뎅그러니 뜰 뿐이었지.










 커크는 함장으로 복귀하기전 술루와 스팍이 남긴 열흘 간의 함장 일지를 차근차근 읽다가 깜짝 놀랐어. 자신이 메디베이에 누워있던 이유를 에매모호하게 넘어가려던 본즈의 얼굴이 떠올랐거든. 스팍의 이상한 행동과 나중에 병문안 온 다른 이들의 걱정했었다는 그 눈빛들도 말이야. 커크는 그들을 걱정시킨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자신에게 타박을 했지만 솔직히 그의 행동 자체는 부정하지는 않았어. 크루의 생명을 살리기 위했던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지금 자신이 또 저러한 상황에 처하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 테니깐 말이야.



 그 이후에는 별거 없었어. 엔터프라이즈호를 책임지고 대원들을 멋지게 지도하는 함장 커크가 다시 돌아온 거지. 물론 자신이 조금 힘들어하거나 우울해하기만 해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옆에서 부둥부둥 아껴주는 모두들 덕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우주 여행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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