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니












뭉실뭉실, 허공에 떠있는 첫 감상이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나는 턱을 넘고 몸이 손바닥 반도 떨어지질 못했다. 이제노 능력이다. 염력이란 놈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얌전히 떨어질 리가 없지. 곱게 폈던 중지를 접으며 발 아래를 살폈다. 낮은 건물이라지만 5층 건물 옥상인데 살더라도 몸 한군데는 아작 날 높이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허공에 뜬 내 멱살을 쥐고 당기는 손길이 거칠기 짝이 없다. 턱하니 막히는 숨을 삼키자 손 힘이 풀린다. 그리곤 덜덜 떨리는 손이 간신히 내 어깨 위로 올랐다. 왜인지 그의 얼굴에 겁이 가득하다. 뭐가 두려운 걸까. 내가 죽는게? 왜?




“글쎄요.”




난간 바깥을 턱짓했다. 이제노의 시선이 돌아가고, 나는 그의 손을 쳐내며 물러섰다. 이쪽이 5층 건물이라면, 옆건물은 4층 건물. 서여주의 체력과 근력, 유연성을 짐작하건데 나는 무사 했을 거다. 다치더라도 발목 인대가 나가는게 다일 걸. …아마도?




“내가 뒤지든 말든 왜 신경 쓰는지 모르겠네.”

“……….”

“어차피 서로 역량만 알아보려고 하는 훈련이잖아요.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한 거 아닌가?”




그래서 보여주겠다고-. 그럴 싸한 말을 했다. 솔직히 서여주가 또 뛰어내리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충격 요법이란게 있잖아. 못된 말만 쏟아내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몇년을 부대껴 살던 사람인데 죽으려고 했던 걸 그냥 지나갈 순 없을 테니까. 그가 겁 먹은 이유는 이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됐다.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해?”




음…. 그렇다고 질질 짜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울먹이는 목소리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자 또 숨이턱 막힌다. 오전에도 그랬다. 정재현이 영호에게 안기는 날 보며 충격 받은 얼굴을 할 때 꼬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상하게 가슴 한켠이 불편했다. 서여주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상처 준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왜, 난 안 돼?”




이제노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제노는 서여주를 가장 마지막에 놓았던 사람이라서. 그래도 중요한 포인트는 마지막이 아니라 놓았다는 점이지. 결국 다른 팀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거니까.




“너넨 날 할퀴고 난도질 했다면서요. 근데 난 안 돼?”

“……….”

“내가 죽어도 관심 갖지마. 죄책감을 가지고, 아무 말도 하지마. 어차피 난 아-무것도 기억 못하니까.”




팀 간의 유대? 개나 주라고 해.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다. 나와 쌓은게 아니라 서여주와 쌓은 유대였고, 먼저 끊어낸 건 그들이다. 서여주의 악행은 모두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거짓말이라며.”




평서문 같은 질문에 그저 웃기만 했다. 혼란스러울까? 그러라고 답을 주지 않자 그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린다.




“그것도 거짓말.”




잠깐의 침묵 후 답을 줘도 그는 믿지 못할 거다. 하지만 믿기도 힘들겠지. 이전의 서여주와 나는 다른 사람인만큼 행동도 말투도 다르고, 그들을 대하는 법이 가장 달랐다. 가을날의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구르다 바짝 마른 채 부서졌으면 좋겠다.


그의 등 뒤로 푸르른 하늘을 눈에 담았다. 꿈에서 보았던 것과는 시간대도 장소도 달랐으나 서여주가 떠올랐다. 꼭 지금 내 앞에 서여주가 서있는 것만 같은 환각이 보인다. 난간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나 꿈처럼 역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넌 우리 못 떠나. 어떻게든 찾을 거야.”

“홍주연씨는 어쩌고?”




이번엔 이제노 입이 다물렸다. 다른 팀원들은 몰라도 이제노는 알겠다. 얘는 서여주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워한다. 애증. 그의 감정에 정의를 내리고 나니 어쩐지 서글프다. 이 또한 서여주의 감정일까.




“이만 놔요. 여기서 입씨름이나 하자고 훈련 중인 거 아니잖아요?”




어깨를 돌려 그의 손을 떨쳐냈다. 그대로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옥상에서 건너가지 못하면 땅에서 옮겨 가야지, 어떡하겠어. 정재현이 앞을 막고 있을 테지만 몰래 숨어 들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은근슬쩍 도망치려 하지마.”

“……….”

“눈 앞에 안 보여도 널 찾는데, 눈 앞에 있는 널 놓칠 거 같아?”




분위기 타서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더럽게 이성적인 새끼. 속으로 온갖 육두문자를 날리는데 발밑이 물길에 미끄러진 것처럼 붕 뜬다. 순간 뒤로 넘어가는 몸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손을 뻗었다. 그 결과 내가 뻗은 손이 닿은 곳은 같이 놀라서 내게 치우친 이제노…, 머리채였다. 이런 식으로 머리를 쥐어 뜯을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일부러 그런거지.”

“아닌데요. 저 지금 당황 하는 거 안 보이세요?”

“놔.”

“그러게 누가 갑자기 능력 쓰랬냐고.”




이제노 머리를 놓아주자 그가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긴다. 짜증이라도 난 건지 잔뜩 구겨진 미간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서여주가 얘네 왜 좋아했는지 알겠다.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가라, 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둥실 뜬 몸은 허공에 떠 이제노의 뜻대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재현에게 가려나-했더니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스쳐지나갔다.




“그쪽 팀장한테 안 가요?”

“……….”

“잘 씹네. 지가 소야?”

“야.”

“들렸어요? 씹길래 안 들리는 줄.”




이제노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어쩌라고 시발. 몸뚱이는 이제노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갔지만 행동에 제약 있는게 아니라서 치타폰이 있을 곳으로 고개를 뺐다. 건물 반대편에 있어서 그런지 안 보인다. 치타폰 상태 한 번 보고 싶은데.


글에서 묘사하길, 정재현의 능력은 국내 최고로 손 꼽히는 패서네이트였다. 애초에 N팀 자체가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놈들을 끌어모아 만든 팀이기도 했지만 정재현은 조금 특별한 축이었다. 단순히 상대를 유혹하는 능력인 줄 알았던 패서네이트는 마인더와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본래는 썩 위험한 능력이 아니었는데 정재현 이름을 붙이면 달라진다는 설정이었다. 정신을 조종 한다던가 하는 일로 악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줬었던 거 같은데….




“한 번만 들렸다 가면 안 돼요?”

“안 돼.”

“치타포온-!!”

“하….”




그가 한숨 쉬는 건 딱히 문제 되지 않았다. 치타폰 이름을 우렁차게 부르는 와중에 길거리에 널부러진 김정우가 보였다. 쟤 그냥 저기서 자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두사람 목소리가 아니었고, 각각 다른 곳에서 들렸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이번엔 이제노가 먼저였다.




“주연아!”




뭐야, 시발. 인상을 구기며 그가 내려다 보는 곳으로 고개를 떨구자 총 네명이 보였다. 하나는 이제노가 부른.홍주연이었고, 그 옆엔 김도영, 두사람 가까이에 마크와 지성이가 보였다.




“마크야!! 지성아악!!”




얘들아 나 살려라!! 두 팔을 크게 휘젓다가 이번엔 이제노 머리통을 쳤다. 아, 실수. 그를 돌아보자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안면을 하고 있었다. 어쩌라고. 다시 한 번 중지를 들어주자 그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뱉는다. 저러다 복 다 날아가지. 아니다, 날아가라고 한숨 쉴 일을 더 만들어 줘야겠다.




“누나!!”

“지성아!! 나 살려라!! 이제노가 나 여기서 떨어트린대!!”

“내가 언—!”

“마크야아!!!!”




내가 생각해도 레전드 금쪽이가 따로 없다. 그냥 지르고 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구원이 뻗어왔다. 저번 회의 때 봤던 하얀 빛을 내는 사슬이 지성이 손에서 뻗어 나온다. 사슬을 붙잡자 이제노가 날 낚아채기 전에 훅 딸려 간다. 땅으로 추락하는 몸은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까 옥상에서 뛰었던 걸 이런식으로 돌려 받나 하던 찰나, 누군가에게 안겼다.




“누나, 괜찮아요?”

“…줄 없는 번지점프한 기분이야.”

“많이 놀랐어요?”

“손 올려 봐. 심장이 벌렁대.”

“어, 아. 아뇨!”




지성이 품에 폭하고 안착했다. 너무 놀라서 지성이 손을 끌어다 내 가슴 위로 올리려다 애가 기겁하며 내 손에서 제 손을 뺐다. 아, 좀 그런가. 애라고는 해도 남자애긴 하니까. 순순히 그의 품에서 나와주자 이번엔 또 아쉬운 기색이다. 그게 귀여워서 웃었다. 지성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이 됐다.




“여주, 이건….”




아. 마크가 조심스레 내 팔을 쥐었다. 쥐었다기보단 덮었다고 표현하는게 잘 어울릴만큼 아주 약한 힘이었다. 축 처지던 눈매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함께 온 이제노가 땅을 밟고 서서 김도영과 홍주연 곁에 서있다.




“쟤 짓은 아니고.”

“N팀이 한 건 맞잖아.”

“응. 근데 걔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걸. 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 말을 뱉는 즉시 내가 날 상처 냈다는 걸 알리는 꼴일 테니까. 마크와 지성이 시선이 내게 달라붙어 있었다.




“걔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어.”

“엉?”

“전투 불능이거든.”




허리춤을 툭툭 두드리자 하네스에 달린 총이 묵직한 소리를 낸다. 그제야 말귀를 알아 들은 두사람이 전보다 풀린 얼굴을 했다. 급히 말을 돌린 것치고는 잘 먹힌 말이다. 다행이라고 여기는 동시에 지성이 몸이 휘청인다. 놀라서 그를 붙들자 지성이도 두 다리와 얼굴을 빳빳하게 굳히고 내 어깨너머를 본다. 안 봐도 알겠다.




“놔.”

“놓으라고 놓을 거면 왜 잡았겠냐?”

“그래?”




이제노 손가락이 한마디만 까딱 움직였을 뿐인데 내 몸이 또 그의 마음대로 움직인다. 중력은 내가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게 아니었다. 운석이 중력 강한 행성으로 향하듯 내 몸이 이제노를 향해 날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 쪽에선 홍주연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당겨졌다. 지성이가 나를 이제노 염력에서 빼냈던 것처럼 홍주연을 사슬에 묶어두고 있었다.




“놔요.”

“너네부터 주연이 놔.”




지성이가 내 몸에 사슬을 둘렀지만 이제노가 내 어깨를 안고 있는 탓에 당겨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이 이제노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염력으로 물건 띄우고 던지고 가져오는 건 알았지만 이딴 식으로도 사용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우습게도 나는 N팀에, 홍주연은 팀 빈즈 측에 선 상황이 됐다. 음…, 뭐랄까…. 기분 되게 별로다. 홍주연은 어떤 생각으로 벌벌 떨고 있는지 몰라도, 서여주는 이미 홍주연에게 제 팀을 빼앗겨 본 사람이라 그런가. 마크와 지성이 틈에 홍주연이 서있는 그림이 기분 더럽다.




“지성아, 홍주연 놔 줘.”

“누나….”

“걔가 너네 사이에 있는거 좀 역겨워.”




문장 그대로다. 조금의 과장도 축소도 없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짜증이 치밀었다. 이것도 서여주 감정인가? 서여주는 팀 빈즈를 본 적 없으니 이건 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또 내 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헛구역질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있으니 홍주연 몸에 감겨있던 사슬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처럼 이제노에 의해 끌려오는게 아니라 제 발로 직접 뛰어오는 홍주연을 보고 있자니 속이 더 뒤집혔다. 욱, 겨우 참고 있던 구역질이 다시 한 번 목젖을 친다.




“이제 너도 놔.”

“내가 왜.”

“내가 왜?”

“……….”

“좋은 말 할 때 놓으세요.”




허리춤에 둔 총을 쥐자 이번엔 다른 곳에서 나를 막는다. 처연한 얼굴을 한 김도영. 뭐가 그렇게 슬프고 애달픈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총을 꺼내려는 내 손등을 꾹 누른 그가 크게 호흡하고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를 낸다.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주라.”




뭐래. 저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코를 훌쩍이기까지 하는 김도영을 보며 헛웃음이 샌다. 하여간에 N팀은 죄다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바쁘다. 그럴 시간에 남의 말 좀 듣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귀를 뚫어주고 싶으나 지금 이 자리엔 아기 고라니 같은 지성이가 있어서 참았다. 아직 어린 지성이가 보기엔 다소 과격하고 심의에 좋지 않으니 어른인 내가 참아야만 했다.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니까 참아야지.




“너는 왜 널 돌보질 않아?”




문제는 N팀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점이다.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을 세번이나 안 새겨도 되고 가성비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인간들이다. 이번엔 홍주연까지 가세해서 곧장 눈물을 떨굴 것처럼 굴었다. 진심 기 빨린다. 아직까지 내 몸은 이제노한테서 떨어질 생각을 않고, 내 앞을 막아 선 김도영과 홍주연은 훌쩍이고 있다. 옥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노도 질질 짜나 싶어서 올려다보니 그렇진 않았다. 하나라도 덜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팔도….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우는 건데요?”

“네가 널 소중히 여기질 않으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홍주연을 보고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얘 목소리가 비명 없이 이렇게 클 수 있구나 놀라는 것과 동시에 환멸이 난다. 살다살다 별 같잖은 소리 다 듣는다.




“개소리 하지말고 비켜요.”




여전히 내 손 위에 자리한 김도영 손을 쳐내고 이제노를 밀어냈다. 그래봤자 제대로 밀리지 않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방심한 틈을 만들고자 능력을 사용했다. 센티넬과는 전혀 다른 능력. 치유의 힘이라고 불리는 가이딩을 불어넣자 그의 능력이 사라지다 못해 이제노가 먼저 나를 밀어냈다. 어깨를 세게 밀친 탓에 몸이 뒤로 넘어 가려는 걸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진짜 넌덜머리 나.”




이제노가 쳐낸 어깨를 털어내고 돌아섰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두사람 중 마크가 양 팔을 벌리고 서있었다. 어쩐지 영호가 떠오르는 포즈라 웃으며 다가가자 지성이도 어정쩡하게 두 팔을 벌렸다.




“나 안 구하고 왜 기다리고 있어.”

“넌 스스로 구해낼 사람이니까-.”

“누나, 어깨 괜찮아요?”

“아프면 말해. 쟈니 형한테 다 말하자.”




형이 다 해결 해 줄 걸? 마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N팀을 향해 웃었다. 그의 얼굴을 본 홍주연이 주춤 한 걸음 물러서고, 이제노가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그를 자기 뒤로 세운다.




“궁금하네, 영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센티넬은 그렇다치고 가이드 능력도 파괴 할 수 있나? 그런 못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못된 생각이라 할 수도 없지. 서여주가 당한게 얼만데. 쌍욕을 퍼부어도 풀리지 않을 속이다. 문드러지다 못해 으깨지고 질척하게 녹다가 또 엉겨 붙는 속이 좋을 리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니까.”




마크와 지성이를 꼭 안아주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가이딩을 나누자 두사람이 날 안은 팔에도 힘이 들어간다. 아주 잠깐 서로를 안고 있다가 먼저 떨어진 건 마크였다. 고개를 든 그는 숨을 깊이 들이키더니 뻐근한지 목을 풀었다. 힘이 들어간 몸이랑은 달리 조금 풀린 눈이 진득하게 내게 닿았다. 지성이는 마크만큼 큰 효과는 없어 보이는데. 지성이가 받을 가이딩까지 마크에게 간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여주야.”

“왜?”

“내 능력은 안 궁금해?”




내 가이딩이 어떤 효과를 낳은 건지 모르겠다. 마크는 몽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누구보다 또렷한 정신을 가진 것 같기도 했는데 무엇이 정답인진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단지 마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강한 물줄기가 나타나 무서운 기세로 N팀 셋을 쓸어버렸다. 그리곤 물길이 8자를 그리며 커다란 구체 셋을 만든다. 일렁이는 물덩이 안에 담긴 세사람 중 가장 고통스러워 보이는 건 홍주연이었다.




‘걔가 죽으면 N팀도 전멸인데.’




일전에 마크가 했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홍주연 옆으로 물 속에서 발버둥 치는 두사람을 보니 마크의 또 다른 말이 함께 떠올랐다.




‘우린 걔네를 죽이고 싶거든. 걔넨 그 정도는 아니고.’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가 들린다. 옆을 돌아보자 지성이는 시큰둥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가 나까지 차분하게 만든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홍주연과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김도영, 화가 난 듯한 이제노. 그들을 보면서 이 상황이 실감 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글 속이란 자각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고, 내게 가해지는 고통이 아니라 그럴수도 있고.


울렁, 홍주연을 담은 물이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일렁인다. 그리곤 그의 몸이 움직이는 것 같더니 땅에서 그림자가 튀어올라 물을 갈랐다. 같은 방법으로 갈라진 두사람의 물덩이도 물풍선을 터트린 것처럼 바닥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꽤 괜찮지?”




이어서 또 한 번 파도가 치듯 물이 쏟아져 세사람을 덮쳤다. 이번엔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뽑혀져 나온 전봇대가 마크를 향하자 정신이 번뜩 뜨이는 느낌이다. 놀라서 한 발짝 움직이자 허리가 잡혔다. 지성이가 내 허리를 한 팔로 감고 전봇대를 사슬로 잡아 N팀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고보면 이제노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런 식으로 싸우고 있었을 거다. 홍주연을 데리고 우리 진영으로 가기 위해서. 깽판도 이런 깽판이 없다 싶을 만큼 요란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림자가 달리는 지성이 발목을 잡고, 마크가 이제노를 쓸어 버리면 이제노는 어디서 또 묵직한 물건을 가져와 마크를 향해 냅다 꽂았다. 그럼 마크가 물로 쳐내거고, 지성이는 세사람을 동시에 묶으려 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도로 위에 서있는데, 어디서 튀어 나온 건지 모를 그림자가 나를 덮치려 했다. 질질 짤 땐 언제고, 개같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망 뿐이었다. 그럴수록 마크와 지성이한테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나 달리 방법이 없다. 필사적으로 뛰면서 두사람과 멀어지되 다른 방법을 강구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여주, 너…!”

“엿이나 먹으랬지.”




이번엔 중지 대신 칼을 치켜 들었다. 총과 함께 지급되는 물품이었다. 그래도 나름 훈련인데 내가 늘 들고 다니는 총 말고도 다른 무기도 있었다. 게다가 서여주는 센터 내 가장 높은 레벨이었던 만큼 훈련 강도가 높았다. 아직 팀에 들어가기 전인 풋내기라도 말이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과 힘든 훈련을 겪었다. 우등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그와 센터에 들어와서 귀한 대접만 받았던 홍주연의 차이는 컸다.




“홍주연씨, 사감은 없어요.”

“왜…. 왜, 아.”

“난 언제나 날 소중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홍주연씨가 그렇게 느꼈다면…, 나보다 소중한게 있었다는 뜻 아닐까?”




서여주는 위험 속에서 홍주연을 구한 적 있다. 팀원들은 모르고, 홍주연과 서여주만 아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N팀은 믿어주지 않는 사실. 홍주연 시점으로만 글을 봤을 땐 당시 서여주의 정확한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서여주가 된 나는 안다. 서여주는 홍주연이 반정부니 테러단이니 하는 놈들에게 다치는 꼴까진 보기 싫었고, 그에게 열등감을 느낄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N팀을 살릴 수 있는 건 본인이 아니라 홍주연이란 걸 알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를 살리려 애쓴 거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홍주연 목에 칼이 닿자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내가 눈 돌아 홍주연 목을 그을 수도 있다고 보는 거다. 이러면서 걱정이고 나발이고 안 믿는 거다. 아무리 눈물을 쏟고 빌빌 기어봐라. 내가 눈길 한 번 주나.




“허튼 수작 부리지 마요.”




할 거면 티가 안 나게 하던가. 슬금슬금 하네스로 향하던 홍주연 손을 쳐냈다. 그의 하네스를 풀어 바닥에 던지자 이제노 손이 또 움직이려 한다.




“내가 그쪽으로 가는게 빠를까, 칼이 움직이는게 빠를까.”

“여주야, 그만해. 우리가 졌으니까 주연이는,”

“졌으면 전리품이 있어야지.”




김도영과 이제노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그제야 나를 제대로 보는 느낌이다. 나는 그들이 알던 서여주가 아니라고. 여태껏 본 얼굴 중 가장 살벌하고 흉흉한 안면이 어찌나 반가운지 웃음이 절로 났다. 정말 부러워 죽겠다. 주인공이라 이거지. 얘나, 너네나. 서여주는 아니고.




“너 후회해. 주연이 놔.”

“후회는 너네가 하는 거지.”




마크가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온다.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못하는 두사람과 달리 마크와 지성이는 자유롭고 사뿐히 내 곁으로 왔다. 두사람 눈에 우리가 얼마나 악당 같을까. 그 생각을 하니 또 슬퍼진다. 서여주는 끝까지 저들에게 악역이겠구나, 해서. 이왕 악역이 될 거 제대로 해볼까.




“서여주.”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낮았다. 홍주연 목으로 칼을 바짝 대며 고개를 틀자 정재현이 보인다. 다급히 눈을 깔고 그와 함께 있었던 치타폰을 떠올렸다. 런쥔이와 남았던 이제노 나타난 때와 마찬가지인 경우겠지.


순간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볼륨을 빠르게 낮추는 것처럼 흔히 들어오던 백색 소음조차 안 들리는 지금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건 정재현 목소리 뿐이다.




“손에 힘 풀고 주연이를 놔 줘.”




이건 패서네이트가 아니라 언령에 가깝지 않나? 내 정신까지 갉아 먹는게 느껴진다. 점점 아무런 생각 없어지고 그가 시키는대로 몸이 움직인다. 그게 억울해서 몸이 파들파들 떨리는데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홍주연이 내 품을 벗어나고 시선이 정재현에게 고정 된다. 눈을 마주치자 마치 서여주 몸에서 내가 분리된 것만 같다. 이제노의 능력으로 허공에 붕 떴을 때와는 다르다. 어떻게든 그의 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정재현이 내게 바짝 다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이야?”




짝. 손벽 치는 소리에 숨 쉬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헛숨이 들었다. 콜록, 갑자기 삼킨 숨이 부작용을 일으킨다. 허리를 숙여가며 기침하자 누군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조금 전 내가 서있던 시꺼먼 도로 한복판에서 보도 블럭으로 옮겨졌다. 고개를 들자 그토록 찾던 천러가 보인다.




“여주, 괜찮아?”




목을 긁는 기침을 몇번이나 토해내는 사이에도 다른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러는 내 등을 토닥였고, 그와 함께 온게 분명한 영호와 같이 딸려 온 건지 이동혁과 나재민까지 함께였다. 아마 전투 불능이 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인 듯 하다.




“우리 가이드를 지켰을 뿐입니다.”




쿨럭. 마지막 기침을 뱉고 나서야 제대로 숨을 들이킬 수 있었다. 붉어진 눈가를 닦아내고 고개를 들자 N팀이 모여 있는게 보인다. 쓰러져 있을 김정우를 제외하고 전부 모인 그들의 시선이 어지러이 여기저기 뻗어 나가 있다. 그 중 나를 보고 있는 건 이동혁과 나재민. 두사람은 홍주연을 지키듯 그를 뒤에 세우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음…, 맞아. 당연한 일 했네.”




영호가 여유를 부린다. 그가 나타나자 마크와 지성이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긴장감을 풀었다. 그게 영호의 위치와 능력을 설명 해주는 것 같아서 나까지 안도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명백한 어리광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니까 더운 숨을 뱉어가며 참았다. 그런 나를 알아차린 천러가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그 당연한 일을 왜 전엔 안 했을까-.”

“……….”

“훈련 중에 너무 사적인 질문인가요?”

“네.”

“근데, 이 훈련도 사심 섞여서 하는 거잖아.”




정재현이 입을 다문다. 긍정을 표하는 꼴이란 걸 본인도 알 텐데 아무런 답도 없이 영호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럼 영호는 크게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며 그의 팀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하나하나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았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뒤로 숨겼다. 그래봤자 발꿈치가 삐져 나오고 그 아래의 팔이 비쳐서 소용 없었지만. 영호의 눈이 한참 내 팔에 닿아 있었다. 정재현도 마찬가지다. 서여주의 보호자였던 두사람의 시선이 다친 상처 위로 한참 머물러 있자 절로 주눅 든다.




“그만 봐-. 여주가 싫다잖아-.”




천러가 내 앞을 막아서서 두사람을 꾸중한다. 그제야 내 표정을 확인한 두사람이 시선을 거뒀다.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판 깔아두고 쌓인 거 풀라고 만든 자리인 거 아는데, 안타깝게도 우린 이런 걸로 안 풀려요. 몇대 때리는 걸로 풀릴 거면 저번으로 끝냈지.”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쪽 가이드가 죽으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요?”




반응은 정재현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나왔다. 이를 드러내는 나재민을 힐끗 본 영호가 코웃음을 친다. 그럼 홍주연은 더 움츠리고 뒤로 숨어 보호 받았다.




“그럼 내 동생이 죽었을 때 내 심정은?”




바람이 한차례 스쳐지나갈 때까지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 영호의 시선이 다시 나재민에게 향했다. 당황한 그가 입술을 씹으며 시선을 피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죽다 살아난 내 동생이 팀이었다는 사람에게 공격 받는 걸 봤을 때는?”




멀어서 보이진 않지만 그의 눈꺼풀이 떨리는 건 알았다. 유난히 속눈썹이 곧고 예쁘게 뻗어있어서 그의 속눈썹이 떨릴 때마다 작은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난 이런 걸로 못 풀어요. 그러니까 내 손에 죽을 거 아니면 앞으로 허튼 수 쓰지 마요.”




차분한 목소리는 정재현처럼 낮지도 나재민이나 이동혁처럼 격양 되지도 않았지만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음성만 놓고 보자면 다정하게 들리기도 했으나 속엔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숨어 있다. 그의 번뜩이는 눈은 사냥 직전의 짐승 같았고, 낮아진 자세는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처럼 긴장감을 준다. 모두가 숨 죽인 지금 유일하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영호가 돌아섰다. 타박타박 걷는 소리를 따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다치지 말라니까.”

“훈련 하다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지.”

“저쪽은 멀쩡하던데?”




영호 시선이 정확히 홍주연에게 박힌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나도 모르게 영호 팔을 움켜쥐자 그의 눈이 동그래진다. 나를 돌아 볼 때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그가 나를 확인 하고서 당황한다. 영호 팔에서 손을 떼고, 한걸음 물러서자 당황한 그가 더욱 잘 보였다. 그의 뒤로 멀찍이 떨어진 N팀과 가까이 선 영호가 한 눈에 담겼다. 눈을 굴리자 N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크와 지성이가 서있고, 그 옆에 정재현이 서있다. 한발짝 더 물러서면 천러까지. 순간적인 감정에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주야!!”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건 영호다. 당연하지. 하나 남은 혈육이고, 얼마 전에 죽을 뻔하다 살아난 동생이니까. 그 옆엔 천러가, 그의 뒤로 성큼 다가 온 마크와 지성이가 있었다. 그리고 먼 자리에 주춤이며 선 N팀을 보았다. 튀어나오려 한 발짝 땐 발이 눈에 띈다.




“…와.”




영호가 홍주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마저 홍주연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 했다. 이건 과연 피해 의식일까, 경험이 알려주는 위험 신호일까. 이번엔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숨을 크게 들이키는데도 진정 되지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호흡이 제멋대로다.




“여주야, 여주야! 천천히.”

“천러, 봉투 찾아와!”

“누나….”




마크가 욕을 씹었다. 천러는 그의 말을 따라 봉투를 찾으러 간 건지 보이지 않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영호가 내 입을 틀어 막아도 호흡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가슴을 부여 잡으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호흡을 되찾으려 애쓰는데도 머리가 점점 멍해지고 눈 앞이 흐려졌다.




“비켜봐요. 여주야, 나 보여? 정신 차려야 돼. 나 봐.”




넘어갈 듯한 숨, 흐려지는 눈 앞에 보이는 건 정재현 뿐이다. 또다. 모든 부름이 볼륨을 줄이고 오직 정재현 목소리만 키웠다. 여주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가슴을 붙든 내 손을 쥔 정재현 손, 그의 남은 손이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눈을 굴려 주변을 보려해도 정재현이 다시 시선을 잡는다. 날 봐. 그 말 한마디에 다시 정재현에게 시선이 돌아간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그의 말에 불만을 토로하는 속과는 달리 호흡은 안정을 찾아갔다. 점점 개어가는 머리, 뒤늦게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서 바닥에 누워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몇 번 더 호흡하고 나니 가슴 통증은 남았어도 괴롭지는 않았다.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피자 영호나 우리 팀 애들은 물론 N팀까지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 중엔 당연하다는 듯 홍주연도 함께였다.




“영호야….”

“이제 괜찮아?”

“영호야.”




여태 차곡차곡 잘 쌓아 올리던 댐이 무너졌다. 작은 틈 하나로 터진 눈물샘은 와르르 쏟아져 내리며 물길을텄다. 손을 뻗는대로 잡혀주는 손에 의지해 겨우 골라낸 숨을 삼키며 팔을 뻗었다.




“너는 끝까지 내 편이어야 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래야만 해. 서여주 가족이니까. 서여주에게 너마저 없으면 그 애는 정말 외톨이야. 아무도 남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 전부 등져도 너만은 서여주 편에 서야 한다. 다른 가이드는 다 돼도 홍주연만은 안 된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가이딩을 가졌대도.















다시 눈을 떴을 땐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천장이었다. 잠을 깨우기 위해 느리게나마 눈을 깜빡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붉은 노을빛이 보인다. 서여주.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가를 간질이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영호가 홍주연을 보자마자 철렁 내려앉던 감각이 여전하다. 서여주는 이런 고통을 몇번이나 겪었던 것일까. 팀원들이 하나하나 돌아 설 때마다 얼마나 슬퍼 했을까.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단 생각이 고통스럽다. 정작 알아줘야 할 사람들은 네가 죽은 뒤에도 널 한 번도 떠올리지 않고 잘만 살던데, 너는 왜 고통 속에서 싸늘히 식어가야만 했을까.




“너….”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그다지 반기는 얼굴은 아니라 다시 시선을 돌리자 잠시간 아무 소리 없더니 문이 닫혔다. 이어지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곁에 무언가 놓여도 창 밖만 바라봤다.




“깨어나서…. 아니다. 너는 이런 말도 싫지?”




도르륵 구른 시선이 이동혁에게 박혔다. 눈이 마주친 이동혁은 잠깐 놀란 듯 보이더니 입술을 꾹 말아물곤 손을 뻗었다. 눈가를 문지르는 손이 눈물길을 지웠다. 서여주가 죽고서야 눈물을 닦아주는 이동혁이라니, 정말 아이러니 하지. 눈을 감자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괜찮은지만 보러 왔어. 깨어난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거야.”

“……….”

“갈게.”




다시 눈을 뜨면 그의 등이 보인다. 노을빛을 망토 삼아 덮인 그 등을 사랑하던 서여주가 떠오른다. 종종 그의 등에 업혀 지냈다. 팀 내에서 서여주와 가장 많이 부딪히고 아웅다웅 지낸만큼 서로를 아낀 사람이다. 그래서 동혁이 돌아섰을 때, 서여주는 평소와 다름 없이 티격 댄 정도라고 여겼다. 다른 팀원들의 마음이 돌아선 건 단번에 알아차렸으면서 이동혁만큼은 찰나의 희망을 가졌다.




“왜 안 와….”

“……….”

“깨, 어났으면, 왜 안 와.”




서여주 생각에 먹먹해서, 자다 일어난 탓에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볼품없이 나갔다. 푹 젖은 솜처럼 뚝뚝 뜯겨 나간 말을 겨우 이어 붙이자 문 앞에 섰던 이동혁이 뒤를 돌아본다. 노을빛에 덮인 그를 서여주가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지지리도 미워한 사람인데, 그깟 추억이 뭐라고 물고 늘어졌을까. 너 싫다는 사람 너도 버리지. 왜 목숨까지 내놓고 죽어버렸니.




“네가 싫어할 테니까. 우리 꼴도 보기 싫어할 거 같아서.”




그래도 주제는 아는 모양이다. 서여주가 가졌어야 할 감정을 뱉는 걸 보면. 하지만 서여주가 너희를 아는 만큼 너희는 서여주를 몰랐다. 애정의 크기가 달랐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너희가 센티넬이 가이드를 더 좋아할거라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서여주는 너희의 작은 애정에도 감사하며 사랑의 크기를 키웠다. 미소 한 번과 이름 불러주는 목소리 한 번에 몸집을 부풀린 애정은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만큼이나 커졌는데, 너희는 태양이 너무 당연해서 그가 지평선 끝으로 뛰어들어 식어간 것도 몰랐다.




“기다렸어….”




서여주는 너희가 다시 방 문을 두드려 주길 기다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점심이 다 왔을 때도,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달이 휘영청 떴을 때까지도. 그러다 누구도 문을 두드리지 않을 쯤에 무너져 내렸다. 홀로 방구석에 썩어 들어가다 죽음을 택했다. 누구도 웃어주지 않고 불러주지 않는데도 멋대로 커져가는 마음이 버거워서 평안을 바랐다. 평안 직전에도 너희에게 어떻게든 각인 되고 싶어 선택한 죽음이 그런 식이었던 거다. 한 번만 문을 두드려 줬다면, 서성이기만 했어도 서여주는 살아갔을 텐데.




“너…. 기억 해?”




이동혁은 무언가 두려운 것처럼 한 발 뒤로 뺀다. 이를 악 물고 참아보지만 턱이 덜덜 떨리는게 다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뒤로 뺀 발을 앞으로 돌렸다. 성큼성큼 다가 온 그가 침대 맡에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가까이서 보는 얼굴은 서여주 기억 다음으로, 나는 처음이었다.




“서여주. 기억해?”

“……….”

“미안해.”




툭,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비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는데도 어떤 감흥도 없다. 서여주의 감정은 어딜 가고 내 감정만 남아있다. 지금만큼 서여주의 감정이 필요한 때가 없는데, 꼭 필요할 땐 꽁꽁 숨어버린 그의 감정은 아무리 불러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그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할 수 없게끔.




“처음엔 네 원망을 들을까 봐 못 왔는데…, 그 다음은 네가 정말 우리를 모르는 거 같아서 무서웠어. 차라리 네가 우릴 사랑하지 않길 바란 것도 너무 미안해서…. 그 터무니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이동혁이 흐느낀다. 코앞에 내가 있는데 닿아선 안 될 사람 취급을 하며 침대 시트를 꽉 쥐고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원래 눈물 많은 애가 아닌데 뭐가 미안할까. 미안할 짓을 하지 말지. 가만히 이동혁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따갑던 팔은 멀쩡 했고,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이동혁의 머리꼭지가 잘 보인다. 동글동글한 머리통 위에 손을 올리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그의 얼굴을 보니 여태 몽롱 했던 정신이 깬다.




“소원이 이뤄져서 좋겠네요.”

“……….”

“축하해요.”




웃었다. 이제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동혁에게도 최대한 환하게 웃어주면서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툭,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어깨를 밀어냈는데도 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멍하니 나를 올려다 보는 얼굴 위로 눈물방울이 하나 더 구른다.




“당신들이 알던 서여주는 죽었어요.”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벌벌 떨리는 몸은 참 볼만 했다. 긴 시간동안 서여주를 핍박하고 괴롭혔으면서 사과 한마디에 용서 할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비록 나는 서여주가 아니고 서여주도 원치 않겠지만, 그럼에도 서여주 행세를 하며 그들을 상처 줘야겠다.




“뭐해? 나가요.”




적어도 내가 영호와 떠나기 전까진 지옥에서 살도록 만들 거다. 내가 사랑하게 된 이 몸의 주인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은 그 뿐이니까. 과거의 지옥을 도륙내고, 내가 떠나도 지옥에서 살게끔.






















💭 왜 또 왔냐면…. 다들 호응 해주시길래…ㅎㅎㅎㅎ 뒷내용 좀 써보자~한 김에 와봤습니다.


💭 여주가 기억 돌아왔다고 알려 준 거 아님. 걍 혼란을 주고 싶어 하는 중. 여주가 건덕지 하나 던져주면 기억하나 안 하나 살펴 볼 거고, 그걸로 또 죽어라 삽질할 걸 알기 때문에…ㅎ


💭 팀 빈즈는 지금 여주 상태에 대해서 담당의한테 들으러 갔고, 우선 임무땜에 한국에 머물러 있는 거라 임무 관련해서 또 모여있습니다. 동혁이는 뭐…. 잠시 몰래 나온거라고 해둘게요ㅎㅎ


💭 내일 없이 글 쓰는 중…. 다음 내용 생각 안 하고 막 갈긴단 소리입니다. 연재…얘기를 많이 하시던데…. 제가 연재 시리즈로 넘어가기만 하면 글을 안 쓰는 거 같아요…ㅎㅎㅎㅎ 미치것어ㅠ


💭 악몰의 목표는 하나!! 서여주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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