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우리 앉았던 평상 옆에 사람이 오가며 삽으로 흙을 퍼 올리고, 괭이로 땅을 고르고 있었다. 

 

 “일어나셨소?”

 

 성주는 가져다 둔 판자 위에 올라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저 미소가 퍽 익숙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인부들 먹으려 가져다 둔 동이 가득한 물을 들여다보던 조왕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에구구, 물이 다시 맑아졌구려.”

 

 조왕이 내내 후후 불어댄 덕에 그랬을 텐데, 저 너스레도 어딘가 빤하다. 

 

 “땅 고르느라 내내 근질거렸구먼.”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는 동안, 내 앞으로 한 인부가 구슬땀 흘리며 걸어갔다. 그 어깨에 이상한 것이 가득 붙어있는 걸 보니, 동란에 미처 떠나지 못한 뜬귀인 듯하다. 슬그머니 다가가 어깨에 얹힌 것을 손으로 털어내자. 그놈이 발악하듯 옆으로 퉁겨나가서는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앉았다. 그때, 옆에 기대어 둔 커다란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기울기 시작했다. 둥치가 훤히 보일 정도인 걸 보니, 죽은 지 한참인 나무다. 요상한 힘이 있어 몇 수 앞을 보게 되는데…. 히죽 웃는 저것을 보아하니, 필시 저놈 짓이렷다. 털어낸 것을 한달음에 잡아다 땅에 내리꽂자 꼭 그 위로 엎어지는 나무. 인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뼘 옆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발로 밀어냈다. 

 

 “이 사람아! 조심해!”

 “아, 예….”

 “에헤이…. 그래도 다들 먹고살겠다고 이런다.”

 

 배때기가 뒤룩뒤룩한 남자가 작은 헝겊을 꺼내 이마의 번질한 기름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인부들을 채근하려 드는 말투보다는 약간의 안타까움이 섞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 어깨에 걸친 때가 쩌든 천 쪼가리와는 다른 천이 남자의 주머니에 꽂히기 때문이었다. 아, 어디서 봤더라? 그래, 꼭 달포 전에 돼지머리 가져다 절하던 이다. 

 

 “식사들 하고 하자고. 응? 참 가져왔으니까…. 들고들 해.”

 

 남자가 가져온 특이하게 생긴 광주리 속에 제멋대로 뭉쳐진 밥이 들어있었다. 꼭 조막만 하게 뭉쳐낸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던 아낙은 허리를 펴고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익숙하다는 듯 엄지손톱만치 떼어내어 내 앞으로 흩뿌리고 속닥였다. 

 

 “고수레!”

 

 아낙을 따라 인부들도 조금씩 떨쳐서는 제 등 뒤로 흩뿌리거나 발치에 떨어뜨리고 따라 했다. 

 

 “고수레!”

 

 나는 발치에 떨어진 밥알을 가만히 주워다 내 뒤편에 모아두고는 귀와 눈을 닫았다. 근처에 굶고 지내는 것들이 몰려와 한 술씩이라도 들 차례였다. 

 

 “어라? 지신이 오시네?”

 

 성주는 대들보 될 것이 분명한 나무에서 손을 떼고는 이마쯤에 손을 가져갔다. 땅이 물결치듯 일렁이는 것을 보아하니, 지신이 속풀이 하러 오는 것이 분명했다. 지신은 산신과 종종 바둑을 두는데, 한 수 앞을 보지 못해 지고 나면 속이 상해 일로 오고는 했다. 내게도 몇 번이고 가르쳐주겠다며 바둑알을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지신이 맨날 지는 것이 분하여 그러는 것 같다.

 

 “애기 터주!”

 

 그리고 지신은 꼭 나를 ‘애기 터주’라 부른다. 내 이미 이만큼 커서 신마저 하는데, 왜 자꾸 ‘애기’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니? 저 치는 여기도 건물을 짓는가?”

 

 흙 날리게 풀썩 앉은 지신은 토실한 손으로 연신 부채질하는 남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자가 여기 말고 또 건물을 짓소?”

 

 조왕이 사람들 먹는 주먹밥을 은근히 바라보다 궁금타는 듯이 물었고, 지신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자들이 요즘 여럿 되오. 당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를 없어. 건너건너 들으니, 저 웃동네는 더 하다더이다.”

 “어찌 변하오?”

 “내 참…. 들어보시오. 색목인들이 폐허를 고르고 커다란 것들을 모아 짓고, 돈 썩은 내 나는 것들 것 몰려다가 집을 올리고….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지신이 속 풀러 오는 것이 달가운 것은 이렇게나마 세상 이야기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터에 메인 우리와 달리 지신은 너른 땅을 매일 같이 쏘다니기 바빴다.

 

 “그거 아나 몰라? 지전은 썩은 내가 아주 지독해.”

 

 코 막는 시늉을 하며 깔깔 웃던 지신이 조왕이 떠다 준 냉수를 벌컥거리고는 머리를 풀어헤쳐 다시 묶었다. 아…. 이럴 때 뭐라 하더라?

 

 “체통 떨어지게.”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이기에 주워 말하니, 조왕과 성주가 나를 빤히 보다 깔깔거리며 웃었다.

 

 “애기 터주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담?”

 

 어디서지? 

 

 “그냥, 문득문득 떠오르지….”

 

 그러게. 성주 말처럼 문득 떠오르고 만다. 

 

 “그나저나 옆마저 같은 모양인 걸 보니, 한 터에 집을 서너 채씩 지으려나?”

 

 지신은 잘 틀어 올린 머리를 손바닥에 춤 묻혀가며 눌러내고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 마당 자리까지 터를 닦은 것을 보니….

 

 “그럼 터주가 둘이 되나?”

 

 내 질문에 지신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웃었다. 

 

 “폐허가 늘고, 사람 죽인 혼은 많고, 신 하겠다는 이가 줄고…. 삼신 오걸랑 물어보지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나 신기하다는 듯 주저앉아 밥을 우물거리는 이들을 보던 지신이 다시 일어섰다. 

 

 “또 어디서 땅을 들쑤시네. 아휴, 요즘 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술 냄새 나는 걸 보니, 또 제를 지내나 보군.”

 

 코를 벌름이고는 조왕에게 비어버린 바가지를 건넨 지신이 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제 덕분에 속풀이 안 들어도 되니, 바둑 상대 안 해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배웅 같지 않은 배웅을 했고, 지신이 떠난 자리에 짧은 낮잠이 든 이들 몇이 널브러졌다. 평화로운 오후다….

 

 나도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들지 못하고, 성주가 앉은 자리로 다가가 성주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눈을 뜨기도 전에 들리는 것은 조왕이 가마솥 뚜껑 여는 소리였다. 묵직한 쇳소리와 조금 다른 소리가 먼저 들리고, 성주가 대들보 위치에서 폴짝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좁은 문 안쪽이었다. 이상한 것은 흙도 아닌 나무로 얼기설기 엮인 벽이었다. 이 무슨 일인가 싶어 손을 가만히 가져다 대자, 바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글자 가득한 종이로 벽을 바른 건지, 눈이 어지러워 손을 뗐다. 성주는 내 어깨에 손을 얹어 돌려세웠고, 나는 그런 성주를 바로 보며, 조왕을 찾았다. 조왕은 천천히 다가와 내게 말했다. 

 

 “잘 잤소?”

 

 잠이 든 사이 변하는 세상을 보니, 아무래도 잠들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정지가 없지는 않아 다행이지.”

 

 이제 보니, 가마솥이랍시고 있는 것은 썩 크지 않았다. 보아하니 색도 기름먹인 무쇠솥과는 판이해 멋들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를 대들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양상군자 오실 일은 없겠지?”

 

 성주의 농이 썩 우습게 느껴지지 않아 좁은 문을 열고 나오자, 내가 열고 나온 문 바로 옆에 작은 싸릿대 담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내가 방금 연 문과 꼭 같은 문이 여럿 있었다. 마치 측간 가는 문처럼 생겨 먹어서…. 드나들고 싶지 않은 문.

 

 “마당이 좁지만 있어서 다행이고.”

 

 나를 따라 나온 성주가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고는 나를 안으로 들였다. 

 

 “추운데 고뿔들라.”

 

 다정한 말에 코를 훌쩍이자, 조왕은 옷소매를 내게 가져왔다. 돌봄 받는 것이 불편치 않은 것이 꼭 가족같이 느껴졌다. 

 

 “사람은…. 들어왔나?”

 “안 그래도 지금 오는구먼.”

 

 몇이 수레 가득 농과 보따리를 싣고는 낮은 판자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레는 미처 들이지 못할 만큼 좁은 마당이라 그네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막 때가 낀 보따리를 옮기던 아이가 내 옆을 지났다. 눈높이가 엇비슷한 것을 보니, 나와 체구가 비슷한 것 같다. 성주는 아이를 가만히 보다 웃으며, 이제 막 닫히려는 문을 슬며시 잡아주었다. 

 

 이런 집도 집이라 할 수 있나 싶어 지붕을 가만히 보는 나를 보고, 조왕이 말했다. 

 

 “옛것들은 죄 사라지는 것 같네. 그래도 안방에 가마솥 들여두는 것을 보니, 영 막 되어 먹은 인간은 아닌 것 같아.”

 

 인자하게 웃던 조왕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바른손을 들어 지붕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 이 하나는 저기로 올라가겠네.”

 

 까치가 언제 날아오려나?

 

*****

 

 아이는 해가 다르게 웃자란다. 이 집에 들고는 썩 아프지도, 속 썩이지도 않고 가만히 잘 자랐는데, 마치 넝쿨에 자라는 호박처럼 해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아이에게는 친구도 몇 있는데, 제일 반짝이는 눈으로 보는 것은 ‘옆집’의 언니였다. 

 

 언니라는 이는 아이가 이사 오고 세 계절이 지나 낙엽 떨어질 때쯤 이 터에 발을 디뎠는데, 아이보다 한 뼘은 크고, 가슴마저 작게 솟아 있었다. 두 아이는 해를 넘길수록 무탈하게 자랐고, 꼭 성주마냥 잘록한 허리에 큼직한 궁둥이를 가지게 되었다. 내는 영 날 생각 없는 젖가슴을 보고 있자니, 부럽기보다는 불편해 보였다. 동여매고 풀기를 반복하는 속옷을 입는 아이가 옆집 언니를 볼 때면 아이의 가슴이 꽤나 요란하게 뛰고는 했다. 

 

 “언니.”

 

 오늘도 책보를 던져놓자마자 싸릿대 담장에 달려간 아이가 큰 목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이 아이는 유독 목청이 좋아 종종 군소리를 듣고는 했는데, 제 어미나 아비가 조신하지 못하다 혼내고는 했다. 아이는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키우고는 했다. 

 

 “언니!”

 

 열릴 생각을 않는 문을 보고, 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이!”

 

 아, 언니가 오늘부터 어디 간다 했는데…. 이걸 말해주고 싶었다. 허나 내 목소리가 아이에게 들릴 리가 없어 나는 그저 마당 구석에 앉아 아이가 애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해 떨어지면 불 때고 밥 먹어야 할 텐데…. ‘말만 한 가시내’는 여즉 불 올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이 혼나는 것은 내 상관할 바가 아니라 모르는 척하려는데, 저 산에서부터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얼추 들어보니, 저물녘이면 온다던데…. 아이는 조만간 언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니의 그림자가 어귀에 보이면 아이는 까치발로 싸릿대에 찔리지 않게 몸을 기울이고, 언니를 맞이하겠지. 반갑다는 듯 양손을 뻗으면 한달음에 달려온 언니는 아이의 손을 맞잡고, 환히 웃을 것이다. 까만 얼굴에 까만 눈을 한 언니가 고와 보이는 것은 그 미소가 한몫한다. 

 

 “언니!”

 

 아이는 이 골목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언니를 부르고, 언니는 반갑다는 듯 달려왔다. 이들을 보는 앞집이나 건넛집 남정네들이 혀를 쯧쯧 차는 것쯤은 들리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어디 다녀온 거야?”

 “나? 오늘부터 공장 가거든….”

 “어디로?”

 “저기, 저기 아래 미싱 공장.”

 “멀어?”

 “조금.”

 

 숨이 차다는 듯 씩씩거리며 말하던 언니가 아이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기다린 거야?” 

 “응.”

 “요새 추운데, 볼이 얼겠다.”

 

 아, 미처 말하지 못했네. 지금은 저 마당 구석의 구정물마저 얼어붙고, 처마라 부르기 애매한 저 지붕 아래 송곳 같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 말인즉슨 아이가 언니를 기다린 시간이 꽤 길고도 추웠다는 것.

 

 “들어가서 기다리지….”

 “언니네 집?”

 “응?”

 

 아이가 장난스레 묻는 말에 언니는 볼을 붉혔다. 아, 언니는 삼촌과 산다. 아이의 아비와는 절친한 동무로 지내는데, 아이의 아비는 이 언니를 후처 들이고 싶어 한다. 이 일도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나는 아이의 아비가 참 양심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와중에 조카를 후처 달라는 치한테 사람 좋게 웃는 언니의 삼촌은 영…. 모지리 같다.

 

 “입춘도 지났는데, 뭐…. 하나도 안 춥다.”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귀가 발갛게 언 언니는 코를 훌쩍이고 말했다. 

 

 “묵은 나물은 좀 있어?”

 “호박 말린 것도 나물 아닌가?”

 

 언니는 아이의 언 손을 제 손에 가둬두고는 입김으로 호호 불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웃었다. 내 보기에 저 언니야는 웃는 모냥이 예뻐 사람 여럿 속앓이시킬 상이다. 아, 이건 우리 성주가 그랬다. 성주는 입춘에 받은 상이 흡족지 않다며 아수워하던 차인데, 이는 다 저 아이가 음식 솜씨 없어 그런 게 분명하다. 성주가 유일하게 몇 번이고 집어 먹은 것은 저 언니가 한 달래 무침이었다. 

 

 “들어가서 만들고 좀 줄게.”

 “언니.”

 

 아이는 뺨을 붉히며 언니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본다.

 

 “내가 그쪽으로 갈게.”

 

 제법 단호한 말은 한 아이는 감색 치마와 저고리를 손으로 쓸어 단정히 하고는 고개를 팍 들었다. 저 하얗게 펄럭이는 옷깃은 봐도 봐도 눈에 익지 않는다. 언니는 난처해하고, 아이는 눈을 반짝인다. 

 

 “바늘 만져서 생손 났으면 어떡해?”

 

 해가 이미 떨어졌는데도 양 집 모두 남정네들 그림자 없는 걸 보니…. 보나 마나 오늘도 술 냄시나 풍길 것 같다. 

 

 “밥만…. 먹고 가.”

 

 과년한 처자들 말치고 어딘가 앙큼한 구석 있다며 깔깔거리는 성주를 보고, 나는 아무래도 배가 고픈 기분에 밥이나 먹기로 했다. 보나 마나 이 집 솥은 비어있을 테니…. 저 집으로 건너가야겠다. 자리를 털고 서는 나를 두고, 조왕은 큰 손으로 눈을 가렸고…. 거칠거칠한 손이 포근하게만 느껴져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까짓것, 내일 아침상이나 받지 뭐!

 





GL 차곡차곡 담는 중 / e-Book: ‘밤과 밤’, ‘친구 사이에’, ‘첫사랑’, ‘사랑이 스미는 중’, ‘옆에 누워요’, ‘물 만난 언니’ / 포스타입 오리지널: ‘옆집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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