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 할머니는 암과 싸우고 계셨다. 아니, 졌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미 할머니는 가망이 없는 상태였고, 우리 가족을 비롯한 친척들도 모두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월의 주말에, 어린 나는 할머니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학원을 째게 되어서 기뻤다. 병원에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어린 나는 할머니와 별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긴 하지만, 딱히 친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어머니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래저래 병에 치이고 치인 할머니의 모습은 호감형이지도 않았다.


 우리 가족이 병원을 나와 차에 막 탔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린 급하게 병실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그때 내게 충격적인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걸 가져왔다. 엄마의 울음과 친척들의 울음소리. 어수선한 병원의 분위기와 싸한 향기.


 나는 할머니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 뒤로 오는 파장이 너무 무서워서 울 것 같았다.


 나 뺀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린 나는 나까지 울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기껏 울음을 참아선 병실 밖에서 터뜨렸다. 엄마는 그때 내가 운지도 모를 것이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진짜, 정말, 갑작스럽게 검은 옷을 입어야 했다. 내가 너무 어렸던 터라 어떻게 장례가 진행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른들의 사정이니까 한낱 초등학생이 알 필요도 없었고.


 내 주변 사람들은 금세 울음을 멈췄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기억나는 것은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서 먹은 김밥과, 장례식장에서 만난 내 또래의 친구들과 놀았던 것, 쫀득했던 오징어, 그리고 그것이었다.


 장례식 첫째 날 밤에, 나는 할아버지와 가족, 다른 친척, 모든 사람들이 바쁜 관계로 나는 홀로 먼저 잠들어야 했다.


 나는 이불을 덮고서 멀뚱히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붙은 반짝이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반짝였다.


 그때 문득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는 과연 어떻게 된 걸까?


 그 뒤로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은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공포감을 선사했다. 여름방학 때 바다에 빠져버린 것보다 무서웠다.


 그 공포감은 한순간이었지만 계속해서 유유히 내 가슴을 간지럽혔다. 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마지막 밤에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밤잠 설치다 결국 장례식장을 나서는 선택까지 해야 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장례식장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도 울고 있는 사람, 검은 옷을 입고 웃고 있는 사람. 아쉽게도 낮에 나와 놀던 친구들은 볼 수 없었다.


 병원과 비스무리한 냄새가 나는 장례식장의 바닥은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주춤주춤 걸어가면 자판기가 있는 외딴곳에 도착해 하얀 쿠션이 박혀있는 벤치에 앉았다. 


 나이가 들면 이런 걱정도 모두 사라지고 죽음을 받아드리게 될까?


 그러길 바랬다.


 이러다간 평생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매일 밤을 설쳐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나는 중증이었다. 


 어떤 것이 내 고민의 심각한 기폭제가 되었는진 몰라도 (예상해보자면 아마 내 자신이지만) 내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자판기에 진열된 알로에 주스를 흘깃 쳐다보는 찰나, 나는 기이한 사람을 목격했다.  사람이라 불리기도 애매한 그것은 나를 뻥 뚫린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좀 더 면밀히 말하자면 그것의 눈은 빛이 하나도 반사되지 못하는 새까만색이었다.


 또, 그것의 머리카락은 무지막지하게 길었다. 실은 내가 머리카락을 보았다고 하기에도 뭐하다. 그것의 머리 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이었다. 그러니까... 무(無)의 색이었단 말이다. 그렇다고 유리와 같은 투명한 색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로 투명하지 않았다. 또한 흰색도, 검은색도 아니었다. 내 생애 처음 본 색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괴리감 넘치는 건 그의 옷이었다. 장례식과 가장 거리가 먼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상의는 목폴라 티와 비슷했고, 하의는 통이 아주아주 넓은 바지였다. 그 흰 바지는 통이 정말로 넓어서 언뜻 보면 치마 같기도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괴생명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저승사자 같은 것이었다.


 저승사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친근하고 안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 옆에 사뿐히 앉았다.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되는 줄 아니?"


"아뇨."


"행성이 된단다."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제 딴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썩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뭐 그렇지 않는가. 예수도 부활을 했는데 죽어서 사람이 행성 못될 건 뭐람.


"그래서요?"


"행성이 죽으면 뭐가 되는 줄 아니?"


"아뇨."


"인간이 된단다."


 나는 그 기이한 것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비정상적인 말을 정상적인 것이 한다면 신뢰가 가지 않지만, 비정상적인 말을 비정상적인 것이 한다면 말이 달라졌다.


"할머니도 행성이 됐겠네요?"


"그럼. 지금 좀 바쁠 시기지.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거든."


"행성이 되면 행복해요?"


 이 질문은 그것이 천국과 비슷하냐는 질문이었다.


"글쎄, 걸을 필요도 없고, 쉴 필요 없어. 바람이 불 때 그에 맞춰 방향을 틀기만 하면 돼. 여기서 누릴 수 없는 걸 누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진 않아. 여기서 누리는 것이 그곳에는 없기도 하거든."


 그것의 말은 대체로 아리송했다. 내가 알아들은 건 죽으면 행성이 된다정도 뿐인데, 행성이 된다는 것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불명확했다.


"그러니까 지금을 누려. 걷고, 쉬고,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가보기도 해보렴."


 신비한 그것은 사뿐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치마 같은 통 넓은 바지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것을 뒤쫓아 계단을 따라 내려갔지만 그것은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다시 내가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돌아왔을 때, 그것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놓여있었다.


 녹슨 동전이었다.


 나는 그 동전으로 자판기에서 알로에 주스를 꺼내 마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출렁였던 불안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아니 님 진짜 글 잘 쓰시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아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