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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라가 선사하는 마법에 걸리고 싶다 일전에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입는 옷이나 신발은 지나칠 정도로 검정을 선호한다. 아니, 선호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일주일 사이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에어가 있는 흰 운동화, 통풍이 잘되는 반팔셔츠 흰색, 이보다 깔끔할 수 없는 하얀 셔츠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게 다 여름이 다가오는걸 알리는 더운 공기와 눈부신 한낮 때문이다. 4월의 선선한 바람이 자꾸만 나를 설레게 한다. 마음이 붕 떠서 탱탱볼처럼 튀고, 밝은걸 주렁주렁 달고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싶다. 


돌아보자면 준의 공이 크다. 아르헨티나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는(그만큼 나와 많은 부분이 다르다) 내가 시도하지 않은 걸 속속들이 채집한다. 겁이 많은 내 성격상 강요하면 도망갈 걸 알기에, 이것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채집한 걸 가져와 죽 늘어놓는다. 

그는 최고의 방물장수다. 평소의 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파란 야광의 반팔티셔츠나 연청색의 일자 통바지가 왜 그리 괜찮게 보이는지. 입으면 역시나 멋있다. 거울 속의 사람도 어색하지만 쑥스럽게 미소 짓고 있다. 꽤 맘에 들어 하는 눈치다.

연한 파랑 물감을 2방울 떨어뜨린 하늘색 셔츠를 바지 안에 넣고 단추를 모두 잠갔을 때는 호두까기 병정보다 뻣뻣했지만. 온몸으로 단정함을 풍기는 복장은 시간이 많이 지나야 거울 속의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 같다.


올해는 캐쥬얼의 비중을 줄이는 만큼 포멀한 복장을 늘려볼까? 따뜻한 날씨와 최고의 영업왕 준이 깜깜한 인간을 어둠에서 구출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하다.


반짝이는 밝은 옷 6벌을 선택한 일일스타일리스트 준이 말했다.

“밝은 옷을 입으니, 사람이 밝아진 것 같아!”

오, 그런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문장 한 줄을 곱씹었다. 과거에는 먹던 대로 먹고, 입던 대로 입는 안전제일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대담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밝은 옷과 신발은 강제로 부여된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아탐색을 한 보상이다.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의 나. 

그동안 나는 검은색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으레 여자라면 입어야 하는 분홍색을 피하고 피하다 모든 밝은 톤의 옷을 기피했다. 입은 경험이 없는 것뿐인데, 어울리지 않다고 미리 판단했다. 

여우가 먹지 못한 게 신 포도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건 밝은 옷과 눈부시고 새로운 것들이다. 

시도하고 싶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본 것들을.




얼렁뚱땅 김제로의 진지하고 코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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