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는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이었다. 잔뜩 찡그린 미간과 살짝 튀어나온 입술이 기분이 좋지 않음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복장 또한 코스튬도, 정장도 아닌 조금은 캐주얼한 일상복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공식적으로 정해놓은 규칙은 없었기에 잘못되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으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서는 미도리아에게 장난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이 많이 편해졌나봐?

 “하루에 한 번 꼴로 오는데 편해질만도 하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읽지 못할 만큼 눈치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미도리야의 태도가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일종의 시위였음을 직감했다. 이제 그만 가만히 놔두면 안돼요? 눈을 마주하자 강렬한 환청이 들렸다. 그는 잘못을 숨기려다 걸린 아이처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문장뿐이었다. 그것도 미도리야가 원하는 대답일 리 없음을 알았다. …미안하다. 위원회의 일원이 아닌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사과였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도 그럴것이 위원회는 미도리야의 요청을 들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경계를 강화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히어로 데쿠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으나 또 동시에,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실행할 준비도 되어 있는 듯 했다. 그가 미도리야에게 건넨 사과의 말은 바로 이러한 점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대찬성이었다. 날이 갈수록 피곤해보이는 미도리야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으나 그를 위해 위원회에 반대표를 던질 의향은 없었다.

 “바쿠고 카츠키의 폭력성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던가?”

 일부러 미도리야의 신경을 긁기 위한 날카로운 질문을 입에 담는 동료를 말리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핏줄이 설 정도로 꾹 다문 입술을 보면 양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고통을 드러내진 않았다. 바쿠고가 폭살왕의 이름으로 일으켰던 수 많은 사건들의 뒤처리를 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조금 통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살짝 올라가버린 입꼬리를 억지로 만들어낸 헛기침을 가렸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모두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세 개의 책상이 모여 만들어낸 빈 공간 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미도리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넘버원 히어로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유난히 큰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맹수 앞에 서 있는 초식동물의 기분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눈을 피했다. 놀란 마음에 이번엔 진짜 헛기침이 나와버렸다. 생리현상을 억지로 멈추려고하니 고통스러웠다. 넥타이를 정돈하는 척 가슴을 쓸어내리고나서야 평소의 호흡으로 돌아왔다. 모두에게 상냥한 넘버원 히어로라니. 순 거짓말이잖아. 자신의 잘못은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그가 가진 개성이었다.

 

 

 

 그 이후로도 휘몰아치는 쓸데없는 질문에 성심껏 대답하는 척 연기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미도리야는 답지 않게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복도로 나왔다. 잃어버렸던 동료를 되찾아온 지 한 달 조금 안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위원회의 긴급회의는 벌써 마흔번쯤 열린 것 같았다. 위원회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히어로도 결국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회의를 여는 이유가 점점 억지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이제는 협조하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힘 조절에 실패하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크게 울렸다. 쿵하는 그 소리는 마치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같았다. 멀지 않은 과거에 그와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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