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가지러 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인 것이 화근이었을까. 원래는 금방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까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야기를 건네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누뉴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그래서 어서 이야기를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누뉴의 손을 잡고 있었고, 곤란한 듯 빼려고 해도 힘을 안 푸는 남자의 의도가 다분해 보여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누구신데 손을 잡으십니까"


zee는 음식을 근처 테이블에 대충 두고 성큼성큼 다가가 누뉴를 잡은 손을 떼어내어 그대로 누뉴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정중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분노가 섞인 말이었다. 동물이 아니기에 으르렁거리지 않을 뿐 흡사 굉장히 화난 늑대와도 같은 싸늘한 눈빛과 말투였다. 그 남자는 그런 zee의 표정과 행동에 움찔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에게 빼앗아 누뉴를 뒤로 숨기는 zee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 남자는 누뉴를 작가로서 좋아했기에 오늘을 고대했다. 정말 좋아하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막상 만난 누뉴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필체나 소설도 자신의 취향이었지만 생김새도 자신의 취향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래서 어디론가 다시 또 숨기 전에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방해하다니. 순순히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 싫어진 그가 질 수 없다는 듯이 zee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군데 이야기에 끼어들어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고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 다른 사람들도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뉴의 파트너입니다"


하? 남자는 어이없어 했다. 작가도 아니고 파트너라고 지금 이러는 건가. 그는 코웃음을 치며 작가들끼리 이야기 할 것이 있으니 잠깐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하며 누뉴를 되찾아오기 위해 그의 손을 뻗었다. 그러자 zee는 그가 잡지 못하도록 그의 손을 쳐냈고, 누뉴를 더 뒤쪽으로 숨겼다. 빨개진 손등을 매만지며 약이 오를대로 오른 남자는 급기야 zee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할 말이 있다는 데 왜 자꾸 끼어드냐며 작가가 아니면 끼어들지 말고 그냥 즐기다 가라고 누뉴의 지인이나 친구 아니냐고 방해하지 말고 비키라고 말이다. zee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는 나의 지인이나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라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 남자가 어떻게 떠벌리고 다닐지 모르고 그러면 누뉴에게 화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날 정도로 손을 그러쥐고 이도 악물었다. 지켜준다고 큰 소리 쳐 놓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화가 났다. 그 순간이었다. 


"그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zee의 뒤에만 있었던 누뉴가 zee의 앞에 서서는 그를 째려보고 이야기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zee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니 화가 났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zee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자신과 있을 때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던 그가 보호하듯이 그의 앞에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날카롭게 말하는 것인가. 이번엔 역으로 그 남자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가 틀린 말 했나요? 여기는 작가교류회고 작가들끼리 소통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의 표정은 어딘가 의기양양해 보였다. 확실히 남자의 말은 그럴 듯했다. 작가들을 위한 곳이 맞으니까. 하지만 그는 누뉴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물어보고 그의 영역에 침범하려고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꼬집자 그가 돌변했다. 도대체 저 남자가 누구이기에 꽁꽁 숨어있던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초조해진 그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저 남자가 누구길래 그러는 거냐고. 사실 그는 어렴풋이 둘의 관계를 알아차렸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둘은 연인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다. 쉽사리 말 못하겠지. 자신의 승리인 것 마냥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쪽으로 잡아끌려고 하는 그에게 누뉴가 결심한 듯 zee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발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랐다. 물론 그 남자도 놀랐다. 둘이 그러니까 지인이나 친구 사이가 아니라 연인 사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삼각관계와 같은 사이인가. 아니지 둘이 사귀고 있는데 저 사람이 끼어든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zee 또한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보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누뉴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zee가 왜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지 누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배려한 것이다. 뒤에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참고 있다는 것을. 그런 그의 모습에 가만히 있었지만 누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zee를 욕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에게 자꾸 다가오려고 하는 그가 싫었다.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자신의 승리라 생각했던 남자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난 거지. 


"거기까지 입니다. 작가님"


말소리가 난 곳을 셋이 보았다. 맥스와 낫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맥스 껀탓. 남자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누뉴의 담당자였고, 여러 작가들이 선호하는 능력있는 편집자였다. 남자는 짜증이 날대로 났다. 누뉴랑 이야기하겠다는 데 작가가 아닌 파트너가 나서질 않나. 이제는 편집자까지 나선다니. 


"아까부터 봐왔습니다. 누뉴 작가님께 했던 행동"

"내가 도대체 무슨 행동을 했다는 겁니까?!"


낫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누뉴가 싫다는 데 억지로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는 그의 모습이 포착되어 있었다. 영상을 본 남자의 얼굴은 굳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맥스와 낫은 곤란해 하는 누뉴를 보고 도와주려 가려했다. 그런데 남자가 덥썩 누뉴의 손을 덥썩 잡는 모습에 낫이 놀란 것도 잠시 화가 난 듯 그대로 돌진하려고 했고, 맥스는 그런 그를 진정시키고 영상을 찍게 했다. 맥스는 그 남자를 알고 있었다. 사람 좋은 것 같지만 굉장히 집요하고 깐깐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담당자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몇 번 대화를 나눴을 때는 못 느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아마 누뉴를 계속 보고 있다가 아무도 없고 zee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저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냥 구출해주는 것을 선택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증거를 잡는다면 나중에라도 그에게 더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 찍은 후 다가가서 제지하려고 했는데 zee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가려던 멈췄는데 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집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작가는. 


"작가님. 교류회의 내용이 밖으로 세어나가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죠. 그런데 만일 이 자리에 지금 있었던 일이 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맥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말투만 나긋나긋하지 협박과 다를게 없었다. 네가 만일 누뉴에 대해서 입벙긋이라도 한다면 저 영상을 풀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남자는 네 명을 차례로 째려보고는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사라졌고, 주변 사람들도 그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쉬쉬했다. 아마 맥스가 한 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맥스가 제일 집요하고 깐깐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맥스와 낫은 누뉴가 괜찮은지만 확인하고 옆에 zee가 있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라졌다. zee는 모두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키겠다고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주겠다고 함께 있어 달라 하면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었는 데 무엇 하나 지키지 못했다. 정작 누뉴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고, 당당히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자책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zee의 머리에 누뉴는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zee가 누뉴에게 해줬던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다 안다는 듯이 괜찮다고. 


"그 사람이 잘못한건데 왜 p'zee가 그러고 있어요"

"누.. 그치만"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 아니까 그만 자책해요"


저 이제 정말 괜찮아요. 싱긋 웃어주는 누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누뉴가 그의 등을 손으로 쓸어 내린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자신의 연인은. 자신보다 한참 작고 여린 연인은 어느새 자신을 품을 수 있는 너른 품을 갖게 되었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그 남자는 아예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들 그 사건을 잊은 듯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뉴도 마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옆에는 zee가 꼭 붙어 있었다. 이미 모두가 zee와 누뉴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zee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아쉽다는 듯이 입맛만 다실 뿐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설 수 없었다. 누뉴는 이런 자신들의 사이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잘 마치고 난 뒤 누뉴는 zee와 함께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누뉴가 괜찮다고 했지만 생각이 많아진 zee는 말이 없었고, 그가 왜 그런지 알고 있는 누뉴가 쫑알쫑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들을 만나서 즐거웠던 것, 쑥스럽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칭찬해줬던 말들, 서로 이야기하자고 메신저를 교환했던 일들.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아까 일은 다 잊은 듯해 보였다. 


"글쎄 낫씨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여서 물어봤는데, 자기가 맡은 작가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는 게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 거 있죠. 너무 귀엽지 않나요?"

"그렇네"


누뉴는 신난듯 이야기를 하며 zee에게 물었고 그런 모습에 zee의 마음이 어느 정도 녹아내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는데 늦은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아까 나갈 때와 달리 누뉴의 아버지도 집에 와 계셨다. 그런데 tee도 와 있었다. 내일 zee와 tee의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와 있어서 놀랐다.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누뉴의 모습에 못 볼 것이라도 봤냐고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것을 보면 tee가 분명했다. 왜 여기에 있냐고 물으니 어차피 내일 휴무고 잠시 들렸던 것 뿐인데 우연히 마주친 것이란다. 그러면서 나가는 tee를 누뉴와 zee가 바라보니 그가 찡긋하며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지금 꿈이라도 꾸는 것인가 싶어 가만히 서있는 둘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어머니였다. 


"왜 그리들 서있어? 어서 안으로 들어와"


줄라이가 '야옹'하고 우는 것은 덤이었다. 

부모님께서는 궁금한 것이 많은지 둘이 씻고 어서 거실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내색은 안 하려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전 안 가던 곳을 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다 씻고 옷까지 갈아 입고 내려온 둘을 쇼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앉자마자 성격 급한 어머니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땠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작가를 만났는지, 재미는 있었는지, 음식은 또 어땠는지 등등 물어보자 아버지가 '큼'하고 헛기침을 한다.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아니.. 궁금하잖아" 

"그래도 애가 말할 틈은 줘야지"


아니나 다를까 누뉴는 이것저것 물어오는 엄마에 정신이 없었다. 뭐부터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하나씩 물어봐야 대답을 해 줄텐데. 그리고 그냥 어땠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아버지는 담백하게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누뉴는 한 템포 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대부분 아까 zee에게 말한 것과 비슷했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히 걱정하실 것이 뻔했고, 이미 끝난 일이고 뒤탈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뉴의 이야기를 들으신 부모님은 안심이 되셨는지 표정이 한결 편해 보였고, 어머니는 잘했다고 등을 두들겨주셨다. 그리고 zee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하셨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마친 둘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방콕에서도 어김없이 각자 따로 쓸 방을 주셨다. tee가 나갔지만 그래도 tee의 방을 누뉴가 쓰게 하고 누뉴의 방을 zee가 쓰게 하셨다. 부모님은 둘이 같이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아직은 한 방을 쓰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방에 들어온 zee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아까 고생했다는 부모님의 말에 웃기만 하고 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고생은 누뉴가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

"땅 꺼지겠어요. p'zee"


언제 들어왔는지 누뉴가 들어와서는 한숨을 쉬는 zee에게 말을 건다. 벌써 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 찾아온 그는 zee가 일어나려는 것을 보곤 다시 눕히고 옆에 눕는다. 그러자 zee가 놀랐다. 부모님이 계시는 데. 물론 zee도 누뉴와 같이 있고 있었지만 여기는 자신들의 집이 아니었다. 누뉴를 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어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누뉴는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채도 안하고 zee의 품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부벼온다.


"p'zee 그거 아나요?"


만일 그 자리에 zee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감히 꺼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zee가 나타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 다니고 또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zee가 없었더라면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zee는 그런 존재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그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zee가 자신에게 그냥 그대로 곁에만 있어주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다는 것을.

그런 그의 말은 zee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zee는 자신의 품 속에 있는 그를 꼭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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