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사이비종교(불교+민간신앙), 형벌에 대한 잔인한 묘사, 살인예고

이 시리즈는 향후 비윤리적 묘사나 전개로 인해 다소 많이 불편해지실 수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결코 사이비를 옹호하지 않으며, 불교에 대한 악의적 일반화가 아님을 명시합니다.









나를 죽이겠다고?







동경연심 백호찬가

憧憬戀心 白虎讚歌


5화


w. 녀녀(@10ven1ike)







무릎을 꿇어앉은 양호열을 보라.

강백호가 번쩍 뜬 두 눈으로 어두컴컴한 시야를 마주했다. 달빛이고 햇빛이고 새어들어오지 않는 이 방은 불을 켜지 않으면 칠흑처럼 어두웠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그새 익숙해진 천장과 동그란 두상이었고 이상하게 그것이, 양호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강백호가 몸을 일으키려 부스럭대자 둥그런 실루엣이 말했다. 깼구나, 백호야.

백호야. 그렇게 불러주는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강백호는 누가 쫓아오듯 급하게 일어나 앉아 양호열의 양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양호열!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컸다. 호열이 희미하게 웃었다. 시계조차 없어 들리는 소리라곤 양호열과 강백호의 목소리 뿐이었다. 잘 지냈어, 강백호? 나 보고 싶었냐? 질문에는 떨림이 있었다. 강백호는 한겨울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운함을 온통 끄집어냈다. 너, 양호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외침 한 문장이 백호가 하고 싶은 말의 요약이었다. 이후로는 양호열이 흔들의자처럼 흔들리며 백호의 두려움과 설움, 당혹스러움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것이 이상해 백호는 호열을 감나무처럼 흔들던 것을 그만두었다. 어질어질하던 시야가 곧게 먿으면 호열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 불을 켜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백호가 가로막았다. 손목이 덥썩 잡히자 양호열은 생각지 못한 반응에 뒤를 돌아봤다. 나, 불 켜려고, 백호야. 백호가 손에 힘을 풀고서야 호열은 몇 걸음 더 움직여, 방의 불을 켰다. 눈을 감을 수 없어 백호는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서 호열을 보았다. 조명 스위치 앞에 호열이 서 있었다.

검붉은 망토를 쓴 양호열. 흐트러져 내려온 앞머리와 숯처럼 타들어간 눈동자, 그을린 눈밑의 수심. 차갑게 말라 갈라진 입술로 그려진 말간 웃음. 호열이 다가왔다. 다가와 강백호의 옆에 앉았다. 무릎을 꿇어서.

"그새 말랐네."

떨리지 않는 목소리.

"보고 싶었어."

백호야. 양호열은 자꾸 강백호 이름을 불렀다. 때문에 백호는 떠올렸다. 자꾸만 이름을 부르던 양호열을. 머릿속에 그의 울던 얼굴, 목소리의 떨림, 차갑던 손과 테이프로 붙어있던 칼날 같은 것이 실처럼 엉켜 나타났다. 한 소리 하려던 입이 다물렸다. 놀랍도록 총명해보이는 눈의 양호열이 불안에 짓눌린 백호의 눈을 봤다. 햇빛 아래 나가면 가끔 다갈색으로 보여,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눈을. 꿇은 무릎을 세우며 호열은 두 팔을 벌려, 엄숙히 강백호를 끌어안았다. 안길 수밖에는 없었다. 뜨거운 체온으로 호열을 데우는 수밖에는. 다 부르지 못한 이름이 어눌하게 사라졌다. 어정쩡하게 들어올린 팔이 곧 호열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윽……. 호열이 웃었다.

"호열아, 기도는 다 끝낸 거냐?"

"응."

"이제 설명해 줄 거냐?"

"그래야지."

속이 뒤틀릴 만큼 태연한 목소리에 울화가 치밀었다. 강백호는 양호열을 밀쳤다. 그는 쫓겨나듯 떨어져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붉은 망토가 어지럽게 바닥에 흩어졌다. 의심하지 마. 백호야, 의심하지 마라. 그가 말했다.

"걱정 말고 들어, 내가 전부 설명해줄게. 너라면 금방 이해할 거야. 천재에겐 쉽지."

그렇게 양호열의 씨발 개 씹소리가 시작됐다.


"백호야. 우리는 벌을 받을 거다."

시작부터 개소리였다. 호열은 설명했다. 그의 눈은 더없는 믿음과 영광으로 가득차있었다. 사명을 받은 사람처럼 정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비정히도 박혔다.

사람들이 너무 나태해졌어. 아무도 죄를 뉘우치지 않잖아. 백호야, 있잖아.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속세에서 지었던 죄는 다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전부 쌓여있다가 죽은 우리의 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에서 평생 나오지 못해. 야차에게 혀와 창자를 뜯겨 잘리고 쇠로 된 개들의 먹이가 돼. 큰 못들이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목이 마르면 달군 구리 쇳물을 마시고 뜨거운 철사로 사지를 감아 타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하게 되는 거야. 우리가 죄를 씻지 않으면, 우리는 지옥에 가게 될 거야…….

양호열이 바닥을 짚고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손을 찾으려는 것처럼 앉은 강백호를 이리저리 보다가 팔을 끌어당겨 미지근해진 손바닥을 손등에 겹쳤다. 차가운 손도, 미지근한 손도 이상했다. 양호열 같지 않았다. 백호는 낯 익은 얼굴에서 오는 낯선 눈이 이 공간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자신을 외롭게 하는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생각은 입김처럼 순식간에 부서져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이어지는 호열의 목소리 뿐이다.

괜찮을 것 같지, 벌은 죽은 뒤에 받는 거니까. 살아있는 우리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더라도 달군 구리쇳물을 물 대신 마시고 혀가 뽑히는 일은 없잖아. 그러니 괜찮을 것 같지?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아무도 신에게 기도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때가 왔어. 뉴스는 언제고 희생당한 사람들의 비보를 전하고 죄 지은 사람을 영웅처럼 받들잖아. 우리는 벌을 받을 거야. 지옥에 가기 전에, 여기에서.

'여기에서'. 호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따뜻하게 데워놓은 노란색 장판 위에서 따뜻한 손에 닿은 채로, 강백호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리인 양 늘어놓는 호열을 벙쪄서는 봤다. 양호열이 미친 것 같았다. 아니, 양호열 같지 않았다. 백호는 용기를 냈다. 용기라기보다는 억울함에 가까웠다. 손을 내치고서 호열의 멱살을 잡았다. 까끌거리는 삼베 천으로 만들어진 검붉은 망토가 그의 주먹 안에 사정없이 구겨졌다.

"무슨, 씨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아무래도, 조금 어렵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양호열, 정신 차려! 너 이상해. 좀 이상하다고 너."

"괜찮아. 차분히 설명해줄게. 아직 시간이 꽤 남았거든, 백호 너는 천재고, 우린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으니까 내가 설명해주면 넌 금방 알아들을 거다."

"양호열!"

호열이 눈을 꿈뻑였다.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뒷목의 잔털들이 쭈뼛 섰다. 완벽히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계 위에 신이라는 새끼가 강백호만 집어다가 뚝 떨어트려놓은 것 같았다. 백호는 태어난 지 삼 분도 채 되지 않은 망아지처럼 삼베 망토를 힘없이 흔들면서도 호열에게서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마주보고 싶었다. 이런 눈이 아니라 다른 눈으로.

"백호야. 네가 벌 받는 건 싫어."

나는 너를 구하고 싶어. 양호열이 말했다. 양호열은 두 손을 뻗어 백호의 손등 위로 겹쳐올리기까지 했다.

"너를 구할 거야. 네가 나를 구해줘. 우리의 육신과 혼은 청정한 연못 아래에서 성불의 날을 기다렸다가, 죄에 무뎌진 중생들이 끝끝내 멸망하는 속세로 뻗어올라오는 단죄의 날을 맞이할 때, 영호천왕 부처님의 자비로 거두어질 거야."

검고 곧은 눈. 빛나지 않으면서 빛나는 것을 바라보는, 그것은 동경의 눈이로다.

강백호가 입술을 꽉 씹고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양호열의 가려진 이마 위로 꽝 머리를 갖다 박았다. 호열이 속절 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아하하, 악, 진짜 아파. 백호야, 진짜 아파. 얼마나 아팠는지 눈물마저 찔끔 고여있었다. 호열이 힘없이 옆으로 누웠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백호야, 이러면 안 돼. 이제 정화일이 오기 전까지는, 죄를 지으면 안 돼.

"뭐, 정화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씨발! 양호열, 정신 좀 차리라고!"

"우리의 육신을 연못 아래 정화하러 가는 날 말이야. 태영이가 그날에 대한 건 알려주지 않았구나."

우리의 육신을 연못 아래.

꼭 벼락 맞은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듬더듬 물었다. 그러니까, 양호열.


"나를 죽이겠다고?"


찰나마저 되지 못할 짧은 간극 뒤로 호열은 무너진다. 이미 죽은 백호의 시체라도 본 사람처럼 팔에 힘이 빠져 넘어질 것 같다가 도로 멀쩡해졌다. 그건 정말 끔찍하게 징그러운 장면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시선은 방황하다 벽을 타고 오르는 탱화 한 장에 고정되었고 삼 초도 되지 않아 흔들림이 멎었다.

호열이 또 백호를 불렀다. 백호야.

"우리 자자."

"네가 피곤해서, 지금 좀 예민한 것 같아."

양호열은 다시 강백호를 본다.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 강백호. 호열은 일어나 불을 끄고 다가왔다. 양호열이 강백호를 끌어안는다. 거친 삼베 망토 너머로 호열의 찬 얼굴이 강백호의 뺨에 닿았다. 둘은 볼을 맞대고 동상처럼 멈춰 온기를 나눴다. 그 순간 강백호는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하나를 깨우쳤다. 양호열과 닿고 싶지 않아.

"씨발……."

백호는 뒤로 넘어지듯 누웠다. 양호열이 잠든 강백호 위로 덮어주었던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그 안에 자신의 훨씬 작은 몸을 함께 집어넣고 다 끌어안지 못하는 팔로 그를 끌어안는 것을 느끼며. 이미 익숙해진 천장이 보기 싫어 몸을 호열에게로 돌리자, 그가 등지고 누운 벽에서는 흰 호랑이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의 크게 뜨인 눈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형형했다. 도대체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좆 같은 감정에 휩싸여 백호는 양호열을 바짝 끌어안았다. 친구를 그렇게 안고 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릴 적 사람처럼 뭉쳐 안았던 이불보다 훨씬 뜨겁고, 숨을 쉬었고, 심장이 뛰었다. 마주 안지 않으면 밤 사이 싸늘히 식어 사라질 것 같았다.

강백호는 양호열을 잃고 싶지 않다. 불쾌에 맞서는 그 거대한 명제가 백호의 목을 졸랐다. 


그래서 강백호는 양호열을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탱화의 감지 않는 눈 앞에서.







구하소서

구하소서

부디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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